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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선택 투표에서 가장 득표수가 많았던 바벤베르크 가문입니다.
아쉬운 2등 가문은 다음 기회에... 언제나 1등이 우선이니까요.
모두 소개해 드리고 싶지만 저의 역량이 딸리는 관계로...
정말... 자료 정리에 '압사'할 지경입니다.
이 가문의 역사는 10세기부터 거슬러 올라갑니다.
가문의 첫 출발지는 오늘날 바이에른 과거엔 프랑코니아에 속했던 밤베르크에서 시작됩니다.
밤베르크의 Hennebergs 성 이름에서 유래된 바벤베르크라는 가문의 이름은 독이릐 역사에서 계통이 전혀 다른 두 가문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소유했던 라인이고 도 하나는 튀링겐의 헤네베르그를 근거지로 두었던 오래된 라인이 하나 더 존재했는데 그 가문은 백작 가문이었죠. 역사에는 혹여 Popponids라고 부르는데 Capetian dynasty에서 갈라져 나갔고 그의 선조는 카페 가문의 일원으로 독일에 정착하면서 바벤베르크 가문을 세웠죠. 이 가문은 다음 기회에 소개합니다. 분명 스타팅 멤버 중 하나이므로... 문장이 간지나죠... 점수판 나올 때 가장 밑줄에 있던 가문입니다~ 1000점이던가...
지금 소개해 드리는 바벤베르크 가문은 Donnegau에서 발원한 가문입니다.
‘the Illustrious’라는 별칭이 붙은 레오폴드 1세(Leopold I, Margrave of Austria)는 그의 선조에 대해서 알려주는 확실한 근거가 아직 남아있지 않아 불분명하지만, 아달베르트(Adalbert, Count of Bamberg)의 후손으로만 짐작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베르톨드(Berthold, Count of the Nordgau)의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아무튼 976년 레오폴드는 황제 오토 1세에 의해 오스트리아를 하사 받았고 널리 알려진 바벤베르크 가문을 창시했죠. 당시 레오폴드가 받은 작위는 공식적으로 'Margrave of Austria'였습니다...
잠깐... 마그레이브(Margrave)란 작위에 대해 잠시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마그레이브는 상당히 협소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외국의 ‘독일사’를 펼쳐 보시면 대부분 이 어원에 대해 반드시 설명합니다. 저도 처음 독일사를 접했을 때...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관련 일본책을 봤더니... 친절하게 ‘변경백’으로 적더군요. 아마 우리나라에 돌아다니는 서적 대부분이 이를 모방해서 '변경백'이라 적었을 껍니다. 일본책 번역본인터라...
중세 작위 제도는 간단합니다. 게임에서 보듯이 공작과 백작 그리고 남작이 기본 골격인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후작이 파생되며 이는 신롬과 프랑스에서 시작됩니다. 독일인의 관점에서 오스트리아나 브란덴부르크 등등은 우리말로 변경(邊境)인지라 요새를 꾸려 이교도를 방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변새(邊塞)를 설치해 이른바 총독을 파견합니다.
문제는 이 영토들은 이교도의 땅이라 경작하는 정착민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지의 세수도 턱없이 거둬지기 때문에...
영토는 그야말로 공작급인데, 수입은 남작급보다 못하더라 이겁니다. 그래서 변경백이 신설됩니다. 변경백을 마그레이브라 부르고 카운트랑은 구분했습니다. 귀족들이야 이른바 폼생폼사 인지라... 한단계 높혀 준다는데 이의가 있겠습니까?
훗날 일본이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자기네 말로 번역할 때... 동양에서의 오등작 제도(이것은 주나라의 봉건제도에서 처음 나온 것입니다)와 비교해서 마그레이브가 딱 후작(侯爵)급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변역할 때 처음 '변경백'으로 하다가... 우리는 이를 후작급으로 인식하면서 변경백(백작급)보단 후작으로 해석하는 겁니다.
