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개감채 보러 가는 길 - 북한산
1. 대남문에서 백운동계곡으로 내려오는 길 주변
산봉우리 푸른 빛 비가 되어 내리고
자욱하게 옅은 먹색으로 가렸구나
정(情)은 성긴 종소리로 멀어지고
수심은 돌아갈 굽은 길을 따라 아득하네
峰翠仍成雨
空濛澹墨遮
情別疎鐘語
愁歸曲逕賒
――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외, 『삼각산기행시축(三角山紀行詩軸)』 ‘돌아오는 길 서암사에 들러
(歸路入西巖寺)’ 3수 중 제3수 일부
주) 위 시는 추사와 함께 북한산을 간 추사의 아버지 유당 김노경(酉堂 金魯敬, 1766~1837)의 시다.
김노경의 자(字)는 가일(可一)이다.
▶ 산행일시 : 2023년 5월 6일(토), 비, 바람, 안개
▶ 산행코스 :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중성문, 산영루, 남장대지, 청수동암문, 대남문, 대성문, 대남문,
보국문 갈림길, 보국문, 대동문,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 산행거리 : 도상거리 11.0km
▶ 산행시간 : 5시간 13분
▶ 갈 때 : 구파발역에서 버스 타고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에서 내림
▶ 올 때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앞 버스종점에서 마을버스 타고 수유역에 옴
▶ 구간별 시간
08 : 39 –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 산행시작
09 : 44 - 중성문
10 : 00 - 산영루
10 : 55 – 남장대지(700m)
11 : 00 – 716m봉
11 : 10 – 청수동암문, 휴식( ~ 10 : 15)
11 : 20 - 대남문
11 : 48 – 백운동계곡 보국문 갈림길
12 : 30 – 보국문
12 : 50 – 대동문
13 : 52 –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산행종료
2. 산행지도(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서울 1/25,000)
지리산 바래봉에 철쭉 보러가려고 했던 대성산악회 산행계획이 비가 심하게 온다고 하여 취소되었다. 아내가 안도
한다. 나 역시 새벽에 일어나려던 알람을 끄고 모처럼 늦잠 좀 자보려고 했는데, 몸이 버릇으로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북한산을 가자하고 일어난다. 산행준비는 어제 저녁에 마쳤다. 배낭 매고 우산 받치고 집을 나선다. 토요
일 이른 아침인데도 전철 승객은 북적인다. 나만 산행차림이다. 뒤통수가 뭇시선을 받아 따갑다.
지지난주 보았던 보국문 아래 나도개감채가 이 빗속을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궁금했다. 이번에는 백운동계곡을
그리로 거슬러 올라갈 요량이다. 구파발에서 파주 가는 버스도 꽉 찬다. 그 통에 북한산성 입구 버스승강장을 놓치
고 그 다음 승강장에서 내린다. 버스에 내리다마자 광풍이 몰아친다. 우산이 소용없다. 허리 잔뜩 수그리고 잰걸음
한다. 북한산성 주차장에서 고개 들어 의상봉을 바라본다. 아직 안개가 덮치기 직전이다.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국공이 쳐다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혹시 강우 강풍으로 통제할까봐 은근히 걱정했다.
만약 가지 못하게 하면 태고사를 가려고 한다든지 둘레길을 가겠다고 하든지 예상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계류 굉음
이 하도 요란하기에 다가간다. 새마을교 아래 계류가 큰물로 흐른다. 볼만하다. 거대한 포말 위로 작고 거무튀튀한
물체가 뛰어오르기에 물고기인가 하고 자세히 보았더니 낙엽이다. 계곡 주변의 낙엽이 쓸려 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서암사에 들러 그 마당에서 의상봉을 바라보려고 했으나 서암사 가는 길을 찾지 못하여 가다 말고 뒤돌아서 계곡
길을 간다. 물 구경한다. 이렇듯 장쾌한 백운동계곡의 모습은 내 여태 보지 못했다.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이 본 금강산 만폭동 진주담이 아마 이랬을 것 같다.
