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 섬(Kos Island)
길이 42 km, 폭 8 km 의 가늘고 긴 섬이다. *도데카니사(Dodekanissa)제도 중에서 크기나 관광객 수에 있어서
로도스 섬 다음 가는 섬이다. 코스 섬으로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것은 의술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Hippokrates)가
태어난 곳이어서 병원이나 의학교로 사용되던 히포크라테스의 유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전도-
**註 : 도데카니사(Dodekanissa)제도는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 남서 해안을 따라 징검다리 처럼
놓여있는 13개의 섬들을 말한다. "도데카니사"란 12를 의미하지만 실제로는 13개의 섬이 있다.
위의 지도는 그리스 전도에 유명한 해수욕장을 표시한 안내판 그림에다 필자가 터키와 주변 국가를
추가로 그려 넣은 것이다. 지리부도를 펼쳐 보면 에게해에는 수백개의 섬들이 흩어져 있다.
이들 중 갈리폴리 반도 앞에 단 두개의 작은 섬만이 눈에 뜨이는 터키의 영토로 되어 있다.
그리스 영토 주위에 주변 국가를 그려 넣지 않은 역사적이거나 정서적인 이유가 있을 것같다.
-보드룸 성과 보드룸 시를 뒤로하고.....-
** 선미 물결만을 남기면서 터키에서 다시 그리스로 향한다.
-코스 섬을 향하여, 침로 180도-
-우현 쪽으로 보이는 터키 해안의 하얀 건물들-
-상갑판(Sun Deck)의 풍경-
-선수엔 그리스 국기, 선미엔 터키 국기-
-코스(Kos)항 풍경 # 1-
-부두 앞에 서 있는 네라티아 요새(Neratia Fortress : The castle of Kos)-
** 네라티아 요새로 불리는 코스성은 항구 입구에 자리 잡고있는 가장 저명한 유적이다.
이 성은 1314년 예루살렘에서 철수해 온 성 요한 기사단에 의해 축성되었는데
터키에 의해 함락되던 1522년까지 기사단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이 성은 소 아시아 연안의 할리카르나쏘스(보드룸)와 함께
해상 교통로를 확보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것이다.
-성채 입구와 연결된 육교-
**구시가지에서 성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놓인 이 돌다리는 원래 해자 위에 놓인 다리로
20세기 초까지 성채는 섬이였었다. 물이 채워져 있던 해자는 도로가 되어 차량들이 다니고
다리 북쪽 끝(右측)에는 적의 공격시 들어 올릴 수 있는 가교가 있었다.
-히포크라테스 푸라타나스(Hippokrates Plane Tree)-
** 성문 앞에는 보호수인 커다란 푸라타나스가 있는데 "히포크라테스의 푸라타나스"로 불린다.
이 나무 아래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인술을 베풀었다고 한다. 당시의 둥치는 없어졌을 터이고
주변 뿌리에서 새싹이 자라서 대를 이어오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복원 전의 코스 성채(The Fortress of Kos)
** 이 요새는 고대에는 물론 비잔틴 시대에 요새화 되었을 것이지만 현재의 모습은
전적으로 기사단에 의해 이루어 진것이며 탁월한 방어시설의 본보기인 것이다.
축성은 두 단계로 구분 되는데 첫번(14 c)은 내성의 4각형 성벽이며
두번째는 1495년, 기사단장 다우부쏭(Grand Master d'Aubusson)에 의해서 였고
1514년 까르레또(Carretto)에 의하여 외성이 완성되었다. 내성의 동쪽 성벽은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쌍 아취(Double Arch)-
** 성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만나게 되는 두개의 아취이다. 왼편은 내성으로 들어가는 아취이고
오른편은 외성에 접해있는 주거 시설이다. 기념품점과 유물 전시관이 있다.
-수습된 유물들-
-남서쪽 포대 근처에서 바라본 항구-
**외성 성벽은 두께가 엄청나게 두터워 총안의 바닥에는 잡초가 초원을 이루고 있다.
-외성에서 바라 본 내성-
** 내성과 외성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 외성에서는 어디서나 항구와 에게海가 보인다.
-외성 성벽의 배수구-
**해자에는 만조시 바닷물을 채우기가 가능하였을 것이며 때로는 배수를 위한 대형의 양수 및 배수구가
필요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외성 서쪽 타워-
- 퇴락한 북쪽 외성 여장의 일부-
**국가 혹은 영주와 같은 권한을 가진 기구가 아닌 십자군 기사단으로서는 축성에 필요한 자재 획득이
어려웠을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성벽에는 잡석은 물론 구시가지의 건설 폐자재 까지 사용하였다고 한다.
