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벽한 산간이 그들의 피난처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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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덴스인들은 유럽의
여러 백성들 중에서 최초로 성경을 번역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부록 11 참조).
그들은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수백년 전에 벌써 자국어로 필사(筆寫)한 성경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더욱 증오와 박해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로마교회를 요한계시록에 있는 타락한 바벨론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결정적인 태도로 로마교의 타락에 저항하였다.
오랫동안
계속된 박해로 인하여 더러는 신앙적인 타협을 하여 그 분명한 원칙을 차츰 버렸지만, 어떤 사람들은 진리에 더욱 굳게 섰다.
암흑과 배교의 전
기간을 통하여 로마교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상(聖像) 숭배를 우상 숭배로 보고 거부하고 참 안식일( 安息日 )을 지킨 왈덴스인들이 있었다(부록
12 참조).
그들은 가장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그들의 믿음을 유지하였다. 비록
사보이(Savoyard) 사람들의 창에 찔리고 로마의 화형주(火刑柱)에 타죽을지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굳게 섰다.
첩첩이 싸인 산악들의 높은 성채들은 여러 세기를 통하여 박해를 받고 압박을 받는
사람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66 왈덴스인들은 거기서 은신처를 얻었다. 이곳에서 중세기의 암흑을 뚫고 진리의 횃불이 계속하여 타올랐다. 이곳에서
천여 년 동안 진리의 증인들은 옛적부터 물려받은 믿음을 지켜왔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위탁하신 위대한 진리에 걸맞은 장엄한 한 성소를 마련해
주셨다. 그 신실한 유랑인들에게는 산들이 여호와의 변하지 아니하는 의에 대한 표상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 머리
위에 높이 솟아 불변의 위엄을 지니고 있는 산들을 자녀들에게 가리키면서 언제나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또는 그
말씀이 영구히 서 있는 멧부리처럼 영원하신 이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산들을 제자리에 세우시고 위대한 능력으로 그것들을 붙드셨다. 무한한 능력 밖에는 어떤 힘도 능히 그것들을 그 자리에서 옮길 수 없다. 똑같은
방법으로 그분께서는 천지를 통치하시는 데 있어서 기초가 되는 당신의 율법도 굳게 세우셨다.
사람의 힘은 사람들
사이에서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생명을 빼앗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산들을 그 뿌리째 뽑아서 바다에 던지는 일은 쉽게 할 수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율법은 일점일획이라도 변할 수 없으며 그분의 뜻을 행하는 자들에게 하신 그분의 허락은 하나도 허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의 율법에 성실하기를 마치 변함이 없는 산들과 같이 확고해야 한다.
그들이 사는 낮은 골짜기를 두르고 있는 산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그분의 보호에
대한 끊임없는 증거였다. 그 순례자들은 여호와의 임재에 대한 그 무언의 상징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은 고생스러운
그들의 운명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고, 궁벽한 산중에 외로이 있으면서도 결코 외롭지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의 분노와 강포를 피할 수 있는 한
피난처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 자유롭게 경배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때때로 원수들의 추격을
받았지만 험준한 그 산들이 견고한 산성이 되었다. 그들은 높은 절벽 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으나 로마의 군대들은 그들의 감사의
찬미를 침묵시킬 수 없었다.
67 순결, 단순, 열성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 사람들의 경건한 생애에 나타났다.
그들은 진리의 원칙을 집이나 토지나 친구나 친척이나, 심지어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뿐만 아니라 그 원칙들을 젊은이의 마음에
철저히 새겨 주기 위하여 열성을 다하였다.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성경으로 교훈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의 명령을 신성하게
여기도록 교육을 받았다. 당시에는 성경의 사본이 매우 귀하였으므로 그들은 그 가운데 있는 귀중한 말씀들을 외우도록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을 반복하여 암송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 대한 고상한 생각은 천연계의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단순하고도 축복 받은
그들의 일상생활에 관련되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온갖 은총과 모든 안위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바라보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종교 교육의 좋은 모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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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은 인정 있고
자애로우면서도 매우 지혜로웠기 때문에 그들의 자녀들을 지나치게 사랑함으로 그들이 방종의 나쁜 버릇을 가지지 않게끔 하였다.
그들의 앞길에는
시련과 고난, 심지어는 순교자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환난을 견디고, 통제에 복종하고, 스스로 생각하여 행동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아주 어려서부터 그들은 책임을 지는 것과 말을 삼가는 것과 침묵의 지혜를 이해하는
것을 배웠다. 한 마디의 경솔한 말이라도 원수의 귀에 들어가게 되면 그 말을 한 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많은 동료들의 생명 또한 위험하게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진리의 원수가 마치 이리가 먹이를 사냥하듯이 신앙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왈덴스인들은 진리를 위하여 세속적 번영과 유익을 다 버리고 꾸준한 인내로써 자기의
양식을 얻기에 수고하였다. 깊은 산골짜기에서도 경작할 만한 토지를 발견하면 즉시 그것을 잘 개간하였으므로 드디어 골짜기와 언덕의 사면(斜面)들은
많은 수확을 내는 농토로 변했다.
