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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95회>
<태조 왕건 95회>
씬철원 황궁 외경(새벽)
짙은 새벽의 여명이 벗어지고 있다. 카메라 부감에서 천천히 조여들어 가는 가운데 궁예의 그 고통소리가 신음소리와 함께 희미하게 들려오고 있다.
씬 동 황궁 대전 복도
대전내관들과 어의가 대전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것은 궁예의 괴로움에 젖은 신음소리다. 듣기에도 힘겹고 간헐적인 목소리다. 내관들은 서로 긴장한 모습으로 그렇게 서있고.
씬 동 황궁 대전 안
궁예가 온통 식은 땀을 흘리며 고통에서 헤어 나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궁예의 시선을 통해 보이는 모든 사물들은 윤곽과 촛점이 없이 흐리게 일렁이고 있다. 고통을 대변하는 그 소리들은 아주 심하게 심장을 흔들어 대고 있다. 궁예는 정신을 차리려 애를 쓴다. 탁자 위에 보고 있던 경전을 움켜 쥔다. 비틀거리며 허우적거리자 찻잔이며 필기구 같은 것들이 그대로 휩쓸려 떨어지거나 나뒹군다.
궁예 (E) 고통스럽다.... 참으로 견디기가... 너무도 어렵구나. (사이) 이 궁예가 이런 병을 얻다니.... 말도 아니되는 일이다.... 인간이.... 도를 얻으면.... 고통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였다....... 나는... 오래 전에.... 깨달아.... 미륵이 된 사람이다...... 이런 병을....이겨내지 못하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수많은 백성들이..... 나를 따르고 있다.... 나는... 그들을 이끌고.... 이 삼한을 통일해야 하고..... 중원에 대 제국을...건설해야 한다.... 아...아...그런데 너무도 고통스럽구나...... 무서워....
궁예의 공포를 대신하는 효과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불안과 초조들을 대변하는 그런 소리들이다. 간혹 그 소리들 속에 섞여 악마의 웃음소리 같은 소름끼치는 소리들도 섞여 있다. 궁예의 시야로 보이는 모든 것들은 아직도 불분명하고 혼탁스럽다. 궁예는 눈을 떠 시야를 바라보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소리를 듣지 않으려 귀를 막다가 몸부림치며 또 가슴을 쥐여 잡는다. 그는 무서운 듯 허공을 두리번거린다. 손을 허우적거린다. 갑자기 석총의 소리가 들려온다. 죽을 때의 모습이 재현된다. (83회 야단법석에서)
석총 거짓미륵이시오! 이제 그대의 세상이 다 되었소이다. 이미 다른 미륵이 일어나 내일의 세상을 준비하고 있소이다. 거짓미륵이여!! 저주를 받을 것이외다. 하늘의 저주가 있을 것이외다.
궁예 아니다.... 나는 거짓이 아니다.... 나는 참 미륵이야....
다시 도선대사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그때의 장면들이 궁예의 괴로움과 더블 되며 잠시 스쳐간다.
씬 지난 6회 그 장면
궁예와 종간이 앉아 도선에게 묻고 있는 장면이다.
궁예 미륵의 세계를 열어 고해의 바다에 연꽃을 피우려 하옵니다. 어느 길로 가면 빨리 이르오리까?
도선 한 쪽 눈으로 세상을 살다보니 천지가 반쪽으로 보이는 모양이로구나.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거라.
궁예 어찌 욕심이라 하시옵니까? 허면 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누가 구할 것이오니까?
도선 나 없이 안된다는 것이 바로 욕심이니라.
궁예 ............?
도선 말해주랴....? 너의 앞 날 말이다.
그들 .........(긴장)...?
도선 석가모니께서도 많은 업을 다 닦으신 연후에 부처님이 되셨느니라.너 또한 아직 남은 업이 많으니 이를 어이 할꼬?
궁예 .........(미소).......어렵다는 말씀이오니까?
도선 뜻은 이루겠으되........ 복이 박하니 천하를 얻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씬 현실
궁예는 충격처럼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도리질을 한다. 그리고 독하게 입술을 앙다문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고 있다. 그리고, 그예 독주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마셔댄다. 그는 독한 모습으로 외눈을 치켜 뜨며 소리친다.
궁예 나를... 보고 복이 박하다고?..... 천하를 얻은 들... 무슨 소용이냐고?....(사이) 그렇다면.... 대사는... 오늘 있을 일을....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내 이 불쌍한 꼴을.... 이미 옛날에 보았다는 이야기가 아닌가?....(사이) 아니다.... 하지만 아니다... 나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궁예이다. 그리고... 대... 미륵이다! 내가 무엇이 무서워서.... 이렇게.... 떨고 있단 말인가? 나나는... 황제이다. 두려움 따위는... 내게 있을 수... 없다. 그럴 수는 없어! .....그럴 수는 없어!!
그는 절규처럼 소리친다. 몸부림이다. 필사적인 그의 모습이 그 외눈 속에 불타고 있다. 그는 혼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몽롱한 의식은 그를 놓지 않는다. 계속 되는 궁예의 그런 싸움에서....
