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에 관한 말씀이기에... 한가지 더 많은 이들의 진리에대한 오해를 함께 생각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의견을 밝힙니다.. 이 할례문제는 초대교회에도 문제가 심각했던 사안이였기도 합니다.. 바울이 영안에서 중재자가 되어 나무라기도하고 진리의 말씀으로 가르치기도 했었습니다.. 더불어 바울은 할례부분을 말하면... 율법전체를 동일시 여기기도 했습니다.. 할례를 받는 자는 율법전체도 지켜야 된다는 말씀이였습니다.. 왜 이렇게 증거 했을까요? 우리는 말씀의 껍데기만 가지고 의문으로만 봐선 않됩니다.. 복음이라할찌라도 복음의 껍데기는 의문으로 구성됩니다.. 그 의문의 속생명이 영이요 생명인 것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의 그림자요.. 더더욱 율법의 모든 규례와 모든 형식과 모든 절기나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참형상으로 하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에대한 모형으로 그림자로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림자요 모형이라는 것을 우리는 먼저 이해하셔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대충 말로만 그림자요 모형이요하면... 율법이나 본문에 내용인 할례도 절대 풀리지가 않습니다.. 할례도 모형과 그림자이기에 모형과 그림자에대한 확실한 깨달음위에서 봐야 되지.. 이른 근간없이는 결국 또다른 모형과 그림자 사상에 갇히게 될 수가 있습니다..
구약의 안식일을 봅시다.. 안식일도 누구를 막론하고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면 다 지켜야 되는 것입니다.. 이건 모든 율법이 마찬가지입니다.. 안식일날 가령 일을 했다면... 그는 무론대소하고 돌로쳐 죽이도록 했습니다.. 그가 죽어야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안식을 범했기때문입니다.. 자~~ 그럼... 안식일이 참일까요? 그림자일까요? 예수님당시에 바리새인등등이 예수님을 안식일을 범하는 자로 정죄하는 면이 복음서에 상당히 많이 나옵니다.. 주님이 뭐라 했을까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또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주신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이해되실까요....
에덴동산은 영원한 안식이셨습니다.. 그곳은 영원한 안식일이였습니다.. 안식을 깨뜨린건 사람이였고 그의 범죄였습니다.. 그래서 안식의 처소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안식일은 날짜개념이 아니라... 진리개념입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의 안식은 깨어졌으며.. 하나님은 일하셔야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일을 마무리하고 안식을 회복하시기 위해 누가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오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은 예수님의 그림자로써.. 또한 그리스도안에서 구원받는 우리의 그림자로써.. 주어진 것이지.. 그것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육체의 연습일뿐이며 육은 무익함이니라일뿐입니다..
이제 구약의 안식일의 모형은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심으로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그 참형상이 드러난 것이며.. 그림자인 안식일은 실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더이상 모형으로써의 안식일을 따르는 것은 그림자 숭배.. 모형 숭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광야에서의 놋뱀은 하나님의 생명이요 영이셨지만... 그 하나님의 명령으로 만들어진 놋뱀이 가나안에선 우상이 된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할례는 어떠한가요? 이스라엘이 자신들을 위해 안식일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점은 인간들이 쉬는날이 없어 피곤해서 죽을까봐 배려해서 안식일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육적 쉼이 아닌 영적 쉼을 알려야하셨기에.. 육적인 안식일을 두심으로써 영적인 안식을 알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처럼.. 할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육신의 유익을 위해서 유대인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표식을 위해 하나님이 혹 헛갈릴까봐 두려워 사람이 마치 자신의 소의 등이나 귀에 도장을 박듯 그런 표식을 하신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안식일의 그림자가 주님에의해 이루어질 영적 안식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과 몽학선생으로써의 기능으로 주신것
제 8일째 할례도 또한 예수께서 그 할례의 참형상을 이렇게 이런식으로 이루실 것이요 육적 표피를 잘라내는 할례가 아닌... 영적인 실제의 할례를 너희에게 해주실 것이다는... 혹 그런 실제의 참형상의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그림자였던 것입니다.. 이는 주님이 그 모형의 의미를 이루실때까지 육체의 예법으로만 주셨을 뿐입니다.. 사람의 관점.. 육신의 관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관점이요 주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으로 봐야 됩니다..
