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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팝송 스크랩 재즈명반100선.020.Thelonious Monk-1957[Monk`s Music]
응암동늑대 추천 0 조회 56 11.11.04 13:3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1957[Monk's Music] - Thelonious Monk







비밥 시대를 개척한 위대한 거장이자 死後에 무수한 추종자들을 낳은 불세출의 재즈 피아니스트 Thelonious Monk는 1917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록키 마운틴에서 'Thelonious Sphere Monk'란 본명으로 출생한다. 이후 재즈의 메카인 뉴욕으로 이주하여 5세 무렵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여 순회 설교사를 따라 다니며 반주를 한다. 이웃에 사는 할렘 스트라이드 피아노의 代父인 James P. Johnson과 피아노의 大家 Duke Ellington을 통해 음악적 靈感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0년에서 1943년까지 그가 'Minton's Playhouse'의 전속 밴드에서 일하게 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연주 스타일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초창기에는 당대의 거장이던 Teddy Wilson의 亞流라는 악평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좀 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리듬과 하모니를 선보이며 자신 특유의 스타일을 확립해 나가게 된다.
1941년 'Jerry Newman Band'에서 일하는 영광을 얻게 되면서 그의 주가는 급상승세를 타고 서서히 인기 있는 연주인으로 등극하지만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연주는 수준 이하의 연주라는 끔찍한 발언을 일삼는다. 그러나 Monk는 이에 개의치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계속 확립해나가던 Monk는 1942년 'Lucky Millinder'와 잠깐 같이 일을 하는데, 이때 Millinder는 Monk의 'Epistrophy'를 녹음한다.
그리고 1943년에 최고의 색소포니스트인 Coleman Hawkins의 Sixtet에 가입하여 Coleman Hawkins로부터 재즈의 기초를 다시 배운 뒤 최초의 녹음을 하게 된다. 이 녹음은 Coleman Hawkins가 주선하게 되고, Monk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가르침을 준 Coleman Hawkins에게 앨범을 헌정하여 앨범의 타이틀 역시 [Flying Hawk]라 명명하게 된다.
이렇게 Monk는 'Coleman Hawkins Sixtet'의 정규 피아니스트가 되고 난 뒤부터 마침내 세상에 알려지게 되는데, Hawkins의 팬들은 괴벽스러운 피아니스트 Monk에 대해 불평을 털어 놓는다. 대중음악인으로 활동하기엔 너무 내성적이던 성격과 다소 기괴했던 스타일의 풍모 등이 어우러지며 별난 연주자란 대중적 이미지가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백전노장의 테너 색소폰 주자 Hawkins는 피아니스트 Monk의 재능을 처음부터 알아보고 감각적으로 믿는다. Hawkins는 확고한 스타일리스트로서 다른 뮤지션들의 귀감이 되기 시작하지만 한편, 그의 음악이 Monk 특유의 비타협적인 성격 때문에 타인들과의 조화가 힘들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1944년 'Cootie Williams Orchestra'와 함께 일하면서 'Round Midnight'를 처음으로 녹음하고, 1945년에서 1954년까지 Monk는 그의 리드미컬한 솔로에 많은 여백을 두며 심상치 않은 연주를 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2류 피아니스트로 생각하여 힘든 시기를 보낸다. Monk의 작곡은 너무 앞서 나가서 나태하고 움직임이 느린 비밥 연주자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 비밥의 선구자들인 Dizzy Gillespie와 Charlie Parker는 이들과 달랐다.
Thelonious Monk라는 이름, 괴상한 모자를 쓴 외모, 여간해서 말하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 등이 그를 괴짜 같은 사람으로 낙인찍히게 만들지만 다행히, Monk의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독창적인 음악성과 견고한 테크닉을 통해 재즈 레이블의 名家 'Blue Note'에 픽업되어 1947,1948년과 1951,1952년에 많은 녹음을 한다. 1954년 파리를 방문했을 때는 Vogue 레이블에서 솔로 세트를 녹음하기도 한다. 그리고 1954년 Verve 레이블에서 비밥의 선구자들인 Dizzy Gillespie, Charlie Parker와 함께 [Bird and Diz]를 필두로 완벽에 가까운 걸작들인 [The Unique Thelonious Monk], [Brilliant Corners] 등을 공개하고, 또한 당대의 거장들인 Art Blakey, John Coltrane, Bud Powell, Johnny Griffin 등과 협연을 펼치며 최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리고 1955년 Riverside와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데, 프로듀서 Orrin Keepnews는 그에게 Duke Ellington의 곡과 스탠다드를 녹음하도록 설득해 그의 음악을 일반대중 재즈 팬들에게 알아듣기 쉽도록 만든다.