씬 다시 대전 복도
대전내관들(내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내관들이 계속 있어야 합니다)이 그렇게 서있다. 고통을 삭히려는 궁예의 신음소리는 간간이 그렇게 이어져 나오고 있다. 종간이 다가온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대전내관을 본다.
종간 폐하께서는 아직까지도 아니 주무시는가?
대전내관 예, 내원어른. 저렇게 밤새....
종간 (한숨)..... 어의는 내관들과 함께 주야로 이곳을 떠나지 말라.
어의 예, 내원어른.
종간 대전내관들과 더불어 별다른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늘 이곳에서 번을 서라는 것이야.
어의 예, 내원어른.
종간은 그렇게 서있다. 쥐여 짜는 궁예의 신음소리는 더욱 길게 이어진다. 종간 자신이 아픈 듯 눈을 감는다.
종간 밤새 저리 하시는가?
대전내관 예, 주로 낮보다는 밤에 많이 괴로워하시는 것 같사옵니다.
어의 소인이 짐작키로는 심통이신 것 같사옵니다. 가슴에 고통과 더불어 마음이 산란해지고 혼과 넋이 흩어지는...
종간 닥치거라! 어디서 해괴한 소리를 중얼거리느냐? 너는 그저 만약을 대비하여 있으라는 것이다.
어의 예, 내원어른.
종간은 다시 한숨을 쉬며 그곳을 벗어나다가 돌아서 묻는다.
종간 너희들 말고 이 대전에 대하여 누가 또 알고 있느냐?
대전내관 예, 황후마마께오서 하루에 두어번 황후전의 내관을 보내시어 묻고 계시옵니다.
종간 (한숨, 끄떡인다) 그 이외에는 누구도 얼씬거리지 않도록 하라. 잘못되면 요언이 밖으로 새어나갈 때에는 너희들 모두 목숨을 부지키 어려울 것이다.
대전내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그리 하겠사옵니다.
종간은 그렇게 복도를 빠져나간다. 대전내관이 휴하고 한숨을 내쉰다.
씬 황후전
연화가 진내관에게 묻고 있다. 제조상궁과 슬이가 옆에 있다.
연화 오늘도 밤새 잠을 못 이루셨단 말인가?
진내관 예, 황후마마.
연화 안타까운 일이시다.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시지 않는가?
진내관 여러 경로로 알아 보았사온데.... 지난번에 사라진 그 어의가 진단을 내린 결과로는.....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불치병이라고 하였다 하옵니다.
연화 .....?
제조상궁 황후마마,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 아니옵니까?
연화 (한숨) 방법이 있다면 왜 모두들 저러고 있겠느냐? 큰 일이로다. 참으로 큰 일이로다.
슬이 독한 소주를 계속 드시는 것으로 보아 그나마 고통을 더시는 것 같사옵니다.
연화 그러니 오죽하시겠느냐? (도리질) 아, 아...어이할꼬.... 정말 앞이 보이지가 않는 구나.
씬 내원 외경(아침)
은부 (E) 이럴 것이 아니라 산천에 승려들을 보내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씬 동 내원 안
은부와 종간이 마주해 앉아 있다.
은부 아무리 방안을 찾아도 대책이 없사옵니다. 그렇게라도 한다면....
종간 (도리질) 기도라니? 폐하께서 허락하실 것 같은가? 그 분은 스스로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미륵이실세. 미륵을 위해 기도를 올린다면 세상이 웃을 것이야.
은부 하오나, 길이 없지 않사옵니까?
종간 찾아보아야지. 그래서 내가 전국에 사람을 풀어 이름 있는 도인이나 숨어 있는 명의를 찾아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은부 물론 그렇게 하고는 있사옵니다. 하오나 쉽게 될 일이 아니어서....
종간 그렇겠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허지만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게. 우리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폐하를 옛날의 그 모습으로 다시 뫼셔야 하네. 우리의 살을 저미고 뼈를 깎아 서라도 그리 해야 해.
은부 알고 있사옵니다. (사이) 하옵고 내원어른,
종간 말해보게.
은부 나주가 다시 위험한 것 같사옵니다. 병부에서 연일 장계가 올라오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그렇다네. 견훤왕이 물러가지 않고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더군. 조만간 다시 대대적인 전투가 있을 것이라는 보고를 받고 있네.
은부 그렇다면 왕건 장군이 다시 나주로 가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종간 병부에서도 그렇게 청이 올라왔네. 하지만, 폐하께서 별다른 영이 없으시니 어찌하겠는가? 좀 더 기다려 볼 수 밖에....
씬 황궁 조당
광치나 유천궁을 비롯하여 박지윤 부자, 복지겸, 장자1,2, 이흔암, 환선길, 강장자, 임춘길, 능달, 기전, 천부장 들이 모여 있다.
유천궁 나주의 사정이 아주 급한 것 같소이다. 하루걸러 전령이 올라오고 있는데 아무런 대책을 세워주지 못하니 안타깝소이다.