주님은 과연 이 구약의 할례의 참실제를 이루셨습니다.. 구약의 할례가 상징했던 모형으로 제시했던 그림자로 표식했던 그것을 이루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초실절 부활이십니다.. 그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다새 또 여섯 그리고 제7일째를 지나시고... 제 8일째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가리켜 성경은 맏아들로 증거하고 계십니다.. 똫한 베드로서는 무엇이라 증거합니까? 밷전1:3 - 3.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거듭남의 모태로 사도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바울이 증거한 할례는 이면에 할 것이니라는 그것입니다.. 다시말씀드리지만.. 육적할례는 모형이요 그림자이지.. 이것이 모형이요 그림자라면... 반드시 그 참형상과 실제가 따로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의 참형상이 세례라고요? 할례를 그림자로 주신 것이 장차 참형상으로 물로 뿌리는 세례를 가르쳐 주기위해 하신 것이라고요? 정말 우습고 스글픈 해석이며 이해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하례의 모형은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어떠한 결과를 상징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참형상으로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지...
그것이... 물로 뿌리는 혹 물에 잠기게하는 그 규례적 행위의 어떠한 이것을 상징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참으로 어슬픈 가여운 해석에 불과합니다.. 또한 이것을 달리 말하면.. 하나의 모형을 폐기하고... 또다른 모형을 세우는 바울의 갈라디아서의 그런 비진리의 교훈을 모양만 바꾸어 다시 모형을 섬기는 것으로 변질시키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암쪼록.. 할례에대한 부분을 좀더 깊이 묵상하며... 좀더 깊이 그 참 생명의 진리를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이런식으로 태클을 거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변두리가지고 그러지 맙시다.. 님께서 그리 생각지 않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불과 몇백년전만해도.. 이 세례의 개념을 할례의 개념으로 가져갔기에.. 종교개혁가들도 참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답니다.. 카톨릭은 말할 것도 없구요.. 전 지금 그때를 이야기하자는건 아니고.. 진리에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근데 변두리가지고 이런 식이라면.. 암튼 할말이 없네요.. 그리고 이 글은 아래 피오르님의 할례에대한 글에대한 답글로 올려진 것입니다.. 할례가 유아세례로 동일시하는 오류를 옳지 않다고 직접적으론 반론한 댓글입니다..
그러나 카톨리즘과 초창기 종교개혁가들은 할례의 개념과 유아세례의 개념을 거의 동일개념으로 가져갔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은 자들을... 유아를 지옥에 보내는 마녀라하여... 그들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살인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도와는 다르지만... 암쪼록.. 다시 한번 이부분에대한 반성과 진리에대한 정확한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기에... 글을 반론하여 올린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밥티조는 관점과 의미가 정녕 중요한것이지.. 형식은 부차요 본질도 아닙니다.. 동일한 밥티조라도 어떤 관을 가지느냐에따라 그 끝은 하늘과 땅차이가 됩니다..
정말 태클 거는것 아닙니다!!~세례와 할례가 그런식으로 연결 된다는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제가 그런방향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런역사가 있어서 오늘까지 이어져 왔는데 그것을 몰랐던 모양입니다!!~저는 단지 세례나 침례의식을 `입학식`정도로만 생각했지,.그렇게 깊은 내막이 있는줄 몰랐습니다!!~우리가 학교에 가려면 `입학식`하잖아요!!!입학식도 없이 그냥 학교에 다닐수는 없잖아요!!~할례는 이스라엘민족임을 구별하려는 표지로만 알고 있구요!!~~그리고요!!~몇번씩 강조하는 레마님의 특징이 있는데,..참된 그리스도인을 죽였다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싶네요!!~
신약성경에서 아주 큰 흐름이라는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에대한 말씀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요한복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히 생명장으로 불릴만큼 요한복음 전체가 이 생명에대해 구구절절이 소개하고 있지 않나 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어떤 일을하시며 어떻게 행하시며 어떤식으로 역사하며 나타나는지... 나타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모든 서신은... 이 생명이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거시기인지에대한 다양한 각도로 실상의 생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나를 사는 삶이 아니요.. 그분의 생명이 우리안에서 우리를 사는 삶이며... 달리말하면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사는 삶입니다.. 이 부분에대해선 다음 언젠가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봅니다만... 암쪼록 질문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소유한 생명은 동일하며.. 하늘로부터 나리우신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생명을 가진 자는 비록 약간의 차이나 이해의 몰함으로 인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논쟁을 할수도 있지만... 사람의 목숨을 걸만큼.. 버리게 할만큼 큰 문제의 차이... 혹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원에대한 부분에 대해선... 몰이해가 아닌
부족함이 아닌... 전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어떠하심의 은혜를 파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며..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자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분께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지도해주실 것입니다.. 유아세례의 문제로 단순한 논쟁이 아닌... 사람을 살인할정도의 행동이라면.. 바른 영이라 볼수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또한 바른 생명으로도 볼수가 없습니다. 정말 둔해서 그렇든지 아님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론 서원조로 바뀌고 야베스님처럼 그런 약한 개념이라면 저도 문제를 않삼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질 못했고.. 지금도
카톨릭의 원론적 교리는 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걸며 유아세례도 그들의 세례관념에따라 구원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권력을 잡지 못해서 살육은 없지만... 혹 나중 세계의 권력을 잡게된다면... 감추인 발톱을 다시 뽑아내리라 봅니다.. 그런일이 어찌 가능할까 싶을지 모르지만... 역사가 그랬었고.. 카톨리즘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게 없습니다.. 다만,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잠잠할 뿐입니다. 제 대답이 헛돌은 느낌이 드는데... 대강 그런 의미랍니다...
