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월)
열왕기상 19:1~10
깊은 절망에서 만나는 위로자 하나님
저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엘리야의 행동이 당황스럽습니다. 그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싸웠던 일을 생각하면, 이세벨의 말 한마디에 광야로 들어가 스스로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의 모습은 저를 적잖이 당황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영적 침체의 표면적 이유는 엘리야가 형편을 바라보고, 자기의 생명을 위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엘리야는 형편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큰 성공 후에 찾아오는 심리적 위축감을 엘리야가 이기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토요일 말씀에서 엘리야가 백성에게 했던 말을 떠올립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18:22).”
‘나만 홀로 남았다’라는 의식은 엘리야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일은 내가 꼭 아니어도 된다.’라는 홀가분한 생각이 엘리야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엘리야 말고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사람들을 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험적으로 사역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낸 후에, 찾아오는 외로움이나 허탈감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오늘처럼 주일 사역을 마친 후 월요일 휴식을 취할 때 이런 외로움이나 허탈감이 목회자에게 찾아오곤 합니다.
물론 엘리야의 심리적인 기질도 이러한 영적 침체에 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엘리야를 좀 더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갈멜산의 영적 전투경험과 오늘 본문의 우울증 경험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오늘 본문에 드러나지 않습니다. 단지, 그녀가 엘리야의 생명을 위협하는 말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습니다. 아마 갈멜산의 엘리야 같았다면, 그는 이세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상시 엘리야가 처했던 생명의 위협을 고려한다면, 이세벨의 위협적인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그는 이세벨의 협박을 확대해석하고, 극심한 영적 침체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스스로 죽기를 구하며, 자신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다며 열등의식을 표현했던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엘리야를 어루만지시고,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마시게 하시고, 그를 재워주셨습니다. 이는 영적 침체의 원인 중 하나가 과로였던 것이 드러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육체적인 쉼을 경험한 엘리야를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보내셨고, 그곳에서 엘리야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엘리야가 회복되는 과정에는 최소 40일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에 세밀한 하나님의 돌보심과 배려가 있었습니다.
저도 최근에 엘리야와 같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영적 침체는 저를 포함한 많은 사역자에게 찾아올 수 있습니다. 저는 가족과 교회가 목회 직의 막중한 무게감을 이해하고, 목회자를 좀 더 세심하게 배려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