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과학기술계에서 성공하려 10여년 가까이 노력하다 좌절한 경험이 없는 충분한 자본을 갖지 못한 중산층 이하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의대생과 전공의 그리고 의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했음을 밝혀둡니다.
의대에 와서 정식 교육과정을 통과하고 국가 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로 개업을 통해 부를 이루거나 월급 의사를 하더라도 고연봉을 받는게 가능했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내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의대 정원 증가가 확정되기 전에도 이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나이가 많아 이미 세상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의사들의 경우엔 예외이겠지만(나이든 의사지만 현실을 제대로 다지지 못한 분들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의대생과 전공의의 입장에서 의사 직업의 화려한 영화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그걸 알기에 기득권 의사들은 점잖게 폼만 잡다 장기간 비상 근무로 체력이 소진되었을 때나 투쟁에 동참하는데 반해 의대생과 전공의들은 생존을 위해 극렬 투쟁의 선봉에 서는 것이다. 지방은 물론 서울과 수도권에서도 점점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는 의사들이 생기기 시작했으니 여기서 더 밀리면 자신들의 생존권 자체에 문제가 생길 것임을 명확히 알기 때문이다.
의사들을 공격하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투쟁 초기부터 극소수 의사가 퇴직한 사례 등이 언론에 보도되며 의사 집단이 무책임하다고 비난하지만 그 정도 사직은 평소에도 늘 있는 일이다. 의료계든 민주화든 투쟁의 역사상 투쟁이 직업인 사람들을 제외하면 기득권들이 자신들을 희생시키며 투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민주화도 투쟁이 직업인 소외된 정치인들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국민들을 움직여서 이루어낸 성과이다. 민주화에 성공했어도 국민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생존만을 이어가고 열매는 직업 정치인들만이 따고 있으니 전공의와 의대생들도 투쟁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 이상을 쟁취하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생존은 전교 1등을 능가하는 최상위 인재들인만큼, 전공의는 아르바이트 수준의 대우를 받는만큼 전임의가 된 이후에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수준의 연봉을 받는 것을 말한다.
만일 이번 투쟁에서 의료계가 패배한다면 새로 의대에 입학하는 의대생들의 전공의 수련 후 처우는 일반 기업 수준으로 후퇴하게 되어 그렇게 힘들여 의대 공부를 하고 전공의로 수년동안 노예 생활을 감내할 의미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현재 의대생들은 새로운 의대생들이 배출될 때까지 시간 여유가 1~5년 있으니 조금 더 유리하고 현재 전공의는 6~9년 시간이 있어 조금 더 유리하겠지만 중장기적으로 볼 때 이들을 분리해서 생각하는건 의미가 없다. 장기적으로는 법조계처럼 실업자로 지내는 의사들도 엄청난 숫자로 늘어날 것이다. 이런 전망을 진리로 보고 나는 의대 지망생과 의대생들 그리고 전공의들에게 과학기술계로 가자고 권하고 있다.
돈 문제도 중요하지만 사실 돈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사회적 인식과 대우에 있다. 의사들은 사회적 인식이 매우 좋지 아니함에도 정치인들처럼 특권층에 속하여 사회적 대우는 아주 잘 받아왔다. 그러나 앞으로 의대 정원 증가로 인해 의사들의 연봉이 하락하고 특권이 무너지면 사회적 대우는 현재 교사나 공무원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거의 전부이다. 교사나 공무원은 언제나 박봉이었지만 한 때의 사회적 존경은 의사들에 못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개혁의 대상으로 찍히면서 사회적 대우가 급락하여 연금까지 별 볼 일이 없어진 오늘 날에는 5~10년 가까이 공부해 어렵게 합격해 놓고도 자기 발로 교직과 공무원을 그만 두는 사람들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현재 국가의 개혁 대상인 의사도 이와 같은 길을 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 정도 연봉과 대우를 바라고 자칫 과실 치사로 법정에 서게 될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의사직을 고집할 필요는 전혀 없다.
이런 와중에도 보수는 역시 크지 않지만 취업은 확실하고 사회적 대우 하나는 절대 놓치지 않고 사는 직종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과학기술계이다. 수많은 민원인들이 소송을 거는 것으로도 모자라 교사를 패고 공무원을 때리지만 심지어는 특권의 상징인 현재와 과거의 의사들에게도 아주 가끔 소송을 걸고 패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했지만 과학기술 인력을 대상으로 그런 대접을 했다는 뉴스는 접한 바가 없다. 최근에는 내 주변에서 별 시덥지 않은 일로 병원 가서 지랄했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있는데 이는 정부와 언론이 의사들을 악마화한 결과이다. 그러나 과학기술계를 상대로는 정부나 언론이 절대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최악의 대우가 이번 정부처럼 국민들이 모르게 연구 예산을 깎는 정도이다. 더군다나 과학기술계에서 정상급 실력을 키우면 연봉이나 사업 수입으로 잘나가는 의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경제적 성취까지 이루고 사는 분야가 바로 과학기술계이다.
그래서 내가 실력만큼 대접받는 거의 유일한 직업인, 특권층 부모들이 자기 자식이나 친족들을 낙하산으로 꽂아넣을 수 없는 과학기술인을 목표로 우리 딸을 교육시키려 혼신의 노력을 다한 것이고 서울대 과학 관련 학과에 진학까지 시켰다.
이번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에서 성공한다면 직업적 안정성이나 금전적 보상이라도 조금 남아있을 것이니 혹시 모르지만 패배한다면 다시 진지하게 진로를 고민해야 한다.
가장 높은 비율로 천재성을 가지고 있을 것임에 틀림이 없는 대한민국의 의대생과 전공의 그리고 의대 지망생들이여! 필수 의료를 목표로 생명을 살리는 꿈을 가진 신념의 존재가 아니라면, 혹독한 의대 공부로 지력이 고갈된 경우가 아니라면 이제 별 볼 일이 없어진 의사 되는 길을 버리고 사람 대접이라도 확실하게 받는 과학기술계로 가자! 나는 지금도 어디 가서 물리를 전공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180도 달라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