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4년 KBS에서 30세 이상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6‧25가 되면 떠오르는 노래’를 조사한 바 있다. 그때 1위로 꼽힌 곡이 ‘단장의 미아리고개’다. 2위는 ‘굳세어라 금순아’, 3위엔 ‘전우야 잘 자라’가 올랐고, ‘아내의 노래’ ‘전선야곡’ ‘임 계신 전선’ ‘군사우편’ ‘꽃 중의 꽃’ ‘삼팔선의 봄’ ‘삼다도 소식’이 그 뒤를 이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6·25전쟁’과 함께 떠오르는 노래다. 그래서인지 북한에서는 1998년 한국인 금강산 유람 당시, 금강산을 오가는 버스에 노래 반주기를 허용하면서도 ‘단장의 미아리고개’ ‘가거라 삼팔선’ ‘전선야곡’ 등 71곡은 금지시켰다.
‘단장의 미아리고개’에서는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끌려가는 남편을 바라봐야만 했던 아내의 고통을 애절하게 그린다. 얼마나 아프면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다’는 뜻의 ‘단장(斷腸)’으로 표현했다. 실제로 서울 북쪽의 외곽도로였던 미아리에서 북한군과 국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 미아리는 6·25전쟁 당시 북한이 서울을 점령했다가 후퇴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끌고 갔던 곳이다. 북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볼 수 있었던 미아리 고개는 ‘눈물 고개’이면서 ‘이별 고개’였다. 6·25가 발발하고 9·28 수복이 있기 전까지 서울은 살얼음판과 같았다. 당시 형무소에 있다 북으로 끌려갔던 가수 신카나리아는, “따발총을 든 30여 명의 북한군이 빨랫줄로 두 사람씩 팔을 묶어 4열 종대로 정렬시키고 끌고” 가던 상황과 자신이 간신히 살아돌아온 이야기를 들려준 바 있다. 이념과 생계에 따라 가수끼리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던 서울에는 불안과 두려움을 넘어 공포가 만연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작사한 반야월(본명은 박창오)은 원래 가수였다. 일제강점기 때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이른바 ‘가수 선발 대회’에 출전했고, ‘불효자는 웁니다’를 부르며 데뷔했다. 이후 반야월이란 이름으로 작사에 주력했던 그는 6·25가 발발하기 직전까지 호구지책으로 콩쿠르도 기획했으나 전쟁으로 무산됐다. 긴박한 상황에서 반야월은 처가가 있는 경북 김천에서 가족들과 재회하기로 하고 먼저 김천으로 향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아내와 아이들이 오지 않았다.
9‧28 서울 수복 소식을 듣자마자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 서울 집으로 돌아온 반야월은 네 살배기 딸 수라가 허기를 견디지 못한 채 죽은 것을 알게 된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을 절감한 반야월은 전쟁의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던 1956년, 비명에 간 딸 수라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며 애통한 마음으로 가사를 썼다. 여기에 이재호가 곡을 붙여 세상에 나온 노래가 ‘단장의 미아리고개’다. 반야월의 슬픈 개인사와 당대의 역사적 비극이 만나 절창을 이끌어낸 것이다.
원곡 가수인 이해연은 일제 말에 데뷔해, 광복 후 ‘단장의 미아리고개’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여동생 백일희(본명 이해주)는 연극배우로 데뷔했다가 1960년대까지 가수로 활동했다. 이해연의 남편인 베니김(김영순)은 치과 의사 출신의 트럼펫 연주자로 ‘화양(한국흥행주식회사)’을 이끌며 미8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이들의 자녀인 김파·김단·김선은 ‘김트리오’를 결성해 1979년에 ‘연안부두’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원곡 가수 이해연 이후에 나훈아, 김연자, 주현미, 진미령, 문희옥, 김수희, 조미미, 이미자, 하춘화, 정수라, 설운도 등 내로라하는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이미자, 김연자, 주현미가 다 잘 불렀지만 역시 원곡 가수의 노래를 따라가지 못한다. 후대에 부른 가수들 대부분이 원곡을 살리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요즘 정서에 전쟁통의 애절함이 부담스럽다면 금잔디가 샘플링해 노래한 ‘신사랑 고개’를 추천한다. 앞부분은 ‘단장의 미아리고개’로 시작하다가 전쟁과 관련된 아픈 이야기는 탈각되고 나를 떠난 남자에게 잘 가라고 하는 경쾌한 노래다. 처음엔 노래의 역사성을 저리 훼손해도 되나 싶었는데 들을수록 중독된다.
그러고 보니, 트로트 한 곡에 우여곡절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어디 ‘단장의 미아리고개’뿐인가. 참가자들이 부르는 노래 한 곡 한 곡마다 사연이 있다. 때로 그 사연은 개인의 삶이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노래는 이야기를 만날 때 힘을 얻는다. 여러 염려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일상’에서 트로트는 우리에게 치유와 면역을 선사하는 긍정의 바이러스로 기능한다. 부디 ‘미스트롯2’가 암울한 우리 삶에 백신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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