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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인디고 조성민]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비장애인 중심의 투표를 해야 하나요?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요? 투표권은 장애 여부 떠나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하는 기본권입니다. 앞으로 모든 선거에서는 사진이나 정당 로고가 있고 이름이 있는 쉬운 투표용지를 제공하면 좋겠습니다. 언제까지 예산 없다고 핑계만 댈 건가요?”
발달장애인들이 3월 대선을 앞두고 공직선거 과정에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 용지를 제공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했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50일로 다가온 데다 4개월 후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치러진다.
한국피플퍼스트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장애인단체 회원 및 공익변호사들은 18일 오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공직선거에 대한 정보접근권 보장을 위한 차별구제청구소송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대선 100일을 앞둔 작년 11월에는 발달장애인을 위한 투표보조를 제지하는 것은 참정권 침해이자 차별이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긴급구제 요청과 차별구제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18일 공직선거 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의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라며 국가를 상대로 한 차별구제소송 기자회견에 일부 참석자들은 ‘그림투표용지’ ‘알기 쉬원 선거공보물’, ‘공적조력인’ 등이 적힌 피켓과 자유, 평등, 참정권이라는 가면을 쓰고 참석했다. ⓒ더인디고
선관위는 지난 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사전 협의나 안내도 없이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지침을 삭제해 당시 일부 장애인 등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는 선관위에 정당한 편의제공 마련을 권고했지만, 선관위가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자 소송으로 맞섰다.
관련해 법원은 지난 14일 심문기일을 열고 차별구제소송 대리인단과 선관위 측의 추가 의견을 받아 임시조치 여부 검토에 들어갔다. 보통 2주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볼 때 내달 초에는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들 단체는 투표보조에 대한 긴급구제 요청에 이어 대선을 50일 앞둔 오늘(18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보물과 그림투표 용지 개발을 통해 이들의 참정권을 보장해 달라는 취지의 보안 소송에 나섰다.
소송을 대리하는 이선민 사단법인 두루 변호사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9조와 제29조,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1조 및 제27조, 그리고 발달장애인법 등 국내외 법적 근거를 들어 “국가는 발달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후보자와 정당, 정책 공약 등 선거 관련 정보에 누구나 동등한 수준으로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필요한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위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사진 왼쪽에서부터 두 번째 김윤진 변호사, 이어 이선민 변호사가 소송제기 배경 등을 설명하고 있다. ⓒ더인디고
이 변호사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각 후보의 공약이 담긴 공보물 속 내용이 무엇인지, 그 내용이 자신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전제한 뒤 “국가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의 선거공보 등의 제작 또는 이에 상응하는 수단을 발달장애인들에게 제공하지 않는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의 ▲편의제공의무 위반이자, 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부당한 결과를 낳은 ▲간접차별”이라며 법원의 적극적인 판단을 촉구했다.
▲원고 박경인씨가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더인디고
실제 본안 소송 원고이자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회원은 의사소통이 원활하고 글자를 읽고 그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어려운 단어나 문장까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박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제껏 받아본 공보물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글씨가 많고 용어도 어렵고, 갑자기 영어가 나오는가 하면, 내용과는 상관없는 사진이 배치돼 있다. 또 내용을 줄인 공약이나 문법 순서가 바뀌기도 해서 후보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다른 나라처럼 쉬운 단어로 자세하게 어떻게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알려주고, 내용과 연결된 사진이나 그림, 색깔을 넣어 만든다면 후보자의 공약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소송대리인인 김윤진 재단법인 동천 변호사도 “법적으로는 장애인의 선거권을 보장하면서도 공직선거법 제151조는 시각장애인과 달리 발달장애인은 특수투표용지 또는 투표보조용구를 제작, 사용 등의 규정이 없다. 선관위는 이를 근거로 발달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투표 설비나 보조용구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는 물리적 접근에서 벗어나 인지적 측면에서의 참정권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며 그림투표용지 도입 등을 재차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그러면서 “선관위가 당장 지원이 어렵다면, 임시라도 각 투표소에 기호, 소속, 정당명 등이 시각적 이미지가 들어간 안내판을 비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해외 여러 나라들은 발달장애인 등 인지 혹은 언어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선거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영국은 2010년 총선 이후 각 주요 정당은 학습 및 발달장애가 있는 유권자를 위한 ‘이해하기 쉬운 선거공약집(easy read manifestos)’을 일반 공약집과 구분하여 발간하고 있다.
▲영국의 읽기 쉬운 선거공약집(easy read manifestos). 왼쪽은 노동당 공약집 표지. 오른쪽은 녹색당 본문 내용 일부다. 녹색당은 당이 지향 혹은 배제하는 것을 그림과 함께 설명했다.
스코틀랜드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모든 유권자에게 후보자의 성명과 소속 정당명, 로고가 병기된 투표용지를 제공한다. 정당마다 고유의 색깔과 모양의 로고를 사용하고 있으며 투표용지에 정당의 로고와 후보자의 사진이 함께 표기해 제공한다.
한편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작년 10월, 발달장애인의 선거 접근성을 위해 투표용지에 정당의 심벌마크 표기와 본인이 지정한 2인 또는 공적보조인이 동반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또 지난 10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20만 발달장애인도 대통령을 뽑고 싶다! 투표보조를 지원하라!”는 제목의 청원이 진행 중이다.
선관위는 지난 11일 더인디고와의 전화 통화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매 선거 때마다 발달장애인 등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또 이번 대선을 앞두고 관련 매뉴얼을 개발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지원이나 그림투표용지 제공 등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선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냈다.
대선이 불과 50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법원이 공직선거법을 적극적으로 해석, 장애인의 선거권을 폭넓게 보장할지 여부는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긴급구제 요청’에 따른 판결이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인디고 THE IND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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