실제로 후작(Marquess) 작위는 고대 프랑스어 marchis(ruler of a border area)에서 파생되었으며 13~14세기에 이르러 프랑스에서 처음 출발합니다. 랭킹은 공작 아래였고 처음 수여될 때는 대부분 왕족들 중심으로 하사했습니다. 그래서 후작은 특별히 ‘각하’ 수준이 아닌 ‘전하’ 수준입니다. 후작이 되면 경칭은 '전하'가 되는 겁니다. 관습상~
물론 전하(殿下)는 중국식 경칭이고, 서양에서는 ‘Your[His, Her] Highness’인데 이 Highness에도 등급이 있어요.
이 경칭의 종류를 잠시 언급하면...
1. His/Her Imperial Highness (HIH)
-> ‘제국의 전하’입니다.
2. His/Her Royal Highness (HRH)
-> ‘왕국의 전하’
3. His/Her Highness (HH)
-> 그냥 ‘전하’입니다.
게임을 해보셨으니 왜 이러한 명칭이 세분되는지 짐작하시겠죠?
1번의 전하는 제국 내 황자나 황녀를 경칭합니다.
2번의 전하는 왕국 내 왕자나 왕녀들 경칭입니다.
3번의 전하는 그냥 전하 경칭이 허용된 귀족 누구나 받습니다.
신롬에선 보통 후작 즉 마그레이브 이상의 존칭이 됩니다. 단 백작은 아닙니다.
그리고 특수한 전하는...
3. His/Her Grand Ducal Highness (HGDH)
-> 보통 룩셈부르크 대공국 수준의 군주 가족들 칭호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헤세 대공국과 바덴 대공국의 가족들이었겠죠... 작위 수준이 Grand Duck이니까요...
4. His Most Eminent Highness (HMEH)
-> 이 경칭은 세속이 아닌 분들... Grand Master of the Knights of Malta나 Holy Roman Empire의 Prince이신 추기경님
즉 Cardinal (Prince of the Church)의 경칭입니다. 만일 플레이어가 주교 대공작이나 주교 백작을 만드시면... 그 분들의 경칭이죠. 트리거의 주교나 쾰른의 주교 등 이런 분들의 경칭입니다.
그런 분보다 더 높으신 교황님은 성하(聖下, His[Your] Holiness)입니다.
이제 ‘전하’의 의미를 아셨으니... 경칭을 보시면 그 ‘전하’는 어느 수준의 ‘전하’인지 아실 겁니다. 참고로 신롬제국 내 후작 이상 귀족들은 대부분 3번 ‘전하’인데... 왕실과 연이 닿으면 승급되어서 1번이나 2번 ‘전하’가 됩니다. 고로 결혼이 진리입니다.
다시 바벤베르크 가문으로 돌아갑니다...
최초의 오스트리아 변경백은 960년 경 임명된 부르크하르트(Burkhard, Margrave of Austria)였습니다. 그는 바이에른 공작 하인리히 2세의 반란에 가담했고, 결국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영지를 상실했죠. 이에 황제는 가문이 전혀 다른 백작인 레오폴드에게 하사했고 덕분에 레오폴드만 신났죠... 웬 떡인가!!!
오스트리아 공작의 문장
오늘날 오스트리아 공화국 국기와 같을 겁니다...
레오폴드는 18년을 오스트리아 변경백으로 통치했으며, 에른스트(Ernst IV, Count of Sualafeldgau)의 딸(Richardis of Sualafeldgau)과 결혼했습니다. 그녀는 아달베르트(Adalbero of Eppenstein, Duke of Carinthia)의 숙모뻘이었다고 하네요. 아무튼 자식도 많아서 8자녀가 있었습니다만... 영지는 장남에게만 상속됩니다. 이게 진리죠...
다음은 바벤베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통치자 명단입니다. 총 12명이 배출되었군요.
이 가문의 특징은... 공작마다 별칭이 다 있더란 겁니다. 좀 의외더군요. 다른 가문엔 별칭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데...
제 기억엔 카페 가문원들은 다 별칭이 있더군요... 가능하면 독일식 이름으로 표현했습니다. 게임 하시는데 참조 하시라구요. 이들은 독일인이죠. 아들 낳으시면 좀 멋지게 지어주세요.
