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2편(위정) 11장
子曰(자왈)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이면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니라
공자가 말했다. “옛 것을 공부하고 배운 바를 익혀 이로써 새로운 것을 알면 곧 스승이 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발전’과 ‘진보’에 있어서 예전의 것은 일종의 방해물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인류가 밟아온 발자취를 쫒다보면, 새로운 기술 및 제도 등을 도입할 때, 이전의 사상이나 제도가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나라와 같이 아시아권에 있는 나라들이 서구의 나라보다 늦게 근대화에 접어든 것, 그리고 그로인해 여러 수난을 겪은 것은 바로 ‘옛 것에만 머문 나머지 새로운 것들을 배척한 것’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것을 빠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했다.
현대에서도 발 빠르게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자세는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업무에서도 효율적이고 빠른 일처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삶에 있어서 많은 혜택은 가져다주었다. ‘빠르게 변해가는 사회 속에서 혼자만 우뚝 멈춘다면, 경쟁에서 떨어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태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강의 시간에 이와 관련된 주제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에 대해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예전의 사상이나 제도들이 새로운 기술과 제도를 도입하는 것에서 일종의 제재를 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제재가 반드시 불합리한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 예를 들어 배아 및 개체복제, 유전자 조작기술, 신무기 개발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위험할 수 있다.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러한 물음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예전의 것이 발전에 있어서 정말로 방해물로서만 작용하는가? 새로운 것이 반드시 우리에게 발전을 가져다주는가? 그렇다면 새로운 것은 좋은 것이고, 옛 것은 나쁜 것인가?
어쩌면 예전의 것들은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그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반드시 옛것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새로운 것들로 생기는 문제들을 보았을 때, 반드시 새로운 것들이 좋다고 볼 수만은 없다. 신기술로 인해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치명적인 문제가 들이닥친다면, 이것이 과연 인류에게 발전만을 가져다주는 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진화된다기보다는,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수정을 거쳐 나온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판적인 사고라 볼 수 있다. 새로운 기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그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목소리도 같이 들어야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를 단지 보수적인 것이라고 취급해서는 안 되며, 옛 것들을 통해 주장을 펼친다고 해서 무시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발전은 결코 과거와의 단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옛 것을 뒷받침해서 축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나는 공자의 말처럼, 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첫댓글 역사변증법적 논리에서 본다면 전통은 正, 그것에 이의제기하는 것이 反입니다. 따라서 진보가 되었건, 퇴보가 되었건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성은 앞선 세대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反이 꼭 그대로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이라고 하는 것이 반의 추동에 의해 변화하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가 완전히 변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반의 이의제기를 비판하고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 반이 아닌 새로운 合으로 귀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세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근대가 온전히 구현되지는 않은 것이고 그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근대 이후라는 새로운 합이 등장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합은 주류가 되면서 정이 되고, 다시 이것에 대한 반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합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지요. 헤겔의 역사변증법적 논리에 따른다고 한다면 인류의 지성사는 이렇게 발전 전개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근대 시기에 비판했던 유가가 공자와 맹자 시절 그대로의 것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