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화 돋보기』 Ⅰ
- ▣ 봄을표현한 작품들▣가족그린 그림▣노장화가들의역작▣무용수그린 작품▣대지미술▣한여름풍경그린작품▣포토리얼리즘▣명작 속▣멕시코'죽은자의날'축제'▣겨울 풍경화
◆『명화 돋보기』를 더 보시려면 아래 URL을 클릭하세요
⊙ 『명화 돋보기』Ⅰ https://blog.naver.com/ohyh45/222890834865
▣봄을 표현한 작품들, ▣가족을 그린 그림, ▣노장 화가들의 '역작', ▣무용수를 그린 작품들, ▣대지 미술(Land Art).
▣한여름 풍경을 그린 작품들, ▣포토리얼리즘, ▣명작 속 개들, ▣멕시코 '죽은 자의 날' 축제, ▣겨울 풍경화,
⊙ 『명화 돋보기』Ⅱ https://blog.naver.com/ohyh45/222891808314
▣反戰 메시지 전한 화가들, ▣어린이 그림책, ▣윤중식 화백, ▣ 청계천 다슬기 모양 조형물, ▣우리나라의 여름꽃,
▣'비'를 주제로 한 작품, ▣우정 담아낸 작품들, ▣왕과 왕족을 그린 그림,
1. 봄을 표현한 작품들 - 봄 소식 전하는 제피로스와 페르세포네 그렸어요
▲ ①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봄’. ②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그린‘프로세르피나’. ③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봄’. /위키피디아
봄은 '계절의 여왕'이라고 불립니다. 완연한 봄기운에 전국에 봄꽃이 한창인데요. 하루 자고 일어나면 연두색 잎이 나고, 또 다음 날이면 분홍의 꽃봉오리가 터져요. 이렇게 계절이 바뀌어 따뜻한 봄이 오고 꽃이 피는 자연의 섭리를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신과 인간들의 이야기로 풀기도 했어요. 봄과 관련된 이야기를 그린 그림을 소개할게요.
지하세계의 여왕과 봄
②영국 화가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그린‘프로세르피나’
먼저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활약했던 화가 단테이 로세티(1828~1882)가 그린 '프로세르피나'<그림2>입니다. 초록색 옷을 입은 이 여인은 지하세계의 여왕입니다. '프로세르피나'보다 '페르세포네'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사람이 많을 텐데요.
로마식 이름인 프로세르피나를 그리스어로 하면 페르세포네예요. 로세티의 그림 속에서 페르세포네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데요. 뭔가 후회한다는 듯 우리에게 과일을 하나 슬며시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이 과일은 석류랍니다.
페르세포네는 석류 때문에 지하에 갇혀 살게 됐지요.
어느 날 아름다운 페르세포네에게 한눈에 반한 지하세계의 왕 하데스는 싫다는 그녀를 억지로 지하세계로 끌고 갔습니다. 페르세포네의 어머니는 딸을 데려오기 위해 제우스신을 찾아가 도움을 구했어요.
제우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도와주겠소. 하지만 만일 딸이 무엇 하나라도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었다면 곤란하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은 자는 그곳 사람이라 누구의 힘으로도 빼낼 수 없기 때문이오."
안타깝게도 페르세포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석류를 한입 베어 먹은 상태였어요.
그래도 어머니의 간곡한 소원에 힘입어 다행히 1년 중 몇 달은 땅 위에서 살 수 있게 됐어요.
페르세포네는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페르세포네가 땅 위로 올라오면 여기저기 잎이 나고 꽃이 피어났어요. 봄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녀는 다시 지하세계로 돌아와야만 했어요. 페르세포네가 지하세계로 가버리면 세상의 모든 나무가 잎을 떨어뜨리고 말라붙기 시작했어요.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겨울이 되는 거죠.
봄을 가져다주는 바람
①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봄’
다음은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그림1>입니다.
