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itary Field Training ( 1967 )
<그림과 인생 공부> 혜화동 그리고 윤화백
윤 일병의 휴가 첫날
헌병들에게 끌려서 명동 파출소안에서 검문을 받고있는 나에게
" 얘 ! 무우(병운)야 !
"모처럼 휴가나온 동생에게 저녁사주었는데 뭐! 잘못된 일이 있나요 "? 하면서
나의 팔짱을 끼고 무난히 파출소에서 나가는 우리들을 물끄럼히 쳐다보는 헌병들의
시선을 뒷통수에 느끼면서......?
상기의 내용인즉,,,,
내자인 Julia가 그때당시에 "병운"아로 부르는 대신에 보성53회
후배인 작은처남의 이름으로 거침없이 불러 제낀데에 헌병들도 어이가
벙벙했었던것 같았다.
정말 누나로 착각했었을까...? 사실이지? 놀란사람은 소인이다.
왜냐? 하면
미대 졸업전까지만해도 남달리 수즙음이 많았고 보통때도 대수롭지 않은
대화에도 얼굴이 홍다무가 되여 버리던 Julia 였었다.
헌데 저녁식사도 그당시에 분위기가 특이했었던 OB Cabin으로
초대를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
졸업 2년반만의 일인데,
이유인즉 학창시절에 연주회를 비롯해서 신세 진것에 보답이란다.
Julia는 외국대사관 & 공관장의 가구디자인을 도맡아 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많은 세련미가 풍겼다.
미대 재학시절엔 동문 남학생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 도도하기
짝이없었던 여대생이었다.
학업을 정진하면서 상업에도 종사하다보니 군에도 늦게 입대하게되여
보성 53 & 54 회 후배들과 훈련소 전후반기를 마치고
서울 천호동 건국대학교앞에 주둔하였던
Eight Army Medical Group으로 배속해서
Medical Treatment Aidman으로 있으면서
상병때 결혼을하여 출퇴근의 특혜와 18개월간 근무가끝나면
한국군부대로 전속하여야 했었는데 Group Commender의
추천으로 그곳에서 제대까지.....! 한가지 재미나는 여담은....!
혜화동 유년시절로시작 대학교 졸업때까지 학비는 물론 집안생계를
두 어깨에지고 생활을 했었던 나자신은 갖은 무수한 역경을 고생으로
생각지않코 정말로 열심히 자라오다보니...?
옆에 내무반 동려들은 기상나팔소리를 지겨워서 두손으로 귀들을 막느라고....?
헌데 새벽부터 조석간신문 배달에다가 더자라선 새벽시장등등 ...
습관이 되여서 항상 기상나팔 불기전에 그것도 전날 총알탄피 상자에 물을담어
뻬치카옆에 밤새 뜨거워진물로 화장실에서 여유있게 모든것을 끝내곤하였으며,
소생처럼 일빵빵으로 입대한 사람들은 기억들이 생생들.....?
그것도 때는 1월초였으니....?
이곳 캘거리는 9월16인데 첫눈치고는 젖은 진눈개비가 그칠줄모른데!
신병때의 논산훈련소 생각이 엊그제같이 기억이되여 회상하면서..........
밖에 날씨는 나의마음을 끌어당겨 동문사이트로......
18분씩이나 계속되는
Beethoven Piano Sonata OP.111의 3악장을
며칠째 연속으로 감상하면서.........
2003년 09월 17일 03시 04분
*****
김 부혁 09-17 파출소는 왜 갔지? 어떻게 파출소로 찾아왔는지도?
최정락 09-17
순수했다고? 그런데 저녁은(물론 맥주를 포함하여)주리아님이 사셨는데
누가 먼저 전화 연락했다는 이야기가 없어?
Paul 윤은 그때까지 Julia님께 연정이 없었던 것처럼 들리네, 매사에
부지런하고 당당한(이 말은 중학교때 같이 찍은사진에 가슴을 당당히
내밀고 찍어서 한말임) Paul 윤이 천생연분을 덤덤하게 보았겠나?
누가 그렇다고 믿어.
김 부혁 09-17
대학 4년 화가들의 초기 동기 동락으로 인연이되여,
넘보지도 못할 그시대 최상의 김동성씨.
신익희씨와 동료되는 장인 어른이 이룩한 지성적이며,
첨단의 인테리 집안에 규수를 만나서,
울 쑥매기 병운이 어쩌다가 놀러가면,
런던에서 제작한 Classic LP 판들이 산재해 있고,
화가들의 염원인 불란서 화선지와 오일 물감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Julia 집안 형편을 보고 기가 죽어, 차려 주는 밥도 게걸스럽게 보일라
제대로 먹지 못하며, 집에 와서 보리밥에 열무김치를 허리띠 끌르고
마음 편히 먹어가며,
얼마나 그 직심 스럽고 고리타분 병운이 성격에 덤덤이가 다 뭐요.
오락 가락 마음을 잡지 못하고, 졸업과 동시에 군대를 갔겠다.
군대에서 오랫만에 받은 휴가로 부자집 Julia가 병운이 엄두도 못 내는
OB 명동의 Cabin에 데리고(?) 가서 세련된 솜씨로 Steak & Ale를
대접했겠다. 촌닭 서울 귀경 온 모양으로 두리번 거리는 카츄사(KATUSA)
군복을 헌병아 용돈 뜯으려고 파출서를 데려 갔겠다.
당시 KATUSA는 빽 많은 집자식들만 가든곳이였든때라
헌병 용돈 뜯기 좋은 상대였지.
이렇게 듣도 보도 못한 원판 고전 음악판들,
서양제품의 화구 도구들에 기기 질려 있는 쑥매기
병운이 길드리느라고 Julia가 힘이 많이 들었으리라 본다.
Julia를 대학에서 만나고 부터 인복은있어서,
그림지도 해서 현재 불란서에서 화가로 활동하는 사람의 부친이
훈련소 소장으로 돌봐주고, 카츄사도 가게 했으며,
카츄사로 부평 미군 병원에서 근무하며, 약,주사기 모자라는 당시
한국인들을 많이 돕고, 한강 범람 할때 마다 앞장서서 시민들 구조 및
치료을 해주며, 남의 도움만 받은것 같이 생각 되든 삶에서 남을 도웁는
편으로 변신 한 자신에 기뻐 했다지.
부평 군의관실은 그 당시 국내에 구하기 힘든 여러 약,주사약들이 있어
암매로 돈을 많이 벌수 있는 자리 였다.
허나 병운이 직심스러움에 미군의관들도 감탄하여 일년 만기를
그들 주장으로 제대 할때 까지 같은 자리에서 남을 도우며 군 생활을 마치고,
해운대 신혼 여행도 가고 했다지.
최정락 09-17 부혁이가 아예 병운이 자서전을...!
보성 51회 PAUL YOON COLUMN 애서 퍼왔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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