1956년 걸작 [Brilliant Corners]가 나온다. 그러나 1년이 지나서야 대히트가 되고, Monk는 Five Spot과 장기 출연계약을 체결하고, John Coltrane이 출연하는 4인조 밴드를 운영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비평가들과 일반 재즈 대중들이 Thelonious Monk의 탁월함을 비로소 알게 된다.
1957년에 이르자 재즈 대중들은 재즈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요구하게 되고, Monk는 갑자기 유명인이 되면서 그의 높은 지위는 여생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고 계속 유지된다. 1958년 그의 4인조 밴드에는 Coltrane보다 더 뜻이 통하는 테너 색소폰 주자 Johnny Griffin이 주연으로 등장하고, 1952년 Town Hall에서 그는 Hall Overton이 편곡을 맡은 오케스트라에 출연하며, 1962년 Columbia와 계약을 체결하고 2년 뒤에 Time紙의 표지 모델로 오르기도 한다. 1963년 그의 두 번째 오케스트라 콘서트는 첫 번째보다 나았으며, 1960년대 Monk는 믿고 안심할 수 있는 테너 Charlie Rouse가 출연하는 4인조와 함께 전국을 순회공연 한다.
그러나 평생 괴롭혀오던 정신질환과 음악외적인 대중적 질시 등이 겹쳐 'The Giant Of Jazz' 공연(1971~1972) 이후 은퇴하여 은둔생활을 하던 중 1982년 뉴 저지 주 위호켄에서 불우했던 生을 마감한다.

그가 죽은 후 모든 사람들이 Monk를 존경한다. 한 때 'Round Midnight'은 모든 뮤지션들이 앞 다투어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너무 많이 연주하는 바람에 팝 히트곡이 되다시피 한다. 그리고 死後 그에 대한 갈채와 함께 Marcus Roberts로부터 Tommy Flanagan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모든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스타일을 재창조해보려고 시도해보지만 역부족이었다. Monk의 최대한으로 절약된 경제적인 음표들과 시청자의 의표를 찌르는 비타협적인 코드의 사용 등은 그를 재즈계에 있어서 최고의 詩人이라 칭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적 어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평론가들에 의해 혹평을 오랫동안 받아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환호 속에 천재로 기꺼이 인정받기까지 10여 년 동안 무시당하며 수모를 겪으며 살아야만 했던 Thelonious Monk. 그의 음악은 그 동안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실 Monk 음악에서 눈여겨볼만한 점은 그의 음악이 1947년에 거의 완성되었다는 점과 그 후 25년간 그의 연주방법과 작곡 스타일이 조금도 바뀔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작곡한 몇 개의 곡들이 스탠다드가 되었는데, 그 중 가장 뚜렷한 것은 'Round Midnight', 'Straight No Chaser', '52nd Street Theme', 'Blue Monk' 등이다.
역시 재즈 피아니스트인 아들 Thelonious Monk Jr.(T.S. Monk)가 연주활동과 더불어 아버지를 기리는 재단을 통해 수많은 젊은 뮤지션을 발굴, 배출해오고 있다.


* lineup
- Thelonious Monk(Piano)
- Coleman Hawkins, John Coltrane(Tenor Sax.)
- Wilbur Ware(Bass)
- Gigi Gryce(Alto Sax.)
- Ray Copeland(Trumpet)
- Art Blakey(Drums)

Thelonous Monk의 피아노를 중심으로 연주자들의 개인기가 빛을 발하는 앨범이다. 7인의 Septet 구성이지만 웅장한 사운드 대신 리듬 라인의 활기찬 연주를 바탕으로 각 파트의 개성을 충분히 살린 연주를 들려준다. 특히, Monk는 짧은 솔로에서도 다른 밥 피아니스트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독창적인 터치를 구사하고 있다. 불협화음으로 여겨지는 코드 진행과 여백의 미를 살리며 자신만의 스케일로 연주하는 Monk의 개성은 들을수록 더욱 깊은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John Coltrane과 Coleman Hawkins가 펼치는 투-테너 구성의 연주도 뛰어나며, Gigi Gryce의 알토 색소폰 연주는 서정적인 감성으로 다가온다. Art Blakey의 화려함과 절제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드럼 연주는 그의 명성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있으며, 수줍은 듯 조심스러운 Wilbur Ware의 베이스 연주는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Monk의 솔로 앨범이나 쿼텟 구성과는 다른 분위기를 들려주고 있으며, 평소 Monk의 음악이 난해하다고 여기고 있는 이들에게 그의 매력과 쉽게 친해지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02. Well, You Needn't


06. Epistr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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