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학교든 운동장 없는 학교가 어디 있겠냐마는
한성의 뒤운동장은 우리에게 유난히 의미가 깊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다함께 조회 서는 날은 모두 뒤운동장에 모여 6개 학년이 함께 자리를 했던 것 같다.
중학생 시절 개교 기념일 날 행사에 다양한 복장으로 구색을 맞춰 가장 행렬이 지나가던 곳도 뒤운동장이었다.
체육시간에 축구공을 차지하느라 흙바람 일어나는 무리의 중심에 섰던 우리들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떠오른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 열병 검열을 준비하느라 제식훈련 받던 고등학교 교련시간부터 시작해서
대학입시 체력장을 준비한다고 뛰고 매달리고 넘어지며 비지땀을 뻘뻘 흘려대던 곳이 또한 그 곳이다.
아마 우리들의 땀방울로 다져진 곳이 뒤운동장 흙바닥이었는지도 모른다.
교직원 축구 시합, 학년 대항 축구대회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못잊는 것은 중학교 때 방과 후, 해 지도록 주먹만한 10원짜리 고무공을 놓고 책가방 골대를 만들어
아예 어둑 어둑해 질 때까지 배고픈 뱃속 사정은 까맞게 잊고 질펀하게 공놀이 하던 일이다.
무슨 열성에 취해 새카맣게 흙먼지에 땀이 뒤범벅 엉겨붙은 얼굴로 그렇게 즐거웠던지.
그것도 키순서로 반에서 주로 20번 아랫 동네에서 노는 꼬마들만 모였으니...매운 꼬마들의 행군이었을까.
그중 제일로 마음이 갔던 녀석이 바로 박병래였는데 한동안 기침을 해대더니 폐가 않 좋다고 중3때 요양차 고향으로 내려갔지...
지금 어디서 무얼하는지 참으로 보고 싶다. 어린 나이에 소풍 가면 남인수 나훈아 노래를 정말 구성지게 잘 불렀는데 말이다.
아마 고향이 경기도 평택이었지.
봄에는 운동장 주변에 가득 핀 개나리 꽃이 보기 좋았고
여름철 소나기 쏟아지는 뒤운동장은 또한 얼마나 시원한 풍경을 우리에게 선물했던지...
가을이면 문학의 밤에 때 맞춰 쓸어도 쓸어도 씻기지 않는 엄상용 집 쪽 나무엔 늘상 잎넓은 낙엽 더미가 있었다.
비내리는 여름이거나 눈내리는 겨울이거나 연습 훈련은 럭비부가 단연 제일 억척이었다.
이수억 이규성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럭비부 친구들이 쏴 올린 고구마는 하늘 높이 연처럼 붕붕 날아다녔다.
그들이 스파이크로 밟아내던 땅 속에서는 큰소리로 쿵쿵, 수십년의 전통이 함께 울렸다. 전성시대의 부활을 기도하며 울렸다.
밴드부의 하루를 달래는 저녁 노을을 타고 동열이의 나팔소리는 빳다소리와 함께 뒷편 중앙여고 건물까지 울려 퍼졌지 않았던가.
태권반원들은 주로 배구장에서 훈련을 하였지만 구보 훈련은 뒤운동장에서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배구는 배구코트에서 농구는 농구장에서 역도는 화장실 옆(?) 아지트에서 각각 주둔하였지.
뒤운동장에 밤이 찾아들면 시달렸던 하루 해를 보내고 긴 안도와 휴식에 들어가는 듯 극성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라 고요했다.
밤이 지나고 다시 아침 해가 뜨면 나무 아래 계단식 잔디에서 밤새 잠들었던 잡초들이 이슬 받아 깨어난다.
부지런히 아침 등교 하는 개구장이 수다 소리가 담쟁이처럼 담벽을 타 오르고 지각생들의 기합받는 소리와 함께
아침은 역시 뒤운동장에서 무거운 문을 열었다.
그렇게 뒤운동장은 우리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 성장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 몇해던가. 그는 침묵으로 말한다. 울거나 웃지 아니한다.
그는 우리들 존재 모두를 기억하고 있다. 모든 개인을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 기억하고 있다.
공부 잘했거나 못했거나 얼굴이 잘생겼거나 못 생겼거나 재능을 가졌든지 못가졌든지 관계없이
그는 우리를 다 같은 문하생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진:뉴질랜드 알몸 럭비
모여야 한다. 우리의 가슴을 열고 만나야 한다.
거추장스런 옷을 벗고 알몸으로 만나야 한다.
이제 나이도 먹었으니 지위 높고 낮음도 없어지고 어느 정도 인간 평준화 되지 않았나.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면 어떠랴, 마음이 부자인 것을. 차라리 무소유가 편안한 것을.
죽으면 모두 흙으로 돌아갈 몸, 그 날까지 건강하면서 활발한 미래를 꿈꾸세.
잘났거나 못 났거나 만나야 한다. 행복은 맘먹기 나름.
과거의 오해와 불신이 있었다면 이를 씻고자 더우기 만나야 한다.
풀 것은 풀고 털 것은 터는 때늦은 지혜를 발휘할 나이에 우리는 이미 와 있다.
5월 5일, 아침 9시!!!
우리를 기다리는 운동장 한복판 그에게 뚜벅 뚜벅 나서야 한다.
우리가 모이는 날이면 그는 어김없이 팔을 뻗쳐 우리를 안아 줄 것이다. 따뜻하게 끌어 안는다.
어머님과 같은 모교의 품이다.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의 품이다.
