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혼인 예복
혼인과 혼인 잔치보다 하느님의 인류 구원을 더 잘 보여주는 사건은 없다. 사랑하는 이들 사이 합법적인 결합과 그를 축하하는 하객들의 기쁨이 그것이다. 혼인은 그냥 기쁘기만 하다. 신랑 신부와 그 부모는 눈물 날 정도로 기쁘다. 그렇다, 하늘나라는 기쁨이다. 그보다 더 기쁠 수 없는 충만한 기쁨이고, 죽음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이다.
우리는 충만하고 영원한 기쁨을 누리라고 초대받았다. 어른이 돼서 세례받은 교우들도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초대에 응답한 거다. 초대 대상이 왜 나인지, 그건 잘 모른다. 법당에 가면 기분이 이상하고, 개신교회 안에 들어가서 신성함을 느껴본 적은 없다. 오직 성당, 견고한 제대와 소박한 감실등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축 늘어진 예수님상이 있는 그곳에서만 신성함을 느낀다. 수십 년 그곳을 드나들었는데도 여전히 언제나 그 안에 들어갈 때는 한 호흡 마음을 가다듬고, 성수를 찍어 바르며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려고 한다. 혹독한 수련을 통해서 어떤 경지에 이른 이들은 감실에서 우리 같은 일반 사람은 느끼지 못하는 어떤 신성한 기운을 감지한다고 한다. 그곳은 세상과 다른 곳이다. 아니, 그런 곳을 가리킨다.
하느님은 하늘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게 아니라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 중 하나가 되셔서 우리에 대한 당신 사랑을 명백히 보여주셨다. 죽을 수 없는 분이 죽기까지, 그분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떠는 악마에게 유혹받으시고, 적에게 패할 수 없는 분이 누명으로 억울함까지 겪으셨다. 그분은 죄 말고는 우리와 철저히 같아지셨다. 어른은 어린 자식과 예쁜 아기 마음을 한 번 사보려고 자신을 낮추어 온갖 어린 짓을 한다. 그 안에는 나쁜 마음이란 하나도 없다. 단지 그 아기가 나를 보고 웃고, 대화하기만 바랄 뿐이다. 거기에 자신에게 안기기라도 하면 가진 모든 걸 다 줄 판이다. 하느님은 우리 마음을 사기 위해 더 이상 하실 수 있는 게 없다.
하늘나라는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다 들어가는 건 아니다. 오늘 예수님 비유에 따르면 초대받은 이는 합당한 혼인 예복을 입어야 한다. 요즘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결혼식에 새 옷 맞춰 입고 오라고 예단이라는 걸 줬다. 예복을 입고 거친 작업을 하지 않는다. 옷은 그의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기본적인 도구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혼인 예복은 선하고 의로운 행위들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먼저 하느님 뜻에 순종하는 마음이다. 순교자들의 안타까운 생활과 비참한 최후를 그린 글과 그림 앞에서 우리는 숭고함, 거룩함, 신성함을 느낀다. 그것은 예수님 십자고상에서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신성함이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내 안에는 하느님 뜻을 거역하는 마음이 늘 있다. 아니, 그보다는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멋대로 하고 싶은 바람이겠다. 소박한 감실 등불이 말하듯이 하느님은 그런 우리를 억지로 굴복시키는 폭군이 아니다. 그렇게 얻은 순종과 마음이 진심일 리가 없다. 우리 하느님은 우리가 하느님 사랑을 알고 스스로 기꺼이 순종하여 당신께 가까이 오기를 바라신다. 오늘 안 되면 내일, 내일 안 되면 모레, 그렇게 세상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시고, 여기서 안 되면 연옥 단련교회 안에서 그렇게 변화되게 또 기회를 주신다. 하느님께 순종 말고 하느님과 하나가 되는 길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 순종은 미뤄서 될 게 아니고 저절로 되는 건 더더욱 아닙니다. 언젠가는 결국 해야 할 것이니 지금 여기서부터, 하루라도 빨리 그렇게 하겠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와 완전한 순종을 가르쳐 주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