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은은하게 돌아가는 주점의 룸 안은 시끌벅적하다. 시골에서 다녔던 고교의 일학년 반창회 날이다. 어렵게 담임 선생님도 모셨다. 40년 만이다. 절을 올리고 서로의 안부도 묻는다. 술도 몇 순배 돌았다. 백발이 성성한 선생님을 뵈니 잊혀지지 않는 또 한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구석자리에 앉은 나는 취기에 눈을 감는다.
"반공은 군인의 기본 정신이고, 차렷은 군인의 기본자세다. 가슴을 펴고, 시선은 전방 15도를 향한다. 알았나!" "옛!" 분위기에 압도된 탓일까? 갓 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들의 복창은 우렁차다. 교련복을 입고 처음받는 수업이다. "이 시간 만큼은 너희는 학생이 아니라 군인이다. 다들 명심하도록!"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절도있는 동작은 우리를 오금저리게 한다. 바로 '이무기' 라는 별명의 교련 선생님이다. 공부에 그다지 취미가 없으나 교련 수업이 좋았다. 플라스틱 모형이지만 실물과 흡사한 M16 소총을 들고, 제식훈련과 행군, 총검술을 누구보다 열심히 익혔다.두달이 채 안되어 반장이 해 오던 소대장을 하게 되었고, 각종 시범도 도맡아 하였다. 무기고 열쇠까지 맡았으니, 신임을 한몸에 받은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꿈이 군인이었다. 당연히 교련 선생님도 존경했다.
이무기 선생님은 육군 중령 출신이다.예편하고 학교에 부임한 지 3년째이다. 출근복은 늘 군복에 군화를 신었고, 어깨엔 중령 계급장이 붙어 있었다. 군인 특유의 말투와 꼿꼿한 자세, 손에는 항상 알루미늄 지휘봉을 들고 있었다. 본명이 '홍 무기'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를 이무기라 불렀다.젊은 교사들은 함부로 말을 붙일수 없을 정도로 카리스마가 넘쳤고, 학생주임을 겸하고 있었으니 우리에겐 가히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학기가 시작될 즈음, 독일어 과목에 여선생님이 부임했다. 여교사가 귀한 시골 남자학교에 그것도 처녀 선생님이라니 우리는 열광하였다. 여드름에 코밑이 거뭇하던 우리들의 치기와 짖궂음이 도를 넘어, 선생님은 수업중에 울며 교실을 나가기도 여러번이다. 이 사실은 당연히 이무기의 귀에 들어갔고,우리는 군대식 얼차려를 눈물이 나도록 맛 봐야 했다. 그후로도 친구들의 장난은 계속 되었지만, 어느날 부터인가 나는 그 장난을 저지하 고 있었다. 친구들에게는 미안했 지만, 이 일로 선생님과 친밀하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무렵 독어선생님과 노총각 이무기 사이의 염문설이 공공연히 나돌았다. 왠지모를 질투심에 독어수업을 빼먹기도 했지만, 그럴수록 선생님은 나를 더 살갑게 대해 주었다. 선생님을 자전거에 태우고 하교하던 길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선생님은 내 허리 를 꼭 안고 있었고, 그 모습을 이무기가 보았다. 그때부터 였다. 나를 보는 이무기의 눈빛이 전과 는 달라 보였다. 수업중 사소한 실수에도 기합을 받았고 지휘봉 에 등짝을 맞은적도 여러 번이다. 그 후로 이무기와 눈을 마주치 않았고 멀리서라도 보이면 피해 다녔다
학기말의 큰 행사인 교련검열을 며칠 앞둔 어느날, 이무기를 두번 다시 볼수없는 사고를 저질렀다. 무기고 청소를 하던 중, 철제 캐비 닛에 든 M1 소총이 생각났다. 이무기가 수시로 닦고 기름칠하는 학교에 한자루밖에 없는 총이다. 단단히 잠겨져 있었지만, 무기고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 열쇠가 있다는걸 알고 있었다. 캐비닛을 열고 총을 살며시 집어든다. 그 묵직하고도 차가운 감촉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어깨에 메어본다. 알수없는 자신감에 우쭐해 진다. 모형 수류탄 두발도 교련복 윗주머니에 꽂고 교실로 갔다. "봐라! 이기 바로 에무완이다"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로 먼저 만져 보겠다고 몸싸움까지 벌어졌다. 총이 다시 내손에 들어왔을때 개머리판은 갈라져 있었고, 방아쇠도 떨어져 덜렁 거리고 있었다. 순간 등짝에 불이 나는 느낌을 받고 돌아보았다. 이무기다.
무기고에 끌려갔다. 분노와 실망 이 뒤섞인 이무기의 눈빛을 마주 하였다."네놈도 졸업하면 군대에 갈 것이다. 총기 무단 유출은 바로 영창감이야! 파손까지 했으니 용서할수 없다. 구보로 운동장 스무바퀴다. 철저히 반성 해라!" 모형소총을 메고 수류탄 두 발을 가슴에 걸었다. 세바퀴 정도 는 가볍게 돌았다. 교실 창 너머로 선배들의 키들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는 씩 멋적게 웃으며 손까지 흔들어 준다. 다섯바퀴가 넘어갈 때 쯤 어깨가 쓰려온다. 피가 났는지 옷 속이 끈적하다. 그때까지 이무기는 무기고 앞에서 팔짱을 끼고 노려보고 있다. 열 바퀴를 돌았다. 땅거미 내리는 교정에는 이제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내 발자국 소리만 스탠드 에 부딪혀 귓전을 때릴 뿐이다. 이젠 뛰는것이 아니라 거의 걷고 있다. 세 바퀴를 더 돌았을때,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 다. 무기고 뒤쪽에서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는 독어선생님을 보았기 때문이다. 눈가가 뜨거워 진다. 부끄러움에 그대로 총을 내려놓고 교문밖을 향해 걸었다. 뒤에서 부르는 이무기의 성난 목소리가 들렸지만, 걸음을 멈출수가 없었다.
한 달 정학 처분을 받았다. 단, 반성문 한장에 하루씩 감면해 준다고 했다. 대여섯장쯤 써 냈다. 그러나 겨울방학 직전에 아버지는 자퇴서를 제출했고, 나를 먼 도시 로 보냈다. 이듬해 고교에 다시 입학하여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그때의 일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박수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린다. 반주기에 맞춰 담임 선생님이 한곡 뽑으시나 보다. 잠깐 꿈을 꾼 듯하다. 살면서 가끔씩 총을 메고 운동장을 도는 꿈을 꾼다.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독어선생님의 소식은 아무도 모르는지 이야기 하는 친구가 없다. 이무기 선생님은 이 년 전 쯤 지병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에 대한 신뢰를 실망으로 드렸으니 죄송할 따름이다. 다시 돌아갈수 없는 시절 이지만, 꿈에라도 뵐 수 있다면 못다 쓴 반성문을 선생님 앞에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은 운동장 일곱 바퀴도 마저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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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등학교
교련선생님은 모두
우리에게 양면의 성격을 보여 주신듯 합니다
그리운 시절 아름답던 시간 이었지요
추억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