박지윤 왕장군을 다시 보내달라고 하였다면서요?
장자1 이 사람도 그렇게 들었습니다만....
장자2 하지만 왕장군은 휴가 중이 아닙니까?
복지겸 그렇습니다. 휴가라기 보다는 폐하께서 영을 내려 주시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장자 군인이 전선이 급하면 빨리 떠나야지 휴가가 다 뭡니까? 휴가가? 아, 병부령이 그 점을 폐하께 속히 말씀 올리세요.
이흔암 백제의 견훤왕은 예사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의형제인 수달이의 원수를 갚으려고 할 것이고 또 나주를 되찾으려 할 것입니다.
환선길 그렇습니다. 견훤왕이 버티고 있는 이상 완전하게 나주를 우리 것으로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유천궁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다 비슷합니다. 허지만 이 일은 전적으로 폐하께서 주관하시는 일입니다. 병부에서 지휘하던 군의 통수권을 순군부에서 가져갔고 또 폐하께서 직접 그 일을 재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섣불리 결론을 내릴 수도 없는 일이고....
임춘길 소장이 순군부를 맡고 있사옵니다. 듣고 보니 전선의 사정이 참으로 급한 것 같사옵니다만은.... 어떻게하든 빨리 결론을 내야지요.
박수경 그렇습니다. 자꾸 시간을 끌 일은 아니지요. 한편으로는 폐하께 말씀을 올리고 또 한편으로는 왕장군의 의중을 물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시 전선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이곳 철원에 남아 있을 것인지....
유천궁 옳은 말이예요. 이 일은 우리가 조정에서 서둘러 주어야 합니다. 애써 잘 구축해 놓은 후방의 전선이 위험에 질 수도 있는 일입니다.
복지겸 제가 곧 왕장군부터 만나보고 다시 폐하께 소청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강장자 이러니 갈수록 왕장군의 코만 높아지게 생겼소이다. 아, 거기도 장수들이 많은데 왜 계속 왕장군 얘기 뿐입니까? 허허, 이거 참....
그말에 유천궁과 복지겸들이 못마땅한 듯 강장자를 본다. 강장자의 그런 표정에서.....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왕건과 왕신, 두 부인이 함께 차를 마시고 있다.
왕신 형님, 나주 전선이 불안하다는 장계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 하옵니다.
왕건 (끄떡이며) 듣고 있네. 하지만 거기는 든든한 장수들이 많이 가 있어. 그리 걱정을 안해도 될 것이야.
유씨 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옵니까?
수인 그러니까 급하고 불안하다는 것이 아니옵니까? 견훤왕이 물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결국 계속 싸움이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겝니다.
왕건 맞는 말씀이오, 부인. 아마 견훤왕은 쉽사리 물러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오. 십중팔구 다시 전투가 벌어질 것이오.
유씨 어쩌나... 식렴 도련님도 거기에 계시고 또 나주 아우도 거기에 있지 않사옵니까?
왕건 그렇기는 하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소이다. 다 제몫을 하는 사람들이니까요.
왕신 다급한 상황으로 보아서는 지금쯤 전투가 시작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옵니다.
왕건 그럴 수도 있겠지.
차를 마시며 생각하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나주, 금성 산성 주변
견훤군이 수많은 기치창검을 번쩍이며 들판을 메우고 있다. 그들이 그 들판 길을 지나 산성 쪽으로 이동해 가고 있다.
씬 나주 관아 외경
씬 동 관아 안
오다련, 오씨가 마주해 있다. 이들은 긴장해 있다.
다련군 견훤왕의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였다는 구나. 곧 대대적인 싸움이 있을 모양이다.
오씨 벼르고 별러 왔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사옵니까?
다련군 견훤왕이 아주 독을 품어도 단단히 품은 모양이다.
오씨 제가 살펴보니 우리 쪽의 대응도 철저하고 완벽해 보였사옵니다. 그리고, 한다하는 명장들이 모두 와 있지 않사옵니까?
다련군 그렇기는 하다만은.... 예사롭지 않은 전투 같다. 듣자하니 견훤왕이 직접 선두에 서 있다는 구나. 얼마나 모진 마음을 먹었으면 한 나라의 왕이 싸움의 앞자리에 서겠느냐?
오씨 그 점은 높이 살 만하옵니다. 마진이나 신라에 비하면 확실히 견훤왕은 그런 점에 있어서 남다른 군왕이옵니다. 어렵고 험한 싸움터에서 앞을 설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씬 산성 그 들판
견훤왕이 앞을 섰고, 그 좌우로 추허조와 능애가, 신덕, 지훤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온갖 공격 무기와 끝이 보이지 않는 대군이 몰려가고 있다. 견훤이 고개를 끄떡하자, 능애가 소리친다.
능애 군은 좌우로 공격 목표를 향해 가라! 좌군 좌로 가라, 우군 우로 가라! 중군은 제자리에 서라. 전군은 공격 대형을 갖추어라!
