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 ~^*^
오늘밤은 참으로 특별한 날인 듯 합니다.
이렇게 누군가에게 한 줄의 편지를 쓰고 싶어지니 말이에요.
간간히 내리는 빗방울 소리가 참으로 청아하게 들립니다.
지난 가을비는 내복 한 벌 몰고 오더니 지금 오는 봄비는
겨우내 껴입었든 겉옷이 무겁게 느껴지게 합니다.
안녕하시지요.
돌림병으로 온통 세계가 시끄러워 지는 요즈음 이렇게 빗소리 들으며
건강한 몸으로 잘 지낸다 하니 무작정 행운입니다.
그래도 아직까진 우리 이웃들의 더 불행한 소식이 들려오지 않음은
불행 중 다행이라 여겨지옵니다.
주식처럼 먹는 김치덕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김형~
우리 만난 지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네요.
눈을 감고 손가락을 꼽으면서 내 나이를 세어보지만 아직도
끝까지 틀리지 않게 세어보기는 역부족입니다.
숫자 따로 손가락 따로 따로국밥입니다.
무슨 군더더기 같은 상념들이 파고들어 마음을 심난하게 하는지.
" 아~. 이게 익어가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언젠가 아이들을 머리맡에 앉혀 놓고 하얀 새치 하나에 백원씩 용돈 주던
그 머리는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여 이제는 누가 뽑아주면 대머리될까 두렵고
손주놈들에 주는 용돈이 아까워지는 요망한 늙은이가 되어버린 듯 해
참으로 내가 나를 미워하는 생각이 드니 애꿎어 큰일입니다.
히말리아에 사는 독수리는 자신의 부리가 무디어지면 높은 바위위에 무디어진
부리를 짖 이겨 뽑아버리고 새로운 힘 있고 날카로운 부리를 만들어 낸다는데
나에게는 그럴 용기도 힘도 없으니 -.
천년을 사는 학은 자신이 내는 소리가 독수리에게 발각될까 보아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 히말리아를 넘는다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촌스럽다 해서 영숙이를 숙영이라. 영자를 자영이라
불러주기를 원했던 우리들의 고향 단짝친구 그들도 아마도 우리처럼 늙어가겠지요.
지금은 어디서 무얼 할까? 가끔씩은 생각나고 그리워지는 얼굴들입니다.
어쩌다 전화를 하면 늙은 모습들이 보기 싫으니 젊고 이뻤 던 얼굴들만 생각하며
살자고 지금껏 변하지도 않고 새침을 부리는 숙영이는 언제나 그 모습이니.
순응하면서 사는 방법을 친구가 좀 나서서 훈수한번 해 주기요.
김형~.
올해는 마음 다 버리고 맛깔나는 기차여행 한번 하입시다.
조금은 거추장스러운 거시기는(?) 데려오지 말고 우리끼리 사고한번 칩시다.
그런 패기마저 잃으면 죽은 목숨이지 어디 고거이 산목숨 이랍뎌.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봄은 한결 더 우리 곁으로 달려와 눈 깜작 할 겨를도 없이
도망감을 그동안 수천 번 속으면서 살았으면서도 또 가는 세월에 속는다는 것은
인생직무유기 아니면 자포자기 아닌가요.
모처럼 편지를 쓰려니 하고픈 생각들은 어디로 도망가 저당 잡힌 체
잡스러운 생각만 앞서니 백팔배에 비천녀만 보이는 듯 해
그 실망 또한 크옵니다.
창밖으로 비치는 천상으로 향하는 붉은 십자가는 자애와 용서를,
구름 머무는 산사의 북소리는 자비와 깨달음을 일깨워 주네요.
목어는 깨달음의 정진을.
풍경은 새들을 깨우고
종소리는 온 세상을 일깨웁니다.
묵언패 목에 걸고 벽면수도 하는 노스님의 그림자는 미동도 없습니다.
새벽기도 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가로등에 길게 흔적을 남깁니다.
사람모이는 곳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우리 거시기를 포함한 자식들은
날 어린애(?)취급하니 참으로 원통하고 서럽습니다.
신나는 반항 한번 하입시다.