세례의식이 구원받은자의 표식처럼 보일수는 있으나,.그것이 구원받은자의 증거라고 말할수는 없다고 봅니다!!~그렇다고 세례의식이 구원받은자의 표식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우리가 구원받은자로서 해야할 의식이나 모습이 있다면 해야되는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레마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납득하며 이해 합니다!!~그 세례의식이 구원케 하는것이 아니라,..말씀으로 인하여,.다시말하면 하나님이 구원케 하시는 그 능력(은혜)으로 인하여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요즘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는 없는걸로 압니다!!~
종교개혁가들도 그랬습니다.. 카톨릭만 그랬던게 아니였습니다.. 그런 영적 무지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카톨리즘을 제외하곤 "밥티조"에대한 의미가 바뀌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 루터교 감리교 순복음 할것없이 카톨리즘과 종교 일치운동이 활발한 상황입니다.. 교리라는건 얼마든 강자의 손에따라 좌지우지되는게 역사였습니다.. 말씀논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로 교리가 세워집니다.. 보십시오.. 저 에큐메니칼은 필연코 성공합니다.. 가라지를 단으로 완전히 묶어야 주님이 오실수 있기에... 완전일치된 후부턴 완전 180도 태도가 돌변하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자들이 말끝마다 내세우는게 선한행위 그리고 정의 더나아가서는 종교적 규율입니다.. 그러나, 그 입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성령은 없으면서 입만 화려하게 입히는 자들이지요.. 참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사는 자이지 선행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이 아닌 어떤 선행도 의로움도 모두 거짓이며 주님은 그런 선행과 의를 가리켜 자기의 의라고 로마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 과 글로는 얼마든 현란한 말을 할 수 있어도 참 그리스도인은 말의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속의 영을 보는 자들입니다..
종교통합(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서는 경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어떤 형태이던 기독교간의 연합내지는 화합이 있어야 된다고 보고요..카톨릭이 성경하고는 멀어졌지만,..그들도 우리처럼 예수 믿는다 하니,.주시 할수 밖에 없지요!!~아마도 제가 통합측 교인이라 이런 시각을 깆는가 봅니다!!~~제가 여기까지 살아 오면서 한가지 깨달았던 것은 흑백론(하나님처럼 판단 하는것)으로 기울어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조심을 하지요!!~예를 들면 카톨릭이 성경하고는 멀어졌지만,..그렇다면 그동안 카톨릭을 여태까지 믿었던 사람들은 다 지옥 가느냐?...이렇게 묻지 말라는 겁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답을 낼수없다는 것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죠!!~레마님도 다 좋은데 어떤 결론에 쉽게 이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교회역사를 들여다 보면 온갖일이 다 있었지요!!~그래도 그안에 교회가 있었잖아요!!~혹시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아시나요!!~우리의 눈에는 다 교회인것 같으나 하나님만이 아시는 교회가 있다구 하잖아요!!~구별은 있을수 있으나 판단(정죄)은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그렇다고 카톨릭을 옹호하는것은 아니구요!!~에큐메니칼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입장임을 밝힙니다!!~
카톨릭내에서도... 구원받은 분들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계시록에 일곱교회가 나오는데... 주님은 각교회에 마다 칭찬과 책망을 하시는데... 어떤 무리의 교회는 칭찬이 다수요 책망이 소수이고... 어떤 무리의 교회는 책망이 다수요 칭찬이 소수인 곳도 있었지요..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카톨릭이라는 단체의 진리관은 분명 적그리스도교리이고.. 그 구원관으론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체적 무리가 받는 관점이 아니요 각개인의 어떠함에따라 받는 문제이기에... 그 속에서도 참도를 발견한 이들도 있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저는 카톨릭에 속한 개인이나 인격을 뭐라 말하는 것
은 아니구요.. 그 단체의 진리관이나 교리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장로교라고 다 칼빈니즘을 추종하는건 아니고.. 감리교라고 다 웨슬리즘을 따르는건 아니거든요.. 각자의 신앙은 각 개인의 진리관에따라 다르리라 봅니다... 어떤분도 장로교라지만... 그의 진리관은 카톨리즘이쟎겠어요? 이처럼.. 카톨릭에 있으신 분들중에도 바른 복음관을 가진 분들도 있으리라 저는 봅니다.. 말씀안에서 복음안에서 하나되는 것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이라는 목적을 위한 하나는 결코 바람직하다 볼순 없을것입니다..