이슬이 밝은 구슬 적셔 하얗게 부서지는 듯
바람에 싸락눈 날려 보슬보슬 흩뿌리는 듯
露浥明珠分皛皛
風飄餘霰散霏霏
3.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바라본 의상봉과 용출봉(뒤)
4. 백운동계곡, 새마을교 아래
7. 계곡 옆 데크계단을 오르면서
혹은 농암 김창협(農巖 金昌協, 1651~1708)의 「동유기(東游記)」중 아래 설명은 두 단어만 바꾸면 바로 여기라는
것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겠다. ‘만폭동’을 ‘백운동’으로, ‘비로봉’을 ‘백운대’로 말이다.
“이곳 만폭동은 전체가 거대한 반석(盤石)을 기저로 하되 암석이 모두 옥처럼 하얗고, 시냇물은 비로봉(毗盧峯)에
서 내려와 여러 골짜기를 통해 함께 흐르는 줄기가 앞 다투어 내달려서 모두 이 만폭동에 모여든다. 만폭동의 바위
중에 험준하게 들쭉날쭉하고 얼기설기 얽혀 평탄하지 않은 것들은 또 이리저리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면서 계곡물과
기세를 겨루는데, 물이 이러한 돌을 만나면 반드시 세차게 흘러 후려치며 온갖 변화를 다 보인 뒤에야 성난 기세를
누그러뜨려 천천히 흐른다. 그리하여 평탄한 시내가 되고 얕은 여울이 되었다가 중간에 낭떠러지를 만나면 또 떨어
져 폭포가 되고, 폭포 아래에서는 또 물이 고여 못이 된다.”
눈으로만 보고 말기에는 너무 아깝고 사진을 찍자 하나 여간 고역이지 않다. 비와 바람 중 하나만 그쳤어도 좋겠는
데, 서로들 경쟁하듯 몰아치니 그들 숨 고를 때를 기다리곤 한다. 더구나 장노출로 폭포 물살을 뿌옇게 하려면 삼각
대가 필수인데 이럴 줄 몰라 준비를 못했다. 일반적으로 삼각대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셔터속도가1/150초 이상이어
야 흔들림이 적다고 한다. 그런데 적어도 수동 셔터속도 1/4초를 유지하려면 조금도 흔들림 없이 십 수장을 찍어서
겨우 한두 장 얻는다.
계곡 길이 대서문을 지나온 도로와 만나고도 물 구경은 계속 이어진다. 북한산 레인저 차가 뒤따라온다. 비바람에
훼손된 등산로는 없는지 순찰하는 중이다. 얼마 안 가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고 패인 곳은 자갈로 메운다. 혹시 나더
러 더 가지 못하게 할까봐 이 빗속에 큰 수고하신다며 그들에게 먼저 수인사 걸게 건넨다. 전혀 빈말이 아니다. 그들
은 등산객들의 무사안전을 위해서 노심초사하고 애쓴다.
그래도 불안하다. 도로는 수로이기도 하다. 바람에 쓰러진 거목이 데크도로 난간을 박살내기도 했다. 레인저 차는
범용사 앞까지 간다. 오프로드 욕심을 낸다면 중흥사까지도 갈 수 있다. ┣자 국녕사 갈림길인 범용사를 지나고서
레인저의 시야에 벗어난다. 나 말고도 드물게 오가는 사람이 있다. 북한산에서 만나는 사람이 반가운 건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함께 씩씩한 걸음 한다. 산영루(山映樓)를 북한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경 중 한 곳이라는 이유를
비로소 알겠다.
‘아름다운 북한산의 모습이 물가에 비친다’는 산영루는 기실 이처럼 장대한 와폭과 직폭에 마구 쏟아져 내리는 물살
을 보지 못해서 그렇게 이름을 짓지 않았을까 싶다. 오늘 산영루는 관폭대다. 물살은 조금도 그 기세를 누그러뜨리
지 않고 맹렬하다. 오늘은 중흥사, 태고사를 들르지 않는다. 그 절 마당에서 바라보는 앞 산릉은 안개에 가렸다.