이 그림도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그린 건데요. 가운데에는 사랑과 아름다움, 풍요의 여신 비너스가 서 있고 그 옆으로는 세 여인이 기쁨의 춤을 추고 있어요. 우아함의 축복을 주는 여신들인데요.
봄에는 아름답고 우아한 여신들이 총동원된다는 걸 나타낸 거예요.
그림 위쪽에는 비너스의 아들이자 사랑의 신 큐피드가 눈을 가리고 마구 사랑의 화살을 날리고 있어요.
맨 왼쪽에는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전령사 헤르메스가 공기의 따스한 기운을 받아 땅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림 오른쪽에는 봄바람과 꽃의 관계도 표현돼 있어요. 맨 오른쪽 사람은 '서풍의 신' 제피로스입니다.
제피로스는 입을 가득 부풀려 바람을 불어주고 있어요. 그가 흰 옷을 입은 여자를 붙잡아 바람을 불어주자 그 여자의 숨결이 꽃이 되어 입술에서 꽃이 피어나오고 있어요. 이 여인은 꽃의 여신 플로라입니다.
플로라는 원래 축복받은 자들의 섬에 살던 클로리스라는 이름의 요정이었어요.
그녀는 "내 이름은 클로리스, 이제는 플로라랍니다. 길을 가는데 제피로스가 날 쫓아왔어요. 어찌나 나른하던지 몸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았죠"라고 말했어요.
제피로스가 흰 눈처럼 창백한 여인이었던 클로리스를 바람을 불어 화려한 꽃의 여신 플로라로 만들어준 겁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서풍을 봄을 가져다주는 희망적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요.
봄꽃과 풀로 그린 남자
③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봄’
마지막 작품은 이탈리아의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가 그린 '봄'<그림3>입니다.
젊은 남자의 옷과 얼굴, 머리까지 온몸이 꽃과 풀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두 봄에 피는 식물들인데요.
아르침볼도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을 담지는 않았지만, 마찬가지로 봄을 사람에 빗대어 표현한 거예요.
이렇게 어떤 대상을 직접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 등을 이용해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알레고리'라고 합니다. 아르침볼도는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유명한 화가인데요. 그는 사계절을 각 계절에 맞는 식물들을 이용해 사람의 형상으로 그려냈어요. 직업과 관련된 사물을 이용해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답니다.
[라파엘전(前)파] 프로세르피나를 그린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가 속한 예술가 그룹입니다. 이 단체는 19세기 영국에서 등장했는데요. 이들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화가 라파엘로의 미술을 비판하고 라파엘로 이전의 미술로 돌아가자고 주장했어요. 그래서 라파엘전(前)파라고 불렸지요. 라파엘은 이탈리아 사람인 라파엘로를 영어식으로 부른 이름입니다. 19세기 당시 영국의 왕립미술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라파엘로·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대표 화가의 그리기 방식을 따라 하게 했어요. 로세티, 윌리엄 홀먼 헌트, 존 에버렛 밀레이 등 스무 살 전후의 젊은 왕립미술학교 초년생들은 이런 미술교육에 불만을 품었어요. 이들은 르네상스 시대 거장을 모방하는 예술이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고 세부 묘사에 충실했던 르네상스 이전 시기 예술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시대에 어울리고 영국인다운 분위기의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던 것이죠. 라파엘전파는 당시 변화 없는 영국의 미술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답니다. |
[출처]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명화돋보기> -1. 봄을 표현한 작품들 - 봄 소식 전하는 제피로스와 페르세포네 그렸어요/ 조선일보, 2021. 4. 19.
2.가족을 그린 그림 - '삼각형 구도'에 안정적인 가족 이미지 담았어요
▲ 그림1 - 배운성 ‘가족도’, 1930~1935, 캔버스에 유채. /문화재청
5월은 '가정의 달'이에요. 가족이 행복한 건 나와 아주 가까이 있어서 굳이 내 마음을 말로 하지 않아도 다 알아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가족도 많아요. 겉으론 화목한 듯 하지만 알고 보면 사이가 벌어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30년 가까이 부부 또는 사업가로서 동반자의 길을 걸어온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부부가 이혼을 공식 선언하면서 안타까움을 불렀죠.