바벨탑사건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지만... 흩어짐을 면하자 하던 자들을... 주님은 깨어버리셨지요..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을 따라 쌓는 선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인정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가증스럽게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성경이 로마서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겉으로 보는 의미와 속내면을 알고 보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달라집니다.. 암튼.. 열심을 다해 충성하고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열심을 다해 선을 쌓은 자중에서도... 마지막날 외면받는 자들이 있으며... 오히려 가증스럽게 보는 자들도 있다는...........
제가 알기로는 연합활동(에큐메니칼 운동)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일반 신자들은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겁니다!!~그러한 운동이 일반 신자에게 까지 영향(성경적으로 아니다 싶을때....)을 미친다면,.그냥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는 않을겁니다!!~지금도 엄청 경계하고 있잖아요!!~~한국의 장로교 만이라도 하나가 되는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데,.그게 그렇게 쉽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요!!~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그때가서 대비하면 충분 하리라 봅니다!!~~하나 되자구 운동한다는데,.그것마저 부정해서야 되겠습니까?..사람이 아무리 계획하구 실시할지라도 그 역사를 움직이는 그 높으신분이
지금의 종교연합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구속력을 갖는다면 참여할 자들이 거의 없겠죠.. 그리고 경계심 문제가 생기기에 없는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거의 잠식하는 순간에...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그 중간 중간에 입질하는 완충적인 작업이 있겠지요.. 갖은 미사어구를 다 써가면서.... 결국엔 에큐메니칼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이미 성경에 예정된 일입니다.. 그 수순대로 이루어지는 것 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예정되었는데.. 베드로가 막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듯... 우리는 에큐메니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작업은 예수님말씀대로...
가라지를 단으로 묶는 작업입니다.. 제자들에게 비유로 주님이 말씀하시길... 밭에 가라지가 같이 자란다했죠.. 그때 제자가 묻기를 가라지를 뽑아야 되지 않느냐 했는데.. 주님말씀이.. 마지막 추수때 분리시킨다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 가라지는 단으로 묶는다 했습니다.. 추수때는 주님의 재림때를 말합니다. 주님이 오실때가 다 되었기에... 가라지가 묶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예정된 순서며.. 오히려 이것은 말세의 징조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겐 기쁜 징조가되는 아이러니지요.. 다만, 그 가라지단에 참여하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분별이 없는 자는 분별이 없기에 그냥 따라가다 불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분별하는 자는 처음부터 아는 것이며... 비록 분별이 않된 자라할지라도.. 좀더 정확해질때.. 명확해질때라도 벗어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준비할때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에큐메니칼운동은 하나님의 대서사시에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수 없습니다.. 그 에큐메니칼이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막지 못합니다.. 그것이 나중 본모습을 보이더라도 막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예정된 것이고... 그것이 단으로 묶여야 주님이 오시기때문에.... 사람이 막을순 없습니다.. 전 이미 에큐메니칼이 성공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자는 세계도 보이고 앞으로 되어질 일까지 큰흐름은 다