-부러진 대포의 포신들-
** 보드룸(Bodrum)에서도 목격한 바가 있는 부러진 포신은 이곳에서도 예외는 아니었고
포강에 포환이 막혀있음을 볼수가 있다. 또한 부러진 단면은 공통된 모양(단면의 1/3에서 물결 무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공통된 파괴의 원인이 있었음과 당시의 제강기술의 수준을 말해 주는 것이다.
-코스 시내-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의 동상-
** 선창가에서 멀지 않은 작은 근린 공원에 이 동상이 있다. 오른편 여인이 앉아있는 나무 의자에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네번째 구절이 새겨져 있다. 왼편에 삽입한 사진은 나폴리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히포크라테스의 대리석상 사진이다.
-아스클레피온(Asklepieion) 복원도-
**아스클레피온(Asklepieion)은 구 도시로 부터 서북쪽으로 3.5 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코스 섬에서 가장 유명한 유적이다. 이곳은 히포크라테스가 창건한 병원 겸 의학교로
지금은 의술의 神 아스클레피오스를 제사지내던 신전터로 남아있다.
아스클레피온은 3단의 테라스로 조성되어 있다. 나즈막한 언덕 경사면에 서 있는 유적에서는
에게해와 소아시아의 해안이 바라다 보인다. 전단지에는 터키를 소아시아(Asia Minor)로 표현하고있다.
범 례
1. 입구 2. 헬레니즘식 스토아 3. 변 소 4. 5.옹 벽 6. 샘(spring) 7. 계 단 8. 제단 9. 코린트식 신전
10.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11. 사제관 혹은 환자 치료소 12. 계단 13.도리아식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14. 스토아
- 1층 테라스(terrace)-
** 1층 테라스는 넓은 광장에 ㄷ자 모양의 열주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아고라(Agora)이다.
현재는 기초의 흔적만 남아있다. 2층 테라스는 벽감이 있는 옹벽이 경계를 짓고 있고
2층 테라스로 올라가는 계단 왼편 세번째 벽감에는 분수 형태의 샘(spring)이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코스 내방을 환영하는 그림의 모자이크-
** 1층 테라스 동쪽에 있던 AD 3세기의 로마 목욕탕 건물 바닥 장식이다.
-샘물이 흐르는 벽감-
**세번째 벽감이 샘으로 현재는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이끼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상태이다.
-2층 테라스의 코린트식 신전-
** AD 2세기의 코린트식 로만 신전(Roman Temple)이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 BC 3 세기의 이오니아식의 가장 초기의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다.
-3층 테라스의 아스크레피오스 신전 기단-
** 3층 테라스가 건설된것은 BC 3세기 초로서 2층보다 11 m 가 높다. 계단의 폭은 38.15 m 로 넓다.
- 아스크레피오스 신전 터-
** BC 2 세기의 도리아식 아스클레피오스 신전터만 남아있고 상부 건물은 요한 기사단이
성채를 건설하기 위해 실어갔다. 맞은편 해안은 그리스식 표현으로 소아시아(터키)지방이다.
-3층 테라스에서 내려다 본 2층 테라스의 신전-
-항구 남쪽에 위치한 고대 도시의 유적-
** 지금의 코스(Kos)에 인류가 정착한것은 청동기 시대(2300-2000 BC.)부터 였다.
미노스 와 미케네 시대(2000 BC.)에 정착지의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933년 진도 6.6의 지진으로
항만지역(Harbour Quarter-Agora)이라고 불리는 30,000 평방 m 의 고대도시 유적은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1934년-1942년 어간에 이탈리아 고고학회가 대대적인 발굴에 참여하여 아프로티테 성소, 헤라클레스 성소 등
다수의 유적이 빛을 보게 되었다.
-도시 방어 성벽-
** 요한 기사단은 터키의 침공에 대비하여 구도시도 요새화하였다. 구도시 주변에 방어시설이 남아있다.
-해안가 풍경-
-해안가 여행자 숙소의 낮과 밤-
-연안 부두 벤치를 점령하고 있는 어린이들-
** ㅍ훼리선 출항 시간 정보의 착오가 있어 우리 여행팀 뿐 아니라 다른 여객들도
2시간 전에 부두에 나와 기다리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 어린이들은 사범님이 "자리를 양보하라"고 말하자 전부 냉큼 일어나 자리를 여행자들에게 양보하였다.
