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축(角逐)
겨루고 쫓는다는 뜻으로,
서로 이기려고 세력이나 재능을 다툼.
角 : 뿔 각
逐 : 쫓을 축
[동의어]
각축지세(角逐之勢)
호각지세(互角之勢)
[유의어]
녹사수수(鹿死誰手)
중원축록(中原逐鹿)
축록(逐鹿)
각(角)은 '다투다', 축(逐)은 '쫓아가다'란 뜻으로, '각축'은 쫓고 쫓기면서 다투거나 경쟁하는 것을 가리킨다.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치열하게 승부를 겨루는 형세를 비유하는 말이다. '각'은 본래 뿔을 의미하는데, 짐승의 뿔을 잡아 붙잡는 데서 그 뜻이 유래되었다 한다.
위(魏)나라의 공자 위모(魏牟)가 조(趙)나라를 지나가자 조왕이 그를 영접했다. 조왕은 장인(匠人)을 시켜 비단으로 모자를 만들고 있었는데, 장인은 손님이 오자 자리를 비켜 주었다.
조왕이 치국의 도리를 묻자 위모가 대답했다.“대왕께서 이 비단을 중히 여기듯이 나라를 다스린다면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조왕은 기분이 언짢아 얼굴에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선왕께서 과인이 무능한 것을 모르시고 과인에게 국가 대사를 맡기셨습니다만, 내가 어찌 국가 대사를 가볍게 처리하겠습니까?”
위모가 말했다.“대왕께서는 화내지 마시고 제 설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는 왜 시종에게 이 비단으로 모자를 만들게 하지 않습니까?”
조왕이 말했다.“내 시종이 모자를 만들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위모가 말했다.“만약 시종에게 모자를 만들게 했는데, 잘 못 만들면 국가에 무슨 손해라도 납니까? 하지만 대왕께서 반드시 장인에게만 시켜야겠다면서 지금 나라를 다스리는 장인을 모자를 만드는 장인처럼 대우하지 않으시니, 이렇게 하시면 국가는 다른 사람에게 짓밟혀 폐허가 될 것이며 종묘에 더 이상 제사를 올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선 국가 대사를 정말로 잘 다스릴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지 아니하고 총애하는 신하에게 맡기셨습니다. 대왕의 선왕께서 서수(犀首)에게 수레를 씌우고, 마복(馬服)을 곁말로 세워 진(秦)나라와 각축을 벌였을 때, 당시 진나라는 그 예봉을 피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려 건신군(建信君)을 중용하여 강한 진나라와 자웅을 겨루려 하시니, 신은 앞으로 진나라가 왕의 날개를 꺾을까 걱정이 됩니다.”
王之先帝 駕犀首而驂馬服
왕지선제 가서수이참마복
與秦角逐 秦當時避其鋒.
여진각축 진당시피기봉.
今王憧憧 乃輦建信以與强秦角逐
금왕동동 내련건신이여강진각축
臣恐秦折王之翰也.
신공진절왕지한야.
이 이야기는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에 나오는 이야기로, 건신군이 조나라에서 중용되자 조나라의 앞날을 걱정한 위모가 조왕에게 충고한 말이다.
위모가 한 말 가운데 '대왕의 선왕께서 서수에게 수레를 씌우고, 마복을 곁말로 세워 진나라와 각축을 벌였다'에서 각축(角逐)이 유래했는데, 이를 의역하면 '대왕의 선왕께서 서수와 마복군 같은 유능한 사람을 임용하여 진나라와 자웅을 겨루었다'이다.
서수는 공손연(公孫衍)의 관직이라고도 하고 호라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사기집해(史記集解)에서 사마표(司馬彪)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데, 이에 근거하여 서수를 관직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犀首 魏官名 今虎牙將軍.
서수 위관명 금호아장군.
서수는 위나라 관명으로, 오늘날의 호아장군에 해당한다.
공손연은 연횡책을 주장한 장의(張儀)와 동시대 인물로, 합종책을 주장했으며, 한때 다섯 나라의 재상을 지낸 유능한 인물이다. 마복은 조나라의 명장 조사(趙奢)의 호다.
각축(角逐)은 각축지세(角逐之勢), 혹은 호각지세(互角之勢)라고도 한다.
角(각)은 상형문자로 짐승의 뿔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뿔, 모서리'를 뜻한다. 일부 명사 앞에 붙어 '뿔로 만든, 뿔'의 뜻을 나타낸다. 술을 담거나 되로 삼아 물건을 되거나 하였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모날 릉/능(稜)이다. 용례로는 짐승의 뿔로 만든 잔을 각배(角杯), 짐승의 뿔 같은 형체를 각상(角狀), 네모진 화분을 각분(角盆), 각축을 벌이는 곳을 각축장(角逐場), 승부를 겨루는 싸움을 각축전(角逐戰), 서로 대립하여 겨루고 대항함을 각립대좌(角立對坐), 뿔이 있는 놈은 이가 없다는 각자무치(角者無齒) 등에 쓰인다.