검소와 엄격한 극기의 정신은 그 자녀들에게 유일한 유산으로써 교육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애를 훈련시키려는 뜻이 무엇이라는 것과 그들의 궁핍은 모두 각자의 수고와 생각과 주의와 신앙으로만 보충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들의 생애는 실로 수고롭고 고달픈 것이었으나 그것은 건전한 것이었다.
68 즉 하나님께서 훈련과 발전을 위하여 제공하신 학교로서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젊은이들은 수고와 고난에 단련되어 있었으나 정신과 지능의 계발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더욱 발달되고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보우도봐( 왈도파는 스위스의 한 지방 이름으로, 여기서는 거기 살던 왈덴스교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 역자 주)인들의 모든 교회는 순결하고 단순한 점에서 사도 시대의 교회와 비슷하였다.
그들은 법왕과
주교들의 최상권을 부인하고, 성경만이 가장 높고 틀림없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목사들은
거만한 로마교의 승려들과는 달리,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신 주님의 모본을 따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떼를 푸른 풀밭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의 샘터로 인도하여 먹였다.
그들은
인간의 허영과 화려한 교만을 나타내는 거대한 교회당이나 굉장한 수도원 대신에 멀리 뻗은 산줄기의 기슭에나 알프스의 깊은 골짜기에 모였으며,
위험이 있을 때는 큰 바위와 절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에 모여서 그리스도의 종들로부터 진리의 말씀을 들었다.
목사들은 복음을
전할 뿐만 아니라 병자를 위문하고, 아이들에게 문답식으로 교리를 가르치고, 잘못하는 자를 견책하고, 다툼을 해결하여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화합하도록 노력하였다.
그들은 평화로운 때에는 사람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어려울 때에는 천막을 만들던 바울처럼 자기의 생계를 자기가 유지할 수 있도록
장사나 그 밖의 어떤 직업을 배워 두었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목사에게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일반적인 학문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중요한 과목으로 배웠다. 마태복음과 요한복음을 대부분의 사도들의 편지서들과 함께 암기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경을
복사하여 기록하는 일도 하였다. 어떤 이들은 전부를 베끼고, 어떤 이들은 그 일부분을 뽑아낸 것에 성경 해석자의 간단한 설명이 첨가되어 있는
것을 베꼈다.
그같이 하여 하나님보다는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자로 말미암아 오래 숨기워졌던 진리의
보배가 드디어 드러나게 되었다.
69 그들은 불굴의 노력으로, 때로는 어둡고 깊은 동굴 속에서 횃불의 희미한 불빛
아래 한 절 두 절, 또 한 장 두 장 성경을 베끼어 나아갔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업은 진행되었고, 하나님의 계시된 뜻은 순금과 같이
빛났다.
시련을 견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얼마만큼이나 밝고 분명하고 능력 있게 되었는지
실제로 그 사업에 참가한 사람 이외에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천사들은 이처럼 충성된 일꾼들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왈덴스인들의 신앙과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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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오류와
이단과 미신의 쓰레기 아래 진리의 말씀을 묻어 버리기 위하여 법왕교의 승려와 주교들을 독려하였다.
그러나 암흑시대의
전 기간을 통하여 성경은 가장 기이한 방법으로 손상되지 않은 채로 보전되었다. 성경은 사람의 인을 맞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을 맞았다.
사람들은
성경의 명백하고 확실한 의미를 흐려 버리기 위하여 성경 자체의 증거들을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큰 파도의 깊은 물 속에 뜬 방주처럼 그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폭풍을 헤치고 나아갔다.
마치 금과 같은
풍부한 광맥들이 땅속에 숨겨져 있을 때 그 귀중한 광석들을 파내야 하는 것처럼 성경도 열심 있고 겸손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찾는 자에게만 나타나는
진리의 보배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모든 사람들이, 유년 시대에나 청년 시대에나 장년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나 연구하는 교과서로 삼고자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당신 자신의 품성에 대한 계시로 사람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새로운
진리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성경의 저자되신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잘 알게 되어 있다. 성경 연구는 인류로 하여금 창조주와 더욱 밀접히 연합하게
해주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관하여 더욱 명확한 지식을 얻게 해준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에 있어서 중개의 역할을 해준다.