봅니다.. 그것을 볼만한 눈들이 없는 이들이 많기에... 그 정체를 알려주는 것이지... 미리보고 대비하고 경계하라고 알려주는 것이지..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지 못합니다.. 그건 추숫날에 이루어져야 될 일이기때문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나중에라도... 발견하시거든.. 벗어나십시오.. 현재 장로교 일부도 기장도 감리교도 루터교 순복음교도 상당히 많은 곳이... 개별적 교회나 개인적 신앙으로써가 아니라 대세적 흐름으로 이것에 이미 오염되었거나.. 찬양하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은 더더욱 모르고.. 목회자들도 대부분 모르는듯 싶습니다.. 안다면.. 저들이 그럴수 없죠.. 모르니까 그러는것이지요.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마세요.. 교단도 교회도 교회강령도 아무도 믿지 마세요.. 우리는 오직 말씀만 제일로 여겨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 지도자나 교단지도자나 교단총회장이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인간적으론 괘씸하게 보일진 몰라도...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오직 말씀앞에만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신앙 이전에 말씀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암쪼록 거듭난 자는 기름준비해야되고... 거듭나지 못한자는 거듭나야하고... 가라지는 속히 통합해서... 주님의 재림이 이땅에 오시길 우리는 기다려야 겠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는 신앙의 기본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입니다!!~..그중에서 저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것은 성경안에 있는 `말씀`입니다!!~그 `말씀`이 저로 하여금 붙들리게도 하며 들리게도 합니다!!~쉽게 말하면 목자는 양들을 부르며 그 양들은 목자의 음성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양들이 목자의 음성에 반응하지 않는다면,.그게 어디 양이라고 하겠습니까?...십자가의 희생으로 양의 문이 되신 주님이 우리를 양의 우리 안으로 모으실것은 자명한 일이구요!!~그 예수의 음성이 여전히 우리를 그곳으로 들어가게 할것입니다!!~레마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것입니다!!~
첫댓글 할례의식이 세례의식으로 바뀐거라구요?..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입니다!!~누가 그러던가요??..
글구 밥티조의 정의가 뭡니까?....침례의식을 거치면.,..밥티조 했다구 하는 겁니까?...
이런식으로 태클을 거신다면 할말이 없습니다.. 변두리가지고 그러지 맙시다.. 님께서 그리 생각지 않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러나 불과 몇백년전만해도.. 이 세례의 개념을 할례의 개념으로 가져갔기에.. 종교개혁가들도 참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죽였답니다.. 카톨릭은 말할 것도 없구요.. 전 지금 그때를 이야기하자는건 아니고.. 진리에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자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근데 변두리가지고 이런 식이라면.. 암튼 할말이 없네요.. 그리고 이 글은 아래 피오르님의 할례에대한 글에대한 답글로 올려진 것입니다.. 할례가 유아세례로 동일시하는 오류를 옳지 않다고 직접적으론 반론한 댓글입니다..
그러나 카톨리즘과 초창기 종교개혁가들은 할례의 개념과 유아세례의 개념을 거의 동일개념으로 가져갔었습니다.. 이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은 자들을... 유아를 지옥에 보내는 마녀라하여... 그들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살인하고 핍박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도와는 다르지만... 암쪼록.. 다시 한번 이부분에대한 반성과 진리에대한 정확한 지식은 가지고 있어야 하겠기에... 글을 반론하여 올린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밥티조는 관점과 의미가 정녕 중요한것이지.. 형식은 부차요 본질도 아닙니다.. 동일한 밥티조라도 어떤 관을 가지느냐에따라 그 끝은 하늘과 땅차이가 됩니다..
