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두 편____
눈에 가시가 돋다 외 1편
김명숙
언제부턴가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다
빛을 탐하며 어둠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쓸쓸했던 날들이 가고
아무도 흥얼대지 않지만 울지 않는 날이 많았다
가끔 날 위해 불러주던 노래마저 사라지고
계절이 다가도록 줄기 끝에 매달려 나부끼는
회색빛 갈대꽃이 허름하다
꺾이고 찢어진, 빈 방을 기웃대던 바람이
덧없이 돌아나오고 무질서한 방향으로
서서히 흩어져가는 헌 것들 나는
삭아가는 그의 의식을 붙잡아보려고
한 발 더 다가선다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어떻게 상대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대를
받아들임으로서 비로소 ‘나’로 설 수 있다는 모순
가문 오성지* 흙탕물 위에 비어있는 집들이
가그락거린다 지나가는 지금
이 순간은 다시 재생되지 않는다
헛되이 자리 잡은 가시가 보이지 않는 눈을 찌른다
*전주 건지산 한국소리 문화전당 연못.
학문에도 훈련이 필요하다
한 입이 잎을 사정없이 갉아먹고 있다
보이지 않는 입이 갈피마다 숨어 있다
들판에 바짝 엎드려 나는 그들을 읽는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갈피를 살며시 들추기도 전에
나를 먼저 읽고 저 깊은 아래로 굴러내린다
이제 잎을 조금씩 깨우치기 시작했다
자고나면 읽어야 할 무수한 입들이 가혹한 가르침을 준다
이 가르침을 다 깨우치는 것이 나의 소원이지만
나는 안다 이 가르침을 다 깨우치려면
두터운 집착을 버리고 어느 정도 그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너무 많은 걸 가지려한다는 것을
내려놓아도 어느새 다시 차오른다는 것을
나비는 이 가르침을 주려고 분주히 짝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 가장 싱싱한 보금자리를 찾아서
둥지를 틀고 대를 잇는 채식주의자의 힘!
나는 그 끈질긴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
효소를 주고 나무젓가락을 사용하지만 그러나
차마 원자폭탄을 쓰지는 못하겠다 그것은
그의 가르침에 대한 알량한 도의심이라기보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가 내 한계다 단순한 듯하면서
너무 난해해서 그의 가르침을 깨우치기가 버겁다
지친 손을 놓고 생각만 바라보고 있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배추 속이 소복소복 차오른다
김명숙/ 전주에서 태어났으며 2008년 『시와산문』으로 등단했다. 시집 『책갈피 속의 잠』이 있고 2016년 한국녹색시인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