1대 Leopold I ‘the Illustrious’ (976–994)
2대 Heinrich I ‘the Strong’ (994–1018)
3대 Albrecht I ‘the Victorious’ (1018–1055)
4대 Ernst I ‘the Brave’ (1055–1075)
5대 Leopold II ‘the Fair’ (1075–1095)
6대 Leopold III ‘the Good’ (1095–1136)
7대 Leopold IV ‘the Generous' (1137–1141)
8대 Heinrich II 'Jasomirgott' (1141–1177)
9대 Leopold V 'the Virtuous' (1177–1194)
10대 Friedrich I 'the Catholic' (1195–1198)
11대 Leopold VI 'the Glorious' (1198–1230)
12대 Friedrich II 'the Quarrelsome' (1230–1246)
바벤베르크 가문의 영광을 보여주는 15세기 작품...
가문 공작들이 다 소개된 그림인데 일생을 압축해서 표현했다고 합니다.
이 가문의 초기 통혼권은 역시 지리적 위치상 카린티아나 북부 이탈리아 가문이 대부분입니다. 참으로 평범하게 살아가던 변경백 가문에 영광이라면 영광이고... 제가 보기엔 바벤베르크 가문에 불행의 돌을 던졌다고 생각되어지는... 결혼을 하는 군주 한 명이 등장합니다. 그는 6대째인 레오폴드 3세(Leopold III 'the Good', 1073-1136)였습니다.
레오폴드는 두 번 결혼을 하는데 첫 결혼은 아주 평범한 귀족 여성이랑 해서 아들 알프레히드를 얻습니다만... 유아사망으로 인해서 자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105년 신분이 엄청 높은 여성이 과부로 있더라 이겁니다... 32세의 홀아비 레오폴드는 한 살 연상인 이 여인을 모시고 옵니다. 혹시 제 아이도 많이 낳아주실 수 있으신지... @_@
그녀의 이름은 아그네스(Agnes of Waiblingen, 1072-1143)...
잘리어 가문의 하인리히 4세와 사보이 가문의 베르타 사이에서 태어난 제국의 황녀였죠.
이 여인 만큼 고귀하게 살다가 갔으며...
이 여인 만큼 자식 많이 낳은 여인도 없을 겁니다. 아마...
하인리히 4세로 플레이 안 해 보신 분 없으실 듯... 1066년 시나리오부터 등장하시는 황제님이시죠. 자녀 란에 아그네스 보이실 겁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데... 그녀는 셋째이자 차녀였는데 생존한 자식 중 장녀였죠. 남동생이 콘라드와 하인리히 5세입니다. 게임하실 때 성장하거든 바벤베르크 공작령으로 보네세요. 아마 바벤베르크 가문의 공작 장남이 그녀와 나이 비슷할 껍니다. 이 모든 것 역사대로... ^0^
아무튼 아그네스는 1086년 처음엔 아버지뻘인 22세 연상의 슈바벤 공작 프리드리히 1세(1050-1105, 호엔슈타우펜 가문)에게 시집갑니다. 물론 게임에선 공작이 절대 아그네스를 안 기다려 줍니다... 100% 다른 여인과 결혼하죠. 나이가 나이인데... 공주가 성장할 때까진 못 기다려요... 공작님은...
아그네스의 첫 결혼에서는 11명의 자녀(3남 8녀)가 태어납니다. 그들 중 장남이 슈바벤공작 프리드리히 2세(1090-1147)인데 그는 훗날 황제가 된 프리드리히 3세 바르바롯사(1122-1190)의 아버지가 됩니다.
어차피 나이 많은 남편인데다 55세에 죽어줘서... 30세 한창(?)인 과부가 혼자 산다는 건 무리죠... 무리...
역시 새 남편이 필요해~
레오폴드와 아그네스는 둘 다 재혼이었고 나이도 비슷해서 그다지 결혼엔 무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자식이 낳을 수 있느냐... 가 아니고 너무 낳아서 자식란이 겹쳐집니다. 무슨 아줌씨가 아기 낳는... 요즘 같으면 다산왕 표창을 받을 듯...
