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을 떠나 백담사로 드는 길은 멀기도 하다.
삽당령 높은 재를 넘으니 이내 작은 마을 성산이요
성산을 지나치니 또 이내 시가지라
속초를 바라고 내닫는 7번국도는 예전과는 달리 길도 좋다.
부산서 시발하여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어진 길에 정동진을 지나고
못 가는 휴전선에 아쉬움만 남기나
물맑은 동해바다를 따라 북상하며 사철 푸른 바다를 끼고 가는 길엔
철썩이는 물보라와 함께 이는 하얀 파도를 차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바다를 보고 싶고
하얀 파도를 보고 싶은 이여,
7번국도를 따르시라...
김소연 시인은 이 7번 국도를 노래한다.
강릉, 7번 국도
다음 생애에 여기 다시 오면
걸어 들어가요 우리
이 길을 버리고 바다로
넓은 앞치마를 펼치며
누추한 별을 헹구는
나는 파도가 되어
바다 속에 잠긴 오래 된
노래가 당신이 되어
평생을 떠돌던 나그네발길이 정선에 안주하여 잠시 주춤하였는가 하였더니
눈내리고 삭풍부는 겨울맞아 하는 일이라곤 난로에 불피우니
또 다시 슬며시 일어나는 방랑의 노스탤지어는 지울 길이 없다.
산골에서의 소유란 거추장스러워 작은 집 하나 짓고 앉아 개도 두 마리 키우니
자잘한 일은 발목을 잡고
이마저 소유하여도 되는가 의구심이 드는데
한 편으로는 이도 없다 하면 주야장천 나그네라
마음 또한 둘 곳 찾기 수월치는 않을게다...
정선도 눈은 많이도 왔으나 대관령을 두고 동과 서로 갈라 영동 영서라 하니
구분 확연하여 영동에 쌓인 눈은 아직도 오래 두고 보겠다.
용대리에 내리니 개울을 사이에 두고 집들은 드문드문한데
두 집 건너 민박집들은 산뜻하고
황태 넉넉 넣은 해장국은 구수하다.
눈 속에서 장관이던 황태덕장은 어느 곳에 있나 두리번거리나
다른 골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앞산도 눈이요 뒷산도 눈이라
雪國은 이 곳을 두고 말함이라
차다니는 길만 빠꼼하여 눈쌓인 보도를 걷는 길손은 발길이 수월치 않아
허위허위 올라간 백담 입구엔 봄가을내 다니던 셔틀버스도 쌓인 눈에 아니 가니
차라리 잘 되었다 신발끈을 고쳐맨다.
골을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얼음장 밑에서 들려오고
흰 눈을 인 바위는 물살을 막는다.
가도가도 눈길은 줄지 않고 오르막 내리막에서는 미끄럽기도 하나
백담골 긴 골은 고즈녁하기만 하다.
앞뒤 좌우 솟은 기암절벽 우람한 모습은
그렇지 않아도 느린 걸음 더욱 느리게 하고
포근한 날씨에 길을 두고 벼랑은 높아 바람도 들지 않고
눈길에 익지 않은 길손은 웃저고리벗어 이마의 땀을 훔친다.
백담사가는 길은 으례 계곡따라 들어가는 이 길이 보고 싶어 오는 것이라 할만큼
구비구비 돌고도는 물보라와 흰 눈 쌓인 골이
선경이 어드메뇨 따로 찾을 일이 없다.
이 길이 있어 백담사는 수월하게 찾을 길이 아니매
더욱 그리운 이름이 되었고
산사는 고요하다.
절을 앞에 두고 마지막 고개를 넘으니 백담길은 여기가 끝이라
내리막이 길고 평탄하다.
백담사드는 길은 개울을 건넌다.
구곡담 맑은 물이 흘러내려 수렴동계곡을 이루니
가야동계곡물과 합쳐 백담사를 지나며
개울이라 하기에는 외람된 물가 끼끗한 돌밭에는
선남선녀들의 작은 소망을 담은 작은 돌탑 수 백 기가
흰 눈을 소복히 쓰고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修心橋...
백담사에 들어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엔 마음을 다듬어야 한다.
수심교 앞에 서니 마음을 다듬었는가 묻는 듯 금강문이 바로 보이며
다리를 건너니 금강역사가 가로막는다.
