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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
입력 2024.08.16. 00:15업데이트 2024.08.16. 00:35
https://www.chosun.com/opinion/chosun_column/2024/08/16/5HXY537PWFHM3DESNBHS64NG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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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령은 1948년 5·10 총선거
김구가 소련 지지로 돌아서고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한국 민족주의의 정치적 오류는
독립과 건국 사이의 단절
자유와 민주의 가치로 거듭날 때
대한민국은 문명국가 될 것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 /조선일보 DB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심훈)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념 대립으로 좌우가 갈리고 남북이 찢겼다. 결국 6·25전쟁이 일어나 동족의 피로 대지를 적셨다. 79년이 지난 올 광복절 기념식도 두 쪽이 났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인사를 둘러싼 정부와 광복회의 불화 때문이다.
이종찬 광복회장은 이번 인사가 “지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계획”, 즉 ‘건국절 제정을 위한 사전 작업’의 일환이며, 궁극적으로는 한국의 “반역자들이 일본 우익과 내통하여 오히려 일본과 같이 가고 있다”고 의심한다. 상식 밖이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이 논란이 “먹고살기 힘든 국민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기원에 관한 문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종찬 회장의 논리를 떠받치는 기둥은 1919년 상해임시정부(임정)에 의해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는 것이다. 그 반면 우파는 1948년 5·10선거로 건국되었다고 본다. 좌우 절충안은 1919년 건국을 시작해 1948년 완성됐다는 견해다. 하지만 이 이슈는 단지 논리적 문제가 아니다.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한국 국내의 정치 세력은 임정의 지위를 놓고 고민했다. 여운형·박헌영 등 좌익은 임정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인민공화국을 수립했다. 미군정은 당연히 임정의 지위를 부정했다. 송진우·김성수를 비롯한 한민당 세력만 임정봉대론을 주장했다.
김구는 임정의 유일한 정통성을 초지일관 견지했다. 반탁운동 때 김구는 임정이 미군정의 주권을 회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실패했다. 임정의 지위는 시간을 경과하며 변했다. 1948년 5·10 총선거가 결정적 분수령이었다. 김구는 원래 철저한 반공주의자였고, 1947년까지는 5·10 총선거를 지지했다. 하지만 1948년 들어 “미‧소 양군 철퇴와 한인의 자주적·민주적 총선거를 통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소련의 주장은 원칙적으로 정당하다”고 입장을 바꿨다. 5·10 총선거에 불참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도 부정하면서, 임정은 몰락했다.
1948년 헌법 제정 때 제헌국회는 임정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심각하게 논의했다. 헌법 전문에 임정의 법통을 명기하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최종안은 “대한민국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이었다.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국됐다고 했지만, 임정은 빠졌다. 정치적 정통성(legitimacy)이 아니라 단지 ‘정신’만 계승한다고 결론지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비로소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기했다. 40여 년 뒤 극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후손인 이종찬 전 민정당 의원의 공로였다.
하지만 제헌헌법에서 임정이 빠지면서 큰 문제가 생겼다. 주권 회복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세운 건국운동 사이에 역사적 단절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원래 둘은 하나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미‧소가 격돌한 한반도에서 어느 한쪽의 선택이 불가피했을 때, 안타깝게도 김구는 통일을 명분으로 북쪽·소련과의 연대를 택했다. 이승만과 제헌의원들은 단독정부의 현실을 인정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미국을 택했다. 남북협상이 실패하고 대한민국이 출범한 뒤에도, 김구는 계속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양군이 철퇴하면 진공상태에 빠지고, 북조선 인민군이 쳐들어오고, 내란이 일어난다는 것은 모두가 구실이고 모두가 비과학적인 관찰”이라고 외쳤다.