재혼해서 또 11명의 자녀(5남 6녀)를 낳았고 그들의 장남 레오폴드와 차남 하인리히가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후계자 레오폴드 4세(Leopold IV 'the Generous', 1108-1141)는 호엔슈타우펜 가문과 벨프 가문 사이에 벌어지는 쟁탈전에 당연 이부형님 편에 가담합니다. 혈통이 우선이여...
이부형님 콘라드 3세는 자기 편 들어주는 이부동생이 너무 귀여워서... 엿다 먹어라~
1139년 레오폴드는 가문의 영광을 이룹니다. 나도 공작이다~~~ 바이에른 공작 위를 받습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벨프 가문이 날려먹은 바이에른을 받다~~~!
이로써 바벤베르크 가문은 변경백 가문에서 승급되어 공작 가문이 됩니다. 이제 통혼권도 넓어지겠죠...
이젠 공주나 데리고 올까나... 이제부턴 우리 가문은 신롬황제의 외손자 가문+공작 가문인데...
그러나 레오폴드 4세는 미혼으로 죽어서 그 동생 하인리히 2세가 계승합니다. 그의 재위 무렵 이부형님의 아들이신 프리드리히 황제께옵서 열씨미 십자군 원정 간다고 난리 중일 때입니다. 황제는 어리신 숙부님을 콜 합니다. 숙부도 우리 덕분에 공작이 되었으니 몸빵 쫌 때우시오... 감히 조카님 명령인데 따라 가야죠. 안 따라가겠습니까...? 조카님의 영광은 우리 가문의 영광...
결국 하인리히는 황제를 따라 중동으로 갑니다... 예루살렘 먹으러...
갔더니... 동로마제국이란 엄청난 큰 나라가 있었죠. 우와 크다... 말로만 듣던 로마제국!!
문득 프리드리히 황제는 숙부에게 권합니다.
- 숙모님 얼마 전에 돌아가셨다고요...
- 응... 그녀도 황제의 딸... 황녀였지... 자식도 안 낳아주고 떠나네... 새 장가가야 됨...
- 그럼 새 장가는 이쁜 그리스 여인으로...
- 엉? 그리스 여인...? 이쁠까나...
1143년 황제 조카님의 권유로 새 장가를 들게 된 하인리히는 테오도라(Theodora Comnena)를 공작 부인으로 맞이합니다. 그녀는 동로마황제 마누엘 1세의 조카로 그녀의 아버지는 황자 안드로니코스였습니다. 그녀는 즉 콤네누스 가문의 일원이었죠. 테어도라는 2남 1녀를 하인리히에게 안겨줍니다.
장녀 아그네스는 당당히 이웃나라 헝가리왕 스테판 3세에게 왕비로 가고...
장남인 레오폴드 5세(Leopold V 'the Virtuous', 1157-1194)는 바이에른 공작령을 돌려주는 대신 1192년 새로 창설한 작위인 Duke of Styria(슈타이어마르크입니다)가 됩니다. 이미 공작급이 되어 ‘오스트리아 공작’으로 칭하는 터라... 영지만 넓어진다는 아무거나... 줘도 됩니다... ㅎㅎㅎ
그리고 레오폴드 5세는 당당히 왕녀에게 장가를 듭니다. 그녀 이름은 헬레나... 헝가리왕 게자 2세의 딸이었죠. 바벤베르크 가문은 완벽히 수준 상승해서 통혼권이 이젠 왕족급이 되었습니다... 역쉬 황제님 외손자 후광은 장난이 아니야...
레오폴드 5세와 헬레나 사이엔 여러 아이가 태어났지만 어른으로 성장했던 건 아들 2명이었는데 장남 프리드리히는 계승 후 4년 만에 미혼으로 요절합니다. 그래서 Duke of Styria로 분가해 나갔던 동생 레오폴드 6세가 다시 본가로 돌아와 집안을 계승합니다. 슬슬 자손들이 부족해지니... 가문의 앞날이 불투명해지는군요.
레오폴드 6세(Leopold VI 'the Glorious', 1176-1230)는 아주 열렬하고 진정한 크루세이더 킹 중 한 명이었죠...