어린 시절 참외서리 해본 경험을 바탕삼아 신나게 발가벗고 콩밭에
뒹굴어 봅시다. ㅎ ㅎ ㅎ ~~^*^
오늘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이렇게 밤새워 글을 쓰는 내 건강에 감사하고.
이 글을 읽어줄 친구가 있음에 감사합니다.
날이 밝으면 그때 그 집 나팔바지 휘날리던 그 집으로 나오기요.
비오는 날엔 증약막걸리에 피자보단 푸짐한 해묵은 김치 부칭게~~.
화장 덧칠한 우리또래 주모 오마담의 궁뎅이가 아직도 이뻐요.
오늘의 말 안주는 니가 아나 내가 아나 "물레방아 도는 내력"입니다.
날마다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생산하소서.
2020년 2월 12일 새벽
첫댓글 지난 돌림병이 극성을 부리던 그때 친구에게
보낸 해묵은 편지입니다.
덤으로 사는 노인의 말장난이라 생각하시고
읽어주심 감사하겠습니다.
비록,
김형이라고 일컬어 보는 분에게
보낸 편지이긴 합니다만,
봄을 부르는 비와
빗소리와의 대화이네요.
사람들과의 대화는 낮에 필요하고,
밤에는 특히 빗소리와의 대화도 필요합니다.
혼자서 중얼거릴 수 없으니까요.
마음 속에,
살아있는 나와의 대화 상대 김형이
계심은 행복합니다.
제주도 민요,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이 보고파 운다, ^^
꽃님^*^* 늘 허기져요. 하고픈일도 많은데
해보고 싶은 일도 많은데 ~. 많은데~.
그 다음은 말할 수 없어요. ㅎㅎㅎ
감사합니다.
그때 나팔바지 휘날리던 그 집이
어뎁니까?
알면 날 밝아지면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습니다. ㅎ
^*^~ 역전 굴 다리 지나 미나리깡을 끼고돌면
옴팡집이 나와요, 그 집이에요. 오마담한테 이야기 하시면
금방 연락와요.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김형을 부르는 편지.
초의 님의 시원시원한 필력에
끌려 오수에 살짝 졸립던 눈이 화들짝
뜨이네요.ㅎㅎ
맛깔스런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졸필을 아껴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건강이 쵝오래요. 건강돌보시고
날마다 행복하세요.
5년전 2월 이맘때쯤 김형과 일상탈출은 감행하셨나요?
아니면...5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과
행동은 따로국밥이신가요?
글 참 잘 쓰시네요.
진솔하고 수려한 글솜씨에 새삼 감탄했어요.
몇번인가 잠행속에 감행 했음을 고백합니다.
밤 마지막 열차를 타면 우리 또래 분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분들과 바로 형 동생이 되어
즐거운 시간속에 여행을 한답니다.
어쩌다 막내가 되면 심부름은 내가 도맡아 하니
그 또한 즐거움 아닌가요?
오늘도 행복하기요. 그리고 늘 건강하세요.
벌써 5년이 흐른 편지지만 요새글처럼 재밌고 한편 슬픔이 드러납니다. 건강하시고 열심히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고져 이몸 성할때 천국다음 대한민국을 두루두루
가고싶어요. 언덕저편 남쪽 양지바른 곳에는
얼음새꽃(복수초)이 고개를 내밀거에요.
고놈의 이쁜 얼굴을 보러 갑니다.
늘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한편의 서정시를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마음의시를 나눠주셔서요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봄아 오는 길목 성황당 고개마루 넘어오니
봄 마중이나 가볼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건강하시고 늘 핫팅하세요.
이렇게 멋진 글을 지나칠 뻔 했습니다.
이런 편지 받아 보고 싶습니다.
너와 내가 공유했던 세월이 흉물 없고
고운 추억이고, 또 용기 있을 때 새로운 추억을 도모 해 볼 수 있는
친구의 편지가 부럽습니다.
깔끔, 유머, 재치, 친구와 만 나눌 수 있는 농 익은 대화까지...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철 지난 오이 꼭지가 쓴맛이 납니다.
약은 쓰다 했으니 추억은 우리 같은 어르신이라는
신의 반열에 든 사람들에겐 추억은 더 없는 보석 같은 거지요.
오늘도 감추어둔 나만의 보석을 감상하면서 그때를
생각합니다.
ㅎㅎ ㅎ 오늘도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