왼쪽으로 백운대 가는 ┫자 갈림길에서 직진한다. 곧 중창지, 상창지를 지나게 될 터이다.
14. 큰꽃으아리
15. 중흥사 아래
17. 산영루 아래
19. 나도개감채
반대쪽에서 내려오는 등산객과 마주친다. 도저히 물길을 건널 수가 없어서 뒤돌아온다고 한다. 계류를 건너야 하는
대동문 갈림길과 대남문 갈림길이 너무 물살이 세더라고 한다. 자기는 대동문에 있는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는데
낭패라고 한다. 그들 얘기로는 지금 산성주릉은 태풍급의 비바람이 몰아친다고 한다. 난감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뒤돌아 백운대 쪽으로 가더라도 나도개감채 근처까지는 가보자 하고 간다.
등로 주변의 오른쪽 사면에 눈 박고 간다. 북한산이 나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나도개감채가 한두 개 보이기 시작한
다. 비바람에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다. 계곡 주등로 벗어나 그들 뒤를 쫓는다. 이러다 사면 돌아 계곡 주등로로
이어지겠지 하며 쫓는다.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비바람이 하도 거세기에 그냥 올랐다. 이정표
가 나오고 ‘청수동 암문’ 가는 길이다. 뒤돌기에는 너무 올라와버렸다. 대남문으로 가서 계곡을 내리고, 갈림길에서
오른쪽 사면 치면 물을 건너지 않고 보국문으로 갈 수 있겠다.
청수동 암문을 향한다. 행궁지 복원 공사장을 돌고 가파른 능선길이 이어진다. 길 좋다. 남장대지 안내판을 본다.
700m봉이다. 우리가 남장대로 알고 있는, 여기서 5분 거리에 있는 716m봉은 실은 성창지다. 아니게 아니라 능선
에는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슬랩을 오르기가 겁난다. 갑자기 역풍이나 회오리바람이 일면 오른쪽 절벽으로 떨
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납작 엎드려 긴다. 716m봉에 올라 주변을 둘러본다. 만천만지한 안개다. 의상능
선은 물론 바로 건너편의 나한봉도 보이지 않는다.
청수동 암문이다. 비바람을 피할 데가 없다. 문수봉은 오르지 않고, 그 왼쪽 사면을 돌아 넘는다. 대남문. 대남문도
비바람을 피할 데가 없다. 누각과 문은 비바람이 지나가는 통로다. 이러다 허기지면 지치고 더 힘들 것이라, 사온
김밥 한 줄을 행동식으로 먹는다. 우산을 받칠 수가 없으니 빗물에 말아 먹는 셈이 된다. 백운동계곡을 향하여 내린
다. 안개 속 믿을 건 오로지 나침반인데, 당연한 길이라 여기고 나침반을 꺼내어 보지 않았으니 대성문으로 잘못
가버렸다.
대남문에서 사면 돌아 대성문까지 0.3km다. 뒤돌아 대남문을 향한다. 걸음걸음 재며 간다. 대성암 복원 공사장이
나온다. 그쪽 울타리가 주등로다. 물길을 건너야 한다. 스틱 짚고 첨벙첨벙 건넌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물이
간지럽다. 그렇게 계곡을 건너갔다 건너온다. 바람에 가지 많은 거목이 쓰러져 등로를 막았다. 생사면 누벼 길 뚫는
다. 또 거목이 쓰려지면서 전선인지 통신선인지 여러 갈래의 검은 선을 등로 바닥에 깔았다. 이 선을 넘기가 조심스
럽다. 전선을 잘못 건드려 감전이라도 되면 골로 간다.
금위영 터 지나고 보국문 갈림길이다. 보국문 0.4km. 그 절반쯤 올랐을까, 그 길에는 나도개감채가 없다. 지지난주
에 어디서 보았던가 헷갈린다. 뒤돌아 내려간다. 어쩌면 나도개감채가 지고 말았을지도 모를 일. 우당탕 흐르는
계류 건너고 살폈으나 보이지 않는다. 아쉽지만 물러난다. 나로서는 할 만큼 했다. 보국문을 향한다. 보국문도 비바
람 통로다. 산성주릉 성곽이 바람막이다. 이제 어디로 갈까? 백운대, 영봉, 상장봉을 그만 내려놓는다. 시단봉, 일출
봉도 내려놓는다. 안개가 가지 말라고 막아서다.