逐(축)은 회의문자로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豕(시; 돼지)의 합자(合字)이다. 짐승을 에워싸 쫓음의 뜻이다. 바둑을 둘 때에 끝까지 단수에 몰리어 죽게 되는 경우를 말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쫓을 추(追)이다. 용례로는 쫓아 내거나 몰아 냄을 축출(逐出), 하루 하루를 쫓음을 축일(逐一), 차례대로 좇아 함을 축차(逐次), 차례대로 좇아서 하는 모양을 축차적(逐次的), 사슴을 쫓는다는 축록(逐鹿), 고라니를 쫓는 개는 토끼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축미지구불고토(逐麋之狗不顧兔), 짐승을 쫓는 사람의 눈에는 태산(泰山)이 보이지 않는다는 축수자목불견태산(逐獸者目不見太山) 등에 쓰인다.
거문도 사건과 주변국들의 각축
1885년~1887년
조선은 갑신정변을 겪으며 청과 일본의 간섭과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에 시달려야 했다. 이렇게 혼란한 정국 속에서 1885년 영국 함대가 거문도를 무단으로 점령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조선은 열강의 각축장이 되기 시작했다. 거문도 사건은 영국이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범세계적인 조치 중의 하나였다.
1860년 러시아는 한반도 동해에 임해 있는 블라디보스토크 항을 강점하였으나 보다 활용가치가 큰 부동항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조선의 영흥만과 제주도, 일본의 쓰시마를 물망에 올려놓고 있었다. 러시아는 이 중에서도 함경남도의 영흥만을 가장 유력한 점령 대상지로 꼽고 있었다.
한편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정책을 대비하기 위해 1882년 조영수호의 교섭에서부터 거문도의 조차를 제의해 왔다. 하지만 조선은 영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영국은 1885년 4월 15일 군함 6척, 상선 2척을 보내 거문도를 강제 점거했다.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조선에게는 분명한 침략행위였다.
조선은 영국 부영사와 청국 주재 영국 공사대리에게 항의하는 한편, 미국, 독일, 일본에게 조정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엄세영과 묄렌도르프를 일본에 파견하여 교섭하게 하였다. 러시아는 청에 중재를 요청하였다.
이 무렵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의 갈등은 고비를 넘기고 있었다. 청의 이홍장은 이를
거문도 문제를 해결할 기회로 삼아 적극적인 중재를 하였다. 그 결과 이홍장은 청국 주재 러시아 공사로부터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영국에 통보함으로써 1887년 2월 27일 영국 함대가 철수하게 되었다.
거문도 사건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컸다. 러시아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해로를 통한 동아시아 진출에 한계를 느끼고 1891년 5월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착공하였다. 이를 전후하여 일본은 대륙으로 뻗어나가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러시아를 저지하기 위해 만주와 한반도에 대한 진출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시키고 있었다. 거문도 사건은 조선이 세계 열강의 각축장으로서 이미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
갑신정변 이후 청의 내정 간섭이 더욱 심해지자, 고종은 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세력을 끌어 들이려 하였다. 이때 러시아는 베베르를 조선 공사로 파견하여 조선에서 세력을 확대하려 하였다. 이에 조선이 러시아와 밀약을 추진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세계 곳곳에서 러시아와 대립하고 있던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한다는 구실로 남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거문도를 불법 점령하였다(거문도 사건, 1885).
조선 정부는 영국의 거문도점령이 국제법적으로 불법임을 통고하고 즉각 철수를 요구하였다. 청이 중재에 나서 러시아가 조선에서 영토를 확보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자, 영국군은 2년 만에 거문도에서 철수하였다. 거문도 사건은 조선이 언제든지 열강의 각축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 간의 대립이 격화되자, 조선을 중립국으로 만들자는 논의가 제기되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유길준은 열강이 보장하는 중립 국가를 구상하였으며, 일본에 망명 중이던 김옥균도 조선의 중립국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조선 정부의 무관심과 열강의 반대로 추진되지 못하였다.
유길준의 조선 중립화론
이제 우리나라는 지역으로 말하면 아시아의 목에 처해 있는 것이 유럽의 벨기에와 같고, 중국에 조공하던 것은 터키에 조공하던 불가리아와 같다.
(…)
대저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중립국이 된다면 러시아를 방어하는 큰 기틀이 될 것이고, 또한 아시아의 여러 대국들이 서로 보전하는 전략도 될 것이다.
(…)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이익도 될 것이고 여러나라가 서로 보전하는 계책도 될 것이니 무엇이 두려워서 하지 않겠는가.
- 유길준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