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는 무서움을 많이 탄다. "사내자식이 그렇게 겁이 많아서 어디 쓰겠느냐." 하는 핀잔을 크면서 자주 들었다.
덩치는 장군인데 성격은 졸보라 놀림도 받았고, 아픈 것은 지금도 엄청 무서워한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무슨 처치라도
받을 양이면 간호사 선생님들이 쓴웃음을 지으면서 연민의 눈길을 보낸다.
그런데 어렇게 겁쟁이인 주제에 꼬마 때부터 전혀 겁을 내지 않는 대상이 하나 있다. 그것은 묘지라든지 서낭당이라든지
빈소라든지 하는 장소, 또는 그런 곳에서 흔히 떠올리는 귀신이나 유령과 같은 실체 없는 것들이다.
조금도 무섭지 않을 뿐 아니라, 으스스하다든가 기분이 찝찝하다든가 하는 일말의 부정적인 느낌도 없다. 목덜미에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그런 종류의 두려움은 혹시 살아있는 무엇이 달려든다면 몰라도, 상상 속의 괴물이나 죽은 아무개의
혼령 같은 것에는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한밤중에 무덤에서 어쩌고 하는 소싯적의 담력 내기는 글쓴이에게는 산보나
다름없었다. 그덕에 실제와는 정반대로 "알고 봤더니 제법 간이 크더라."하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어린 마음에도, 세례의
인호를 지니고 있고 수호천사의 가호를 받는 내가 잡귀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주사 바늘은 무섭지만...,
남산동 성모당 곁에 마련된 성직자묘지에는 지난 백여 년에 걸쳐 교구에서 봉사하시다가 선종하신 주교님들과 선 후배
신부님들의 묘소가 있다. 지금은 군위 성직자묘지에도 모시지만 전에는 모두 남산동에 모셨었다. 평소에도 인사드리고
기도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고 특히 위령 성월에는 많은 분들이 찾는다. 시내 한 가운데에 공동묘지라니, 영문을 모르는
비신자가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신적인 경향이 강한 사람이라면, 총각귀신 수십 분이 모여 계신다는
말인데 분위기가 스산하지 않느냐, 주변에 민가도 있는데 괜찮으냐, 이렇게 쓸데없는 걱정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직자묘지에 한번이라도 가 보신 교우들께서는 이것이 왜 쓸데없는 걱정인지 잘 아실 것이다. 스산하기는켜녕 따뜻하고
평화로운 기운이 늘 감돌고 있는 곳, 포근한 미소로 참배객들을 맞아 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아늑한 묘지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여기는 어두움과 슬픔이 지배하는 장소가 아니라는 거을 선명하게
느낄 수가 있다. 예수님의 승리의 표시인 십자가가 높직히 서서 충실한 주님의 종들의 쉼터를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분들의 영혼은 주님 곁에서 지극힌 행복하실 터이고 후손들을 위해 밤낮없이 기도하고 계실 것이다.
그래서 묘지의 입구에 새겨져 있는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라는 격언이 쓸쓸하고 우울한 인상을 주기보다 오히려
훈훈한 격려로 다가오는 것이다. 물론 저 문구는 '지금 내 육신이 묻혀 있듯이 어느 날엔가 당신도 죽어 묻히게 될 것이다.
'라는 뜻으로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지만, 동시에 후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전하는 초대의 말씀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저는 제게 주어진 시간 동안 주님께 저의 삶을 봉헌했습니다.
후배 여러분, 이제 여러분 차례입니다.
먼저 가 있을테니, 우리 영원한 나라에서 만납시다!"
♣'Hodie Mihi, Cras Tibi'라고, 출입문의 좌우 기둥에 라틴말로 적혀 있다.
글. 정태우 아우구스티노 신부 / 이곡성당 주임
2024년 11월호 빛 책자 중에서 옮겨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