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일본총리는 5월 7일 한-일 정상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를 두고 사견임을 전제로 “저는 당시 혹독한 환경 아래 다수의 분들께서 대단히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 굉장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https://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1090969.html?_ga=2.22316603.1666188078.1683863772-21972203.1675982977
먼저 이것은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잘못을 인정했던 무라야마 담화(1995), 한-일 파트너십 선언(1998),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담화(2005)에도 한참 못 미친다. 일본의 우경화분위기에서 ‘더 이상 사과할 수 없다’는 아베 담화(2015) 이후의 생각을 그래도 드러낸 것이다. 특히 기시다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직접 입에 올리지 않았고, 총리가 아닌 ‘개인적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그 나라의 최고관리의 자격으로 이웃나라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 중대한 문제에 대해 “개인의견이라!” 이런 궤변이 가능한 말인가?
나는 이런 발언을 보면서 우선, 우리가 일본 관료들에게서 왜 이런 평가를 들어야하는지 불쾌하다. 그리고 이젠 분명한 자세를 갖자! 당분간 그들에게서 그 어떤 견해도 요구하지 말자. 긍정적인 판단이라도 기대하지 말자. 그들이 긍정 또는 부정이 우리 역사평가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말하기 싫다. 내가 한 일이 옳다!”고 꾸역꾸역 우기는 자들과 말을 주고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무릇 역사란 한국이든 일본이든 정치관료들의 판단에 따라 그 의의가 정리되는 아니다! 그런 뜻에서 일본총리의 발언 뿐 아니라 ‘강제동원 한국인들에게 배상판결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을 왜곡한’ 한국 대통령 윤석열의 행동도 그 못지않은 불의다.
특히 나는 일본총리가 말한 “가슴이 아프다”란 표현이 마음에 걸린다. 여러 언론은 이 말에 대해서 크게 보도하고 이런저런 분석을 내놓았다. 그럼 그가 말한 “가슴이 아프다”고 한 말은 어떤 뜻일까? 그가 말하는바 ‘가슴’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일본사람들이 말하는 <가슴>이 어딘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인은 <가슴>이 어딘지는 알며, <가슴이 아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그것은 적어도 ‘손이 아프다. 눈이 아프다. 어쩌면 '마음이 아프다‘보다 깊은 표현이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네가 아프냐? 나도 아프다!”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런 그(그들)는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어떻게 행동하는가?
국가간 침략인 한국에 대한 식민지지배를 국가 간에 맺은 정상적인 조약에 따른 합병이라고 강변한다.
전쟁터에 한국청년들을 죽음에 몰아넣고서도 그들은 황국신민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한다.
숱한 조선인들을 강제노역에 몰아넣고서도 사실을 부정할 뿐 아니라 정당한 임금을 지불했다고 주장한다.
아, 위안부. 천인공노할 성폭력 전쟁범죄를 저질러 놓고서도 사죄의 마음은커녕 아예 그런 사실이 없었다, 심지어 자발적 매춘이었다고 강변한다.
그리고 독도마저 한국인들이 불법으로 점령한 자기영토라며 일본교과서에 실어 침략의 논리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그런데도 기시다는 말한다. “가슴이 아프다”
이에 한국의 외교부장관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의견을 표했다"고 맞장구친다.
https://www.s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195
도대체 이들의 <가슴>은 어디에 있는가?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딸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 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기절함이로다“(렘애2:11)
바벨론의 침공을 보며 고통의 현실을 보며 예언자(아마 예레미야의 제자로 보인다)는 아파한다. 이것을 두고 그야말로 <가슴이 아프다>고 말할 것이다.
“긍휼, 공감이란 한사람의 내장(innards)을 뜻하는 말로,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상황을 껴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예수는 소외된 민중들이 안고 있는 상처를, 이 상처를 자신의 인격과 자신의 역사 속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자기 몸으로 소화한다. 무감각을 공감으로 대체시키는 행위, 냉소적인 무관심이 종말을 고하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알아차림은 혁명의 신호탄이다”(브루그만 <예언자적 상상력>)
물론 우린 정치관료들에게 이런 태도를 기대하지 않는다. 단지 “가슴이 아프다”란 이 절절한 언어를 그렇게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말라는 말이다.
성경은 예수님의 마음을, 그리고 복음에 따라 산 바울의 이렇게 표현한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splagchnizomai)>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마가6:34)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12:29-30)
흑백차별의 시대! 고통 받는 흑인들을 변호하며 온갖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사는 백인 변호사.
다음은 그가 딸과 한 대화다.
“무엇보다도 간단한 요령 한 가지만 배운다면 모든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어.”
아빠가 말씀하셨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거야”
“네?”
“말하자면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다니는 거지”
(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첫댓글 그의 <가슴>은 입에 달려있는 듯. 말하면 뭐하나, 입만 아프지
진짜 가슴이 아픈게 뭔지 모르는 나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