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의 팔순 감사미사에 다녀왔습니다. 신부님과는 23년 전에 인연이 있었습니다. 수녀님과 함께하고 싶었는데 본당의 여건상 수녀님을 모시기 어려웠습니다. 꽃동네 오웅진 신부님께 꽃동네의 수녀님을 파견해 주실 수 있는지 청하였고, 오웅진 신부님은 기꺼이 2명의 수녀님을 파견해 주었습니다. 수녀님들은 꽃동네 수도회의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늘 겸손한 자세로 신자들을 대하였고, 본당의 어려운 일들은 솔선해서 하는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주일미사가 끝나면 성당에서 남은 주보를 정리하였고, 화장실 청소를 하였습니다. 예비자 교리, 가정방문, 봉성체에 함께 해 주었습니다. 제가 휴가를 가면 공소예절을 해 주었습니다. 수녀님은 김수환 추기경님께 예쁜 손 편지를 보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기꺼이 ‘대림특강’을 해 주셨습니다. 수녀님의 예쁜 손 편지가 한 몫을 했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에서 가장 규모가 작았던 성당에 대한 김수환 추기경님의 배려가 있었습니다. 저는 사제생활 32년 중에 가장 행복했고, 보람 있었던 시간을 수녀님들과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오웅진 신부님께서 뉴욕에 오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팔순 감사미사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인연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신부님의 팔순 감사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23년이 지났지만 신부님은 여전히 건강하였습니다. 3시간 미사에 2시간 넘는 강론을 하였는데 하나도 지친 모습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면, 내어주면 나머지는 하느님께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가슴에 남았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충실하게 하는 사람에게 볼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이제 막 서품을 받은 새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평생 성무일도를 하였습니다. 나는 매일미사를 한 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도 그렇게 하세요.” 신부님은 새 사제에게 ‘강복’을 청하였고 새 사제는 신부님에게 ‘첫 강복’을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하느님과 함께 했기에 행복하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도 행복했고, 지금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21세기는 ‘융합의 시대, 영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늘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성자에게 모든 권한을 주셨고, 성자는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였고, 성령께서는 교회를 통하여 은사를 주시는 것처럼 신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친교를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고독사, 저출산, 유산’과 같은 문제는 관계의 단절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꽃동네가 추구하는 영성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관계’의 회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60세가 되는 생일에는 노숙자 60명을 모시고 식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70세가 되는 생일에는 노숙자 700명을 모시고 소풍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80회 생일에는 한국에서 멀리 미국까지 와서 ‘영성센터’ 건립을 위한 모금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독한 사람들을 위해서 평생 일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모든 것들을 채워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신부님은 인간에게 있는 3가지 욕구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소유욕, 지배욕, 사랑의 욕구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구는 마치 바닷물을 마시는 것 같아서 가지면 가실수록 더욱 큰 욕망이 생긴다고 하였습니다. 지배에 대한 욕구는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욕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소유와 지배는 문화와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지만, 소유와 지배는 전쟁과 폭력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후위기, 자연파괴, 생물의 멸종은 지배와 소유의 욕망에서 비롯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의 욕구는 하느님께로부터 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은 온전히 내어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체와 성혈’의 모습으로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랑에서 희망의 꽃이 핀다고 하였습니다.
3시간의 미사와 2시간이 넘는 강론이 자칫 힘들 수도 있었지만 제게는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았습니다. 신부님은 ‘정의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강론을 마무리 하였습니다. “정의는 사랑을 포용할 수 없지만 사랑은 정의를 포용합니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상황에서는 억울하고, 분노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정의를 실현하였을 때라도 불안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사랑하면 억울함도 사라지게 됩니다. 사랑하면 불안감도 사라지게 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오웅진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따르고 있었습니다.
첫댓글 오웅진 신부님이 벌써 팔순이 되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