능애의 소리를 복창하며 군대가 열을 지어 흩어지기 시작한다. 공격 대형이 갖추어 지고 있는 것이다. 견훤의 표정이 그렇게 굳어 있고, 최승우는 그늘진 표정으로 견훤과 산성 쪽을 보고 있다. 그 소란함 속에서 디졸브 되면......
씬 동 금성 산성 성루
멀리 아득히 견훤군의 끝없는 모습들이 보여 온다. 그들 등뒤로 석양이 지고 있다. 김언과 더불어 염상, 배현경, 홍유가 함께 보고 있다. 그들 뒤로 군사들이 부산하게 적을 맞을 준비를 하며 움직이고 있다.
배현경 해가 지고 있소이다. 날이 어두워지면 저들의 공격이 시작될 것이외다.
염상 견훤왕이 선두에 서있소이다. 황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어요.
홍유 아주 작정을 하고 나온 전쟁 같습니다. 어려운 전쟁이 되겠어요.
염상 그럴 것 같습니다. 황제가 전쟁에 앞을 선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옵니다.
김언 이곳에 총관으로 있으면서 저 백제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늘 싸움터에서는 군사들과 함께 할뿐만 아니라 그 용맹함과 힘이 놀랍다고 들었습니다.
홍유 그러니까 한갓 신라의 이름 없는 하급 군관에서 한 나라의 황제가 되었겠지요.
배현경 백제군의 한 떼가 해안가 쪽으로 갔다고 들었습니다만은....
김언 그래서, 그곳은 김락 장군과 더불어 추가로 왕식렴 수단령이 다시 갔습니다. 아직도 우리의 수군이 바닷가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에 그 쪽은 별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염상 오늘 밤이 문제가 되겠습니다. 병력은 서로 비슷하고..... 해 볼 만한 전투가 되겠습니다.
씬 동 성 밖 견훤의 군영(밤)
달빛이 밝다. 침묵 속에서 수많은 횃불들이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그 많은 군사들이 견훤의 영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
견훤 이제 곧 공격할 때가 된 것 같네 그려.
최승우 폐하, 저 금성산성은 폐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그 지형이 참으로 견고하고 두텁사옵니다.
견훤 알고 있네.
최승우 수달장군도 필사적으로 노렸으나 결국은 실패했사옵니다.
견훤 지금은 공격을 할 때일세. 그런 말은 군의 사기에 좋지가 않아. 이미 결정된 일일세.
최승우 ..........
능애 폐하, 모든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견훤 옳은 말이야. (큰 소리로) 전군은 들으라! 오늘 짐이 그대들과 더불어 중앙군의 선봉에 서 있노라. 다시 말하면 저 성을 함락하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성을 함락하던지 아니면 죽음을 택할 것이다.
군사들이 견훤의 말에 모두 환호한다.
견훤 (고무되어) 오늘의 이 전투는 죽은 수달 장군의 원수를 갚는 것은 물론이고 이 금성을 빼앗겼던 치욕을 되 갚는 그런 날이 될 것이다. 공을 세운 자는 크게 포상할 것이며 비열하게 뒤로 물러서는 자는 그에 상응하는 죄를 물을 것이다. 전군, 공격하라!
능애 공격하라!
추허조 공격하라!
견훤이 근위병들에 휩싸여 말고삐를 차며 앞으로 나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 앞으로 능애와 추허조과 군사들과 달려나간다. 벌판은 온통 말발굽 소리와 함성 소리들로 시끄럽다.
씬 동 산성
전투가 벌어졌다. 백제군이 사방에서 공격해 오기 시작한다. 화살이 비오듯 날고 있다. 비루로 돌을 날리고 충차가 성문으로 다가온다. 김언, 염상, 배현경, 홍유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군사들을 독려하고 있다.
김언 성문을 막아라! 화살을 퍼부어라.
염상 (성 그 외곽에서) 성에 오르지 못하도록 하라. 모조리 베어라, 쏘아라!
성문 앞으로 방패를 쓰고 다가오던 백제군들이 수없이 쓰러지고 있다. 그 가운데서 견훤이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독주하고 있다.
씬 그 곳
견훤 물러서지 마라! 성을 타고 올라라. 성을 함락하라.
견훤에게 수많은 화살들이 빗겨간다. 최승우가 소리친다.
최승우 폐하, 위험하옵니다. 조금 뒤로 물러서시오소서. 위험하옵니다.
견훤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내가 물러나면 군사들의 사기가 꺾여. 자, 짐이 여기 있노라. 공격하라.
아비규환이다. 곳곳에서 수많은 사상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그곳은 성안도 마찬가지이다. 불화살들이 수없이 성안으로 날아가고 있다.
씬 동 성 안
곳곳에 불이 붙고 있다. 백제군들이 개미떼들처럼 성벽을 타고 오르고 있다. 그리고, 쉼 없이 돌아 날라와 망루를 부수고 성벽을 파괴한다. 배현경과 홍유가 검을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소리치고 있다.
배현경 불을 꺼라! 군사들은 불을 꺼라. 다시 망루를 세워라.
