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1박2일 일정으로 청풍명월의 고장 '충북 제천'을 찾았다.
'청풍명월'을 직역하면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평온하고 조용한 상태, 또는 세상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을 설명할 때 사용한다. 가령,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보며 마음의 평화를 느낄 때 이를 '청풍명월'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청풍명월은 휴식과 평온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스트레스를 완화하는지를 강조하는 성어인 것이다.
충북 제천에서 '청풍명월'의 고장이라고 명칭을 선점한 것은 현재의 '제천'이 조선시대에 '제천현'과 '청풍군'으로 불리다가 1940년대에 제천현이 '읍'으로 승격되고, 1980년도에 다시 '시'로 승격된 후, 1995년도에 '시군 통합'으로 현재의 '제천시'가 되었기에 이런 역사적 사실과 연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충북 제천시 '청풍면'이 여기에서 유래했으며, 이 단어로 도로 이름을 지은 '청풍명월로'가 존재한다. 청풍명월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서 특허청에 상표출원한 게 100건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충청북도에 속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니, 청풍명월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브랜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닌 듯 싶다.
이번 여행코스는 1일차에 충북 제천에 있는 청풍호크루즈 선상 관광 - 청풍문화재단지 - 옥순봉출렁다리를 보고, 2일차는 제천 의림지와 제림 - 덩실분식(유명빵집) - 배론성지(천주교)를 다녀왔다.
1일차 숙소였던 '국민연금공단'의 '청풍리조트' 앞 청풍호 모습이 아름답다.
청풍리조트 힐하우스
청풍리조트는 '콘도'와 '호텔' 건물로 구분되어 있는데, 콘도인 '청풍리조트 힐하우스'는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는 호텔 뒷편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청풍리조트 레이크호텔
청풍리조트 호텔인 '청풍리조트 레이크호텔'이다. 레이크호텔은 청풍호크루즈 청평나루 선착장에서 차량으로 5분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힐하우스에서 숙박을 하고, 조식은 레이크호텔을 이용할 수 있다.
제천 의림지/제림(2일차)
제천 '의림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저수지로 현재까지 그 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저수지 둘레는 1.8km, 수심 8m, 제방(둑) 길이 320m이다. 제방을 따라 200~300여년된 소나무, 버드나무가 숲을 이루고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어 '제림'이라 불린다. 물과 숲이 주변의 영호정 및 경호루 등과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고 있다.
의림지가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신라 진흥왕 때 '우륵'이 쌓았다는 설과 조선시대 현감인 '박의림'이 세종실록에 '의림제'라고 하고, '정인지'에 의해 두 차례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14~18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으며, 1972년 장마에 제방 일부가 무너진 것을 이듬해 복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6년에 명승 제20호로 지정되었다.
의림지(2006년 명승 제20호로 지정)와 순주섬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두 저수지와는 다르게 현재까지도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림지 안에 규모가 작은 '순주섬'이 있다. 저수지 둘레로 산책길도 있고, 주변에는 놀이공원(파크랜드), 박물관, 수리공원이라는 공원도 함께 있다.
동행한 친구들과 함께 의림지 '상징 조형물' 곁에서 기념촬영을 하였다. 조형물은 제천의 상징 캐릭터 '박달이'와 '금봉이', 그리고 장수를 나타내는 십장생 중 소나무를 상징하는 '송송이'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라 그런지 '오리배'는 타는 사람이 없었다. 이 오리배는 과거 강호동의 1박2일에서 멤버들이 체험한 장소이기도 하다.
저수지를 가로 지르는 '구름다리'와 구름다리 초입의 '입구문' 모습이다.
제방에 있는 농경문화의 발상지 '의림지' 표지석
영호정에서 의림지를 바라보며
'영호정'은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위치하며, 조선 1807년(순조 7) '이집경'이 세운 후, 6.25 한국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의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 고쳐 지었다. 이범우는 3.1운동 때 제천에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영호정은 화강암 주춧돌 위에 건축된 나무로 만든 단층의 정자로 팔작지붕에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경호루에서 영호정으로 가는 제방에서 돌출된 지형도 아름답지만, 소나무와 저수지에 비친 반영 역시 아름답다.
용추폭포(용터지기)와 유리전망대
'용추폭포'는 신월동에서 온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지 못하고, 이곳에서 터져 죽었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수문을 개문할 때면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용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하여 '용폭포'라고도 한다. 주변 모산동 마을사람들은 아직도 용이 터져 죽은 곳이라 하여 '용터지기'라고 부른다.
'유리전망대'는 바닥에 투명 강화유리를 설치하여 폭포에서 물이 떨어지는 장관을 보기에는 적격인 곳이다. 또한 시원한 폭포수를 바라보며 스트레스를 푸는데도 제격인 곳이다. 하지만 물이 항상 떨어지는 것은 아니고, 비가 많이와서 저수량이 넘칠 때와 인공펌프를 이용하여 인위적으로 물을 내려보낼 때 제대로 된 폭포를 볼 수 있다.
유리전망대 부근에 있는 정자(홍류정)
배론성지
마치 외래어같은 '배론'(舟배주, 論논할논)이란 지명은 이곳 지형이 '배 밑바닥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이곳 '배론성지'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인들의 은둔 생활지였으며,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중요한 세 가지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첫째, 황사영 백서(帛비단백, 書글서)가 쓰여진 토굴이 있는 곳이다. 1801.2월 황사영(알레시오)은 박해를 피해 이곳에 와서 토굴에 은신하며, 순교자들의 죽음을 세계 교회에 전하고 박해로 무너진 천주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하여 간곡한 서신을 비단에 써서(帛書) 북경에 있는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고자 하였으나 보내지기 전에 백서는 압수되고, 그 또한 체포되어 그 해 11월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백서는 현재 교황청 '성교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둘째, 1855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신학교인 '성요셉 신학교'가 설립된 곳이다.
셋째,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의 묘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1800년대 초부터 많은 신자들이 이 곳 배론에 모여 살며 깊은 신앙생활을 하셨고, 그 중 많은 분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셨다. 배론과 직접 관계된 순교자 중 이름이 남아있는 분이 스물 다섯분이고, 그 외에 이름 없이 순교한 분들도 많이 계실 것이다.
성모마리아기도학교
대성당과 소성당
최양업도마신부상
최양업신부 조각공원
최양업신부상
대성당을 측면에서 본 모습
일행 중 천주교 신자 두 분이 '무명 순교자의 묘'에 참배를 하고 있다.
배론성지 내에 있는 조그만 연못 정원에 비가 내리고 있다. 박해를 받으며 배론성지에서 어렵게 살아갔을 신자들의 눈물인가? 기쁨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