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저우 전시회를 마치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옆자리에 한 여성이 앉았다. 여권을 보니 중국인이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의 어깨가 들썩이며 눈물이 맺히더니, 곧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나는 유부남인데다 그녀는 아무리 봐도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괜히 오해를 사는 행동으로 인해 인생에 문제가 생기고 싶지 않아서, 애써 못 본 척 무시하기로 했다.
하지만 30분이 넘도록 흐느끼는 모습에 결국 승무원을 불러 휴지를 받아 건네주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인류애였다.)
그녀는 예상치 못하게 아주 능숙한 한국어로 고맙다며 인사를 건넸다.
잠시 후, 나는 다시 전자책을 읽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렀고, 그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책을 읽느냐고 물었다.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중국어로 된 《논어》였다. 그녀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고전을 읽고 시험을 치르던 트라우마가 있어 쳐다보지도 않는데, 한국인이 이런 책을 읽고 있다니 신기하다고 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중국인 여성과 결혼했으며, 중국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고 중국의 언어와 문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녀는 경계심이 조금 누그러진 듯, 현재 캐나다에서 일하며 이민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휴가차 고향을 다녀오는 길인데, 부모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고 했다.
이야기꽃이 피어날 무렵, 그녀는 최근 한국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한중 관계가 악화된 후 몇몇 한국 친구들이 자신을 무시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정치는 바람과 같아 언젠가는 변할 것이며, 정치 때문에 떠난 친구들보다는 여전히 곁에 남아 있는 다른 한국인 친구들에게 더 마음을 주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내 코가 석자인데…)
이야기 중 그녀는 능숙한 한국어 실력의 비밀도 알려주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항상 일만 하며 자신에게 무심했던 아버지에게 받은 상처가 컸다고 했다. 그 시절 유일한 위안은 케이팝이었고, 매일 밤 자기 전 갓세븐과 전소미, IOI와 만나는 상상을 하며 위로를 받았다고 했다. 그로 인해 한국어 공부에 몰두하게 되었단다.
지금은 바쁘게 살아가면서 예전처럼 케이팝을 사랑하지는 않지만, BTS를 비롯한 케이팝 가수들이 세계적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큰 감격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란 나라가 그 매력을 세계에 알리는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중국도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지닌 나라이니,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캐나다에서의 삶에 성공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그렇게 3시간 동안 진솔한 대화를 나누다, 나는 입국 라인으로, 그녀는 환승 라인으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나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선한 마음, 관심, 그리고 이해가 이 험난한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어왔다. 오늘의 만남을 통해 그 믿음을 더욱 굳건히 지키기로 했다.
첫댓글 여러 생각을 들게 하는 글입니다 그나저나 만주족님은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나신 거 같아요ㅎㅎ
그 자리에 없었지만, 내 마음이 따듯해지네요
👍🏻👍🏻👍🏻
무슨 영화 같네요.
인싸이신듯요 ㅇㅎㅎㅎ
와우 멋집니다
잘생기셨나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친구인데 무시하다니 너무하네 ;;
흐음.. 중원에서 생각하는 ‘친구’ ‘붕우’ 는 한국이나 일본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일텐데 안타깝습니다… 참 주변정세나 시국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