인정받는 그리스찬 기사로 일생을 보냅니다. 그의 일생을 두고 심롬황제가 평하길...
"a man who loved peace and was zealous for harmony."
이렇게 보기 드문 착한 군주였는데... 자손은 곧 단절되는군요. 신은 정말... 밉습니다...
레오폴드는 1206년 테오도라(Theodora Angelina)와 결혼했는데... 그녀는 동로마제국 황실의 일원이었죠. 레오폴드와 테오도어 사이에는 3남 4녀가 있었습니다만...
자~ 이들이 마지막 극적인 바벤베르크 가문의 종말을 장식하는 주연들이 됩니다.
1. 마가레트 (Margaret, 1204-1266) 처음 황제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하인리히와 결혼했다가 죽자, 재혼을 보헤미아왕 오타카르 2세랑 합니다. 이 여인의 어이없는 고집 때문에 역사가 바뀝니다. 바벤베르크 단절의 일동 공신...
2. 아그네스 (Agnes, 1205-1226) 작센공작 알프레히트 1세(Albert I, Duke of Saxony)와 결혼합니다. 딸만 5명을 낳아서 공작 계승전에는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3. 레오폴드 (1207–1216) 요절
4. 하인리히 (1208-1228) Duke of Mödling이었으나 딸 게르투르디스(Gertrudis)만 남기고 요절합니다. 이에 숙부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그녀가 정당한 후계자로 지명됩니다만...
5. 게르투르드 (Gertrude, 1210–1241) 튀링겐 변경백 하인리히(Henry Raspe, Landgrave of Thuringia)와 결혼합니다.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6. 프리드리히 2세(1211-1246) 마지막 공작입니다.
7. 콘스탄티아 (Constantia, 1212-1243) 마이센 변경백 하인리히 3세(Margrave of Meissen)과 결혼합니다. 아들 2명을 낳습니다.
마지막 공작인 프리드리히 입니다. 빨리 장가 보내서 자손을 갖게 해야...
아르가우의 백작 따위가 넘보지 못하겠지요...ㅎㅎㅎ
이 스타팅 시점이 마지막 플레이 지점이기도 하더군요... 다음 시기엔 합스부르크가...
마지막 공작의 가계도입니다. 당시 유럽 귀족치고는 정말 화려한 혈통을 가졌죠...
거의 왕급 수준... 이게 다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번창할 때 이야기...
프리드리히 2세는 두 번의 결혼을 합니다. 첫 결혼은 동로마황제의 딸인 소피아(Sophia Laskarina)였는데 그녀가 아이를 낳지 못하자 공작은 초조한 마음에 이혼해버리고 다시 1243년 당시 28세였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아그네스와 재혼합니다. 그러나 재혼 직후 전투 중 전사하는 통에 오스트리아에선 난리가 납니다... 갑작스럽게 공작 사망...
그러나 그는 생전에 후계자로 형 하인리히의 유일한 딸 게르투르디스로 지목했습니다. 그래서 게르투르디스는 18세 때 22세의 연상이었던 헤르만 6세(Herman VI, Margrave of Baden)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낳습니다. 그런데 연세 많으신 바덴 변경백께서 일찍 사망하시는 바람에... 그 동생 루돌프가 조카의 섭정이 됩니다. 일이 꼬이는 징조...
그녀는 다시 재혼해서 바덴을 떠나고... 아들 프리드리히(이 소년 군주는 전번에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몰락에서 언급했던 인물입니다. 참조하세요)는 어린 나이에 바덴을 물려받고 어머니로부터 넘겨받은 오스트리아 상속권을 주장하죠.
웃기는 건... 어이없는 사내들이 공작 상속권을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흠... 이제 오스트리아는 동네북?!
당시 교황에게 오스트리아의 상속권을 주장한 인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Vladislaus, Margrave of Moravia, claimant 1246–1247. 오타카르의 형.
2. Herman VI, Margrave of Baden, claimant 1248–1250. 게르투르디스의 남편.
3. Frederick I, Margrave of Baden, claimant 1250–1268. 게르투르디스의 아들.
4. Ottokar II, King of Bohemia, claimant 1252–1276. 마가레트의 남편.
다시 레오폴드 6세의 장녀 마가레트의 일생부터 이야기 해야겠네요...