인간은 어떤 이유로 혼자 사는 대신 가족 같은 작은 집단을 만들어 모여 살게 됐을까요? 학자들은 불을 사용하면서부터 사람들이 그 주변에 모이게 됐다고 추측합니다. 추위와 짐승을 피해 불을 피웠고, 불에 몸을 녹이고 그 불 위에 사냥해 온 고기를 구워 함께 먹으면서 정이 든 것이지요.
그렇게 끈끈하게 마음으로 이어져 있는 사람들 사이에 식구(食口)의 개념이 생겨났을 겁니다.
식구란 함께 먹고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들을 뜻하는 말이죠.
유학 시절 한국 식구들 떠올렸어요
〈그림 1〉을 보면 대청마루와 앞마당에 열일곱 명이나 되는 대식구가 나와 있어요. 엄마를 조르는 한 아이만 빼고는 모두 정면을 바라보고 있어요. 가운데에서 할머니가 손녀를 안고 있고, 그 주위에 아들 부부와 아이들, 삼촌과 고모, 그리고 흰 개도 보여요. 요즘엔 저마다 직업이 다르고 사는 방식도 다양해서 그림처럼 조부모, 부부, 자녀의 3세대가 한집에 살기는 어렵습니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배운성(1901~1978)은 그림에 등장하는 백인기씨 집에서 일을 거들어주며 얹혀살았어요.
화면 맨 왼쪽에 서 있는 남자가 화가 자신입니다. 집주인은 배운성을 믿음직스럽게 여겨 아들이 유학 갈 때 함께 따라 보냈어요.
'가족도'는 배운성이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며 미술 공부를 하던 시절에 한국에서 함께 살았던 식구들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입니다. 마치 우리나라 근대기에 찍은 가족사진 같은 그림이에요. 당시에는 가족사진을 찍을 때 활짝 웃거나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모두 정면을 향해 서서 다소 긴장하고 있었어요.
이 그림은 실제로 가족을 한곳에 모아놓고 그린 게 아니라, 유학 갈 때 가지고 간 개별 사진들을 보면서 한 장의 그림 위에 합해 놓은 것입니다. 배운성은 이 그림을 보면서 외국 생활의 외로움을 달랬을 거예요.
부모 역할 강조하는 18세기에 많이 그렸어요
서양에서는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까지 가족 그림이 가족사진을 대신했어요. 특히 18세기에는 가정에서 부모의 역할과 자녀 교육이 강조되면서 행복한 모습의 이상적인 가족 그림이 자주 그려졌습니다.
▲ 그림2 - 존 싱글턴 코플리 ‘코플리 가족’ 1776~1777, 캔버스에 유채. /위키피디아
한 예로 〈그림 2〉는 영국에서 주로 활동한 미국인 화가 존 싱글턴 코플리(1738~1815)가 자기 가족을 그린 것입니다. 이 그림 속 인물들은 모두 앞만 바라보며 경직된 자세로 모여 있는 배운성의 '가족도'와 달리, 서로 친밀해 보이는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화가들은 가족 그림을 그릴 때 삼각형 구도로 그리는 경우가 많아요. 안정적인 가족의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코플리의 그림도 삼각형 안에 인물들이 배치된 것을 볼 수 있어요. 위 꼭지점에는 화가 자신이 있고, 그 아래로 손녀를 안고 있는 인자한 외할아버지가 보여요. 엄마는 사랑스럽게 아이와 얼굴을 마주하고 있네요.
이 그림은 전시회 후에 화가의 집 식당 벽난로 위에 걸어 놓아서 식구는 물론 손님들도 잘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행복한 가족 이미지였던 것이죠.
