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 속 보르헤스
홍정미
내 가방 속에는
보르헤스의 미로로 가득하다
둥글둥글 낯선 미로, 우물우물 복잡한 미로
흥미로운 소문에 갇혀버린 미로
시간의 무한한 갈라짐으로 속수무책인 미로
앞뒤가 맞지 않는 초고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가방 속,
보로헤스의 미로는 백 년 내내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처럼
고요하다
---애지 가을호 발표예정
미로란 무엇인가? 미로란 복잡한 길이고, 어디가 입구이고 출구인지 알 수 없는 길이며, 모두가 그 미로에서 길을 잃고 그 미로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만일, 그렇다면 미로란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현재 그 미로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단 말인가? 미로란 도처에 있으며, 우리는 모두가 다같이 진리라는 미로, 허위라는 미로, 공산주의라는 미로, 자본주의라는 미로, 천사라는 미로, 악마라는 미로, 선과 악이라는 미로, 정답과 오답이라는 미로에 빠져서 어쩌지 못한다.
가령, 예컨대 공산주의라는 진리는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고 신앙이 되겠지만, 그러나 만인 평등과 부의 공정한 분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라는 진리 역시도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가 되고 신앙이 되겠지만, 그러나 ‘자본’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가져다가 주는 만병통치약은 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진리는 믿음을 강요하고, 믿음은 광기를 강요한다. 일찍이 도덕국가, 즉, 교회가 패권을 장악했던 시대와 스탈린과 나치 치하의 시대처럼 인간이 타락하고 전인류를 억압했던 시대는 없었다.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면서도 존재하고, 진리는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도 마찬가지이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이란 ‘미로찾기’이며, 미로 속에서 헤매다가 끝끝내 그 미로 속에서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게 된다.
홍정미 시인의 [가방 속 보르헤스]는 ‘존재론적 미학’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내 가방 속에는/ 보르헤스의 미로로 가득하다// 둥글둥글 낯선 미로, 우물우물 복잡한 미로/ 흥미로운 소문에 갇혀버린 미로/ 시간의 무한한 갈라짐으로 속수무책인 미로”에서처럼 그 정점을 찍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미로, 파블로 피카소의 미로, 보들레르의 미로, 니체의 미로, 미셸 푸코의 미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홍정미 시인의 미로에서처럼 이 세상의 삶은 ‘미로찾기’에 지나지 않는데, 왜냐하면 우리 인간들의 존재의 근거가 ‘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며, 따라서 ‘무’는 알 수 없음이며, 진리와 허위가 구분되지 않는 ‘미로’라고 할 수가 있다. 그렇다. 둥글둥글 낯선 미로도 있고, 우물우물 복잡한 미로도 있다. 흥미로운 소문에 갇혀버린 미로도 있고, “시간의 무한한 갈라짐으로 속수무책인 미로”도 있다. 출구도 없고, 입구도 없고, “앞뒤가 맞지 않는 초고가/ 뒤죽박죽 엉켜 있는/ 가방 속”의 미로만이 있는 것이다. “보로헤스의 미로는 백년 내내 어둡고/ 익숙하지 않은 문장처럼/ 고요하다”라는 시구는 우리 인간들은 미로 속의 존재이며, 미로 속에서 그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두가 다같이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란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우리 인간들을 이 인생이란 미로 속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 즉, 예측 가능한 삶을 살게 해줄 수 있는 제우스와 시바는 그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진리는 허위가 되고, 허위는 진리가 된다. 성자도 없고, 악마도 없다. 영원한 친구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미로는 무이고, 무는 진리이고, 진리는 환영이고 거짓이다.
운명에의 사랑은 미로찾기이다. 슬픔도 붉디 붉은 피가 되고, 절망도 붉디 붉은 피가 된다. 보르헤스는 수많은 책들을 읽고 붉디 붉은 피로 글을 썼지만, 그러나 그는 그 ‘미로찾기’의 무지개만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가 있다.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지개, 입구이자 출구인 무지개, 희망이자 절망처럼 떠오르는 무지개, 너무나도 아름답고 멋진 무지개----.
시는 무지개이고, 미로찾기의 최종적인 목적지라고 할 수가 있다.
홍정미 시인의 [가방 속 보르헤스]도 무지개이고, 그 짧고 간결한 시구 속에다가 수천 년의 역사와 그 사유를 새겨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