홍유 적병을 성안에 들여놓아서는 안된다. 모두 물리쳐라! 뜨거운 물을 부어라, 돌을 굴려라.
불화살은 계속 날아들고, 적병은 성을 기어오르고 그리고, 물리치고.... 그 한쪽에서는 성문이 부서질 듯 흔들거린다. 아비규환이다. 그렇게 싸움은 어느 한편의 기울임도 없이 치열하게 계속되고 있다. 김언이 고개를 흔들고 있다.
검언 지독하다. 일찍이 저렇게 지독한 군사들은 못 보았다. 죽어도 죽어도 계속 올라오고 있지 않는가?
김언은 백제군의 중앙을 본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견훤이 독전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도리질을 한다. 그
용기가 너무도 대단한 것이다.
씬 그 곳
견훤이 계속 검을 휘두르며 소리치고 있다.
견훤 성문을 열어야 한다! 저 성문을 집중 공격하라. 성문을 부수어라.
추허조가 달려가며 소리친다.
추허조 나를 따르라! 내가 성문을 열 것이다. 나를 따르라.
위험하다. 추허조는 군사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 군사들을 격려한다.
추허조 저 쪽을 부수어라. 저 쪽이 흔들리고 있다. 충차 부대는 무얼 하느냐? 저 쪽을 집중 공격하라! 공격하라.
그러다가 추허조는 그대로 화살을 맞고 말에서 떨어진다. 뒤에서 견훤이 보고 있다가 놀라서 숨을 멈춘다. 능애가 재빨리 달려와 추허조를 구한다.
능애 방패로 막아라. 화살을 막아라.
능애는 그렇게 추허조를 구해가고, 신덕이 마치 교대하듯 달려나오며 소리친다.
신덕 물러서지마라! 계속 공격하라.
그러나, 군사들은 점점 더 많이 쓰러져 가고 있다. 마치 풀잎이 베어지듯 수없이 죽어가고 있다. 견훤과 최승우가 보고 있다. 견훤의 표정이 절망처럼 변해가고 있다. 최승우는 말이 없다. 그때, 지훤이 달려나온다.
지훤 폐하, 아무래도 아니되겠사옵니다. 우측 공격부대가 절반이나 희생되었사옵니다. 전열을 다시 정비해야겠사옵니다.
견훤 ............
능애 (다시 달려온다) 폐하, 적의 방어가 워낙 완강하옵니다. 이곳도 위험하오니 잠시 뒤로 물리시오소서.
견훤 추허조는 어찌 되었는가?
능애 군사들을 시켜 후방으로 이송했사옵니다.
견훤 아, 하... 이대로는 안된다. 공격하라, 공격을 멈추지 마라. 공격하란 말이다.
최승우 폐하, 잠시만 물리시옵소서. 이대로는 아니되옵니다.
견훤 오, 오, 이런.....이런.......
견훤은 주먹을 불끈 쥔다. 화살이 비오듯이 쏟아지고, 눈 앞에서 군사들이 수없이 죽어 가고 있다. 성문 앞에서 충차 부대도 이미 태반이 죽어서 제대로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불까지 붙었다.
최승우 일시 퇴각령을 내리시오소서. 다시 오실 수 있사옵니다. 퇴각하시오소서.
견훤 오, 이런......오..........
그런 견훤의 절망적 표정에서 디졸브.........
씬 동 그곳(새벽)
전쟁의 상흔들이 곳곳에 끝없이 펼쳐져 있다. 수많은 시체들 꺾어진 깃발들 그리고 중장비들이 버려져 있다. 곳곳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씬 동 산성
장수들이 잿더미가 되거나 부서진 성벽들을 보고 있다. 이곳도 피해는 컸다. 곳곳에 죽은 병사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부서진 망루를 수리하는 병사들과 부상병들을 치유하는 병사들로 수선스럽기 그지 없다.
배현경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오. 적군은 잡시 물러간 것 뿐이오.
홍유 옳소이다. 성벽을 수리하고 군사들을 재배치하여야 합니다.
김언 그렇게 하십시다. 참으로 저 견훤왕은 용감하다기 보다는 무모한 사람 같습니다. 이런 전선에 황제가 선봉을 서다니요?
염상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튼 이 전투는 쉽게 정리될 것 같지가 않습니다. 지구전으로 나갈 것이 분명합니다.
장수들은 모두 끄떡이거나 도리질을 한다. 그 누구도 밝은 빛이 없다. 견훤군은 그만큼 결사적이었던 것이다.
씬 견훤 군영
임시 군막들이 쳐져 있고, 군사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씬 그 중 어느 군막 안
추허조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종군을 했던 의원이 고개를 갸웃한다. 장수들이 보고 있고, (공직과 최필은 없고) 견훤이 묻는다.
견훤 상처가 얼마나 심한가?
의원 대단히 깊사옵니다. 아무래도 황도로 옮겨 오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사옵니다.
견훤 추장군, 얼마나 고통이 심한가?