정말 태클 거는것 아닙니다!!~세례와 할례가 그런식으로 연결 된다는것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제가 그런방향에 관심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그런역사가 있어서 오늘까지 이어져 왔는데 그것을 몰랐던 모양입니다!!~저는 단지 세례나 침례의식을 `입학식`정도로만 생각했지,.그렇게 깊은 내막이 있는줄 몰랐습니다!!~우리가 학교에 가려면 `입학식`하잖아요!!!입학식도 없이 그냥 학교에 다닐수는 없잖아요!!~할례는 이스라엘민족임을 구별하려는 표지로만 알고 있구요!!~~그리고요!!~몇번씩 강조하는 레마님의 특징이 있는데,..참된 그리스도인을 죽였다는 그 근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싶네요!!~
신약성경에서 아주 큰 흐름이라는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하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 생명에대한 말씀이 가장 많이 나오는 곳이 "요한복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히 생명장으로 불릴만큼 요한복음 전체가 이 생명에대해 구구절절이 소개하고 있지 않나 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이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 어떤 일을하시며 어떻게 행하시며 어떤식으로 역사하며 나타나는지... 나타내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모든 서신은... 이 생명이 우리에게 있어 어떠한 거시기인지에대한 다양한 각도로 실상의 생활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내가 나를 사는 삶이 아니요.. 그분의 생명이 우리안에서 우리를 사는 삶이며... 달리말하면 우리가 그분의 생명을 사는 삶입니다.. 이 부분에대해선 다음 언젠가 나눌 기회가 있으리라 봅니다만... 암쪼록 질문에 대한 부분을 말씀드리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소유한 생명은 동일하며.. 하늘로부터 나리우신 생명이십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생명을 가진 자는 비록 약간의 차이나 이해의 몰함으로 인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논쟁을 할수도 있지만... 사람의 목숨을 걸만큼.. 버리게 할만큼 큰 문제의 차이... 혹 그리스도의 구속과 구원에대한 부분에 대해선... 몰이해가 아닌
부족함이 아닌... 전혀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어떠하심의 은혜를 파괴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동일하며.. 우리가 정녕 하나님의 생명을 받은자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분께서 우리를 가르쳐주시고.. 지도해주실 것입니다.. 유아세례의 문제로 단순한 논쟁이 아닌... 사람을 살인할정도의 행동이라면.. 바른 영이라 볼수 없으리라 판단합니다.. 또한 바른 생명으로도 볼수가 없습니다. 정말 둔해서 그렇든지 아님 적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론 서원조로 바뀌고 야베스님처럼 그런 약한 개념이라면 저도 문제를 않삼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질 못했고.. 지금도
카톨릭의 원론적 교리는 세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걸며 유아세례도 그들의 세례관념에따라 구원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지금은 옛날처럼 권력을 잡지 못해서 살육은 없지만... 혹 나중 세계의 권력을 잡게된다면... 감추인 발톱을 다시 뽑아내리라 봅니다.. 그런일이 어찌 가능할까 싶을지 모르지만... 역사가 그랬었고.. 카톨리즘은 2천년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바뀐게 없습니다.. 다만,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잠잠할 뿐입니다. 제 대답이 헛돌은 느낌이 드는데... 대강 그런 의미랍니다...
세례의식이 구원받은자의 표식처럼 보일수는 있으나,.그것이 구원받은자의 증거라고 말할수는 없다고 봅니다!!~그렇다고 세례의식이 구원받은자의 표식처럼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것도 옳지 않다고 봅니다!!~~우리가 구원받은자로서 해야할 의식이나 모습이 있다면 해야되는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레마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납득하며 이해 합니다!!~그 세례의식이 구원케 하는것이 아니라,..말씀으로 인하여,.다시말하면 하나님이 구원케 하시는 그 능력(은혜)으로 인하여 ,..세례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요즘 세례를 받지 아니하면 구원이 없다고 가르치는 교회는 없는걸로 압니다!!~
세례로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면 아니 되지요!!~카톨릭이 그렇게 가르쳤다고 보시는군요!!~그러니까 종교개혁이 일어난것 아닙니까??...
종교개혁가들도 그랬습니다.. 카톨릭만 그랬던게 아니였습니다.. 그런 영적 무지 시대가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카톨리즘을 제외하곤 "밥티조"에대한 의미가 바뀌었지만....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 루터교 감리교 순복음 할것없이 카톨리즘과 종교 일치운동이 활발한 상황입니다.. 교리라는건 얼마든 강자의 손에따라 좌지우지되는게 역사였습니다.. 말씀논리가 아니라 힘의 논리로 교리가 세워집니다.. 보십시오.. 저 에큐메니칼은 필연코 성공합니다.. 가라지를 단으로 완전히 묶어야 주님이 오실수 있기에... 완전일치된 후부턴 완전 180도 태도가 돌변하게 될것입니다.. 그래서 양의 탈을 쓴 늑대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자들이 말끝마다 내세우는게 선한행위 그리고 정의 더나아가서는 종교적 규율입니다.. 그러나, 그 입에는 독사의 독이 가득하고.. 성령은 없으면서 입만 화려하게 입히는 자들이지요.. 참 그리스도인은 은혜로 사는 자이지 선행으로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주님의 영이 아닌 어떤 선행도 의로움도 모두 거짓이며 주님은 그런 선행과 의를 가리켜 자기의 의라고 로마서가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 과 글로는 얼마든 현란한 말을 할 수 있어도 참 그리스도인은 말의 내용을 보는 것이 아니라 말속의 영을 보는 자들입니다..
