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문화기행, 자미원 땅을 찾아 손진담
11월 3일 구름한 점 없는 가을 하늘아래 내포 산천은 온통 단풍으로 물들었고 예산-해미간 도로변의 코스모스들은 줄을 이어 대전서 온 문화기행 팀을 맞아주었다. 일행은 해미읍성에 들러 지난날의 추억들을 쏟아냈다. 아름다운 이름 해미(海美) 뒤에는 아픈 역사가 숨어있었다. 왜구를 막기 위해 구축된 성곽은 젊은 날 충무공의 호국정신이 바윗돌마다 깃들어 있었고, 회화나무의 가지마다 천주교도의 순교 정신이 달려있었다. 50년 전 지질조사 차 첫발을 디딘 필자는 폐허가 되어있던 읍성을 보고 가슴아파했는데, 이제 멋있게 복원이 된 것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읍성을 떠나기 싫은(?) 회원들을 늦게야 찾아내어 관광버스는 운산면의 용현리 계곡으로 향하였다. 가는 도중 차창 밖으로 서산목장의 넓은 목초지가 눈길을 끌었다. 목초지 내 벚나무가 그리도 많다니, 인근 개심사의 청 벚꽃 왕 벚꽃이 그리도 좋다니 새봄의 벚꽃축제에는 꼭 와 봐야겠다.
맑디맑은 고풍저수지를 끼고 돌아 마애여래삼존불(국보 84호)로 유명한 강독(講讀) 계곡에서 관광버스가 멈추었다.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삼존불은 현지 문화해설사를 통하여 화강암 조각상의 섬세한 예술성을 전해 들었다. 당시 무역상들이 중국으로 건너가기 전 이곳에서 무사 안녕을 빌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떠나올 때 잠시 짬을 내어 선인방 바위 옆에 이생진 님의 시 ‘아라메길’과 윤병천 님의 ‘강독계곡’의 시비를 감상할 수 있었다. 아라메길을 사랑하는 서산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가면서 정들고/오면서 추억이 되는/아라메길
세월이 닳지 않는/마애삼존불의 얼굴에/너의 미소 활짝 피었다.
보은사 오층탑에 앉았던 봉황/개심사 아미타여래랑/
해미읍성 저 멀리/도비산 너머 바다를 /한숨에 다녀왔는데
너는 지금/아라메길/어디쯤 가고 있니
-이생진 시 <아라메길>-
서산 읍내 북쪽에 위치한 지곡면을 가는 도중에 성현면의 풍성가든에 들러 한우 등심 주물럭 숯불구이를 풍성하게 먹고, 몽유도원도로 유명한 안견기념관에 들렀다. 이곳 지곡 출신의 안견(호 현동자)은 안평대군(세종의 4남)의 명을 받아 꿈속에서 본 복숭아 마을을 3일 만에 그려내어 극찬을 받았고, 당대 문인들의 시를 받아 시. 서. 화가 합쳐진 당대 최고의 예술품으로 회자되었다고 한다. 안평대군의 발문과 신숙주, 이계, 하연의 친필 시가 전시되어있었다. 원본은 일본의 천리대학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니 아쉬움이 절로 난다.
지위가 높고 고결한 분 도가 절로 풍성하고 기름져
초연히 속세의 밖 신선이 사는 곳을 꿈꾸었네
안개와 놀 낀 동굴에 은밀히 꽃은 피고 지고
대나무 숲속 깊은 곳 길이 있는 듯 없는 듯하구나.
단사가 능히 뼈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만두더라도
구태여 한낮에 억지로 호리병을 걸 필요가 있는가?
그림을 펴서 신선의 경지에서 마음껏 노닐고 싶으나
내 마음에 티끌 있고 지나온 발자취 더욱 거칠어 부끄럽구나.
-한산 이개 한시(번역본) <몽유도원도>-
다음 정차는 서쪽의 인지면, 무학대사(조선 개국 왕사) 탄생 설화가 깃든 애정리(艾井里)에는 송곡서원과 더불어 류방택 천문기상 과학관이 있는 곳이다. 600년 된 향나무 고목(천연기념물 553호) 두 그루가 탐방객을 반겨주었다. 고려 중엽(서기 1237년) 송나라 이정(二程)의 학문(성리학)을 전파한 귀화인 정신보와 그의 아들 정인경(AD 1237-1305, 서산정씨 시조), 최초의 천문학자이자 천상열차분야지도의 주인공 류방택(AD 1320-1402)과 세조2년(서기 1420년) 향나무를 심은 그의 손자 류운을 포함하여 서산을 빛낸 9분을 모신 서원이다.
송곡서원은 아름다운 송림으로도 유명했으나 2010년 곤파스 태풍의 피해로 예전보다는 덜한 편이다. 5년 전 필자가 이곳 과학관에서 해설자문위원으로 봉사한 바 있는 인연으로 일행들의 관람 시 여러모로 직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특별히 금헌선생의 후손인 류 여사가 여전히 밝은 미소로 반겨주며, 별자리 3원(자미원, 태미원, 천시원)의 위치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늦가을 짧은 해는 여행객의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찾아간 부석사 주변의 도비산은 단풍이 절정을 이루었고, 절 입구에는 태종대왕 도비산 강무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다. 서기 1416년 태종 대왕이 충령대군을 데리고 이곳에서 사냥몰이를 한 것은 주변 바닷가 어촌지역에 자주 출몰하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하여 다음 해 1417년부터 시작된 해미읍성 구축도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한다. 일행은 부남호와 천수만에 드리워진 석양을 바라보며 검은여의 전설을 떠올렸다.
신라 문무왕 17년(677년)의상대사가 창건한 부석사는 대웅전이 없고 극락전이 주 법당이다. 극락전 맞은편에 위치한 안양루에서 바라본 광활한 간척지는 ‘부석(浮石)이라는 뜬 돌’의 전설을 싱겁게 만들었다. 못다 한 사랑 용이 되어 의상을 지켜준 당나라 처녀 선묘의 넋을 위로하며 일행은 하산하였다. 간월암은 다음 기회로 남겨두고 도비산 밤하늘을 빛나는 별과 달을 바라보면서 별 박사 금헌과 달보고 득도한 무학을 생각해본다. 나아가 나의 쉼터 일곡농원이 있는 이곳 서산 땅이 밤하늘의 황궁 자미원에 해당된다고 설파한 유명한 풍수지리 대가(고 손석우)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