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이야기
사도 19,1-8; 요한 16,29-33 / 부활 제7주간 월요일; 2023.5.22.; 이기우 신부
요한의 세례는 물의 세례요, 예수님의 세례는 불의 세례입니다. 물의 세례가 물로 더러운 것을 씻어내듯이 불의한 죄를 뉘우치게 함으로써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면(마태 3,11), 불의 세례는 죄에 물들어 사랑이 메마른 세상을 사랑으로 불태우는 것입니다(루카 3,16). 정의의 물과 사랑의 불은 둘 다 똑같이 당사자의 삶에서 희생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정의롭고자 하고 사랑으로 불탔던 누구나, 이 희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희생의 길을 걸어간 이 의롭고 거룩한 이들을 예수님처럼 부활시키시고 믿는 이들 모두가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끔 기운을 주시느라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영이십니다. 정의와 사랑으로 살아가려는 이들, 그래서 의덕과 성덕으로 자신의 삶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이들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평화를 얻게 됩니다. 비록 의덕과 성덕의 대가로 고난을 겪기도 하지만, 성령의 세례(루카 3,16)를 받은 삶은 “세상을 이기는 삶”(요한 16,33)이라서 그를 지켜보는 세상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줍니다.
현대에 들어서서 오염되어 가고 파괴되어 가는 정도가 점점 더 가속화되어 가고 있는 공동의 집 지구를 바라보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전 세계 가톨릭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요한의 세례로 의덕의 길을 걷는 것은 물론 성령의 세례로 성덕의 길을 향해 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관념적 회심을 넘어서서 근본적으로 하느님의 땅으로 들어가게 하는 생태적 회심의 초대입니다.
현재 지구의 모습은 인류가 이룩한 문명의 성적표입니다. 인류가 하느님께로부터 채점받을 이 성적표에는 인간 사회의 정의, 평등, 평화, 인권 등 인문 사회 분야의 여러 과목이 더 있지만, 자연과 생명 분야의 기초 과목이 땅, 물, 공기 그리고 햇빛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를 축복하시며 땅과 물과 공기와 햇빛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찬미는 먼저 무상으로 주신 이 자연의 축복에 대해 감사드리는 일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땅은 지구입니다. 저 광대무변한 우주 안에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천체 중에 오직 지구라는 땅에서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느님께서는 축복하셨습니다. 우주와 천체를 연구하던 학자들이 매우 돋보이는 학문적 용기와 열정을 가지고 얻어낸 가설에 의하면, “태초의 어둠을 감돌던 하느님의 영”(창세 1,2)께서 이 지구를 조성하시기까지 150억 년이 걸렸습니다. 또 지구라는 별은 45억 년 전에 기적처럼 생겨났는데, 그 위치가 절묘합니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가 대략 1억 5천만 km정도인데, 태양이 공급해주는 에너지를 받아들여 생명체가 살아가기에 아주 적당한 거리에 지구는 자리를 잡았고 그 덕분에 지구는 우주 안에서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땅이 될 수 있었고, 또 사실 생명체가 출현하여 진화할 수 있는 품이 되어 주었습니다. 또 지구는 태양 주위만 공전하고 있었는데, 달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지구가 자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지구는 23.5도의 기울기로 자전하면서 밤과 낮이 생겼고, 달의 인력이 커지고 작아짐에 따라 바닷물이 절반은 밀물로 나머지 절반은 썰물로 육지를 드나들면서 공기 중의 산소를 바다 속으로 들여보내주는 덕분에 바다 속 생명체들이 호흡하며 번성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인류는 이 땅의 축복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는커녕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매년 수억 톤의 쓰레기가 마구 버려지고, 특히 그 가운데 많은 것들은 미생물에 의해 분해될 수도 없고 대단히 유독하며 방사선을 방출해 내는 화학제품들입니다. 가정과 기업에서, 건설하고 폭파하는 현장에서, 병원에서나 연구실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땅에 쌓인 이 쓰레기들이 배출하는 유독물질은 돌고 돌아서 우리가 섭취사는 음식을 통해 결국 사람들의 몸으로 축적됩니다.
이 쓰레기 문제는 이익을 얻기 위해 많이 생산해 내고, 생산해 낸 것들을 흥청망청 소비하며, 소비하다가 마구 버리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중에 재활용되는 것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애초에 설계하신 질서가 아닙니다. 산업혁명으로 인류의 물질문명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기 전까지만 해도 식물과 동물, 특히 초식 동물과 육식 동물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는 선순환(善循環)되는 질서가 땅을 오염시키지 않은 채 작동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로지 수익과 편리함을 이유로 자연이 재활용하고 흡수하기도 전에 쌓여가는 폐기물과 부산물 때문에 땅이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류가 생활양식과 생산소비양식에 있어서 회심하고 이룩해야 할 새 땅은 온유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온유한 이들이 하느님의 참된 행복을 누리는 새 땅을 받으리라”(마태 5,5)고 선언하셨습니다. 새 땅에서 살아가려는 온유한 이들은 땅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물건을 대하는 일상태도에 있어서, 필요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말아야 하고,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하며, 버릴 경우에도 재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처리해야 합니다. 불편을 감수하려는 이런 생태적 회심을 기초로 온유한 이들이 서로 나누는 사랑의 공동체가 제대로 세워질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물질 사용의 태도와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야말로 새 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