그녀는 독일왕의 아내였다가 자식 없이 남편을 먼저 보낸 과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1252년 48세 무렵에 뜬금없이 결혼 제의가 들어옵니다. 블라디슬라우(Vladislaus, Margrave of Moravia)가 자기 동생 오타카르(Ottokar, 1233-1278)랑 결혼하지 않겠느냐고... 여자 48세랑 남자 19세... 뭔가 구린게 있겠죠?
블라디슬라우는 어린 동생을 이용해 오스트리아 상속권을 받겠다는 심산... 결국 오타카르는 나이 50을 바라보는 그녀랑 결혼해야했고 그녀를 이용해 게르투르디스의 정식 상속권을 무력화시킵니다. 즉 늙은 고모를 이용... 어린 조카를 누르는 거죠. 이 계획은 상당히 유효했습니다. 막강한 무력을 겸한 압력... 이것에 대해 반발했던 바덴 변경백 헤르만...
헤르만 6세는 어린 아내의 계승권을 누르는 모라비아의 음모를 제국과 교황에게 탄원합니다. 아내와 자신의 후계자 프리드리히의 권리라고... 이게 상당히 먹혀들어갑니다. 당연히 혈통이 우선이니까요. 문제는 이탈리아 문제에서 발생합니다. 바덴의 프리드리히가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편을 들자 교황이 이를 괘씸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앙주 가문을 이용해 프리드리히를 죽여 버리죠. [이와 관련한 내용은 전번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몰락 때 언급했습니다. 참조]
게임 내 마지막 공작의 가족 관계입니다...만 너무 생략되어 있네요.
프리드리히의 형 하인리히의 딸이 체링겐 가문에 시집간 조카인데요.
흥미롭게도 마가레트에게 두 자식이 있다고...? 엉? 요절했나...?
프리드리히가 어린 나이에 죽임 당하자 다시 아내 마가레트의 권리를 주장하는 오타카르... 결국 무력으로 이 계승권은 상당히 확보됩니다. 심지어 늙은 아내를 밀어내고 스스로 ‘오스트리아 공작’이 되니까요. 그런데... 오타카르의 최대 문제는 그녀 나이가 많아 도저히 자식을 볼 수 없다는 게 함정...
오타카르는 대안으로 자신의 사생아를 후계자로 인정해 달라 교황에게 요청하지만...
교황은 '웃기고 있네' 라고 일언지하에 거절...
결국 오타카르는 마가레트와 합의 이혼하면서... 그 이혼 와중에 오스트리아 계승권리를 양도받는 문서에 도장 찍게 합니다. 마가레트는 결국 이용만 당하고... 정당한 권리를 가졌던 조카 손자 프리드리히만 죽이고 끝납니다.
결과를 보면 그 여자 정말 망할 ×××... 집안 망친... (생략)
그녀가 장녀라고 차기 계승권을 누르는 통해 조카딸 집안(체링겐 가문)만 골병...
역시 작은 바덴은 큰 보헤미아를 능가할 수 없었겠죠.
이후 게르투르디스는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다섯 아이들을 위해 계승권을 주장하지만...
이번에 더 큰 장벽이 가로막습니다. 헐... 이번엔 신롬황제였습니다.
당시 황제는 백작 출신으로 즉위한 합스부르크 가문 루돌프 1세(Rudolf I)였죠.
그는 황제이긴 했지만 한미한 백작 출신인지라... 직할령이 없어서 거대한 야망을 이루기 힘들었죠.
이왕 황제 된 거... 거하게 한방... 그래 인생 한방이야!
그 대박의 대상이 주인 없는 오스트리아였습니다. 혈연의 끈도 없이 차지한 오타카르를 응징하는 데엔 황제의 명분만큼 좋은게 없죠. 원래 제국법에 따르면 후계자가 없는 영지는 황제의 것... 루돌프와 그의 아들 알프레히트는 전력을 다해 보헤미아랑 한 판 뜹니다. 무력 앞에선 명분도 필요 없습니다. 차지하는 넘이 임자...
