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을 결정하고 개인 사정으로 업무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아 출국 한 달 전까지 출근하며 맡은 바 책임을 다했다. 일하랴 이민 준비하랴 몸도 맘도 분주하던 날들이 끝나고 벼르고 벼르던 영어 학원에 등록했다. 그저 '영어 울렁증'이라도 없애고 가면 좋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내린 결정이었다. 하지만 내 맘과 달리 오랫동안 담쌓고 지낸 영어는 호락호락하게 곁을 내주지 않고 애를 태웠다. 막상 미국 땅을 밟고 나자 정작 영어 실력이 급한 건 내가 아니라 미국 공교육의 첫 과정인 '킨더가든'에 입학할 나이가 된 딸아이였다. 얼마간이라도 '프리스쿨'에 보내야 가을 학기부터 시작될 학교생활에 대한 거부감이 줄 것 같았다. 등원 첫날, 교실 앞에서 서럽게 울며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의 손을 억지로 놓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웃으며 인사했지만 외딴섬에 아이를 혼자 두는 것 같아 돌아서서 나 또한 한참을 울었다. 다행히 적응 기간이 끝나고 재밌게 지내는 아이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한 번도 영어를 배워본 적 없는 아이는 엄마보다 씩씩하고 용감한 어린이였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진행되는 수업 진도도 곧잘 따라가고 학기 중간에 입학해 낯설 텐데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이가 즐겁게 프리스쿨에 다니는 사이, 몇 개월이 훌쩍 흘러 어느덧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하루는 수업을 마친 아이가 강당에 모여 율동과 노래를 하고 한 명씩 앞으로 나가 말하는 연습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졸업식 준비라면서 자기는 영어를 못해 '말하기'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해맑은 아이는 사실 그대로를 말한 것뿐이지만 쓴 알약이 목구멍에 걸린 듯 그 말을 삼키지 못한 나는 며칠 동안 속병을 앓았다. '졸업식 날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어쩌지?' 아이가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래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떠듬거리는 영어로 담임교사에게 졸업식 때 부르는 노래를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노래 제목과 가사가 적힌 종이 세 장을 흔쾌히 건넸다.
그러곤 그날 저녁,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응원과 함께 노래 세 곡의 음성 파일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주었다. 직접 노래 파일까지 찾아주는 세심한 마음 씀씀이가 어찌나 감사하던지! '우리 아이가 교실에서 늘 지금 같은 따스한 보살핌을 받아왔겠구나'라는 생각에 그동안의 불안과 걱정이 가셨다. 그렇게 한결 편해진 맘으로 아이와 함께 열심히 노래 연습을 했다.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낯선 환경 속에서 담임교사의 사랑과 관심이 아이에게 잘 전해졌다는 건 졸업식에서도 드러났다. 금발 머리, 파란 눈을 가진 친구들 틈에서도 아이는 내내 당당하고 편안한 표정이었다. 완벽히 노래를 따라 부르지는 못했지만 귀여운 몸짓으로 율동하며 즐기는 모습이 참으로 기특했다. 졸업장을 받는 마지막 순서까지 밝은 기분을 잃지 않고 한 시간 남짓의 행사를 무사히 마친 아이. 그날의 졸업식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믿고 격려하며 준비한 교사의 헌신이 빛난 자리였다. 한국에서 유치원에 다닐 때 내 아이는 친구와 선생님에게 못 하는 말이 없는 수다쟁이였다. 쉼 없이 종알대기를 좋아했던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지내느라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런데도 아이는 마지막 등원 날이 다가오자 “시간이 유치원 처음 간 날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하며 아쉬워했다. 그만큼 그곳에서의 나날이 행복했다는 뜻이겠지? 3개월 남짓의 짧은 기간 동안 아이가 받은 사랑을 떠올려본다. 아침에는 반가운 맘에 신나게 손 흔들며 인사하고, 헤어질 때는 거듭 포옹하며 맘껏 우정을 표현해 준 친구들. 마지막 날, 아이를 꼭 안아주며 진심으로 작별을 슬퍼하던 담임교사. 그녀의 교실 안에선 인종이나 언어가 중요치 않았다. 서로를 보듬는 데 누가 무슨 말을 쓰는지, 피부색이 어떤지는 걸림돌이 될 수 없었다. 순수한 영혼들은 영어 실력보다 중요한 것은 서로의 가슴을 타고 전해지는 '마음의 언어'임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아이도 나도 영어를 못해 답답할 때가 많다. 아이가 친구들과 계속 잘 지내도록 관계를 유지해주고 싶은 바람도 언어의 한계로 포기하고 말았다. 다른 친구들은 어느 학교에 입학하는지, 방학 계획은 어떻게 세웠는지 등 수많은 궁금증을 접어 둔 채로 헤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서글펐다. 언젠가는 영어로 편히 말할 날이 오리란 희망으로 굳은 머리를 열심히 굴려 가며 단어 하나라도 더 외우려고 애쓰는 요즘, 공부가 벅찰 때면 아이의 말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나는 친구들이 이야기하면 무슨 말일까 상상하면서 들어." 의사소통의 기본은 귀보다 마음을 먼저 여는 것임을 알려준 우리 집 꼬맹이. 무더위 속에서 긴긴 방학을 보내는 아이는 요즘도 종종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보고 싶다고 말한다. 저마다 다른 빛깔을 지닌 마음의 언어로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나서야 난 비로소 영어에 대한 조급함을 내려놓는 여유를 얻었다. 물론 내 영어 실력은 나아질 줄 모르고 몇 개월째 제자리걸음이다. 변한 것이 있다면 언어의 장벽으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조금은 펴졌다는 사실이다. 이게 다 세상 어떤 말보다 아름다운 마음의 언어 덕분이다. 글·조연혜(프리랜서 에디터)
|
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좋은 공감 멘트로
공유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동트는아침 님 !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오늘도 수고 많으셨어요
중복 입니다
삼계탕 드시고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좋은 공감 멘트로
공유하여주셔서
감사합니다 ~
찌는 듯한 복더위
잘 극복하시어
건강한 여름나기
기원합니다
핑크하트 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