종교통합(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해서는 경계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어떤 형태이던 기독교간의 연합내지는 화합이 있어야 된다고 보고요..카톨릭이 성경하고는 멀어졌지만,..그들도 우리처럼 예수 믿는다 하니,.주시 할수 밖에 없지요!!~아마도 제가 통합측 교인이라 이런 시각을 깆는가 봅니다!!~~제가 여기까지 살아 오면서 한가지 깨달았던 것은 흑백론(하나님처럼 판단 하는것)으로 기울어지는 것에 대하여 많은 조심을 하지요!!~예를 들면 카톨릭이 성경하고는 멀어졌지만,..그렇다면 그동안 카톨릭을 여태까지 믿었던 사람들은 다 지옥 가느냐?...이렇게 묻지 말라는 겁니다!!~
어떤 문제이든지 답을 낼수없다는 것이 너무 많다라는 것이죠!!~레마님도 다 좋은데 어떤 결론에 쉽게 이르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교회역사를 들여다 보면 온갖일이 다 있었지요!!~그래도 그안에 교회가 있었잖아요!!~혹시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아시나요!!~우리의 눈에는 다 교회인것 같으나 하나님만이 아시는 교회가 있다구 하잖아요!!~구별은 있을수 있으나 판단(정죄)은 신중하게 하여야 한다고 봅니다!!~그렇다고 카톨릭을 옹호하는것은 아니구요!!~에큐메니칼에 대해서도 경계하는 입장임을 밝힙니다!!~
카톨릭내에서도... 구원받은 분들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계시록에 일곱교회가 나오는데... 주님은 각교회에 마다 칭찬과 책망을 하시는데... 어떤 무리의 교회는 칭찬이 다수요 책망이 소수이고... 어떤 무리의 교회는 책망이 다수요 칭찬이 소수인 곳도 있었지요.. 우리의 현재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카톨릭이라는 단체의 진리관은 분명 적그리스도교리이고.. 그 구원관으론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구원은 단체적 무리가 받는 관점이 아니요 각개인의 어떠함에따라 받는 문제이기에... 그 속에서도 참도를 발견한 이들도 있음은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답니다.. 저는 카톨릭에 속한 개인이나 인격을 뭐라 말하는 것
은 아니구요.. 그 단체의 진리관이나 교리적인 면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장로교라고 다 칼빈니즘을 추종하는건 아니고.. 감리교라고 다 웨슬리즘을 따르는건 아니거든요.. 각자의 신앙은 각 개인의 진리관에따라 다르리라 봅니다... 어떤분도 장로교라지만... 그의 진리관은 카톨리즘이쟎겠어요? 이처럼.. 카톨릭에 있으신 분들중에도 바른 복음관을 가진 분들도 있으리라 저는 봅니다.. 말씀안에서 복음안에서 하나되는 것은 필요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연합이라는 목적을 위한 하나는 결코 바람직하다 볼순 없을것입니다..
바벨탑사건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지만... 흩어짐을 면하자 하던 자들을... 주님은 깨어버리셨지요.. 하나님은 인간의 방법을 따라 쌓는 선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인정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도리어 가증스럽게 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성경이 로마서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겉으로 보는 의미와 속내면을 알고 보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달라집니다.. 암튼.. 열심을 다해 충성하고 열심을 다해 봉사하고 열심을 다해 선을 쌓은 자중에서도... 마지막날 외면받는 자들이 있으며... 오히려 가증스럽게 보는 자들도 있다는...........
제가 알기로는 연합활동(에큐메니칼 운동)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걸로 알고 있습니다!!~일반 신자들은 그런게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을겁니다!!~그러한 운동이 일반 신자에게 까지 영향(성경적으로 아니다 싶을때....)을 미친다면,.그냥 무방비 상태로 당하지는 않을겁니다!!~지금도 엄청 경계하고 있잖아요!!~~한국의 장로교 만이라도 하나가 되는것이 그렇게 힘이 드는데,.그게 그렇게 쉽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고요!!~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그때가서 대비하면 충분 하리라 봅니다!!~~하나 되자구 운동한다는데,.그것마저 부정해서야 되겠습니까?..사람이 아무리 계획하구 실시할지라도 그 역사를 움직이는 그 높으신분이
계시기에 그저 마음 든든 합니다!!~제가 너무 낙관적이라고 여기실지 모르겠네요!!!.실제로 그렇지도 않으면서,.글만 이렇게 쓰는지도 모르겠습니다!!~그래도 레마님의 글은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구석이 있어 좋군요!!~한가지만 빼면 100점 만점에 99점 입니다!!~
지금의 종교연합은 구속력이 없습니다.. 만일 처음부터 구속력을 갖는다면 참여할 자들이 거의 없겠죠.. 그리고 경계심 문제가 생기기에 없는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거의 잠식하는 순간에... 구속력을 갖게 됩니다.. 그 중간 중간에 입질하는 완충적인 작업이 있겠지요.. 갖은 미사어구를 다 써가면서.... 결국엔 에큐메니칼은 성공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막을 수 없습니다.. 또한 이것은 이미 성경에 예정된 일입니다.. 그 수순대로 이루어지는 것 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이 예정되었는데.. 베드로가 막는다고 될 문제가 아니듯... 우리는 에큐메니칼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작업은 예수님말씀대로...