한국민족주의는 독립에서 건국으로 전환되는 시기에 중대한 정치적 오류를 범했다. 또한 김구의 암살로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1948년 대한민국과 이승만은 그 분노의 표적이 되었다. 근대의 이념 대립이 있는 곳에서, 민족에 대한 호소는 모든 도전을 제압해 왔다. 하지만 한국은 다소 예외적이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추구한 1948년 대한민국이 너무 성공적이고, 북한처럼 민족주의의 실패가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민주화로 폭풍 성장기를 막 끝낸 한국 사회가 중2병, 사춘기를 겪고 있다고 한다.(허태균) 과연 80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의 정체성 혼란은 심각하다. 대한민국은 지금 성찰의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지,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지 알려는 열망이 뜨겁다. 민족주의는 자유와 민주의 보편 가치 안에서 순화되어야 한다. 그 고뇌의 연옥을 지나면, 대한민국은 마침내 성숙한 문명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2024.08.16 00:34:17
이종찬이 주장하는 상해 임시정부가 곧 건국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국민 대다수는 1945년 8월 15일을 "해방절"로,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절"로 안다. 그리고 이승만은 "건국대통령"으로 인정한다. 이종찬의 주장은 "임시정부"가 진짜 정부라는데, 그게 말이 되나? 이름 자체가 "임시"인데? 비유하자면 이렇다. 1919년 상해 임시정부는 계약금을 걸고 가등기한 상태다. 그리고 1948년 대한민국은 잔금까지 완납하고 진짜 등기하고 완전히 내 집이 된 것이다. 그러면 그 집은 언제부터 내 집인가? 1948년부터 진짜 내 집이다. 계약금만 내고 내 집이라고 떼쓰면 되나? 그건 억지다. 잔금 못 내면 내 집이 못 된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1919 상해 임시정부에서 준비를 시작해서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완성했다"고 하는 게 정답이다. 그런데 이종찬이 억지를 쓰는 건 독립기념관장 자리를 자기가 미는 사람을 윤 대통령이 거부했기에 그런 거다. 윤 대통령의 정치력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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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2:03:16
요는 백범이 독립운동은 했으되 대한민국 건국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거 아닌가? 독립운동후손들은 억울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해방은 스스로 얻은게 아니다. 너무 조상팔이에 매몰되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같이 비독립운동의 후손들이 대우해주길 기다려야지 스스로 너무 설치면 그 조상의 공로가 퇴색되는게 아닐까? 이종찬이 명심해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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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5:05:33
이 양반 논리는 이현령 비현령이네... 뭔가 똑부러지는 맛이 없다... 하지만 이인호 박사의 논리는 단호하고 명쾌하다... 상해임시정부를 건국이라 인정하면 그 이후에 일어난 수많은 항일독립운동은 도대체 뭔가...? 이미 독립국인데 독립운동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여지가 어디 있는가? 나는 이런 이인호 박사의 주장에 100% 지지를 표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이씨왕조 말기의 '대한제국'을 계승한 것이 아니다... 국호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겠으나 왕조국가 '대한제국'과는 엄연히 다른 자유민주공화국이다... 자유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1948년 8월 15일 건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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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46:18
중국대륙에 수십개 임시정부가 있었고,,, 김구는 그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고 심지어 합법성도 결여돼 있었다,,, 심지어 김구는 대한민국 탄생을 반대한 인물인데,,, 이런 사람을 내세워서 건국 운운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더러운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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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31:12
그동안 쭉 있어왔든 분란이지만 이종찬은 지금 좌파와손잡고 북괴 김일성파들이,김구가 주창했든 길을 가겠다 분란일으키는 것이다.상해임정은 정식정부가 갖추어야할 모든것이 갖추어지지않은 정부였고 정식으로 48년 의회, 대통령,국민등이 갗추어진때가 건국이고 대한민국인데 이준동을 하는지 빨탱이들이 준동하는것 같다.광복회장 자리가 제사욕과 제주장을 밀어붙이는 자리인가 저만 독립후손인가,이나라가 건국되었을때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지금 일어나고있는 이나라 어제의꼴이 건국이전의꼴과 같지않은가 그런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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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5:45:17
이승만이 떠난 상해 임시 정부는 의미가 없다. 김구는 마지막에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김일성의 북 조선 건국에 적극 동참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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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51:04
건국절 없는 나라가 어디있나? 임시정부가 건국이라면 이종찬씨는 왜 일본 호적에 등록했나? 8.15 해방 전 까지는 모든 국민이 일본 호적에 출생신고 했다. 1919년 4월 11일이 건국이라면 왜 독립운동했나? 말도 안되는 헛짓하는 자는 반드시 사법처리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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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36:33
결국 이종찬은 윤석열에게 영향력이 있을때 다해쳐 드시겠다 이런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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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59:34
