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순은 어떤 시대였나
지금도 태평성대를 이르는 관용구로 요순시대가 쓰이는데, 중국 고대 철학을 배우며 요순이 자주 언급되어 탐구해봤다. 강의 시간에 요순시대가 실제로는 평화롭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들었는데, 자세히 알고 싶어 찾아봤다.
요순은 요임금과 순임금을 통틀어 일컽는 용어로, 이 둘은 상고시대에 군림한 군주이다. 정체가 불분명하고 기록이 미비하여 신화 혹은 전설로 치부되기도 한다. 요임금이 퇴위할 때, 자질을 갖춘 사람에게 왕위를 넘겨야 옳다고 생각하여 덕목이 뛰어나나, 혈연관계는 아니던 순임금에게 왕위를 양도했다. 혈연이 없는 인물에게 왕위를 이양하는 행위를 선양이라 칭하는데, 후대에도 모범적인 선양으로 자주 언급된다. 선양을 통해 연속적으로 집권한 요임금과 순임금은 이상적인 통치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이상이 <사기>등 역사서에 저술된 공통적인 내용이다. 유가에서는 요순의 선양과 덕치를 민본주의적 가치관에 부합하는 이상향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유가에 의해 미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인이면서도 중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대만의 작가 보양이 쓴 <제왕지사>는 요순시대가 유가에 의해 미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유가에서 모범으로 칭송받는 선양이 사실은 정치 권력간 암투의 결과이며, 경쟁에서 패배한 요가 퇴위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또, 순이 요를 몰아내고 감금했다는 기록도 제시하며 요순의 허구성에 힘을 싣는다. 보양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유가는 앞서 언급한 유가적 이상과 부합하지 않는 부적절한 기록을 무시하고, 유가적 면모만을 선택적으로 신격화하여 요순이 태평성대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춘추전국시대에도 유가를 제외한 학파에서 요순시대를 비판하기도 했다. 한비자가 그 사례이다. 한비자는 요와 순이 모두 이상적인 군주였다면, 둘이 재위하는 기간이 겹치는 기간은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가 바로 모순이다. 우리에게 모순은 고사보다, 논리적으로 상충하는 명제 따위를 뜻하는 말로 익숙하다. 모순이 품은 고사는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를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행인이 그들에게 서로의 창과 방패를 겨루면 어떻게 되는지 물으니 상인은 대답할 수 없었다. 이는 모든 것을 뚫는 창과 모든 것을 막는 방패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인데, 한비자에게 요와 순은 이와 같다는 것이다. 요와 순이 모두 이상적인 군주였다면, 둘이 공존한 기간은 설명할 수 없다는 논리다.
이처럼 요순은 그 실체가 불분명하지만, 동양철학에서 언급되는 빈도가 높고 현대에도 전해진다는 점에서 심층적으로 탐구할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요순을 미화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드는데, 이에 관해서는 더 공부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참고문헌
<제왕지사>, 보양
첫댓글 제우스는 실존 인물이 아닙니다. 비교적 최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부처와 예수도 실존 인물이라는 설과 실존 인물에 여러 가지가 덧붙여져 이해된 인물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종교인에게는 실존하는 인물이겠지만, 역사학자 등 인문학자에게는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요와 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우스보다는 부처 또는 예수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실존 인물이 있었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어떤 행위와 관념들은 후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태평성대라고 하는 것은 신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관념입니다. 그래서 신화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관념이라고들 말합니다. 시원이 지금보다는 덜 타락하고, 순수했다고 생각하는 역사관념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신화적 관념들을 통해서 우리들의 가치가 투사되고, 강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요순시대가 논리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지금 전하는 것과 같지는 않다고 해도, 그것은 그것으로서의 존재와 의미를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