그에게 안겨서 그동안 못다한 35년을 헐고 못다한 그간의 애환을,
사랑 얽힌 이야기를 줄줄이 털어 놓아야 하리.
우리의 영혼이 잠기고 깔린 회상의 뒷마당에 앉아
멍석 깔고 두둥실 춤이라도 추면서
멀리했던 앨범의 한페이지를 펼쳐놓고
구구절절 옛이야기 나누세.
청춘아 내 청춘아, 신명나게 놀아보세.
지글 지글 돼지 갈비 굽고 막걸리 한 사발 나누세.
70/80 음악회를 펼쳐보세.(주연:임영준 /// 밴드 지휘:김취학)
우리 모두 모여 서서 흙바닥을 뛰면서 제2의 청춘가를 부르세.
그날이 온다.
그날이 오면,
74년 한성인은 모교에 모여
손잡고 웃으면서 추억에 울면서 뒤운동장 품에 푸근하게 안기리.
우리 모두 한몸 되어 북아현 뒤운동장에 봄꽃같이 살어리랏다.
해군은 벚꽃으로 피고 우리는 개나리로 피누나.
추신 : 마침 업무차 서울 출장길이 있어서 체류 연장하여 5월 5일 체육대회에 참석하고자 합니다.
영종도 운북지구(외자유치 약60억달러규모) 개발 프로젝트에 모종의 임무를 맡아서
홍콩의 리포그룹과 샌프란시스코의 코암사가 합동으로 추진하는 해외동포타운 건립에 관한 사업을 위해
분양팀과 미주 신문사 기자단이 함께 들어가는 길입니다.
4월말에 도착, 주로 인천 송도 파크호텔과 강남 르네상스에 머무르는 동안 세미나와 회의 등에 참석하고
인천시장과 경제자유구역청장도 만나는 길에 그들에게도 한성 체육대회의 개최를 알리겠습니다.
공주대학 재외동포재단을 돌아보는 스케쥴도 포함되는데
불행히도 진해 탐방 스케쥴은 없더군요.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일일이 개별적인 전화 못하는 점 양해 구합니다.
보고싶은 친구들 모두 그날 체육대회에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해웅이가 좀더 구체적인 연락에 수고를 해주면 매우 고맙겠고(참고로 출국은 5월8일)
유럽대륙 대표 이명근, 태평양 대표 강세범, 북미주 대륙 대표 함태용 모두 모두 나오시오.
남미 사는 친구는 없나요.
어쨋든 멀리 지방에 사는 친구, 해외에 사는 친구들 다들 모이시자구요.
은사님은 아무도 아니 오시는가요. 특히 김봉정 선생님 오시면 참으로 좋겠구만요.
성원에 감사합니다.
김준하가 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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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기다리 고 기다린 너의 입국소식 감사 감사 ,글구 잘 알아 연락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베이붐세대의 첨병인 55년생의 퇴직이 시작되는 해라 올해 체육대회는 부활의 원년으로 삼고 회장단에서도 각별히 노력 중이니 아마도 많은 친구들을 만나리라 예상됩니다. 암튼 준하의 귀향이 더욱 멋진 체육대회의 불꽃을 피워 주리라 생각하며 , 한번 더 한명 더 연락하여 많이많이 볼 수 있게 노력 할께요...
고교시절로 돌아가보네
어린이날이 23회날이네
뒤운동장에 살판나겠어
신명나도록 움직여보세
학교 뒤운동장 김세창 교련선생에게 벌받던 사진을 보니 그때가 벌써 37년전 ~~~ 이제는 흰머리 휘날리는 동창들끼리 만나는날 준하 너까지 온다니 반갑구나 그때 보자구 ~~~
종형이형 교련선생님 김씨여 빨랑고쳐
뒤운동장에 살어리랏다.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또렷하게 기억나게 하는 추억의 사진을 켵들인 수려한 문체의 글은 더 이상 말이 필요없다고 하더라도, 1반 연락병의 임무를 맡아 많은 친구를 모아야하는 나로서는 너의 귀국이, 참석이 故 김한태사단의 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네가 온다면 너 많은 친구가 참석하리라. 어서 와라. 하여튼 그날 보자구.
학창시절이나 지금이나 고것이 그것이라...항상 어정쩡한 생활이 그렇듯이..20여년 동안 그리움으로 세월을 보냈으니 말일세.하여튼 고맙네. 이름까지 거명 해 주시고..
많이 변해있을 친구들의 모습도 궁금하고, 학창시절 대화 한번 못 해본 친구들과의 만남속에, 따뜻한 마음의 정감도 나누고 말일세.
미안하네 같이 동참을 하지 못 해서..내년 쯤엔 혹시나... 하고 삽네.
준하야, 어제 운동회에서 오랫만에 보니 참 좋더라... 그 옛날 추억을 되살리게 해주니 고맙구나. 서로가 지키지 못한 약속이었지만, 언젠가 10년 뒤에,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농구 골대 앞에서 다시 만나자던 일도,..나는, 중3 때인 1970년 초여름날, 바로 어제 같은 날씨였던 오후 체육시간에 맨손체조를 하다가, 금화산 상공에 떠있는 UFO(아담스키형)를 목격한 일이 계기가 되어, 1990년에 국내 유일의 민간 UFO 연구단체인 한국UFO연구협회(KUFORA) 창립에 동참하고 많은 관련 서적을 기획, 집필, 편집, 출판하며 행사도 치르면서, 한때는 각종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출연, 부끄럽게도 UFO 연구가와 전문가로 통하게 되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