당파싸움에 골몰하는 좌파에 휘둘리지 말자. 종찬은 그저 추하게 늙은 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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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24:06
선거에서 이승만이 90%넘고 김구는 6.7%밖에 안되는자가 그동안 너무 칭송을 받아왔다 김구는 대한민국건국을 반대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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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6:54:26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우리는 건국절을 기려야 하고, 성대하게 기념식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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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08:55
백범 김구 선생이 독립투사이긴 하지만 해방이후 소련 편에서고 통일정부를 세운다며 김일성 일당에게 놀아난 것은 일생의 ㅊ회대 실수였다. 무조건 김구를 편드는 광복회장 이종찬 같은 인물은 과거를 돌아보지않고 미래를 너머 보지도 않는 비전도 이념도 이상한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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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04:11
일본 강점기에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국가의 3요소인 영토 국민 주권이 상실된 암울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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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47:34
어릴적엔 백범에대해 자세히 알지못해 말그대로 독립운동의 대부쯤으로 여기고알았는데 나중에 해방후의 백범의 행적을 알게되면서 사람이 달리보입디다 나는...이런 역사적 괴리를 이종찬이가 이번에 물고늘어지는가봅니다 마치 백범만이 항일독립을위해 싸운것처럼 묘사하면서 이승만대통령을 친일매국노로 낙인찍으려는 시도는 사려깊은 자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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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24:41
김구는 역적입니다 기회주의자이고 무사안일의 전형입니다,,이승만대통령에 패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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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13:58
잘 만들어진 헌법전문에 의미도 불문?D한 '임정 법퉁'을 끼워 넣으면서 헙법이 아니라 헝겊이 돼 버렸다. 헌법은 동네북이 아니다. 헌법전문은 3.1 운동 하나로 족하다. 419가 끼워지면서 516도 끼워졌었고, 이젠 518 가지 끼워 넣겠다며 정치적 먹잇감으로 변해 버렸다. 원래 헌법전문으로 돌려 놔라. 정치적 변화에 따라 변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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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26:07
이종찬, 정신적으로 맛이 갔다. 독립운동과는 일도 상관없는 자가 완장차고 좌파만을 위한 선동질을 하고 있다. 선조들을 욕보이는 짓이고, 조국을 욕보이는 짓이다. 퇴출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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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25:49
등 따숩고 배부르니 절로 노래가 나온다. 이왕 부를 노래, 따뜻하고 아름답게 부르면 안 되나? 철 지난 이념과 당리와 당략의 그늘에 숨어 욕심으로 가득 찬 그 마음을 열어라. 진정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미래 세대에게는 어떤 길이 올바른 길인지, 너 말고 네 자식들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너의 명예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네가 영웅이 되고 싶은가? 지금까지 네가 그러고 싶다고 그렇게 이루어 지던가? 얄팍하고 간교하게 부끄러움을 더 쌓지 말라. 네가 원치 않을지 모르겠지만, 세대가 바뀌고 자신이 하늘의 별 되고 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다. 더 죄 짓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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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21:50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이라는 이상한 문구를 넣은 인간은 이종찬, 제119조에 "경제의 민주화"라는 이상한 문구를 넣은 인간은 김종인인 건가? 조상 팔아 먹고사는 두 인간이 두고두고 골칫거리를 나라에 안겼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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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28:28
주권재민은 1948년 8월 15일. 고로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생긴날(건국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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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47:00
독립운동은 독립운동가들이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 독립운동ㅈ한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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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42:33