추허조 아니옵니다. 절 일으켜 주시오소서. 싸우겠사옵니다. 수달 아우의 원수를 갚아야 하옵니다. 폐하.... 신을 일으켜 주시오소서.
견훤 좀 더 쉬게. 잠을 좀 자.
추허조 폐하........
견훤은 대답없이 그렇게 군막을 빠져 나간다. 장수들이 따른다.
씬 동 군막 밖
견훤이 우울하게 먼 성루쪽을 보고 있다.
견훤 강 하류로 내려간 공직장군의 부대는 어찌되었는가?
최승우 마진군의 수군력이 워낙 견고한지라 서로가 대치한 채 아직 전투를 하지 않고 있다 하옵니다.
견훤 ........ (사이) 전 군을 다시 편성하게. 오늘 밤 또 공격할 것이야. 여기서 죽던지 아니면 저 성을 빼앗던지, 결단을 내릴 것이야.
최승우 폐하.....
견훤 그렇게 할 것이야. 이보게, 신장군. 그리고, 아우야.
두사람 예, 폐하.
견훤 재정비해. 군대를 재편성하란 말이야.
두사람 예, 폐하.
두 장군이 물러가고, 최승우는 하늘을 보며 한숨을 쉰다. 견훤은 아직도 분노에 이글거리고 있다.
씬 나주 관아
오다련과 오씨가 긴장한 표정을 마주 본다.
오씨 지난 밤에 전투가 아주 치열했다 하옵니다.
다련군 예상했던 일이 아니냐?
오씨 피아간에 희생이 아주 컸던 모양이옵니다. 아무래도 서방님께서 오시면 보다 좀 나을 것인데.......
다련군 황제께서 부르시어 간 것이 아니냐? 그곳에 일이 중하다 보니 아직 오지 못하는 것이겠지.
오씨 견훤왕이 저렇게 죽기로 싸우겠다고 결심했다면 이 나주는 오래 버티기 어렵사옵니다. 사실 바다를 빼고는 모두가 백제의 땅으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이 이곳 나주이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방님께서 오셔야 하옵니다.
다련군 그러게 말이다. 도대체 철원에서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씬 철원 왕건의 집 외경
복지겸 (E) 나주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오이다.
씬 동 집 사랑
왕건과 복지겸, 태평, 능산이 함께 해 있다.
복지겸 아무래도 나주에서는 왕장군이 오시기를 모두들 고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왕건 폐하의 영이 아니 계시니 어찌 하겠습니까?
복지겸 모처럼 휴가를 즐기시는데 드릴 말씀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은.... 한 번 폐하를 뵙고 사정을 아뢰시지요?
태평 어차피 처음부터 나주는 우리 장군께서 관여하신 곳이옵니다. 병부령의 말씀이 당연하다고 보여지옵니다.
능산 그렇사옵니다. 비록 많은 장군들이 나주에 있사옵니다만은 기왕이면 장군께서 가시는 것이 이치에도 맞사옵니다.
복지겸 이 사람도 그리 생각합니다. 싸움은 상대적이 아니겠습니까? 저 쪽에는 견훤왕이 직접 나와 있습니다. 이곳에서도 누군가 상징적인 분이 가셔서 저들을 위압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선이 급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왕건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 어찌 말씀을 하실 지는 모를 일입니다. 일단 전선이 급하다고 하니 그렇다면...상주에 가있는 이 사람의 의제 유금필 장군을 보내 전선을 보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복지겸 일단 그 말씀도 일리가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 일은 병부 소관이니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군께서도 폐하께 한
번 주청을 드려주십시요.
왕건 그렇게 하시지요.
복지겸 지금쯤 하긴 광치나 어른과 내봉성령이 대전에서 폐하를 알현하고 계실 것입니다. 왕장군의 문제로 말입니다.
끄떡이는 왕건의 표정에서....
씬 황궁 대전
궁예가 유천궁과 아지태, 종간을 맞고 있다. 그 옆에 최응이 앉아 있다.
궁예 (장계를 보며) 나주의 일이 이토록 급하다고?
유천궁 예, 폐하. 급하다기 보다도 백제의 왕이 직접 나와 있는 전선이다 보니 아무래도 쉽게 풀어질 것 같지가 않아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종간 나주에 왕장군이 필요한 것 같사옵니다.
아지태 백제왕이 나와 있으니 여기서도 이름 있는 장수가 가야하지 않겠사옵니까? 병부의 소청이 일리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폐하.
궁예 그러니까, 모두들 왕건장군을 나주로 보내야 한다 그런 말 같구료.
종간 그렇사옵니다. 실은 왕장군은 잠시 폐하를 알현하고 다시 돌아가는 일정으로 이곳 황도에 온 것이 아니옵니까?
궁예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 아우와 의논할 것이 참으로 많은데.... 가야한단 말이지?
유천궁 어찌하겠사옵니까? 윤허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나는 그 아우가 이곳 철원에 와있다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든든하였는데....정 그렇다면 할 수 없는 일이지.
