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호랑가시나무가 촛불을 떠받치고 있는
카드가 떠오른다.
그건 초등학교 때 마치 호외를 던지듯 카드를 던져놓고 달아나던
여학생 때문이다.
시골마을에서 성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그런 날이었다.
본디 시골 마을에서는 교회 다니는 것을 예수쟁이라며 달갑지 않게
생각한 이유이기도 하지만 특히 우리 아버지는 일요일 날 농사일
제켜놓고 나들이 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가 왜 있는지 왜 즐거운 날인지 별로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빨간 옷에 하얀 수염이 덥수룩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도
겨울방학 책에서 보기는 했지만 우리 집에는 한 번도 온 적이 없었기에
그저 먼 나라 동화처럼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성탄이니 내게 그리 가슴에 와 닿을 리 없었지만 그날은
내가 처음으로 가슴을 떨었다.
그건 분명 죄를 지어서가 아닌 그렇다고 추워서도 아닌 그런 떨림이었다.
카드에는 호랑가시나무 이파리와 빨간 열매 그리고 양초 세 자루가
그려져 있었고 하얀 눈밭에서 꿩 두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는 모습이었다,
속지에는 "Merry Christmas and Happy New year"가 필기체로
휘갈겨 있었다.
영어로 써진 그 글씨가 뭘 의미하는지 몰랐지만 난생처음 편지라는
것을 받아봤다.
난 그 애가 속지에 아무 글씨도 쓰지 않은 것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난 그 카드를 받아들고 얼굴이 붉어져 부엌에서 나오는 어머니에게
들킬까 얼른 마당가에 있는 측간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똥을 누며
앉아있었다.
엉덩이가 얼얼할 만큼 추운 그날 밤 그 카드를 들키지 않은 것 만해도
다행이라 싶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호랑가시나무는 예수님 머리에 씌운 가시관이었단다.
호랑가시나무 열매를 좋아하는 새가 예수님의 이마에 박힌 가시를
빼 내려다 가시에 찔려 죽었다는 동화 같은 얘기와 연관이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전파사에서 울리는 캐롤을 수십번 반복해
들어도 싫지 않았다.
추운 동짓달이 아무리 매서워도 아름다운 계절로 남아있는 건
순전히 그 애 때문이다.
하지만 25일이 지나고 나면 거짓말처럼 썰렁해지고 케롤송도
사라지고 만다.
반짝이는 깜박이 전구도 별로 신나 보이지 않는다.
그건 삶의 세파에 시달린 내 영혼이 하느님을 맞이하기에는
너무나 썩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가 다시 소년이 된다면 속지에 ‘축 성탄’ 이라는 세 글자를
아마 쓸 것이다.
061220
첫댓글 제가 중학교 다닐쯤에 카드를 보내는것이 유행처럼 번진적이 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요즘의 E-mail보다는 그때의 백원짜리 카드가 더 좋은거 같습니다. 창강님 성탄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그 소녀가 카드안에 뭐라고 분명 쓰고 싶은 속말이 있었을텐데 그것이무엇일까요? 오래오래 궁금해 하며 기억 하게되는 예쁜 소시적 추억이군요. 참 좋와 보입니다.
옛날추억을 생각케하는 창강님의 글앞에 한참을 머물다갑니다 잘읽었습니다 올한해도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