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이 다 되어가는 일이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과 목이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콜록콜록. 마른기침이 터져 나올 때마다 몸이 파도를 맞은 배처럼 들썩거렸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고 관자놀이 근처 머리카락이 흠뻑 젖었다. 나도 나지만 배가 뭉칠까 봐 조바심이 났다. 겨우 안정기에 접어든 임신 20주였다. 며칠 가다가 말겠지 싶었는데 일주일 넘게 계속되는 기침으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남편은 해외 출장 중이어서 혼자 곤욕을 치르던 중 하필 기침이 심할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거친 기침 소리가 엄마의 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걱정하는 엄마의 목소리에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간신히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 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이틀쯤 지나 엄마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여전히 콜록대는 소리를 듣고 엄마는 마침내 결심한 듯 단호히 얘기했다. “안 되겠다. 주말에 집에 와서 자고 가라." 엄마 집에서 잔다고 무슨 소용일까 싶으면서도 뱃속 아기가 기침 소리에 시달릴 걸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엄마 집에서도 식구들의 잠을 방해하며 밤새 켁켁거렸다. 엄마는 그냥 넘기지 않고 일어나 한밤중에 배와 도라지를 넣고 차를 끓여주었다. 따뜻하고 달콤해서 기침이 한결 진정되었다. 날이 밝자 엄마의 식탁엔 정겨운 요리들이 가득 올라왔다. 조를 넣어 지은 쌀밥, 직접 담근 배추김치, 집 된장을 풀어 끓인 시금칫국, 고소한 들기름을 꼼꼼히 발라 구운 김, 싱싱한 도라지 무침이 입맛을 돋우었다. 특별할 것 없는 소박한 찬들인데 놀랍게도 집밥을 두 끼 먹고 나자 그토록 지독했던 기침이 꼬리를 내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친정집 식탁에 올라온 음식들은 엄마가 손수 재료를 씻고, 다듬고, 무쳐서 만든 음식들이었다. 반찬마다 엄마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모든 생명체는 미생물을 품고 있으므로 그렇다면 엄마의 미생물이 음식을 통해 내 몸으로 옮겨왔을 것. 엄마의 집이란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품었던 미생물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엄마의 집이, 엄마의 밥상이 그리워지는 건 내가 두고 떠나온 미생물이 나를 부르는 신호일지 모른다. 식물을 공부하며 미생물에 대해 깊이 알게 되었다. 미생물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생명체로 한 사람의 몸에 약 20조 개, 무게로는 2kg 정도에 해당하는 양이 서식한다. 이 미생물이 호흡하며 뿜는 화학물질이 우리 몸에서 면역력을 키우고 우울증을 호전시키며 심지어 지능발달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하여 사람에겐 먼지 한 톨 없이 완벽히 살균된 공간보다 적당히 지저분한 공간이 더 이롭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내가 엄마가 되었다. 아들이 방학에 들어간 지난겨울, 에세이 집 《있는 힘껏 산다》의 원고를 마감하는 내 머릿속은 오로지 글쓰기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했다. 식사 메뉴 정하기나 장보기 같은 집안일이 비집고 올 틈이 없었다. 남편과 아들이 "오늘 뭐 먹을까?" 하고 물어보면 나는 할 말이 없어 미안했다.
결국 나 대신 집안일을 하던 남편이 반찬 정기 배달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들, 이 반찬 어때? 일주일에 세 번 새 반찬을 만들어주는 가게인데 아빠가 신청했어." 얘기를 들은 아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가셨다. 엄마가 만든 밥이 특유의 손맛과 향이 있어서 좋은데 가게의 반찬은 그 맛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나는 원고를 마감하고 나면 먹고 싶은 반찬 다 만들어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아들이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소금에 절인 배추처럼 축 늘어져 집에 들어왔다. 이럴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면 좀 나은데 뭘 먹고 싶냐고 물었다. 아들은 두부조림을 얘기했다. 나는 서둘러 두부를 알맞은 크기로 썰고 프라이팬에 현미유를 두른 다음 두부를 올려 노릇하게 부쳤다. 간장과 고춧가루, 마늘과 설탕, 생강가루를 물에 넣고 휘휘 저어 두부 위에 부었다. 양념이 자작해질 때까지 졸인 다음 깨소금을 솔솔 뿌렸다. 갓 지은 따끈한 밥에 칼칼한 두부조림을 얹어 복스럽게 먹는 아들을 보니 우리 집 식탁 위로 복이 넘실넘실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 다행히 아들은 컨디션이 훨씬 나아졌다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 생각나는 음식이 소울푸드야. 네 소울푸드는 두부조림인가 보다." "엄마도 소울푸드가 있어?" "엄마는 김치 수제비랑 강냉이. 그 걸 먹으면 기운이 나더라." 명색이 소울푸드인데 너무 소박한가 싶으면서도 30분이나 가열하는 두부조림도 과하다 싶었다. 우리 몸만큼이나 아껴줘야 할 지구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말이다. 올해는 8월 말에 피는 능소화를 비롯해 많은 여름꽃이 6월 초에 피었다. 작년은 지구가 가장 뜨거운 해로 기록되었고 《폭염 살인 》이란 책에서는 뜨거워진 지구가 모든 생명을 위협한다고 얘기한다. 소박한 입맛은 마음에도, 자연에도 이롭다.
☆ 소울푸드 즐기기 루틴 ☆ ㆍ 컨디션이 저하될 때 생각나는 음식들을 적는다. ㆍ가장 먹고 싶은 보양식의 레시피를 찾아 기록해 둔다. ㆍ 적어둔 레시피 대로 만들어보며 요리법을 외운다. ㆍ 다음번에는 레시피를 보지 않고 요리해본다. ㆍ 몸이 허해질 때마다 언제든 빠르게 요리해 먹을 수 있도록 반복해 익혀둔다.
글 정재경(에세이스트 겸 리추얼 멘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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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람이 일생의 먹는 것이
산이 하나 넘어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섭생은 우리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먹는 것 하나하나가 농민들의
한과 피와 땀이 서려 있는 것입니다.
수입농산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천수답 농사를 지으며,
인력으로 모든 농사를 짓습니다.
식품 앞에서 항상 고마움을 알고,
겸손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정읍 ↑ 신사 님 !
다녀가신 고운 흔적
고견 감사합니다 ~
설렘으로 가득한
알찬 주말 보내세요
~^^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다녀가신 고운
멘트 감사합니다 ~
즐거움이 함께하는
행복한 휴일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