모두들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나는 왕건아우를 이곳에 두고 싶어하는데, 그대들은 모두 나주로 보내고 싶어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왜 이렇게 서로 다른가 몰라? 허지만 말이오. (서류를 다시 보며) 그렇다면, 왕건아우를 보내기 전에 아예 일 하나를 매듭지읍시다.
종간 무엇을......말씀이옵니까?
궁예 우리는 그 동안 이곳 삼한을 통일하면서 저 북방으로 제국을 넓혀 가자고 하였소이다. 헌데 소리는 요란하면서도 눈에 드러나는 효과가 없소이다.
모두들 ........
궁예 이는 끝내 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나라 전체를 재무장시키고 좀 더 굳건한 결심을 굳히기 위해서 다시 개혁의 채찍을 들기로 하였소이다. 아학사.
아지태 예, 폐하.
궁예 그대가 청했던 새로운 국호와 연호를 오래 생각해 보았는데 이런 것이 어떻겠소이까?
아지태 말씀하시오소서, 폐하.
궁예 나라 이름은 태봉이라고 고치고, 연호는 수덕만세가 어떻겠소이까?
모두들 태봉, 수덕만세......?
아지태 참으로 놀랍고도 대단한 말씀이시옵니다. 과연 대제국의 위엄과 폐하의 크고 넓으신 웅지가 그대로 배어 있는 말씀이시옵니다. 태봉...태봉과 수덕만세라.....
종간 참으로 웅대한 염원이 담긴 나랏이름 같사옵니다, 폐하.
해설 태봉(泰封), 궁예가 국가를 세운지 세 번째 이름이 된다. 궁예는 서기 901년 첫 번째로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였고, 두 번째는 904년 마진(摩震)으로 바꾸었다가 911년 현재 다시 국호를 태봉으로 그리고 연호를 수덕만세(水德萬歲)라고 고쳤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궁예의 뜻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태봉이란 주역에서 그 뜻을 따온 것으로써 결과적으로 지난날의 국호인 마진과 같이 대 동방국의 건설과 이상적인 낙원의 실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연호로 채택한 수덕만세는 오행상생설에 따른 것으로써 그 옛날 진시황이 추구했던 것과 의미가 같다고 한다. 즉, 진시황이 주나라를 평정할 것을 목적으로 한 것과 같이 궁예 또한 신라 즉, 삼한을 평정한다는 뜻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학계에서 보고 있는 시각인 것이다.
궁예 오래 고심하며 지은 이름과 연호이외다. 왕건아우가 나랏이름이 바뀌는 정도는 알고 가야지, 아니 그렇소이까?
종간 예, 폐하.
궁예 전폭적인 조정의 개각도 있을 것이오. 오늘 왕장군을 좀 들라하시오. 그래도, 이 형의 뜻은 알고 가야지. 그리고,
곧 조회를 준비해주시오.
종간 예, 폐하.
궁예 태봉, 태봉, 태봉........ 으하하하하하...... 이 얼마나 위대한 이름인가? 대 동방국을 세우는 것이야. 이까짓 삼한이 아니라 저 북원으로 뻗어 가는 대 동방국 말이야. 하하하하....
그런 궁예의 표정을 보는 신료들의 면면, 특히 종간의 얼굴에서 디졸브....
씬 황궁 마당(밤)
씬 내원
은부와 마주해 있는 종간의 표정이 굳어 있다.
종간 폐하께서 곧 조회를 여신다고 하셨네. 자네는 보았는가? 그 조회에서 말씀하실 이 조정 신료들의 인사에 대해서 말일세.
은부 예, 내원어른. 원봉성에 내리시는 글에서 사람을 통하여 알아보았사옵니다.
종간 자네의 걱정이 아주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네 그려. 직제를 다 바꾸어 놓았어. 이건 아지태의 장난이야.
은부 그렇사옵니다.
종간 광평성이 제일 윗자리인데 여기는 원로들의 자리이고 그 다음이 내봉성이야, 서열 2위란 말일세. 거기에 아지태가 앉아 있어. 이것이 무얼 말하겠는가? 권력의 방향이 이동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야.
은부 그렇사옵니다. 뿐만 아니오라 순군부가 새로 생긴지 얼마 안되어 서열 3위에 올라 있사옵니다. 이 또한 아지태의 무리들이 아니옵니까?
종간 그러게 말일세. 이러다가 이거 큰 일 나겠네 그려. 참으로 큰 일 나겠어.
은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사옵니다.
씬 아지태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아지태와 강장자가 밀담을 나누고 있다.
아지태 곧 조회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강장자 이미 입시하라는 패를 받았소이다.
아지태 국호와 더불어 연호가 바뀌었고, 이제 정부의 조직까지도 모조리 바뀌게 되었소이다.
강장자 참으로 아학사의 힘이 새삼 느껴지오이다.
아지태 허허, 무슨 말씀을..... 아직도 한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있어요.
강장자 무엇이 말씀이오이까? 아, 나라를 통째로 바꾸시는 분이 무얼 못하셨다고 하시는 것입니까?