이혼한 마누라 명의로 차지한 오타카르나 황제란 명분으로 차지하겠다는 루돌프나...
바벤베르크 가문의 외손자 후손들 입장에선 어이없죠. 원래 우리 조상껀대...
당시 오타카르는 바벤베르크의 영지인 오스트리아, 슈타이너마르크 뿐만 아니라 카린티아까지 꿀꺽한 상태였죠.
루돌프가 이번 싸움에서 이긴다면... 합스부르크 가문의 승천은 따 놓은 당상... 목숨 걸고 달려들었겠죠...
1276년 결국 오타카르는 루돌프에게 패배하였고 독일 내 영지를 대량 상실했습니다. 그 당시 오타카르는 바벤베르크 가문이 가졌었던 Duke of Austria and Styria와 스폰하임 가문(House of Sponheim)이 가졌었던 Duke of Carinthia and Margrave of Carniola를 몽땅 합스부르크 가문에 양도해야했죠. 크루세이더 킹즈의 세계에서 유명했던 두 공작가문의 영토를 전쟁 한 방에 차지한 합스부르크 가문... 세계사의 방향을 한껏 비틀어버립니다.
이 모든 것이 마가레트란 멍청한 여인네랑 그녀를 이용한 오타카르가 판을 만들어 준 덕분입니다.
남 좋은 일 해준 셈... 오스트리아를 꿀꺽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이 잘 되었느냐... 글쎄용...
바벤베르크 가문이 그렇게 단절된 이후 전쟁을 통해서 합스부르크 가문으로 넘어가긴 했습니다. 물론 혈통을 이른 귀족들이 여럿 있었지만 황제에게 달라곤 하긴 힘들었죠. 황제도 영지가 없어서 쩔쩔 매는데... 어딜 땅을 달라고?
워낙 합스부르크 가문이 밑천 없는 터라 자기네 후손을 위해 밑천 마련으로 오스트리아를 얻었기 때문에... 과거 황제들이 영토를 떼어 주는 그런 관대함을 바라기는 힘들었죠. 역시 '곳간에서 인심난다' 라는 말이 진리입니다. 워낙 밑천 없는 가난한 황제를 세워 둔 터라... 황제가 자기 것 만든다고 남에게 더 희생을 강요하니까요.
아무튼 루돌프 1세는 오스트리아를 차지했고 가문의 영원한 밑천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통치의 명분은 역시 황제빨이 아니라 혈통빨인지라...
막내아들인 루돌프를 오타카르의 딸 아그네스와 결혼시켜 명목상 ‘오스트리아 공작’에 임명합니다. 물론 장남 알프레히트도 공동 공작에 임명합니다. 원래 이 땅은 장남한테 줘야되는데... 막내가 좀 희생을 해...
막내를 이용... 가문과의 결혼을 통해 혈연관계를 만들어놓고... 제후들에겐 결혼에 의해 자기 가문이 정당하게 가진다고... 이런 식으로 홍보는 했죠. 그렇지만... 세상은 호락호락 안합니다...
루돌프 1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알프레히트가 부자지간에 황제로 선출됩니다. 물론 그들 부지의 궁극적인 목표는 선출이 아니라 세습화겠지만...
그런데 이 알프레히트는 친족들에게 조차 상당히 박한 인간이었던 같습니다. 앞을 못 본다라고 해야하나...
막내 루돌프는 결혼에 의해 ‘오스트리아 공작’이 되었지만 20세로 요절하죠. 그가 죽자 막 태어난 아들 요한에게는 아무런 영지가 주어지지 않았죠. 루돌프의 아들 요한은 성년이 되었지만... 백부 알프레히트가 조부 루돌프가 요한에게 약속한 영지를 주지 않고 자신의 아들들에게만 나눠주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분노한 요한... 결국 황제의 외부 행차 길을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막고 백부의 두개골을 박살 냅니다.
내 것을 빼앗은 분노의 응징... 할배가 주라고 약속한 영지를 왜 안 주는거야!!!
황제 알프레히트는 이렇게 조카에게 죽임 당하죠.