행복하지 않은 가족 그림도 있어요
▲ 그림3 - 에드가 드가 ‘벨렐리 가족’, 1858~1867, 캔버스에 유채. /위키피디아
코플리의 그림과 대조적으로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가 그린 '벨렐리 가족'〈그림 3〉은 행복한 가족 이미지는 아닙니다. 아무도 웃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어머니와 두 딸은 삼각형 구도 안에 들어있는데 아버지 혼자 따로 떨어져 있으니까요.
벨렐리 부인은 드가의 고모예요. 드가는 고모 댁에 머무는 동안 이 집의 분위기를 금세 파악하게 됐습니다.
고모부는 자기 일에만 관심이 있어서 늘 집을 비웠고 가족들에게 무심했어요. 그 탓인지 아내와 관계도 냉랭하고 두 딸들도 아빠를 낯설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이 장면은 벨렐리 부인의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예요. 남편은 뒤늦게 도착한 듯 상복을 안 입었네요. 아내는 슬픔을 나눌 사람이 없어 눈물을 꾹 참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가족이 항상 행복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는 행복을 잃은 가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19세기 말 가족사진 유행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왕이나 사대부의 초상은 많이 그려졌지만, 일반인들은 초상화를 주문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가족 그림도 마찬가지고요. 이 때문에 인물화 자체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800년대 후반 우리나라에 사진 기술이 들어오면서 가족사진이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사진관만 있었던 조선에 조선인 사진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07년 서화가(書畵家)였던 김규진(1868~1933)이 서울 중구 소공동에 세운 천연당 사진관이에요. 당시 사진관에선 돌이나 회갑, 결혼 등 가족사진이 인기였어요. 당시에는 사진을 인화한 후 변색을 막기 위해 물감 등으로 덧칠을 했는데, 이때 인물 분위기에 맞게 자연스럽게 보정하는 것이 사진사의 중요한 역할이었답니다. |
[출처]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명화돋보기> - 2.가족을 그린 그림 - '삼각형 구도'에 안정적인 가족 이미지 담았어요 / 조선일보, 2021. 5. 10.
3. 노장 화가들의 '역작' -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당신 나이가 80이라도"
다음 달 51번째 생일을 맞는 미국 골프선수 필 미켈슨이 지난주 미국에서 열린 PGA(미국프로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역대 메이저 골프 대회 최고령 우승 기록을 세웠습니다. 신체 역량이 뛰어난 젊은이들이 수두룩한 스포츠 분야에서 노장 선수가 당당히 우승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요.
노장이란 경험이 많고 노련한 나이 든 사람을 뜻해요. 74세 윤여정 배우가 올해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 조연상을 받은 것을 비롯해 요즘 각계에서 노장들의 활약이 눈에 띕니다.
'나이 들었다'는 말이 이제는 '경쟁이나 유행에 뒤처졌다'는 뜻으로 들리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아요.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시대가 열린 것이죠.
미술계에도 노장들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짧고 왕성하게 작업해 이름을 떨친 화가가 있는가 하면, 평생 붓을 놓지 않고 그림과 함께 살며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도 있어요. 장수한 화가들의 경우는 세월이 흐르면서 조금씩 삶의 관심사가 바뀌고, 그 변화가 그림 속에 녹아들곤 합니다.
천경자가 31세와 70세 때 그린 그림
①천경자 ‘모자 파는 그라나다의 여인’(1993), 서울시립미술관
② 천경자의 1954년작 ‘목화밭에서’. 세로 114cm, 가로 89㎝. 종이에 채색.서울시립미술관
〈그림1〉은 윤여정 배우와도 친분이 있었던 화가, 천경자(1924~2015) 화백이 70세 때 그린 '모자 파는 그라나다의 여인'입니다. 스페인 그라나다를 여행할 때 모자 파는 여인을 스케치했던 것을 바탕으로 완성한 그림이에요. 이 그림을 천 화백이 서른한 살에 그린 '목화밭에서'<그림2>와 비교해보세요.
