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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본 문 : 창 세 기 1장 1절 - 5절 (구약성경 1쪽)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아멘!
서로 인사 / “잘 되고 있습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축복한대로 됩니다.”
“당신은 역사의 주역입니다. 오늘도 좋은 일이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성경 첫 절은 서론도 설명도 없이 대선포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경배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임재하신 성령님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순종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미장원 이름이 「까끌래 뽀끌래」라고 되어 있는 집을 보았습니다. 선택은 고객이 한다는 말입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을래 말래!” 그 얘기입니다. 믿으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 천지창조의 선포 후, 그 다음 이어지는 2절 말씀은,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멘!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를, 운행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심을 선포한 말씀입니다.
운행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천지만물을 친히 운전하시는 분이 성령님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나라는 인생을 운전하시는 분도 누구다? 성령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멘!
제가 지금까지 쉽게 삼위 하나님을 설명했습니다만, 솔직히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천지창조와 천지창조 후 구약성경이라는 무대를 중심으로 역사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범죄 한 인간의 대표 - 아담과 하와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양을 잡으셨습니다.
그 후 모세를 통해 양을 잡아 제사하고 예배하므로 죄 사함 받고 구원 얻는 길을 율법으로 정하셨습니다.
왜 그래야 했습니까? 피 흘림이 없이는, 우리 인간이 지은 죄를 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계속 죄를 범하기에 양을 잡고 또 잡아도 인간의 죄 값을 다 치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린양, 마지막 제물이 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마땅히 죄를 지은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 그러므로 나의 모든 죄가 사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저와 여러분을, 그 누구도 결코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 받은 우리의 죄를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 엄청난 예수 십자가의 죽으심과 그 보혈로 죄 씻음 받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곧 나를 위한 죽으심으로 받아들여야 그 사죄가 나의 구원이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아무도 예수를 구원자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자들 곁을 떠나 아버지 하나님께로 가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당황하고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걱정말라.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요16:7)
그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제자들에게 또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떠나가면 보혜사를,
너희에게 보낼 것이다. 그 분이 영원토록 너희 안에, 너희 곁에,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 아멘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속의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으로 성령님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오 성령님, 성령님이 제게 오심을 환영합니다. 내게 오셔서 나를 운행해 주소서.”
그리고 나를 맡기면 나를 하나님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살도록 도와주십니다.
이 모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설명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2절을 보겠습니다.
“그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아멘!
성령님께서 천지를 운행하시기전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의 모습은 혼돈, 공허, 깊은 흑암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을 성령님이 운행하시기 전의 모습 또한 혼돈, 공허, 깊은 흑암 바로 그것입니다.
혼돈은 히브리어로 “토후 - 틀이 없다.” 는 뜻이고, 공허는 “보후 - 주인이 없다.” 는 뜻입니다.
깊은 흑암은 글자 그대로 캄캄한 상황 - 그래서 질서도, 주인도, 아무 생명체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 곳에 성령님이 운행하시니, 질서가 생기고 해와 달과 별, 그리고 생명체가 사는 땅으로 만들어집니다.
타락한 인간들에게는 질서도 없고, 주인 되신 하나님도 몰라보고, 캄캄한 인생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천국에 갈 수도 없고, 그 어떤 노력도 지식도 선행도 무기력하기만 합니다.
수렁에 빠진 사람이 자기 힘으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지듯이 죄를 지은 인간은,
더 깊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빠져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 가는 길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친히 임하셔서 운행해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롬 8:26)
똑똑하고 힘 있고 잘난 사람, 그 누구를 보아도 인간은 연약하기에,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화가인 고흐가 젊었을 때, 어느 광산에 들어가서 전도사 일을 한 적이 있답니다.
어느 날 광부 한 사람이 물건을 포장했던 천으로, 셔츠를 만들어서 입고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광부가 만들어서 입은 옷에는 “부서지기 쉬운 물건이니, 주의해서 다룰 것”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표현으로 “취급주의” 이렇게 써 있는 옷을 입고 다닌 것입니다.
고흐가 그것을 보고서 ‘인간은 부서지기 쉬운 존재로구나!’ 하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보면, 배가 빙산과 부딪쳐 금이 가기 시작하자 쥐들이 제일 먼저 기어나옵니다.
