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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선 순천대 교수(2009년 11월 모습). |
안옥선 순천대 철학과 교수가 10월 27일 오후 4시 37분 위암으로 사바세계를 떠났다. 향년 49세. 독신. 빈소는 광주 조선대학교 장례식장 제2분향소이며, 발인은 29일이다.
그의 타계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교학계가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중표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불교윤리를 통해 현대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학자였다”며 “불교학계로서는 참으로 안타깝고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고 애도했다.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도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빈자리가 더욱 커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광영 전 불교시대사 사장은 “가장 불교를 사랑하고 가장 불교를 열심히 연구했던 아름다운 학자였다”며 “그의 맑은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남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부친인 안진오 전남대 명예교수의 권유로 불교학을 시작한 안 교수는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바가바드기타 연구」로 석사학위를, 미국 하와이대에서 「초기불교와 선진유교 윤리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까지 안 교수는 10여 권의 저술과 번역서 그리고 50여 편에 이르는 논문들을 발표해왔다. 이 중 『불교윤리의 현대적 이해』(2002)는 초기 불교윤리에 다양한 서구의 윤리이론을 접맥시키고 비교 고찰함으로써 초기불교 윤리의 독특성을 드러낸 역작으로 손꼽히며, 『불교의 선악론』(2006)은 불교 윤리학의 기초를 수립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불교와 인권』(2008)은 윤리적 관점에서 불교인권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제시한 기념비적인 저술로 평가받았다.
실제 안 교수의 연구 활동 전까지만 해도 불교의 인권사상은 극히 일천했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일각에선 불교에는 인권개념조차 없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되곤 했다. 무아를 주창하는 불교는 자아의 소멸을 지향하지만 인권은 자아의 확립을 전제해야 하므로 불교와 인권은 상충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였다. 이에 대해 안 교수는 불교에 독특한 인권사상이 있음을 논문과 저술을 통해 지속적으로 밝혀왔다. 즉 불교는 무상하기 때문에 오히려 온 존재가 차별 없이 평등하게 대우 받아야 할 존중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반론의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교사상을 토대로 “인권의 의미가 인간존중에서 동물 존중으로, 동물존중에서 온 생명존중으로, 온 생명 존중에서 온 존재 존중으로 확산돼야 한다”는 제4의 인권을 제안해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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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청송학술상 시상식 모습(안옥선 교수와 가족들.) |
이렇듯 안 교수의 논문과 저술은 불교계는 물론 일반 학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999년 불교 논문으로는 처음으로 철학연구회의 ‘올해의 논문상’을 받았으며, 지난해 11월에 제3회 청송학술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학문이 동서양 철학 사이에 가교를 놓는 학문의 메신저인 동시에 각박한 세상에 자비를 드리우는 희망의 철학이라는 평가와 무관하지 않았다. 한자경 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학문과 삶을 이원화 시키지 않고 자신이 학문적으로 궁구하는 윤리적 삶의 태도를 자신의 삶에서 몸소 실천하고자 하는 분이다. 탐진치를 제거한 부처님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오직 고통 받는 일체 생명에 대한 자비의 마음뿐이듯 안 선생님의 마음에도 그런 따뜻함이 있는 듯싶다”고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이런 안 교수가 자신의 몸에 악성 종양이 자라고 있음을 안 것은 지난 2월말이었다. 잦은 소화불량 때문에 찾은 병원에서 진단 결과 위암으로 판명됐고, 그 때부터 본격적인 암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대학 강의를 잠시 접고 3월 11일 위암수술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5월초부터 8월말까지 계속된 항암치료는 그를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다. 치료가 진행될수록 마른 몸은 더욱 말라갔다. 그럼에도 안 교수는 명상과 수식관으로 스스로를 추슬렀고 주변사람들을 오히려 위로하며 틈틈이 글까지 썼던 것으로 가족들은 전했다. 특히 성실한 투병으로 한때 병세가 크게 호전되면서 안 교수는 지난 9월 대학 강의를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가르치겠다는 안 교수의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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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옥선 교수가 불교와 인권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
그러나 약해질 대로 약해진 체력은 그를 대학 강단에 더 이상 설 수 없도록 만들었다. 지난 9월말 추석을 전후해 다시 병세가 악화되기 시작해 지난 10월 중순 다시 입원한 안 교수는 급성신부전증 등 합병증으로 끝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안 교수의 친언니 안진 씨는 “약한 체력으로 독한 항암치료를 더 이상 견뎌낼 수 없었던 같다”며 “투병하면서 동생은 이제는 인간과 생명을 새롭게 보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은 자주 했다”고 전했다.
매일 아침 1시간여의 산책과 6시간의 수면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늘 강단에 서거나 서재에 묻혀 지냈던 사람, 여성학자인 한나 아렌트와 주디스 버틀러를 닮고 싶어 했고, 빈센트 반 고흐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사람. 동물, 트랜스젠더, 여성, 비구니 등 차별 받는 이들이 위해 모든 학문적인 열정을 불태웠던 사람.
지난해 11월말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언젠가 꼭 하고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진 빚 되갚고 가진 것 다 버려보는 것”이라고 대답했던 안 교수. 그는 49세라는 아직 젊은 나이에 ‘진 빚’은 물론 모든 학문적인 열정까지도 훌훌 털어버리고, 많은 이들의 탄식과 눈물을 뒤로 한 채 끝내 삼도천(三途川)을 건넜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1070호 [2010년 10월 28일 16:54]
첫댓글 진정 학문을, 불교를 사랑했던 분... 안옥선 교수!!!
선재동자님 쪽지를 보십시요.
안탑깝네요.
...()()..
어머 어쩐대요.불교의 시스탬 이론을 이교수에게 번역하게 했던 초기불교에 공적이 지대하신 분이십니다.
아타까운 학자분이 ..야속한 세상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