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고추잠자리가 늦여름 하늘가에 표산(飄散) 하던 날 헌릉 근처 호젓한 사행(蛇行)길을 빨간 승용차 한 대가 물방개 헤엄치듯 느리게 기어가고 있었다. 차 안에는 친구사이인 청년 둘이 타고 있었고 때마침 서쪽하늘에 걸린 새털노을은 두 사람의 얼굴을 짙게 물들이고 있었다.
마음은 시(詩)를 닮고 시심은 가을로 향하고 바람은 이미 여름을 떠나가고 둘은 말없이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맞이를 하다가 운전대를 잡고 있던 이동원이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명함만 하게 접은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모 여성지에 실린 시 한편이었다.
한 줄 한 줄 시를 읽어 내려가던 차종태(딕 훼밀리 보컬) 눈에는 어느새 붉은 노을이 녹아 뺨을 타고 흘렀다. 이동원은 대모산 기슭의 어느 허름한 대폿집에 차를 세웠다. 양은주전자를 사이에 놓고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엔 또 다시 긴 침묵이 흘렀다. 나뭇잎들이 다가올 갈색 세상에 대하여 소곤거리는 소리를 안주삼아 막걸리 몇 사발로 목을 축인 차종태가 먼저 침묵의 장막을 열어젖혔다.
“동원아, 이 시는 네 노래다. (최)종혁이 형에게 곡을 맡기자.”
“편곡은?”
“(신)병하 형”
서둘러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이동원은 정호승 시인의 소재파악에 나섰고 시인은 마침 일간지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 중이었던 터라 어렵잖게 만날 수 있었다. 되는 집안은 가지대궁에도 수박이 열린다 하였던가? 시인이 이동원의 팬 이었던지라 자신의 시를 선뜻 노랫말로 내어주었다. 또 한 곡의 명곡이 잉태되는 순간이었다.
▲ 이동원 ‘이별 노래’ 수록 음반 표지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에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속에서 사림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나 그대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그대 떠나는 곳 내 먼저 떠나가서
그대에 뒷모습에 깔리는 노을이 되리니
옷깃을 여미고 어둠속에서 사림의
집들이 어두워지면
나 그대위해 노래하는 별이 되리니
떠나는 그대 조금만 더 늦게 떠나준다면
그대 떠난 뒤에도 내 그대를
사랑하기에 아직 늦지 않으리
‘이별노래’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연상시키는 서정시를 표방하고 있지만 실상은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 가까운 전형적인 애이불비(哀以不悲,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의 시이다. 서슬 퍼렇던 신군부 독재시절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자유를 시인은 한 여인의 거꾸로 신은 고무신 속에 감추었던 것이다.
이 노래는 1984년에 발표되어 큰 반향을 불러왔으며 이동원은 그해 말 KBS 10대 가수에 선정되며 오랜 무명생활을 털고 주류에 편입된다.
며칠 전 강릉 선교장에서 열린 음악행사에서 다시 만난 이동원.
이미 회갑을 넘긴 나이지만 그의 목소리에선 전혀 세월을 느낄 수가 없었다. 고색창연한 선교장의 밤풍경과 어우러진 그의 노래를 들으며 “이게 바로 평생을 아름다운 노래만 부른 보상이구나.”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동원은 향년 70세의 나이로 2021년 11월 작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