이 사실은 제국 내 널리 퍼지고... 황제의 비정함에 또 놀라죠...
왜냐면 귀족들간의 맹약을 어긴 정말 나쁜 넘이었거든요... 비귀족적이며 비신사적...
기독교 세계에서 거짓말은 무시무시한 응징 받을 짓이에요. 그래서 서양은 계약이 발달되어 있고 약속을 중시여기죠. 그런데 황제가 그런 가족간의 맹약을 저버리고... 죽을 짓 했네...
루돌프가 야심차게 준비한 황제직 세습은 2대로 종결됩니다. 알프레히트가 죽은 후 귀족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후계자를 내지 않아요. 그 가문넘들 진짜 나쁜 넘들이라고... 다시 황제 자리를 차지하는 데는 백여 년이 걸리죠... 약속을 지켜라!!!
결과적으로 오스트리아를 두고 많은 피를 흘린 건 사실이네요. 황제의 두개골까지 부서질 판이니... 그런 막가는 희생을 치러서라도 오스트리아를 밑천으로 합스부르크 가문은 성장했고 700여년 간 그 땅을 유지하여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역시 밑천 없는 장사는 없죠...
1241년 스타팅 지점에서 네 개문의 위상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좌측에서 시게방향으로 플랜타지네트, 카페, 바벤베르크, 합스부르크 순입니다.
합스부르크가 오스트리아를 차지했다는 의미는 유럽사에 있어서 상당히 영향을 기친 사건입니다.
바벤베르크의 불행은 합스부르크의 행복이었죠... 특히 루돌프 에게는...
첫댓글 재밌게 봤습니다~ 황제 두개골까지 깨지다니 ㄷㄷ
오스트리아의 국기는 정말 역사가 길고 꾸준히 사용돼왔군요.. ㅎㄷㄷ 길다는 건 알았지만 설마 저때부터였다니.
루돌프 처가가 호엔베르크가 그리고 루돌프 성향이 기벨린인점을 볼때 결코 한미한 시골백작이 아닌 다크호스정도의 인물이다라는 기록을 본 기억이 나네요. 그리고 그놈의 알프스산맥은 동 오스트리아건 서 부르군트, 슈바벤방면이건 제왕들이 나오는거 보면 ㅎㄷㄷ하네요
이게 다 호전공 프리드리히가 아이를 못 낳아서입니다ㅜㅜ 바벤베르크도 매력적인 가문이긴 한데, 역시 중세는 애 낳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해야 ㄷㄷ
멋진 가문이였네요 배경을 알고 게임을 시작하니 역시 재밌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가문이였군요..비잔틴 황가와 호엔슈타우펜 가문이랑 저리 밀접한 관계였다니;;ㄷㄷ
오늘도 재밌게 보고갑니다! 진짜 매번 감탄하고 합니다 ㅠㅠ
잘봤습니다
Margrave 는 아마도 Markgraf 인가 보네요.
생각외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가문이었네요 ㅎ
잘 읽었습니다.
그니까, 마가레트 때문에 모든 유럽의 귀족들이 주걱턱에 의해 박살나거나 주걱턱이 되는 수모를 겪게 되는거군요. 아이고 네덜란드인 다죽는다 마가레트야!
저때 오타카르로 플레이하면 오스트리아+보헤미아+모라비아 공작령을 모두 직할령으로 들고 있는 위엄을 볼 수 있죠 ㅎㅎ.
그나저나 대공위 시대의 끝이 루돌프 즉위이후라고 하는데 왜 루돌프가 황제로 선출됐을 까요? 오타카르라는 막강한 후보가 있었는데 말이죠.
귀족들이 오타카르의 강력한 세력을 두려워한 나머지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한 루돌프를 선출시켜 왕권을 약화시키려는게 목적이었습니다.
중세 유럽에선 언제나 왕권을 약화시키려는 귀족들과 왕권을 강화시키려는 왕들의 다툼이 끊이질 않았지요.
바벤부르크 예상외로 잘 나갔었군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게 정리가 대는 느낌
이 가문 방계에서 그 비텔스바흐가 갈라져 나왔다는 걸 생각해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