홍로점설(紅爐點雪)
紅 : 붉을 홍
爐 : 화로 로
點 : 점 점
雪 : 눈 설
벌겋게 단 화로 위의 한 송이 눈이라는 뜻으로,
뜨거운 불길 위에 한 점 눈을 뿌리면
순식간에 녹듯이 사욕이나 의혹이 일시에 꺼져 없어지고
마음이 탁 트여 맑음을 일컫는 말이다.
또는 크나큰 일에 작은 힘이
조금도 보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출전 : 벽암록(碧岩錄) 주자어류(朱子語類)
눈은 포근하다. 번잡하고 사악한 세상을 포근히 감싼다.
황막한 벌판을 하얗게 덮도록, 앙상한 앞산을
고이 덮어주기를 시인은 원한다.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다.
연일 눈이 날리고 쌓여 사방이 막히면
제설(除雪)하는 사람은 죽어난다.
그 위에 서리까지 치면 설상가상(雪上加霜)이다.
그래도 눈은 약하다. 북풍한설도 봄이 되면 눈 녹듯 사라진다.
불로 벌겋게 달아오른 화로(紅爐)에
한 송이의 눈(點雪)을 얹으면 순식간에 녹는다.
시의 한 구절같이 멋진 비유인 만큼 나타내는 뜻도 다양하다.
사욕이나 의혹이 일시에 사라지는 것을 말하거나
도를 깨달아 미몽에서 깨어나는 것에서 큰 힘 앞에
맥을 못 추는 사소한 일을 가리키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인 만큼 가장 먼저 사용된 곳이
명확하지 않은 채 여러 곳에서 인용됐다.
먼저 1125년 완성된 선종(禪宗)의 불서
'벽암록(碧岩錄)' 69칙에서는 아무런 자취를
남기지 않는 자유자재의 경지를 나타냈다.
"망념 망상의 가시 숲을 헤치고 나온 선승은
무슨 짓을 하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움직인다
(透荊棘林 衲僧家 如紅爐上一點雪 )
투형극림 납승가 여홍로상일점설
주자(朱子)와 문인 사이에 행해진 문답의 기록
'주자어류(朱子語類)'엔 안자(顔子)의 사욕을
멀리하는 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안자의 극기는 마치 붉은 화로 위에 한 점 눈이 떨어진 것과 같다.
(顔子克己 如紅爐上一點雪)
안자극기 여홍로상일점운
이처럼 딱딱한 출처 말고 멋진 용례로 우리의 고전에도 자주 나타난다.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승병장을 마치고 70명의 제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적하면서 임종게(臨終偈: 고승들이 입적할 때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를 남겼다.
죽음은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
(死也一片浮雲滅)이라고 말한 대사인 만큼 의미심장하다.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이
임진왜란 의병생활을 마친 후 돌아온 것이 69세,
그후 85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 칩거하였다.
그의 임종은 참으로 선사다웠는데 제자 7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거울을 들여다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八十年前渠是我(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팔십년후아시거)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그러고 나서 운명하기 직전에 최후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읊었다.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생사거래역여연)
나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인 듯하고
죽는 것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
뜬 구름 자체는 본래 자체가 실이 없나니
죽고 사는 것도 역시 이와 같도다
千計萬思量(천계만사량)
紅爐一點雪(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이우수상행)
大地虛空裂(대지허공렬)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논갈이 소가 물 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진흙으로 빚은 소가 니우(泥牛)인데 니우입해(泥牛入海)라 하면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사는 마지막 임종게(臨終偈)를 읊고 나서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
가부좌(跏趺座)를 하고 앉아 조용히 잠들듯이 입적(入寂)하였다고 한다.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이라 해도 같은 뜻의 이 성어는
도를 깨달아 앞이 훤히 틔는 상태를 말하는 큰 뜻 외에
거센 불길 앞에서는 한 송이 눈이 미약하여 속수무책인 양면성이 있다.
설니홍조(雪泥鴻爪)라고 같은 눈이 나오는 말이 있다.
눈이나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란 의미인데
이것은 녹으면 곧 사라지는 인생의 무상이다.
모든 의혹을 밝혀 앞날이 창창한 대로만 남았어도
그 또한 변하면 어찌될지 모르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 있다.
오늘의 힘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 것
또한 당연하니 말이다.
-옮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