남편과 아이와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그린 '목화밭에서'는 가족 속에 있지만 왠지 홀로 외로워 보이는 여인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지만 '모자 파는 그라나다의 여인'에서는 쓸쓸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건강하고 자유로운 느낌이 듭니다. 천경자는 할머니가 되어가면서 생각이 더 자유로워지고 활동 범위도 더 확장된 듯합니다.
마흔 중반이 된 1960년대 후반부터 천경자는 남태평양의 섬, 아프리카의 나라들, 남미와 인도네시아 등으로 긴 스케치 여행을 떠나곤 했어요. 당시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먼 세계 여행이 지극히 드문 시절이었고, 여자 혼자서 하는 여행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때였지요.
천경자는 여행을 하면서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매력에 눈을 뜨게 돼요. 열대 지방의 뜨거운 태양과 이국적인 원색의 옷을 입은 그곳 여인들, 그리고 열대 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경험을 계기로 천경자의 그림 속에 이국적인 여인과 꽃이 주된 소재로 등장하게 됩니다.
시력 때문에 그림 대신 도자기 빚은 오키프
우리나라에 천경자가 있다면 미국에는 조지아 오키프(1887~1986)가 있습니다. 천경자처럼 뜨거운 태양의 느낌을 에너지 삼아 평생 그림을 그린 화가지요. 그는 태양이 뜨거운 미국 뉴멕시코주 산타페를 좋아했어요.
③토니 바카로 ‘사막에서 그림을 그리는 조지아 오키프’(1960)
〈그림3〉은 오키프가 74세 때 뉴멕시코 사막의 태양 아래 작업하는 모습을 사진가가 찍은 것입니다. 1930년 어느 날, 마흔이 갓 넘은 오키프는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동물들이 굶어 죽은 채 앙상한 뼈로 남은 모습을 봅니다. 이상하게도 그 뼈를 보면서 살아있는 다른 어떤 것에서보다 더 강렬하게 살아있음에 대한 애착을 느끼지요.
Georgia O'Keeffe. Ram's Head and White Hollyrock Hill, 1935 ⓒ Brooklyn Museum
④조지아 오키프 ‘캘리코 장미가 있는 소의 뼈’(1931).
조지아오키프뮤지엄·시카고미술연구소·스미스소니언미술관
'캘리코 장미가 있는 소의 뼈'<그림4>는 사막의 햇빛을 받아 밤에도 반짝반짝 빛을 내는 소의 두개골을 주워 와서 그린 작품입니다. 오키프는 마치 묘지에 꽃을 장식하는 마음으로 뼈 위에 흰 꽃을 함께 그려 넣지요.
이 그림은 언뜻 보기에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뼈는 어느 생명이 살아있었음을 말해주는 분명한 흔적이고 햇빛을 받은 뼈는 마치 살아있는 듯 빛을 발하니까요.
오키프는 태어난 고향은 아니지만 예술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산타페에서 노년을 보내기로 합니다. 백 살까지 살았으니 거의 40년을 거기서 머무른 셈이지요. 오키프는 마지막 10여 년은 눈이 나빠져 그림 작업을 거의 할 수가 없었는데, 대신 도자기를 빚으며 작업을 계속 했다고 해요. 신체의 노쇠가 창작 열정을 이길 수는 없었나 봅니다.
76세에 시작, 100세에 국민화가 된 모지스
미국에서 친근하게 '모지스 할머니'로 불리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1860~1961)는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평생 농장에서 살았던 그는 관절염 때문에 취미 활동인 자수를 못하게 되자 바늘 대신 붓을 들어 그림을 그렸어요.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무지개』 1961,
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메이플시럽채취, 1955. 뉴욕 페니모어미술관
▲ ⑤애나 메리 로버트슨 모지스 ‘대도시로 가는 모지스 할머니’(1946).
