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은사이신 유당선생님은 1920년 5.24 장기면 나성리에서 태어나 1940년 조선일보에 시를 발표하면서 문필활동을 시작, 1951년 서울대학교문리과대학 국어문학과를 졸업하고, 공주대부설고교 교사를 거쳐 1952년 모교교수에 부임, 83년 모교대학원장을 거치고, 86년 정년퇴임을 하셨으며, 2007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하시었다. 남긴 저서로는 우리가 졸업한 그 이듬해인 1973년 '묵시록(시집),과 '한국전설대관', '청산별곡'(시조집)이 있고, 1986년 호서문화사에서 출간한 '기상도'가 있다. 어찌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빛바랜 기억 속에 빛과 그림자가 어우러져 있는 유당선생님, 우리가 방문했던 공주고등학교 옆 자택에서 선생님이 내나이 때인 1992년에는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하며 지내셨을까? 그러고보니 이원구, 임헌도, 강귀수, 하동호 은사님들이 이미 작고하셨고, 이제는 오직 동초 조재훈선생님만이 우리곁에 생존해 계신다. 집콕이 대부분인 요즈음 한참 젊은 시절이었던, 재학 중 은사님들의 수업장면이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오늘은 유당선생님의 작품 '기상도'와 '넝쿨', 그리고 '기상도'의 서문을 쓰신 일석 이희승 선생님의 글을 감상하면서, 작고하신 은사님들에 대한 그리움과 뜨거운 정을 대신하고자 한다.
氣 象 圖 裕堂 林 憲 道
天國과 地獄이 交叉하는 空間 위에
暴風은 구름 밖에 맴돌다 사라지고,
거짓과 眞實이 顚倒된 어제와 또 오늘
꽃은 피고 이울고 다시 가는 歲月인데,
잠시 머무렀다 떠나는 娑婆 苦海
太陽은 기슭을 돌아 정녕 어디로 흐르나. ------------------------------------------------------------------------------------
넝 쿨
보이지 않는 누리에 向方을 헤매는
어딘가 있을 그 사람 메아리 없는 映像인데,
그래도 생각만으로 헛감으며 벋어간다.
가파로운 絶壁 險峻한 길이라도
돌 틈에 뿌리하듯 바람에 아니 뮈며,
내 팔은 너로 인하여
時空을 超越한다. --------------------------------------------------------------------------------------- 序 文 一石 李熙昇
세월의 빠름을 새삼 느낀다. 어떻게 어떻게 지내 놓고 보면 쉼표도 마침표도 없는 시간이 마디를 이룬다. 후회할 수 없는 이 마디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시간의 신속한 흐름에 대해서 탄식하게 된다. 林敎授가 금년 八月에 정년을 맞게 되어, 30餘年間 情들었던 敎壇을 떠난다고 한다. 그리고 그 紀念으로 後學들이 詩選集을 엮어 奉呈한다고 한다. 나보고 序文을 쓰라고 한다. 年齡도 그렇고 健康도 그래서 극구 辭讓하였으나 懇請에 이기지 못하여 몇 자 생각나는 바를 쓰고자 한다.
林敎授는 나와 師弟의 學緣을 맺고 있으며 내 回甲論文集에 耽羅의 民謠에 關해서 論文을 실은 일도 있다. 학회같은 때 가끔 서울에서도 만났고, 공주에서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요즈음은 서로 바빠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林敎授는 典型的인 忠淸道의 선비이다. 충청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을 뿐 아니라 일생을 고향에 바쳤다. 내가 알기로도 서울 等地의 繁華한 곳으로 옮길 수 있는 機會가 여러 번 있었는데 모두 마다하고 故鄕을 지켰다. 같은 고향이라 해도 그 범위 내에서 이곳 저곳으로 옮기기 십상인데 외곬으로 하나의 大學-公州師範大學에 獻身하였다. 선비라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林敎授는 柔順한 風貌의 學者이다. 歌辭·時調 등의 장르는 말할 것 없고 民謠, 說話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業績을 남겨 놓았다. 다른 데에 한눈 팔지 않는 꾸준한 努力의 所産이다. 學者로서의 重厚한 면모 못지 않게 林敎授는 天性的인 詩人으로서의 多情多感한 면을 보여 준다. 한마디로 말하여 人情이 많은 사람이다. 불쌍한 일을 보고 그냥 못본 체 하지 않으며, 그른 것을 보고 그냥 눈을 감지 않는다. 그리고 自然을 위시해서 자기 둘레를 깊은 애정으로 대한다. 詩人이라는 所以가 여기에 있다. 林敎授는 많은 時調와 自由詩를 써서 發表하였고, 수년전에는 그 공로가 認定되어 제1회 한국현대시조문학상을 받은 일도 있다. 내가 보기에 그의 詩篇들에는 몇 가지 두드러진 特性들이 나타난다. 첫째로는, 情의 所重함과 삶의 虛妄함에 대한 강조이다. 情의 소중함은 그의 많은 詠嘆調에 드러나 있으며 삶의 허망함은 變化가 잦은 世態와 恒久不變의 自然을 서로 對照시켜 현현되고 있다. 둘째로는, 虛無와 그 意志이다. 그의 많은 作品에는 永遠에 대한 瞬間의 對比, 固定不變에 대한 流動의 對比 등등을 통하여 虛無가 나타난다. 그러나 그 虛無의 늪에 빠지지 않는다는 데에 注目할 필요가 있다. 굳은 意志로서 克服하려고 하는 强한 발돋움이 보이기 때문이다. 세째로는, 鄕土를 사랑하는 情이 지극하다는 사실이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남을 사랑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자기가 몸담고 있는 周邊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國土를 사랑할 수 없는 법이다. 林敎授는 忠淸道의 自然을 사랑하고 百濟의 遺蹟에 대하여 애정을 쏟고 있다는 점에서 향토애의 詩人이요, 애족의 詩人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情熱은 줄어들게 마련이다. 그러나 소중한 것이 열린다. 慧가 그것이다. 林敎授여, 건강에 유념하면서 더욱 더 맑은 慧로 後學을 기르고, 학문을 정리하며, 또한 좋은 作品 많이 써서 감동의 영역을 擴大해 주기 바랄 뿐이다.
1986年 八月
|
첫댓글 유당 선생님의 가르침 항상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발자취가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