-어디서 많이 본 로고-
** 어린이들의 유니ㅍ옴 등 뒤에 태권도 로고가 새겨져 있다. 이 어린이들은
로도스 섬 학생들인데 코스 섬에서 열리는 태권도 경기에 참가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지중해의 난민들-
-항구의 일출-
**코스(Kos) 섬에서 로도스(Rhodos)섬으로 가는 ㅍ훼리가 07:05시에 떠난다기에 조반도 먹지 못하고
항구로 나왔으나 2시간 후에야 떠난다는 것이었다. 몇개월 전에 짜 놓은 여행 스케줄이라 선박 운항시간에
차질이 생긴것을 몰랐던것이다. 덕분에 화려하지는 않으나 항구의 일출을 보게되었다.
때마침 왼편으로부터 선박 한 척이 지나가고 있었는데 실루엣의 모양으로 보아
어선이나 유람선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중해의 태공-
** 남는 시간을 어슬렁 거리다 만난 태공이다.
-계류 중인 선박-
** 떠오르는 태양이 던지는 물결위의 반사광 속을 지나던 실루엣의 주인공이 모습을 보이며 항구로 들어와
ㅍ훼리선 부두 맞은편 선창에 계류를 하였다. 작은 선박의 갑판 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선박을 보는 순간 특이한 예감과 함께 호기심이 생겨 맞은 편 선창으로 달려갔다.
-해안 경비정으로 보이는 선박-
** 선박의 헐 넘버(Hull NO.: 선체 고유번호)가 유람선이나 어선이 사용하지 않는 LS-616(좌현에 쓰여있는
LIMENIKO SOMA의 첫자 LS) 과 그 밑에는 HELLENIC CO만 보이지만 고무보트에 가려진 CO는 분명
COAST GUARD(해안경비대)가 틀림없을 것이다.
-선수 갑판 위의 승객(?)들-
** 갑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승객들은 분명 승조원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아닐것이다.
-선미 간판 위의 승객들-
** 승객 중에는 여인들과 아이들도 보인다.
-하선한 승객들-
** 선창으로 달려가는 사이 승객들은 하선 하였다.
-기자들의 취재-
**어른들과는 대조적으로 어린 여아가 카메라를 향해 밝은 표정을 짓고있다.
-카메라를 피하는 사람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 해안경비정을 타고 온 이 사람들은 분명 "지중해의 난민"일것이다. 모든것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지중해를 떠돌다가 본의 아니게 잡혀(?) 온 사람들이다.
이들의 심경과 앞으로 겪게될 운명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없다.
-취재진-
** 이 장면을 찍고 돌아서려는 순간 경찰 한 명이 달려와 "당신은 누구냐?" 그리고 카메라를 보자고 요구하였다.
"Korea에서 온 관광객이다"라고 공손히 말했지만 궂이 찍은 사진을 보자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찍은 위의 사진을 모니터로 보여주며 "이거 한장 찍었다"고 하자 "삭제하라"고 명령하였다.
하는 수없이 지우기 버튼을 누르니 "휴지통 모양의 아이콘" 이 보이자 경관은 'OK'하며 돌아섰다.
필자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실은 주행랑을 쳤다. 잘못 반항했다가는 메모리나 카메라를
압수 당할 수도 있고 또 연행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우기 버튼"을 눌렀지만 "확인" 버튼을 누르지 않아
위의 사진도 살아 남았다.
- 로도스(Rhodos)로 갈 ㅍ훼리선_
**타고갈 ㅍ훼리선은 이미 접안되어 있었다.
-코스(Kos) Old City의 성 요한 기사단의 성을 뒤로하고-
**올 들어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발을 디딘 난민이 35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2600명이 지중해에 수장되었고
실종자가 18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천진 난만한 난민 아이들이 눈에 선하다.
-어떤 승객 # 1-
**객실에 공간이 있거나 한적한 곳에 이부자리까지 펴놓고 잠자는 승객도 있다.
-어떤 승객 # 2-
-중간 기착지 틸로스(Tilos)섬-
**부두는 조그마하고 보잘것 없지만 크루즈 선 만큼이나 개끗하고 큰 ㅍ훼리선이 운항되는것을 보면서
한국의 여건이 이곳과는 다를지라도 세월호를 탄嘆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역과 승선-
** 조그마한 연안 부두가 잠시 부산하더니 배가 이안(離岸) 하기도 전에 이내 조용해졌다.
-태권도 수련생들과 사범님의 하역작업 구경-
-태권도 수련생들의 카드 놀이-
** 수련생들은 한창 기고만장할 나이들일 것 같았으나 예의 바르고 행동거지는 조용했다.
-선내 침실-
-선내 라운지 와 간이 식당-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