아지태 군부 말이올시다. 지금같은 세상에는 군부의 힘이야말로 절대적이올시다. 그 실권이 아직 넘어오지 않았어요.
강장자 무슨 말씀을....? 아니 순군부를 새로 만드시고, 병부를 저만큼 밀어내시지 않았습니까?
아지태 하지만 아직도 내원이나 은부장군이 주관하고 있는 폐하측근의 정예군인 내군이 생생하게 살아 있소이다. 그곳은 내원 그 사람이 장악하고 있어서 요지부동이고 난공불락이예요. 그곳을 어떻게하든 차지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추진해야 합니다.
강장자 그렇습니다. 허지만 그리 멀지 않아 보입니다. 아학사께서 하시는 일은 하나같이 빈틈이 없습니다.
아지태 하지만 그럴수록 조심해야 합니다. 우선 왕건이를 밖으로 쫓아 보내고 두 분 태자마마를 언제라도 보위에 오르실 수 있도록 은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하오이다.
강장자 알겠습니다. 그 점은 염려를 놓으시구료.
아지태 이제 다되어 가고 있소이다. 저 황제를 폐위시키고 태자마마를 보위에 올리는 일입니다. 아마도 기회를 보아서 순군부의 군대를 동원하는 정변이 필요하겠지요. 황궁을 점령하고 내원과 내군의 은부를 먼저 없애야 할 것이외다. 그리고, 의형대와 내봉성 관리들을 동원하여 일사천리로 법을 집행하고 벼슬들을 바꾸어 버리면 우리의 거사가 끝나는 것이외다.
강장자 참으로 그럴 듯한 말씀이외다. 이 사람은 벌써 마치 대사가 다 끝난 것 같은 기분이외다.
아지태 아니올시다.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조금 더........
씬 왕건의 집 마당
씬 동 집 사랑
태평과 능산, 왕신이 함께 모여 있다. 두 부인도 보인다.
태평 곧 조회가 있다 들었습니다. 나라 이름과 연호가 바뀌고 조정 신료들의 벼슬과 소임이 대폭 바뀐다 합니다.
왕신 그렇사옵니다. 이미 소문이 자자하옵니다.
능산 벼슬도 바뀌고 나라 이름도 바뀐다면 결코 적은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태평 주군께서는 알고 계시던 일이었습니다.
능산 만약에 우리가 다시 전선으로 주군을 뫼시고 간다면 이 황도가 어찌될지 걱정이올시다.
태평 아무래도 한동안은 아지태 그 사람의 판도가 되겠지요. 허지만 그렇게 만만히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원 그 사람이 그저 보고만 있겠습니까?
능산 그렇기는 하지만.......
유씨 서방님께서 다시 전선으로 가시는 것이 확정되었습니까?
수인 형님, 서방님께서 그 일 때문에 지금 황궁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유씨 서방님께서는 참으로 나주와 인연이 깊으신가 보네. 벌써 몇 번째 그리로 가시는가?
모두들 ......
씬 황궁 대전
궁예와 왕건이 마주 앉아 있다. 궁예는 여전히 술을 따른다.
궁예 이제부터는 이 나라가 태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야. 연호는 수덕만세이고.... 삼한을 통일하면서 저 북방 대륙이 통째로 다 태봉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야. 자,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어서 외워 보게. 이 나라 이름 말이야.
왕건 태봉국이라 하시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그렇지. 태봉이야, 태봉. 마진이라는 나라 이름도 그랬지만 이 태봉이라는 이름 역시도 대 동방국을 상징하는 것이야. 이루어야 해. 말뿐이 아니라 보여주어야 한단 말이야.
왕건 예, 폐하.
궁예 일단 아우가 오기 전까지는 아지태 그 자가 한동안 나라를 좀 맡고 있을 게야.
왕건 예, 폐하.
궁예 하지만 말이야. 아우가 돌아올 때까지만이야. 아지태는 그걸 모르고 있어. 허허허..... 지금 신이 나서 모두가 제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는 줄 알지.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음....?
왕건 ...... ?
궁예 빨리 나주의 일을 해결하고 돌아오게. 그 다음부터 이 태봉이라는 큰 배를 아우가 맡아.
왕건 폐하...?
궁예 언젠가 우리는 약속하지 않았는가? 거대한 세상을 우리 둘이 이루어 보자고. 헌데..... 세상일이 마음대로 안돼..... 나 말일세. 지금 많이 힘이 들어. (사이) 정말 힘이 들어. 마음은 십리 밖 앞에 가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 아우가 나를 도와주게. 내가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는 지 보이지 않는가? 나라 이름을 몇 번씩 바꾸어 가면서 내가 왜 이렇게 하겠는가? 나 좀 도와주게, 아우. 아니 도와주는 것이 아니야. 함께 가자는 것이야. 이 태봉은 바로 아우의 것이야. 알겠는가, 아우? 정말 너무 힘이 들어. 힘이 들어.......
그런 궁예의 절박한 표정에서.......
< 95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