왈덴스인들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여기는 동시에 세상 사람들과 교제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정신력을 넓히고 지각을 예민하게 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실생활에 관한 지식을 얻는 일의 요긴함을 알고 있었다.
70 어떤 청년들은 그 산간의 학교로부터 그들이 살고 있는 알프스에 비하여 공부하고
연구하고 관찰하기에 더욱 유리한 지역인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도시들에 있는 교육 기관으로 파견되었다.
이렇게 파견된
청년들은 유혹을 받고, 부도덕한 일을 목격하고, 가장 교활한 이단설과 위험성이 많은 기만으로 접근하는 사단의 교활한 대리자들과 접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받은 그들의 교육은 이 모든 어려운 일들을 능히 이길 만한 품성을 이루어 놓았다.
그들은 어느 학교로
가든지 함부로 비밀을 드러내는 그런 벗을 사귀지 아니하였다. 그들의 의복은 가장 귀중한 보물인 성경 사본(聖經寫本)을 감출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수고하여 필기한 성경 사본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가 있는 대로
의심을 받지 않을 만큼 주의하면서 진리를 갈망하는 자로 인정되는 사람들에게 그 어떤 부분을 보여주었다.
왈덴스인의
젊은이들은 어머니의 슬하에서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훈육을 받았으므로 그들은 그들의 사업을 이해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이행하였다. 참된 신앙으로
회개한 사람들이 이러한 학교 안에 생겨났으므로 이따금 믿음의 원칙이 온 학교에 보급되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법왕교의
지도자들이 아무리 세밀하게 조사를 할지라도 소위 부패케 하는 이단의 근원(根源)은 도저히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스도의 정신은
전도의 정신이다. 거듭난 마음속에 제일 먼저 생기는 충동은 다른 사람들 또한 구주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그것은 보우도봐의 그리스도인들이
품은 정신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그들의 교회 안에서 순결한 진리를 보전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신다는 것, 즉 암흑 가운데 앉아 있는 자들에게도 빛을 비추어 줄 엄숙한 책임을 맡겨주셨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위대한 힘을 가지고 로마교회가 사람들에게 메워 준 무거운 멍에를 끊어 버리고자 힘썼다. 보우도봐의 목사들은 누구나 다 선교사로서의 훈련을
받았다. 성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먼저 전도자의 경험을 쌓아야 하였다.
71 고향에 있는
교회의 책임을 맡기 전에 어떤 선교 지역에서 3년 동안 봉사하여야 하였다. 이러한 봉사는 무엇보다도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였으며, 사람들의 마음이
시련을 겪고 있던 그런 시대에 있어서 목사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적절한 입문(入門)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여
성직에 나아간 청년들은 그 앞길에 세속적 이익과 번영을 바라지 아니하고 고생과 위험의 생활, 때에 따라서는 순교자의 운명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
이 선교사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 때처럼 두 사람씩 파견되었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나이 많고 경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였다.
그들은 자기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교훈해 줄 책임을 진 동반자의 지도에 복종하였다.
그
동역자들은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았지만 자주 기도하고 협의하기 위하여 함께 모여 피차에 신앙을 강화시켰다.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사명의 목적이 남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 사업을 망치고 말 것이 분명하였으므로 그들의 참된 성격을 조심성 있게 숨겼다.
모든 목사들은
제각기 일종의 기술이나 직업을 가지고 표면적으로는 어떤 세속적 직업에 종사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실제로는 전도 사업을 계속하였다. 흔히 그들은
장사꾼이나 행상인의 직업을 택하였다.
“그들은 그 당시에 먼 곳에 있는 시장에 가지 않으면 쉽사리 얻을 수 없는 비단과
보석과 그 밖의 물품들을 가지고 다녔는데, 선교사로서 가면 추방당할 곳이라도 행상인으로 갔으므로 환영을 받았다”(Wylie, b.1,
ch.7).
그들의 마음은 황금이나 보석보다도 더 귀한 보배를 전하기 위한 지혜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향하여 언제나 열려 있었다. 그들은 세밀히 성경을 필사한 전부 혹은 일부분을 가지고 다니면서 기회를 얻을 때는 언제나 그것을 끄집어내어
그들의 고객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리하여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자 하는 흥미가 일깨워졌으며 성경의 사본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의 어떤 부분을 즐거운 마음으로 주었다.
첫댓글 좋은 자료 감사해요. ^*^
주께 영광! 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항상 감사합니다!! 샬롬!!
주께 영광! 댓글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료의 출처가 나와 있지 않아 자료를 인용하지는 못하겠네요. 혹시 이 자료의 원 출처나 혹은 발췌한 원 책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주께 영광!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