사기 선동으로 밥은 먹고 사나? 독립하고 건국되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다. 말로 밥먹고 사는 님들이 말을 계속 지어내기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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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40:47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은 당연히 모든 국민들이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해방공간에서 그가 취했던 행동에는 분명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미소 양측이 다 철수하면 북한인민군이 쳐들어오고 내란이 일어난다는 우려가 비과학적 관찰'이라는 그의 주장은 틀린 인식이었다는 것은 이미 6.25라는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다. 정말 그렇게 믿었는지, 자신의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는지 알 수 없으나 이와 겉은 그의 주장의 오류가 현대 한국 정치에 끼친 악영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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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59:43
이종찬이 광복회장 지위를 이회영을 떠받들 집안잔치에 이용해 먹고 있다. 못난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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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08:13
무슨 말인지 어려워 이해가 안 간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아무리 정부를 수립하고 국가를 대표한다고 외치고 다녀도 세계 즉 UN에서 인정을 안 해줬다.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 대표라고 명함을 내밀어도 미 국무부는 상대를 안 해줬다. 분통이 터지지만 이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북한에는 이미 소련 괴뢰 정부가 수립된 후라 서둘러 UN 감시 하에 5.10 선거를 치루고 제헌 국회를 만들어 1948년 8월15일 정부를 수립했다. 즉 국가의 4요소 영토, 국민, 주권, 정부 가 완성 되었고 그날이 정부 수립일 이다 이걸 젊은 후손에 이해를 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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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44:26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이고 그 나름 공적을 인정 받아야하지만 국가가 국가로서 면모를 갖춘 (영토 , 주권, 국민) 것은 1948.8.15라고 보는 것이 정통 역사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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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26:11
반일감정만 외치는 자들의 사고는 확실하게 공산주의에 미련을 가지는 자들과 동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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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9:02:31
임시정부? 임시아냐, 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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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49:44
이종찬 이자의 적반하장이 도를 넘는구나. 부끄러운 줄 알라. 기회주의적 처신으로 자신의 조부모들이 대한독립을 위해 헌신한 것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썩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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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44:17
김구가 정치 마지막에 쏘련을 지지하여 망작을 펼쳤구나. 몰락하던 김구를 암살하여 더 이상 정치에 간여 못하게 만든것이 옳았나? 차라리 그대로 두고 자신이 운명을 결정하게 만드는 것이 옳지않았나 생각한다. 마지막에 친쏘파가 된 김구.... 이재명은 지금 암살이 옳은가 재판으로 서서히 몰락이 옳은가? 역사에 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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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24:45
우리는 역사에 만약이란설정이 맞지않다고 수없이 들어왔던 교육적사고라는걸 새삼 인지하면서 어른들의 고착화된 자기위주사고에 염증을 느낍니다. 국민이 투표로뽑은정부에 테러성반발로 국가광영의 기념식을 보이콧하지마시고 팩트는 팩트데로 격렬한 토의로 합의를 이끌어가는 장에서의 토론으로의 과제를 남겨놓길바랍니다.건국역사를 새삼일깨워준 김영수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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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59:50
사랑(임정)하고 결혼해 자식(대한민국)을 낳았는데 한쪽이 내자식이 아닌것같다고 떠드는꼴.. 서로 사랑의 씨앗을심었으면 그씨지 누구씨냐? 누가 임정을 부정하냐? 태어났으니 대한민국이란 이름도 지었고 출생신고도 했으니 그때부터 한살이다.. 때쓸걸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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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7:47:44
관리자가 비속어/비하 사유로 삭제한 100자평입니다.
2024.08.16 09:19:07
논자의 의견이 너무 추상적이며 구체적이지 못해서 설득력이 떨어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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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6 08:00:14
이승만이 건국절이 승인 받어려면 승인하는데에 하나의 상표성이 있어라 한다. 그런데 상표성이 없다. 민족의 합의성이 배제 되었다. 그기서 건국이라는 단어가 안 들어 가 있다. 그 건국은 미국과 이승만의 정치적인 건국 이외에는 없는 건국이다 이것을 두고 과연 건국이 이라고 말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민족의 합의성의 건국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1948년의 건국절이 될 수가 없다. 이와 더불어 1919년의 건국절도 될 수가 없다. 한국은 민족의 합의에 의한 건국절이 나올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좌와우에 대립된 구조 이기 때문에 중립이라는 것이 없는 그런 대립된 구조이기 때문에 원칙상 건국절이 나올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나의 사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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