/조지아오키프뮤지엄·시카고미술연구소·스미스소니언미술관
그는 그림을 그린 지 5년 만인 80세에 개인전을 열었고, 93세엔 미국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10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총 1600점의 작품을 남겼어요. 그는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미국의 시골 풍경 그림<그림5>은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았어요.
모지스의 그림은 식탁보와 앞치마, 커튼과 그릇 등 미국의 온갖 가정용품 속에 등장하지요. 그가 그린 포근한 분위기의 크리스마스 카드 그림은 1억장 넘게 팔렸다고 합니다. 모지스 할머니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신이 기뻐하며 성공의 문을 열어 주실 겁니다. 당신 나이가 이미 80이라 하더라도요."
[출처]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명화돋보기> - 3. 노장 화가들의 '역작' - "하고 싶은 일을 하세요 당신 나이가 80이라도"/ 조선일보, 2021. 5. 31.
4.무용수를 그린 작품들 - 통통 튀는 몸짓 순간 포착… 화가에게 큰 도전이었어요
발레리나 박세은(32)이 아시아 무용가 최초로 352년 역사를 가진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에투알이 됐다는 소식이 최근 전해졌어요. 에투알이란 프랑스어로 '별'이라는 뜻으로,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를 일컫는 호칭입니다.
파리 오페라 발레단원은 5등급으로 나뉘어요. 처음에 입단하면 군무(群舞)를 추는 '카드리유'부터 시작해요. 이어서 군무에서 가장 앞쪽에 등장하는 '코리페'가 되고, 그다음으로는 독립적으로 춤을 추는 '쉬제'가 됩니다.
거기서 승급하면 주연급의 '프르미에 당쇠르'가 되는데, 당쇠르 중 최고 수준이라는 인정을 받으면 '에투알'로 지명됩니다.
연습장·무대 뒤 등 드나들며 스케치했어요
▲ 그림1 - 에드가르 드가 ‘에투알(별)’(1878년).
에투알은 옛 그림에서도 볼 수 있어요. 〈그림1〉은 19세기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Edgar Degas, 1834~1917)가 그린 '에투알'입니다. 드가는 인물의 동작을 묘사할 수 있는 소재를 좋아해서 발레나 서커스 공연을 많이 그렸어요. 특히 발레 작품은 유화, 스케치 등을 모두 합쳐 1500여 편이나 남겼어요.
작품 '에투알'은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발레리나가 홀로 넓은 무대 위에서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친 채 우아하게 한 발로 회전하는 모습을 그렸어요. 화가의 시선은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고 있어요. 가녀린 목을 뒤로 젖힌 무용가의 얼굴 표정까지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특별한 위치에서 그림의 구도를 잡은 것이지요.
드가는 당시 공연장 특석에서 관람했다고 합니다. 이 그림의 왼편을 보세요. 무대 뒤쪽으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은 잘 드러내지 않은 채 서 있어요. 무대 가까이까지 접근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던 것으로 볼 때 그는 일반 관람자가 아니라 예술을 후원하는 상류층 클럽의 회원으로 추정돼요.
드가는 이런 회원 중 한 사람을 친한 친구로 둔 덕분에 극장의 특석을 비롯해 무대 뒤나 분장실 근처까지 드나들며 스케치를 할 수 있었어요.
▲ 그림2 - 에드가르 드가 ‘페로의 교습 시간’(1875년).
드가는 평소 발레 연습장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고 합니다. 발레리나들이 교습을 받거나 연습을 하는 장면을 관찰하고 그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림2〉는 당대 유명한 발레 안무가인 쥘 페로가 지도하는 모습이지요. 드가는 어디에 앉아 그림을 그렸을까요?
