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우리 가족들은 용산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를 탔다. 열차의 칸은 18개 정도인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이 많은 사람들이 ‘박람회’를 가는지 모르나 열차 칸에는 광고 글귀가 쓰여있었다.
“현명한 사람은 정원으로 간다. -타고르-
우리는 정원으로 갑니다. -순천시-
우리는 정원에 삽니다. 순천으로 올라 오세요!”
방송에서도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소개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순천시민은 28만이라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춘천시민의 인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순천만은 34만 평의 갯벌을 메꾸어 국가 정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34만 평의 갯벌에 수많은 나무, 잔디, 꽃... 사람의 힘으로 갯벌을 메꾸어 정원을 만든 것은 세계적으로 이런 유례가 없을듯하다. 어느 도시, 어느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일은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넓은 곳에 인조 잔디도 아닌 파랗게 살아있는 잔디는 온통 그린 색으로 깔아놓은 듯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전국의 인파가 순천만국제박람회로 몰려온 듯했다. 조용한 곳에 살다가 밀물처럼 밀려오는 인파들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구경거리가 되었다. 사람 구경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구경을 해야할 지 몰라서 눈에 보이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다니며 보았지만, 어느 곳 하나 허술한 곳이 없었다. 그 많은 종류의 꽃들은 어디서 다 모아들였을까 화훼가들의 노력과 연구가들의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실감 있을 것이다. 순천만갯벌을 개척한 지자체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용산역에서 순천까지 KTX로 2시간 35분 걸리고 기차 값도 왕복 십만 원은 얼추 계산 된다. 비용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만만치 않은 데 가볼 만하다. 비행기 타고 아시아 여행 간다고 생각하면 될듯하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리는 남도 음식 어느 것을 먹어도 다 맛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굿이 자녀들이 ‘맛집’으로 이름난 곳으로 간다고 고집했다. 자녀들이 검색한 곳, 후회없는 선택이었다. ‘연잎연가’ 식당이었는데 값도 저렴하고 메뉴도 고루 갖춘 영양식이었다. 연잎에 찰밥을 싸서 한 번 더 찜해서 나왔는데 맛있었다. 이런 식의 연잎밥은 춘천에서도 먹어본 경험이 있는데 반찬이 다르다. 우리 가족은 ‘이런 밥상을 먹을 수 있게 해준 사장님에게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식당 안이 바빠서 서둘러 나오고 말았다. 진정으로 인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역시 맛의 고장이라는 생각도 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장소에는 주차장도 1 주차장 ~ 3 주차장까지 있는데 자리가 없어서 빙빙 돌기도 했다. 메타쉐콰이어 가로수 길을 따라서 산책을 하는 것만 해도 사색이 될 듯하다. 걷다가 멈추고, 보다가, 지치면 나무 그늘에 앉아서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과 표정들을 살피는 것도 재미있었다. 모두가 감탄하는 얼굴들이었고 편안한 차림, 평상복, 츄리닝 차림이 많았고 늘씬한 여성들도 많았는데 개성 넘치게 멋을 부리고 오는 사람들도 볼거리였다.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듯이 날씬한 사람들의 화려함도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 다정한 사람들의 모습이 행복해 보였다. 친구와 함께, 부모님과 동행, 가족들과 함께 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것으로 보였다. 곳곳에 그늘 펼침막이 있고 의자가 준비되어있었다. 앉았다, 쉬다 가는 사람들이 한가해 보였다. 그야말로 전라도말로 “쉴랑게”였다.
장미정원이 있는데 장미꽃 색깔이 빨강, 주황, 노랑, 보라, 화이트, 핑크색의 로즈가 화려하여 한참을 머물러서 보고 또 보았다. 모양도 다양하다. 물감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점점이 다른색으로 피어있는 것도 있었다. 장미꽃의 크기도, 모양도 같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저마다 매력을 뿜뿜 내뿜고 자태가 아름다워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관광객들은 로즈 정원에서 향기를 굳이 맡아보려고 하지 않아도 온통 로즈 향기에 취하는 듯했다. 그날 따라 바람이 적당히 불어 산뜻함 속에 로즈 향기까지 실려왔다. 많은 사람들이 장미정원에서 가장 많이 머물고 사진을 찍어댔다. 어쨌든 그 많은 꽃들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인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으나 개성 넘치는 꽃들이었다.
1박 2일의 여정으로 가능한 일이지, 하루도 아닌 한나절의 시간으로 그 넓은 34만 평의 볼거리를 본다는 것은 수박 겉핥기식의 구경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곳곳에서 이벤트도 있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예술가도 있었다. 그 또한 무료관람이다. 꽃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고 물은 잔잔한 물결로 은빛을 만들어 주었다. 마치 은어가 팔짝 뛰는 느낌이었다. 그린 속에 앉아서 바람에 실려 온 음악 소리는 자연과 잘 어울렸다. 음악하는 여성은 쉬지 않고 연주를 하는데 잠깐이라도 쉬었다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음악이 끝나면 음료수라도 마시고 시작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천시민들의 자랑거리가 되고 전남 고장의 자랑거리가 된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세계적 자랑거리가 될 것 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각종 조형물, 조각품들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자연으로 만든 것이 특이했다. 이것은 분명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부분 공원에 가면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품들이 공원에 비치되어 있는 곳도 많이 보아왔다. 이 넓은 곳에 자연만으로 채웠다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13개 나라의 정원들도 볼 수 있다. 시간 부족으로 다 보지는 못했지만, 꼭 보고 싶은 것만 선택해서 본다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부지런하고 근면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이토록 위대한 자연 정원을 만들어냈으니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새삼 한국에서 살고 있음에 감사하다. 비록 남과 북의 휴전 상태이기 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