쥐는 벌써 파선을 예견하고 있었는데, 인간들은 멍청하게 그 재난이 임하는 것조차도 모른 것입니다.
개미란 놈은 홍수가 날 것을 미리 알고, 홍수가 나기 전에 미리 집을 나무꼭대기로 옮긴다고 합니다.
거미란 놈은 바람이 불기 전에 어디서 바람이 불어올 것인지를 미리 알고, 거미줄을 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들 미물만도 못합니다. 내일 무슨 일이 날는지 전혀 모릅니다. 그토록 미련한 게 인간입니다.
육체적으로는 또 얼마나 연약합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병균 하나에 그토록 건강하던 장정도 쓰러집니다.
정신적으로 우리는 얼마나 연약한 존재들입니까? 누군가의 눈짓 한 번에 마음이 무참히 무너집니다.
조그마한 근심 걱정들 때문에 밤잠을 자지 못합니다. 오히려 강해 보이는 사람이 사실 더 연약합니다.
세계를 정복했던 나폴레옹이 집에 들어오면, 아내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만큼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이들보다도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은, 영적으로 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도우심과 운행이 없이,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날 자가 누구입니까?
그만하면 반듯한데 돈 앞에만 가면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너무나 쉽게 시험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에는 아주 의로운데 이성 앞에만 가면 너무나 쉽게 꽈당 넘어져, 타락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돈이나 이성 앞에서는 깨끗한데, 명예 앞에는 꼼짝을 하지 못하고 매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듯 보이는데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는가 싶었는데 교만하기 짝이 없습니다.
몸으로는 충성하는데, 물질에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 노랭이입니다. 그만하면 열심히 헌신한다 싶은데,
언어생활에 날마다 실패합니다. 삶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기 전, 초대교회 지도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제자들은 다 도망쳤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신 이후엔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갈릴리 촌부들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오직 성령님의 임재와 능력으로, 저들은 지구촌의 1세기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이 임하셔서 운행하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의 인생이,
천국의 백성, 빛의 자녀가 됩니다. 수렁에 빠진 것 같은 내 인생이 주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습니다.
오늘 우리시대는 성령님에 대한 이해를 두고도, 혼돈과 공허 그리고 흑암이 있습니다.
영성적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 나머지 성령사역자들을 두고,
신비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합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성령사역이란 이름으로 비성경적인 것을 가르칩니다.
그러나 말씀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반면 성령만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알 것은, 성령은 성경과 모순되게 역사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차가 두 개의 레일 위를 힘차게 달리듯이, 성령님은 반드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서 우리의 눈을 열고 믿음의 문을 열면, 성경의 사건들이 우리 삶에서 일어납니다.
믿음의 폭이 달라집니다. 복음을 바로 전하고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면 성도 여러분은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믿음의 새로운 차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관상어 가운데 “고이” 라는 잉어가 있습니다.
이 고이라는 잉어를 조그마한 어항 속에 키우면, 기껏해야 5cm 정도 되는 예쁜 물고기가 됩니다.
그런데 이 “고이” 를 연못에서 키우면 25cm, 강물에 방류하면 무려 20배 – 1m까지 자란다는 겁니다.
어떤 물에서 사느냐 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우리의 영적인 능력도 그렇습니다.
어떤 물에서 노느냐에 따라 믿음의 그릇이 달라집니다. 옳습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인의 결과입니다.
영광스럽고 축복된 신앙의 세계를 거닐면서도, 감격과 신앙의 맛을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의 숨결 소리도 듣지 못하고 성령의 따뜻한 손길도 느끼지 못한 체 무감각한 신앙생활,
그렇게 그냥 습관적으로, 아무런 열매도 없이 그저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운행이 시작되면, 성경말씀이 열리게 됩니다.
성령님이 나를 운행하시면 믿음의 세계가 열립니다. 성령님이 나를 운행하시면 하늘 문이 열립니다.
호텔에 가면 방마다 열쇠가 다르지만, 호텔의 모든 자물쇠를 열 수 있는 “마스터 키” 가 있습니다.
우리가 부딪치는 수없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키” 가 있다고 하면 얼마나 신날까요?
신앙생활에도 “마스터 키” 가 있습니다. 예수 닮은 삶을 원하십니까? 문제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구원을 원하십니까? 구원의 감격을 원하십니까? 꿈꾸며 희망 가운데 인생을 헤쳐 나가길 원하십니까?
