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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 자유게시판 스크랩 숨쉬기는 잊어 먹지 않기
승시기 추천 0 조회 24 14.08.12 22: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요즘 정신줄 놓는 일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러다 숨쉬기마저 조만간 잊어 버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무리 생각없이 사는 철부지라지만 이번엔 심해도 정말 너무 심했다.

 

일요일 아침 아홉 시 조금 넘어 한재골산악회 산행에 함께 하려고 배낭을 들처메고 집 현관문을 나서는데 옆지기가 빗방울이 듣는 듯싶으니 우산이랑 모자를 챙겨가라고 했다. 나는 괜찮을 거라며 손사래를 치고 그냥 나왔다. 왜냐하면 태풍 '할롱'이 일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남부지방과 동해안 정도가 영향을 받을 거라는 일기예보를 철썩같이 믿었기 때문이다. 또 구름이 끼었다고는 하나 산행예정시간이 1시간 30분에 지나지 않아 설사 비가 내리더라도 별 일은 없을거라 확신도 있었고. 

 

내 확신대로 산행중엔 별 일이 없었지만 산에서 내려와 식당에서 뒤풀이를 하려고 자리를 잡았을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점점 빗줄기가 거세졌다. 먹고 마시기를 끝내고 일행이 족구팀과 노래방팀으로 갈라져 즐길 때 나는 한 친구와 개인적으로 볼 일이 있어 주방 옆 빈 곳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다음 식당에서 제공한 차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마천역으로 내려 가는데 뭔가 허전했다. 아차 싶어 주머니에 손을 넣어보니 전화기가 잡히지 않았다. 혹시 차 안 바닥에 떨어뜨렸나 둔전대봤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친구들이 내 폰에 전화를 해 보았지만 신호는 가도 받질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친구들과 헤어져서 그차를 그대로 타고 식당으로 되돌아와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던 곳에 가 보았더니 다행히도 식탁 위에 얌전히 놓여 있었다.  

 

빗줄기가 더욱 거세지고 역으로 내려가는 차편도 마땅찮아 노래방에 있던 일행에 합류해 즐겼다. 빗줄기는 여전했는데 오후 다섯 시 40분쯤 탁현후배가 고맙게도 전철3호선 '오금역'까지 태워다 주었다. 전철 분당선 '수서역'에서 수원행 열차를 갈아타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수원에 비가 억수로 쏟아지고 있으니 '영통역'에 도착하기 전에 연락해달라고 막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7시 15분쯤 영통역에 도착해 화장실에 들러 일을 보고 5번 출입구로 올라갔더니 빗줄기는 가늘어졌고 운좋게 건너편 하늘에 무지개가 걸려 있었다. 휴대폰 카메라로 무지개를 담고 있는 사이 막내가 차를 대고 있는 게 보였다. 

 

차 뒷문을 여는데 "아부지! 조심하세요." 하고 막내가 주의를 주었다. 난 의아해서 "왜?" 했더니 "아부지도 참."하면서 얼척없다는 듯 씩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리에 털썩 앉았더니 아뿔싸! 엉덩이가 바로 젖었다. 이번엔 내가 얼척이 없어서 큰소리쳤다. "야! 차안이 이게 뭐야?" 돌아온 대답은 "아빠 작품이잖아요. 차 창문을 조금씩 다 내려놓았던데요." 그제야 아차 싶었다. 토요일 햇살이 너무 뜨거워 창문을 내려놓고 깜박 잊어버린 내 정신머리 탓이었기 때문이다. 그 세찬 비를 오롯이 다 받아들였으니 차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일 수밖에. 그런데 그 순간 막내가 엄마에겐 들키지 말자며 또 씩 웃었다. 보나마나 집에 들어가면 자기 말 안 듣고 우산도 안 챙겨갔다고 지청구를 해대며 종주먹일텐데 차 문 열어놓은 사실까지 알려지면...

그래서 막내가 여자친구를 만나러 나갈 때 지 엄마 모르게 집에 있는 신문지란 신문지는 몽땅 모아서 내려 보냈다. 그리고 어제와 오늘 낮 동안에는 다시 창문을 열어 차안 물기를 빼내면서도 행여 비가 또 내릴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했다. 내일도 신문지를 갈아끼우면서 다시 말릴 작정인데 제발 비는 오지 말아라.

 

그런데 잊은 게 또 있었다. 일요일 고교후배 자녀 결혼식이다. 휴대폰 일정표에 꼬박꼬박 기록을 해 놓고서도 깜박하고 말았으니 그 후배가 얼마나 서운했을까. 어제 오전 늦었지만 축하한다고 연락하고 축의금도 보내긴 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다. 어디 그뿐이랴 10여년 전에 내 밥통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린가 뭔가 하는 놈이 있으니 조심하란 말을 듣고도 잊어 먹고 지내다가 지난 달 초 한재골산행날 속이 불편해서 영금을 본 뒤 병원에 들른 뒤에야 그 뒤처리를 하느라 지금 한참 애를 먹고 있으니 언제나 철이 들런지...아무리 그래도 숨쉬기는 아직 잊지 말아야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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