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 / 김박은경 붉은 모자를 쓰고 커피를 마시는 노인들로부터 붉은 운동화를 신고 뛰어가는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어딜 가는 길이세요
졸음을 깨우고 허기는 재우고 인형을 뽑거나 홈런을 날리고 전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거나 허리를 두 팔을 목을 이리저리 돌리는 김 씨도 이 씨도 쉬고 있고 꽃씨도 풀씨도 쉬고 있다 떨어지다가 날아가다가 피어나다가 두 동강 난 개미도 날아가던 야구공도 빨려 들어가던 지폐도 카드도 커피머신을 향하던 점원도 아이스크림 기계도 감정이 사라진 신속과 정확도
쉬기 위해 이곳에 오기 위해 야생동물 주의구간을 지나고 사망사고 다발지역도 지나고 모두 지나야 한다 그래야 쉴 수 있다
누군가 갑자기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접시는 깨지고 커피는 쏟아지고 공은 옆으로 새고 개미의 몸통을 물고 가는 또 다른 개미의 행렬이 이어지고 멈춰 섰던 자동차들이 달려 나가기 시작하는데
쉬고 싶고 살고 싶고 죽고 쉬고 그 다음은 뭐지 이게 다 뭐지
가만한 빛 덩어리를 만져본다
유일한 두 손이 따스해진다
- 시집 『사람은 사랑의 기준』 (여우난골, 2023.06) --------------------------------
* 김박은경 시인 1965년 서울 출생. 숙명여대, 홍익대 산미대학원 졸업. 2002년 《시와 반시》 등단 시집 『온통 빨강이라니』, 『중독』, 『사람은 사랑의 기준』 산문집 『홀림증』, 『비밀이 없으면 가난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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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게’는 시인의 인식성이 생성되고 사라지는, 중층성을 갖고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이 주는 시간의 흐름은 전혀 다른 인식성을 만들어내는 까닭이다. 지금 자아는, 아니 사람들은 ‘휴게소’에서 쉬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온 것은 그냥 온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 주의구간을 지나고”, “사망사고 주의구간을 지나는” 등 “다 지나가야” 올 수 있는 곳이다. 그래야 편히 쉴 수 있는 곳, 말하자면 어느 정도의 유토피아가 실현되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가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어려운데, 그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 ‘생각‘이 형성되면서부터이다. 이 담론이 지배하는 순간, 인식성의 지표들은 전연 다르게 구현된다. 시인의 말대로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 “접시는 깨지고 커피는 쏟아지고 공은 옆으로 새고 개미의 몸통을 물고 가는 또 다른 개미의 행렬이 어어지고 멈춰 섰던 자동차들이 달려”나가는 까닭이다. ‘생각’은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아버지의 단계‘ 일 수도 있고, 또 라캉 식으로 말하게 되면, ‘거울상’ 단계처럼 비춰진다. 뿐만 아니라 그 구분점의 뒤끝은 도구적 이성을 닮아 있기조차 하다. 이런 면에서 보면, 시인은 어김없는 반근대주의자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시인은 담론이 하나의 지점에 고착되는 것에 저항해왔다. 뿐만 아니라 보편성보다는 고유성에 보다 중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시인은 이를 초월한 어떤 선험의 지대를 그리워한 듯도 보인다. 그것은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들이 공유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것이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비추어지더라도 이에 쉽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그의 시들은 지금 의미가 확산되어 나가는 지점과 수렴하고자 하는 지점의 중간에 서 있다. 대상을 확정지으려는 담론과 그렇지 않으려는 담론과의 갈등, 근원에 다가서지 못하는 담론과 이에 충동적으로 다가가려는 담론과의 갈등에 서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의 시들은 이 둘 사이의 지점을 조율하는 길항관계 속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 관계가 시인의 시세계의 또다른 지점을 만들어낼 인식성이 될 것이다.
- 송기한 (문학평론가, 대전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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