마루의 맨 끝 구석에 마루보다 약간 높은 위치에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그림에선 왼편 아래쪽이지요. 머리가 하얀 쥘 페로는 지금 한 사람씩 불러내 어떤 동작을 해보도록 시키는 것 같아요. 학생들은 자기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몸을 비틀어 등을 긁기도 하고, 머리나 귀걸이, 리본 등 옷매무시를 가다듬기도 합니다.
드가는 안타깝게도 서른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눈병으로 오른쪽 시력을 잃었습니다. 초점이 완전하지 못해서 한 점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어슴푸레한 주변만 보였어요. 드가는 그림을 그릴 때 파스텔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이 파스텔화처럼 희뿌옇게 번져있기 때문이었지요. 드가 그림의 특징은 평범하지 않은 위치에서 인물을 바라봤다는 것이에요. 한쪽 눈으로도 잘 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를 찾느라 여기저기 옮겨 다닌 결과였을지도 모릅니다.
화가에게 영감 준 전설의 男무용수 '니진스키'
남성 무용가를 다룬 그림도 있어요. 20세기 초반에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발레단 중에는 세르게이 댜길레프가 이끄는 '발레 뤼스'가 있었어요. 당시 러시아는 혁명의 움직임이 있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상황이어서 문화 예술 활동이 어려웠습니다.
그로 인해 발레 뤼스는 프랑스 파리를 본거지로 삼아 외국으로 순회 공연을 다녔어요. 이 발레단은 무용가들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음악가, 안무가, 무대 디자이너, 의상 디자이너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인물이 많았어요.
▲ 그림3 - 레온 박스트 ‘목신의 오후의 니진스키’(1912).
발레 뤼스 소속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바츨라프 니진스키(1889~1950)입니다. 남성 무용가의 역사를 새로 쓴 전설의 무용수예요. 〈그림 3〉은 니진스키가 공연 '목신(牧神)의 오후'를 위해 목신으로 분장한 모습인데, 러시아의 화가이자 무대 디자이너였던 레온 박스트(1866~1924)가 그린 것이에요.
목신은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숲·사냥·목축을 맡은, 반은 사람이고 반은 짐승 모습을 한 신(神)이죠. 그림에서 긴 천 자락이 화면을 과감하게 훑고 지나가면서 운동감을 자아냅니다.
니진스키의 몸은 결코 무용가로서 이상적이지는 않았어요. 작은 키에 허벅지는 지나치게 굵었으니까요. 그러나 일단 무대에 올라가 춤추기 시작하면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대를 가로질러 새처럼 날아다녔어요. 몸이 마치 통통 튕겨 오르는 공처럼 가뿐하게 솟구쳐 올랐지요.
▲ 그림4 - 조르주 바르비에 ‘셰에라자드에서의 바츨라프 니진스키’(1912). /위키피디아·이주은 제공
〈그림4〉는 '셰에라자드'에서 노예 역을 맡은 니진스키의 모습입니다. 이 공연에서 니진스키는 마룻바닥에 머리를 아주 잠깐 대었다가 목 근육의 힘으로 공중으로 세차게 튀어 올라 부들부들 떨다가 쓰러지는 연기를 선보였어요.
당시 관객들은 혹시 그의 목이 부러지는 건 아닐까 해서 잠시 호흡을 멈추었다고 합니다.
무용가는 하나의 포즈를 취한 채 가만히 앉아있는 다른 모델과 달리 시시각각 수많은 동작을 만들어내요.
무용가의 몸짓을 잘 그리려면 움직이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빠르게 잡아낼 줄 알아야 하고, 동작에 깃든 감정까지도 놓치지 말아야 해요.
에드가르 드가는 '무용수의 화가'라고 불려요. 그는 살아생전 "나는 정말 '움직임' 그 자체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어요. 최고의 무용가가 되기도 어렵지만, 그 무용가를 그리는 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답니다.
[출처] :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최원국 기자<명화돋보기> - 4.무용수를 그린 작품들 - 통통 튀는 몸짓 순간 포착… 화가에게 큰 도전이었어요/ 조선일보, 2021.6.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