25. 대남문에서 백운동계곡으로 내려가는 길
31. 애기나리
33. 알록제비꽃
구천계곡 구천은폭을 보러 가자. 물 구경은 거기도 장관일 것이다. 대동문이 금방이다. 미련 없이 구천계곡을 향한
다. 구천계곡을 다녀간 지 어언 십년이 넘었다. 변했다. 강산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대로를 만들고 돌계단을 놓았
다. 대역사였다. 암릉 길은 막았다. 왼쪽 가파른 돌계단을 한 피치 내리면 계곡 길이 시작된다. 데크로드를 설치했
다. 데크로드는 산모퉁이 돌 때 끝나고 돌길이 이어진다. 물길이기도 하다.
핸드레일 잡고 계류 옆 슬랩을 내린다. 온 산을 울리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백운동계곡의 그것에 못지않다. 비는 잦
아들고 바람은 나를 찾지 못한다. 여기일까 저기일까 구천은폭 주폭을 찾는다. 계곡 쪽은 목책을 두르고 가지 말라
고 경고판을 붙였다. 목책 너머는 되게 가파르다. 열 걸음에 아홉 걸음은 기웃거리며 주춤주춤 내린다. 그러다 송계
별업 터까지 내려왔다. 구천은폭(九天銀瀑) 각자(刻字)가 있는 주폭을 놓쳤다. 예전에는 구천은폭 슬랩을 짜릿한
손맛 보며 오르내렸는데 지금은 어렵겠다.
예로부터 구천계곡은 수려한 경관으로 이름났으며, 구천계곡을 조계(曹溪)라고 했다. 송석호 외 3인의 「북한산
인평대군 송계별업(松溪別業) 복원을 위한 기초연구」를 보면 “조선시대 삼각산 조계동 송계별업으로 곧, 인평대군
(麟坪大君, 1622~1658)의 별업이다. (…) 조계동의 지명은 조계사(曹溪寺)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판단되며, 현재
조계사지는 구천폭포에서 대동문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는 폐사지로 추정되고 있다.”라고 한다.
무명자 윤기(無名子 尹愭, 1741~1826)가 읊은 「장마가 그치자 폭포를 구경하려고 혜화문을 나섰는데 정릉에 이르
렀을 때 비를 만나 봉국사에 들어가서 절구 3수를 쓰다(積雨初霽 爲看瀑布 出惠化門 行至貞陵遇雨 入奉國寺 得三
絶)」는 이 구천계곡을 말한다. 그 제1수다. 오늘 내 행적과 흡사하다.
지팡이 짚고 나선 동쪽 성곽 밖
온종일 물소리 속에 있더니
별안간 산 비가 급히 쏟아져
이내 몸 선궁(仙宮)으로 들게 하는구나
携筇東郭出
終日水聲中
忽然山雨急
送我入琳宮
박석 깔린 대로를 내린다. 비는 오락가락 하고 바람은 잔다. 다리 건너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앞 마을버스 종점이
다. 뒤돌아보는 만경대 연봉은 안개에 가렸다. 그래서다. 일찍 산을 내려온 게 조금도 서운하지 않다.
34. 구천계곡
39. 송계별업 터에서 올려다본 구천계곡
40. 송계별업 터에서 아카데미탐방지원센터 가는 길에서도 구천계곡은 볼만했다
첫댓글 5월에 큰 비가 내렸습니다. 사람들 농사에 도움이 되었고 저수지에 가득 찬 물을 보고 흐뭇해 합니다. 모내기 때 물 걱정 없겠다고 한마디 합니다. 오랜만에 냇가에 큰물 내리는 광경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으로 볼만한 물구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