이 모든 우리의 신앙생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스터 키는, 바로 성경 말씀과 성령님이십니다.
이 신앙생활의 “마스터 키” 성경과 성령의 신비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신앙의 맛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이 한 해 동안 우리를 운행해 주실 것입니다.
에스겔 37장 4절 - 5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 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아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골짜기에 즐비한 마른 뼈들에게 성령의 바람으로 살아나게 하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성령님의 운행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면, 이런 능력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파도,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면 골짜기마다 죽어 넘어진 영혼들이 살아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에 성령의 바람이 일어나면, 죽은 영혼들이 다시 살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 믿음의 가족들인 저와 여러분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오면, 이 땅이 다시 살아납니다.
구원의 감격이 죽었습니까? 기도생활이 죽었습니까? 전도가 죽었습니까? 신앙생활에 기쁨이 죽었습니까?
가정에 생기가 사라지고 행복이 죽었습니까? 성경을 읽어도 말씀이 아무 응답없이 침묵하고 있습니까?
이 시간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살아납니다. 그래서 성령님 오셔서 친히 운행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의 신앙생활에 성령의 바람이 멈춰진 것 같아 답답하신 분들,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우주엔 수천억 개의 별들이 있습니다.
그 별 하나 하나에 생명이 있고, 하나님이 만든 사람이 살고 있는 별은 오직 작은 별 지구뿐입니다.
성경에서 땅은 정관사가 붙어 있는 여성 단수 명사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오직 지구만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 운행하시는 성령님의 품에서 수많은 생명들이 태어납니다.
성령님의 품에서, 불신 영혼들이, 지옥의 백성들이, 천국의 백성으로 새롭게 다시 태어납니다.
성령님의 품에서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온 인류를 구원할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이 태어납니다.
그 성령님의 품에서 온 가족이 구원을 받고, 가정이 구원을 받아 복된 가문으로 태어납니다.
성령님의 능력이 내 안에 들어오면 우리의 영혼이 뜨거워집니다. 냉냉하던 신앙생활이 뜨거워집니다.
예배가 달라지고 찬송이 달라지고 기도가 달라집니다. 성령님이 내 혀를 주관하면 내 말이 달라집니다.
사람을 죽이는 말이 변하여, 사람을 살리고 구원 받게 하는, 놀라운 생명의 언어를 통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내 심장을 어루만져 주시면, 내 삶의 모든 불행이 변하여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성령님의 내 인생의 문제들을, 내 모든 삶을 모든 문제들을 운전하시는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운전하시는 자동차를 타 보셨습니까?
저는 뜨레스 디아스를 처음 경험하고, 거기에서 나눠준 찬양테이프를 들으며 운전하다가 너무 너무,
성령이 충만하여 차를 길옆에 세우고 엉엉 울면서 찬양하며, 너무 좋아 기뻐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병든 자를 치료하고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성령님이 친히 운행하시는 감격스러운 예배, 성령님이 운행하시므로 응답되는 기도를 맛보셨습니까?
성가대, 찬양단 안에서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찬양의 감격으로 가득 할 것입니다.
당회와 제직회, 남선교회와 여전도회, 그리고 셀 목장에서 운행하시는 성령님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주방에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성령님과 함께 하십시오.
이외에도 우리 교회 모든 사역의 자리에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전도의 현장에서, 더 크게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운행을 경험하십시오.
이 모든 것들이 성령님의 운행가운데 이루어지면, 저와 여러분의 모든 매일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매일 매일을 성령님과 함께 말씀을 전하고 듣고 공부하고 읽읍시다.
그 말씀이 내 안, 여러분 안에서 살아날 줄로 믿습니다. 영혼이 탈진된 분들, 성령으로 일어나고,
성령으로 회복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뻐하고 성령과 함께 치유의 능력을 맛보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성령님에게 온전히 맡기고 순종해 보십시다. 성령님이 운전하시도록 다 맡기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믿음의 가족 여러분! 기대하기는 모든 성도들이 자녀들과 함께 예배에 참석하여,
매일 매일 하나님의 영이 사랑하는 우리교회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영이 셀 목장에 운행하시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정에 운행하시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줄로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