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에서 주장하는 무위
도덕경 발표를 준비하며 노자가 말하는 무위에 의문이 들었다. 인식할 때 가치를 부여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무위를 이해했는데, 동서양을 통틀어 주류 철학에서는 이와 같은 관점이 흔치 않다. 보통 철학은 도덕 원칙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등, 방향성이 분명하다. 그러나 노자는 이와 같은 것을 인위로 여기고, 인위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무위를 주장했다. 그렇다면 사물을 분별하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는 인간은 수동적인 기계와 다르지 않다. 순리와 의지는 상충한다. 전통적으로 인간과 사물을 구분할 때 자유의지를 기준으로 삼는데, 의지 없는 인간을 지향한다면 노자가 주장하는 이상적 인간상은 사물과 다를 바 없어진다. 이런 점에서 노자의 사상이 다소 허무주의적으로 느껴졌다.
이러한 의문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도덕경을 읽으면 필연적으로 생기는지, 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열띤 논의가 있었다. 도가가 유가를 비판하는 내용은 이해하는데, 비판에 대안이 없다는 점이 주된 논점이었다. 개인적으로 도덕경은 철저히 유가를 비판하는 글이고, 비판에 상응하는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유가보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 후, 강의에서 노자가 비주류 사상으로써 도가를 확장할 의도로 구체적인 지향을 설정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다른 허무주의적인 사상과 비교할 때, 도가는 철학사적 중요도가 지나치게 크다. 비주류 사상으로써 수용성이 높아졌다 해도, 핵심적인 가치관이 없음을 고려하면 동양철학에서 도가는 과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서양철학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소피스트들이 철학자 취급을 받지 못하는 점과 비교하면 부당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유가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지향을 제시한 수많은 사상가가 도가에 비해 영향력이 미미하기에 납득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의문이 지나치게 서양 중심적인 사고에서 발생했다는 일종의 성찰도 했다. 도가를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가 인간과 사물을 분리하여 인간과 사물의 차이를 찾는 이성 중심의 사고가 가치관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현대 과학이 밝혀낸 바는 도가의 사상과 유사점이 꽤나 있지만 말이다. 생물학에서 유전자 분석으로 동물과 인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거나, 뇌과학에서 실험을 통해 자유의지가 허구라는 점을 발견하는 등, 노자가 선지자로 느껴질 정도이다.
그럼에도, 노자가 주장한 무위를 수용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아직 분별해야 되는 모르는 것이 많고, 인간과 사물이 다르지 않더라도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노자가 주는 교훈은, 인간과 사물을 지나치게 구별하여 서로 같은 세상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는 것과 인간으로서 해야 한다고 믿는 일이 과연 옳은지 재고해보라는 것이다. 강의에서 도가는 수용 방식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인 것 같다. 사상적 핵심이 모호해도, 사상적 시사점은 분명한 듯하다.
참고문헌
<도덕경>, 노자. 현대지성
첫댓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은 철학 관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류적 사고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객관"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존재하는 그것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느냐를 묻는 것이 인식론이고, 그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존재하느냐를 묻는 것이 존재론, 그것이 어떤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묻는 것이 가치론이기 때문입니다. 도덕 원칙이나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은 존재론과 인식론을 통해서 파악된 대상 또는 주체가 어떤 관계 속에서 존재해가느냐를 보면서,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 어떤 방향성과 원칙에 따라야 하는 것이냐를 묻는 것이므로 가치론에 해당됩니다. 도가는 이 가치론의 출발지점을 문제 삼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관점에서 대상을 파악할 수밖에 없으므로 인식의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존재하고 인식하면서 살아갑니다. 따라서 이 둘이 마주친다고 할 때, 어떤 것이 우선되어야 하는지에 있어서 도가는 사물과 내가 존재하는 본래적인 상태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