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성품 변화 (눅 9:51-56)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이 시간에는 “요한으로 본 성품 변화”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품처럼 귀한 것이 있을까요? 교회에서 일군을 뽑을 때도 얼굴, 재력, 권세, 명예 그것은 아무 이미가 없습니다. 첫째가 믿음이고 다음은 성품입니다. 이걸 구비했다면 그 사람은 물을 필요도 없습니다. 어디 가서도 환영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장 사랑이 많은 제자를 들라고 하면 요한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죽어가면서도 형제들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본래 요한의 성품은 대단히 거칠고 불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걸 보고 야고보와 요한이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기를 원했을 만큼 성격이 불과 같았습니다.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요한과 그 형제 야고보를 우뢰의 아들이라 하셨을까요? 타고난 성품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사도 요한이 제자 중에서도 가장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변합니다.
요한을 통해 본 성품 변화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자기를 아는 것입니다.
막3:17에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우레는 뇌성벽력입니다. 우레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은 늘 자기의 약점을 돌아보고 기억하게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고치지 못한 이 성품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처럼 자기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별명을 지어주신다면 뭐라고 지어주실까요?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자기 별명 한 번 지어보세요. 성격이 고약한 어느 분이 형의 전도를 받고 교회 나왔는데 인사 그 이상의 말을 하지 않습니다. 형이 동생을 전도하면서 그 성질을 알고 '너 교회 나가면 벙어리가 되라'고 당부했기 때문입니다. 자기 약점을 알았습니다. 벧전4:3에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했습니다. 경쟁하듯이 '내가 더 큰 도적이었다.' 하면서 옛날 일 자랑으로 알면 안 됩니다.
2. 예수님을 가까이했습니다.
요13:23에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당시 유대인들의 식사습관은 비스듬히 누워서 하는 것이었는데 요한은 다른 제자와는 달리 예수님의 품에 안겨 누웠습니다. 그만큼 평소 예수님에 대해 친밀감을 가졌습니다. 학자들은 당시 요한의 나이가 10대 후반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가족의 배경을 살펴보면 대제사장 가야바와 친분을 가질 만큼 가버나움에서 유력한 집안의 자제였습니다. 그리고 요1:35에 보면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습니다. 그가 불의를 참지 못한 것도 그런 배경의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의를 용납지 않는 것은 좋지만 혈기로 연결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스승 세례요한의 소개로 요한과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을 구하느냐”고 묻자 그들은 예수님의 거처를 물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요1:39). 예수님의 제자가 되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품이 변화되려면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교회를 가까이하고 성경을 가까이하고 기도를 가까이하고 좋은 친구들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한의 나이가 어렸다는 것입니다. 어리면 쉽게 바뀝니다. 어릴 땐 좋은 친구였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너무나도 많이 바뀝니다. 현명하던 사람이 바보 같은 생각만 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나이 먹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만나서 자꾸 상처가 된다면 만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루라도 빨리 주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들이 변화되는 길입니다.
3. 오순절을 체험했습니다.
행2:1-4에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 충만 받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의 열매 때문입니다. 갈5:22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4. 꾸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행3:1에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한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좋은 전통이 있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9시, 12시 그리고 3시에 기도합니다. 제 구 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유대인은 기도하는 민족입니다. 초대교회는 유대인들의 좋은 면은 본받았습니다.
특히 요한은 세례요한의 제자였기 때문에 광야에서 기도로 단련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그가 에센파(the Essenes)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에센파는 세속을 떠나 수도원 공동체 생활을 하며 절제와 기도와 복음전도에 힘쓴 아주 경건한 교파입니다. 그런 영향이 없지 않아 있었을 것입니다.
5. 많은 체험의 사람이었습니다.
계1:9에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 이 말씀대로 그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환난에도 참여했을 뿐 아니라, “나라” 원문에‘바실레이아’ 하나님의 왕국이라는 뜻입니다. 천국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온갖 것을 다 경험해 본 사람이 바로 삽니다. 잠29:18dp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고 모르니까 함부로 행합니다. 요한은 천국도 보고 지옥도 본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주먹 자랑하고 권세 자랑하고 분파를 만들고 함부로 하는 사람들 지옥에 있더라고 하지 않습니까? 요한처럼 체험해 본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열매로서 알지니 한 것처럼 그 성품으로 명확히 갈라집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으면 하나님의 자녀, 마귀의 성품을 닮았으면 마귀의 자녀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자신의 악함을 깊이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변화하여 온전히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듭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