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圖生)
인생은 각자의 삶이지만 더불어 살아간다. 인간은 다른 생명체와 달리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삶의 의미와 가치에 희망을 품고 보다 나은 삶을 도모한다. 그러한 삶에 풍요와 상승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의 한 방편이 예술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에 예술이 없다면 얼마나 무미건조한 삶일까. 예술에는 작가 특유의 고뇌와 정서, 정신적 가치가 내포된 미학적 가치가 있다. 그러한 예술을 접하면 보는 이가 자신의 어떤 체험의 기억이 떠올라 감성에 동화되어 마음이 정화되고 평화로워지고 자신의 정신적 가치가 상승한다.
음악과 미술은 물론 문학과 종교도 그런 효과를 지닌다. 나는 지천명에 이르러 삶의 한계와 반복된 일상에 회의(懷疑)가 왔다. 쳇바퀴 돌듯한 건조한 삶의 궤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문학과 신앙을 접하고 나서이다. 불확실한 마음으로 어렵사리 신앙의 줄을 잡았는데 그 줄은 튼튼한 동아줄로 삶의 궤도를 바꾸어 놓았으며 삶의 가치를 상승시켰다.
우선 스스로 옭아매었던 속박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었다. 튼튼한 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단련했다. 육체적 단련으로 마라톤에 입문하여 전국을 누비며 달렸다. 고통이 따랐지만, 강인한 의지와 인내심을 길렀다. 그 심미와 특유의 체험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닫혔던 마음이 열리고 정서가 물을 만난 듯했다.
또한 신앙의 줄에 매달렸다. 교리를 배워 신앙에 입문했지만, 성경 말씀이 어려웠으며 종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성경학교에 들어가서 배웠으며, 신학원을 거쳐 신학대학원에서 수학하여 졸업했다. 그 뒤에 이스라엘을 비롯하여 바오로의 선교 여행길, 남미의 과달루페 등 성지 순례를 두루 거쳤다. 그랬더니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그분께 바투 다가갈 수 있었다.
삼 년여 동안 코로나로 닫혔던 성삼회(성경학교 30회) 문을 열었다. 오랜만에 문전성시를 이루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그동안의 삶의 길을 얘기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겹치는 일(모임)에서 떨쳐버리고 이 모임에 참가한 이들도 더러 있었다. 다음 모임은 7월에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삶의 길에 함께함은 각자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이 생각하는 심미적 가치로써 삶의 자리며 몫이다.
우리는 인생의 길을 걷고 있다.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쉽고 편한 길인가, 어렵고 고통의 길인가? 그것은 각자의 선택이지만, 결과는 다를 것이다. 길 위를 걷다 수많은 사람이 순교하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에서 흉탄에 맞아 쓰러졌다. 그들의 가치 기준은 무엇이기에 초개와 같이 생명을 버릴 수 있었을까. 남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은 최고의 영적 가치인 ‘사랑’으로 승화한 것이다. 어떤 길을 걸으며 도생(圖生)으로 가야 할지 묵상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