두 눈을 부릅뜬 금강역사 한 켠에는 사자를 타고 앉은 문수동자와
코끼리에 올라 앉은 보현동자가 길손의 마음이 깨끗한가 헤아리는 듯 하고
설악영봉 대청에서 절까지엔 크고작은 潭 백 개가 있어
百潭寺라 한다지만
세속에서의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래 전에 찾은 절의 모습과는 많이도 달라져 있고
전에 못 보던 전각들도 눈에 보인다.
華嚴室 앞에 선다.
이제 와서는 내 전 재산은 이십몇 만원이 모두요 라고 하던
한 나라의 대통령이 칩거하던 곳...
사람이 어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주니
차라리 고맙다는 생각이 들어 빙긋 웃는다.
마당 한 켠의 오래 전 이 절에서 님의 침묵을 쓰던
만해선생 앞에서 옷깃을 여민다.
절마당엔 반가운 시 한 구절이 또 있으니,
매월당 김시습의 시 한 수가 하늘을 날 듯한 하얀 돌에 새겨져
길손을 기다리는데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어린 단종임금 향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동가식서가숙 정처없는 유랑길에 이 곳에도 들렀구나...
저물 무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거나
바람자니 솔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백담계곡의 저녁은 빨리도 온다.
어스름은 설악 영봉을 지나 백담 마당으로 스며들어 운경 스님을 찾으니
세속과 승속이 달라 속세의 인연은 두고 왔으나
사람으로서의 해후 반가움은 어쩔 수 없어
두 손 마주 잡고 놓을 줄을 모른다.
그윽한 미소와 함께 요사채 깊숙한 방 하나를 내어주니
따뜻하고 고요하다.
창호지바른 문 틈으로는 솔숲을 헤쳐가는 바람소리 드나드니
어디선가 만해선생의 붓가는 소리도 들려오는 듯 귀를 기울이고
소담한 저녁공양 조심조심 비우고 따뜻한 온돌에 앉으니
운경 스님은 세상사는 이야기를 청하는 바
불법은 입문을 아니 하였으니 그저 정선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하여
인색이란 사람이 늙어 잘 걸리는 병이라는 화두를 두고 저녁나절은 지나간다.
밤은 깊어 산사나이 두엇이 잠을 청하는 두런거림에
젊은 스님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마당에 쌓인 눈빛이 방안으로도 밀려오니
매무새 바로 하고 뜰에 나선다.
온 산에 쌓인 눈빛에 처맛선은 선명하고 구비친 설악 영봉도 가까우니
흘러내리는 골바람에 풍경소리 청아하고
풍경 끝 한 마리 물고기는 삼라만상을 유영하는데,
예불드리려 법당을 돌아가는 스님의 장삼자락이 언듯 보이고는
이내 둥둥 법고소리 적막을 깨니
이대로 돌이 되어
백담마당 한 켠에 머물고 싶은
百潭의 밤이여...
첫댓글 풍경 소리를 들으며 산사에서 하루밤 머무신 글이 제 마음까지도 평화롭게 합니다 ... 바다에 가면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살고 싶고 산에 가면 그곳에 살고 싶으니 우리에 마음 어느곳에 머물지 못하는 바람같은 존재인가봅니다 ...
그렇지요. 마음이란 뜬구름같아 머물기가 어렵네요...
그 고즈녁한 백담사에 내 마음도 잠시나마 쉬임을 얻고 시포라...ㅋㅋ 글속에서 산사의 고요함이 묻어 나서 제 마음은 벌써 백담사에 가 있는 기분이 듭니다. 늘 건필하세요~^^
공감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소서...
나그네 님.글읽으면 상막한 아파트공간에서..싱그러운 대자연을 접하게됩니다.백담사도가고.산골마을소식도 접하고.눈구경도하게되고...ㅎㅎ 근데 백담사는.예전에 대통령이잠시 피신하던곳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화엄실에서 전두환 씨가 2년을 칩거하다 갔지요.
님의 글을 읽으며 제 마음도 따라 그곳으로 가는것 같네요.
눈 쌓인 백담사의 풍경이 보이는듯 합니다.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어쩌면 자꾸만 그려지는 풍경에 마음이 머뭅니다,,,,,그리워 하지만 현실이 된다면 과연 적응할지,,,,,,
조용함에는 쉽게 적응이 되겠지요...
백담사라면 친구 남편이 생각납니다....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배로서 백담사 갔다가 오는 차가 딩굴었을때 친구의 남편은 죽었고 친구는 지금도 긴팔 옷 외에는 못 입고 살지요....그래도 산 사람은 잘 살더군요....
네, 그 당시에 그런 기사를 본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