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하나 있었다. 둥근 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우물은 오래된 세월만큼이나 깊었다. 굵은 밧줄 끝에는 놋쇠 물동이가 매달려 있었고, 물동이가 천천히 수면으로 내려갈 때마다 고요하던 물결은 둥근 원을 그리며 퍼져 나갔다. 그 작은 파문은 우물 벽을 따라 번지고 다시 가운데로 돌아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그 안에서 시작되고 다시 그 안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우물이 있었다. 새벽이면 어머니는 가장 먼저 우물가로 향했다. 두레박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마다 “풍덩” 하는 소리가 골목의 아침을 깨웠고, 가득 담긴 물동이를 끌어올릴 때는 밧줄이 돌테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장독을 씻고 마당에 물을 뿌렸다. 우물은 한 집안의 생명을 길어 올리는 샘이었다.
그때는 물이 귀한 줄 몰랐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물이 나오는 세상에 익숙해진 지금, 두레박 하나를 올리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던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우물은 단순한 시설이 아니라 삶의 철학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물은 욕심을 모른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똑같이 물을 내어 준다. 부자라고 더 맑은 물을 주지 않고, 가난하다고 덜 퍼 주지도 않는다. 말없이 품어 두었다가 필요한 만큼만 내어 준다. 자연은 언제나 공평했다.
물동이가 물속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오래 바라본다. 가득 찰 때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소용이 없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고, 조금 더 깊이 내려가야 한다. 성급하게 끌어올리면 물은 절반밖에 담기지 않는다. 삶도 그렇다. 마음이 충분히 익기도 전에 결과만 바라면 빈 두레박만 들고 돌아오기 쉽다.
깊은 것은 언제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물의 물이 맑은 이유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가라앉히기 때문이다. 흙탕물이 일어나도 시간이 지나면 흙은 바닥으로 내려앉고 맑은 물만 위에 남는다. 사람의 마음 또한 흔들릴 때는 기다림이 약이다. 시간이 지나야 분노는 가라앉고, 미움은 희미해지며, 진심만 남는다.
그래서 우물은 침묵을 가르친다. 말이 많을수록 물은 흐려지고, 침묵이 깊을수록 마음은 맑아진다. 깊은 사람에게서 함부로 말이 쏟아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우물가에서는 늘 사람들이 만났다. 물을 길으러 나온 이웃들은 안부를 묻고, 계절을 이야기하고,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기뻐했다. 우물은 물만 퍼 올리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정을 길어 올리는 자리였다. 세상은 가난했지만 마음은 지금보다 훨씬 넉넉했다.
오늘날에는 우물이 거의 사라졌다. 편리한 수도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정수기가 물맛까지 책임진다. 그러나 편리함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의 마음은 오히려 메말라 가는 것은 아닐까. 물은 쉽게 얻지만, 사람의 온기는 점점 얻기 어려워졌다.
문득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속에도 우물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목마를 때 사랑을 길어 줄 수 있는 우물, 절망에 빠진 이를 위해 희망을 퍼 올릴 수 있는 우물, 외로운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 한 바가지를 건넬 수 있는 우물 말이다. 그 우물은 돈으로 만들 수 없다.
오랜 시간 흘린 땀과 기다림, 용서와 배려가 한 방울씩 모여야 비로소 깊어진다. 그래서 사람의 품격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우물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두레박을 다시 물속으로 내린다. 밧줄은 천천히 풀리고 놋쇠 물동이는 깊이를 향해 내려간다. 깊은 곳일수록 물은 더 차갑고 더 맑다. 삶도 가장 깊은 자리에서 비로소 진실을 만난다. 가득 찬 물동이를 들어 올리자 투명한 물줄기가 햇살을 받아 반짝인다. 넘쳐흐른 물은 다시 땅으로 스며들어 또 다른 샘을 키운다. 나눔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생명을 키우는 일임을 우물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세월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초가집도 사라지고 우물가의 웃음소리도 기억 속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목마르다. 물이 아니라 이해에 목마르고, 성공이 아니라 위로에 목마르며, 풍요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에 목마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우물을 만날 때마다 한동안 발걸음을 멈춘다. 돌틈마다 스며든 시간과 두레박이 남긴 마모의 흔적, 수많은 손길이 닿았던 밧줄의 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는 한 마을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물은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다만 깊은 곳에서 맑은 물을 길어 올리듯, 우리도 하루하루 삶의 바닥까지 마음을 내려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서두르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스스로를 가라앉히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언젠가 우리 가슴에도 누군가의 갈증을 기꺼이 적셔 줄 맑고 깊은 우물 하나가 생겨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