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에 걸친 장산습지 우물 탐사
좁고 둥근 우물 6m 아래로
지난 1월 11일 장산습지 우물 2차 탐사는 우물 속에 빠져 있던 소 사료 포대를 다 건져내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료 포대를 8장이나 건져 올렸지만 사료 포대에 가려 안 보이는 탓인지 특별한 물건은 더 나오지 않았다.
찬바람이 제법 부는 가운데 지난 2월 7일 장산습지에 다시 올랐다. 중간에 장산 대원각사에 들러 안도스님과 차 한 잔을 나눈 뒤 우물로 향했다. 먼저 우물에 고인 물부터 퍼냈다. 선녀가 들어갈 정도로 큰 물통을 우물에 빠뜨린 뒤 다시 끌어올리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끌어올린 물을 1·2차 탐사 때 건져 올린 포대 더미 위로 쏟자 다양한 비닐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로 군용 건빵과 핫라면, 양념통 등의 포장재였는데 제조사 전화번호까지 보일 정도로 선명했다. 군용 김치 포장 비닐도 있었다. 199X년이라고 표시된 걸로 봐서 아마도 1990년대 초반에 제조된 것으로 보였다. 소 사료 포대 하단에도 제조사와 전화번호가 뚜렷이 찍혀 있었다.
얼마 후 우물 바닥이 보이기 시작했고, 바닥 흙을 호미로 걷어 통에 담아 올렸다. 과연 무엇이 나올까? 기대와는 달리 하얀색 마사토만 자꾸 올라왔다. 바닥 조금 위쪽에서 물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우물 바닥까지 다 판 것이 확실했다. 그러다 이상한 생명체가 올라왔으니 바로 거머리였다. 거머리가 어찌 우물 속에 살고 있을까? 옥숙표 장산습지보존위원장(이하 위원장)은 우물에 물이 고이니 지하수를 따라 우물로 거머리가 흘러든 거라고 추측했다. 거머리가 두 마리나 세상 밖으로 나왔다.
◇ 80대 노인의 향토사 탐사 의지
잠시 후 옥 위원장이 우물 안으로 직접 내려가 우물 축조 방식의 차이와 바닥 상태를 살펴보겠다고 자청했다. 80세 노인이 사다리에 의지해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왠지 코끝이 찡해 왔다. 좁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엄두가 안 나는 일인데, 우물 속 이물질들을 걷어내 더 깊어진 바닥에서 사다리에 발을 걸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옥 위원장은 이런 어려움쯤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우물 벽면의 상태를 카메라에 담고 바닥까지 자세히 살폈다.
옥 위원장의 관찰 결과 우물은 3차례에 걸쳐 증축된 것으로 보였다. 먼저 돌로 1.5미터 정도 축조한 뒤, 그 위에 다시 두 번에 걸쳐 증축한 흔적이 있었다. 그럼 최초로 우물을 조성한 때는 언제일까? 주영택 향토사학자의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물망골 지역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를 토대로 옥 위원장은 일부 부유층 집안의 환자들이 장산습지 근처까지 올라와 생활했을 것이며, 이들이 우물을 팠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면 우물의 조성 시기는 1770년대 영·정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그렇다면 우물 속에 20kg짜리 소 사료 포대가 왜 8개나 들어 있었을까? 1990년대 초쯤에 군부대에 목장지를 강제수용당한 목장주들이 홧김에 소 사료 포대를 우물 속에 던져 넣은 것인지, 아니면 버려진 소 사료 포대를 군인들이 우물 속으로 던져 넣어 처리한 것이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이 우물이 1990년 초 무렵 이곳에 머물렀던 목장주나 군인들과 관련된 장산의 현대사 현장임은 분명해 보였다.
이날 탐사를 통해 장산습지 우물 내부를 바닥까지 훑어 확인함으로써 오랫동안 품어 왔던 우물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우물에서 건져 올린 정보 무더기에 봄비가 내려 더 선명한 단서가 나오길 기대한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