가라지를 단으로 묶는 작업입니다.. 제자들에게 비유로 주님이 말씀하시길... 밭에 가라지가 같이 자란다했죠.. 그때 제자가 묻기를 가라지를 뽑아야 되지 않느냐 했는데.. 주님말씀이.. 마지막 추수때 분리시킨다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부분에.. 가라지는 단으로 묶는다 했습니다.. 추수때는 주님의 재림때를 말합니다. 주님이 오실때가 다 되었기에... 가라지가 묶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건 예정된 순서며.. 오히려 이것은 말세의 징조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겐 기쁜 징조가되는 아이러니지요.. 다만, 그 가라지단에 참여하는 개인의 문제입니다.. 분별이 없는 자는 분별이 없기에 그냥 따라가다 불속에 들어가는 것이고
분별하는 자는 처음부터 아는 것이며... 비록 분별이 않된 자라할지라도.. 좀더 정확해질때.. 명확해질때라도 벗어날 준비를 해야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준비할때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지만.. 에큐메니칼운동은 하나님의 대서사시에 이미 예정된 것입니다.. 아무도 막을수 없습니다.. 그 에큐메니칼이 좋게 보이든 나쁘게 보이든 막지 못합니다.. 그것이 나중 본모습을 보이더라도 막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예정된 것이고... 그것이 단으로 묶여야 주님이 오시기때문에.... 사람이 막을순 없습니다.. 전 이미 에큐메니칼이 성공하리란걸 알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는자는 세계도 보이고 앞으로 되어질 일까지 큰흐름은 다
봅니다.. 그것을 볼만한 눈들이 없는 이들이 많기에... 그 정체를 알려주는 것이지... 미리보고 대비하고 경계하라고 알려주는 것이지.. 그것을 필사적으로 막아야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지 못합니다.. 그건 추숫날에 이루어져야 될 일이기때문입니다.. 다시말하지만... 나중에라도... 발견하시거든.. 벗어나십시오.. 현재 장로교 일부도 기장도 감리교도 루터교 순복음교도 상당히 많은 곳이... 개별적 교회나 개인적 신앙으로써가 아니라 대세적 흐름으로 이것에 이미 오염되었거나.. 찬양하기도 합니다.. 일반인들은 더더욱 모르고.. 목회자들도 대부분 모르는듯 싶습니다.. 안다면.. 저들이 그럴수 없죠.. 모르니까 그러는것이지요.
사람은 아무도 믿지 마세요.. 교단도 교회도 교회강령도 아무도 믿지 마세요.. 우리는 오직 말씀만 제일로 여겨야 합니다.. 지금은 교회 지도자나 교단지도자나 교단총회장이나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있습니다.. 인간적으론 괘씸하게 보일진 몰라도...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오직 말씀앞에만 자신의 신앙을 지켜야 됩니다... 그리고 신앙 이전에 말씀의 분별이 필요합니다.. 암쪼록 거듭난 자는 기름준비해야되고... 거듭나지 못한자는 거듭나야하고... 가라지는 속히 통합해서... 주님의 재림이 이땅에 오시길 우리는 기다려야 겠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는 신앙의 기본이 있다면 그것은 `성경`입니다!!~..그중에서 저의 심금을 크게 울리는것은 성경안에 있는 `말씀`입니다!!~그 `말씀`이 저로 하여금 붙들리게도 하며 들리게도 합니다!!~쉽게 말하면 목자는 양들을 부르며 그 양들은 목자의 음성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양들이 목자의 음성에 반응하지 않는다면,.그게 어디 양이라고 하겠습니까?...십자가의 희생으로 양의 문이 되신 주님이 우리를 양의 우리 안으로 모으실것은 자명한 일이구요!!~그 예수의 음성이 여전히 우리를 그곳으로 들어가게 할것입니다!!~레마님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