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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혁명이 일어난지 2년만에 국민당 세력은 위안스카이의 독선에 저항해 2차 혁명을 일으켰지만, 막강한 북양군대의 무력 앞에 좌절.
1913년 7월의 2차 혁명에는 장쑤, 안후이, 쓰촨, 후난 등 6개 성이 북양정권에 대항해 독립 선언
위안스카이는 2차 혁명을 제압한 후 (중략) 우선 국민당이 장악하고 있는 국회를 짓밟았다.
1913년 10월 5일 위안스카이 부하들은 공민단을 조직해 국회를 포위하고 위안스카이를 대총통으로 선출하지 않으면 회의장을 나갈수 없다고 협박.
국회는 두차례 부결 끝에 10월 10일 세 번째 투표에서 위안스카이를 정식 대총통으로 선출
국민당이 주도한 국회는 10월 31일 총통제가 아닌, 내각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안 반포.
위안스카이는 총리에게 권력을 내주는 헌법안에 불만을 품고, 국회에서 국민당 제거작전 돌입.
11월 4일 국민당을 해산하고 358명의 의원에게 2차 혁명에 가담했다는 죄목을 씌워 의원자격을 박탈. 자격 박탈 의원의 숫자에 추후 80명이 추가되었다.
국회의원 절반 이상이 자격박탈되면서 국회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기능이 마비. 사실상 국회를 해산한 셈
위안스카이는 국회를 대체한 유사입법기구로 국민대회 소집. 22개 성에서 각 2명, 수도와 전국 상공회에서 각 4명, 몽골, 칭하이, 티벳에서 8명을 선발 60명 구성.
위안스카이는 이 국민회의에 헌법을 1914년 5월 1일 통과시켰는데, 이 헌법이 중화민국약법.
위안스카이 구미에 맞게 국가체제는 총통제로, 임기는 10년에 무기한 연임이 가능. 또 총통은 후계자를 지명할수 있다.
위안스카이는 황제가 되고 싶었다. 선통제를 퇴위시킨 직후 “중국에 다시는 군주정치가 행해지지 않도록 할 것” 말을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1915년말이 되면서 군주제 청원운동이 노골적 전개. 최측근들은 황제 등극을 우려.
오른팔 격인 펑궈장(馮國璋)이 즉위를 말렸다. 위안스카이는 “내가 무슨 욕심이 있어 황제를 꿈꾸겠나. 그런 말은 믿지 말게.” 새빨간 거짓말.
펑궈장이 돌아가자 "저 친구가 감히 내 앞길을 막으려 하다니, 제 정신이 아니군”하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간신들은 위안스카이의 마음을 읽고 끊임없이 황제가 되어달라고 청원. 11월 20일 국민대표 대회는 절대다수로 군주제 승인, 12월 11일 각 성의 대표들은 민의를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중화제국의 황제로 취임해 줄 것을 요청.
다음날인 12월 12일 위안스카이는 신하들의 청에 의해 마지못해 황제직을 받아들이는 시늉.
수락한 후 태도 돌변. 다음해인 1916년을 홍헌(洪憲) 원년으로. 1916년 1월 1일 중화제국대황제(中華帝國大皇帝) 또는 홍헌황제로 등극식 계획.
위안스카이의 황제 선언은 민주세력에게 충격적이었다.
1915년 12월 25일 윈난성 전임도독 차이어(蔡鍔)가 군주제 복고운동을 성토, 그의 스승인 량치차오도 위안스카이의 토벌을 선언.
윈난성은 독립을 선포하고 위안스카이 정권에 대한 호국전쟁(護國戰爭)을 선언. 27일 구이저우성도 독립을 선포.
위안스카이는 황제 등극식 연기.
측근 돤치루이와 펑궈장에게 토벌군 총사령관을 맡으라고 했지만, 두 장군은 상관의 명령을 거절했다. 역적이 되기 싫었던 것.
반황제파는 기세 좋게 북상. 3월 15일에 광시성이 독립, 산둥성에도 군주제 복고를 반대하는 군부 반란.
위안스카이는 달리 선택의 방법이 없었다. 3월 22일 황제의 꿈을 포기.
위안스카이에 반대하는 호국전쟁의 기세는 높아갔다.
4월 6일 광둥성이 독립, 12일 저장성이 독립.
5월 5일에는 각 혁명군이 연합해 군사위원회를 조직해 위안스카이의 총통 지위를 부정.
위안스카이의 가슴을 가장 후벼 판 것은 심복 펑궈장마저 퇴위를 요구한 것. 그의 동생들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5월 9일에는 산시, 22일엔 쓰촨, 27일엔 후난성이 독립 선언.
위안스카이는 자신을 죄어오는 압박에 못이겨 1916년 6월 16일 요독증으로 급사
중국을 공중분해시켜 군벌판으로 만들어버린 원씨의 친위쿠데타와 국제망신 황제놀이 덕에
윤의 친위쿠데타는 역사적인 국제망신 중 2등이 되어버린게 다행(?)인 건지 모르겠군요
원씨 이놈도 냅다 저질러놓고는 황제 즉위 취소했다면서 대총통 자리를 안 놓고 버티려했습죠
웃긴 건 황제가 되고서도 타국과의 외교 문서에는 연호를 쓴다거나 공식직함을 엠페러로 쓸 엄두는 못 냈는지 프레지던트라고 했다 하죠
아들 위안커딩이 만들어준 가짜뉴스 믿고 즉위 했다는 말이 어느 정도 정론이긴 하지만
제정신이었을 때는 경험 많고 유능하고 정치적인 감이 좋았었던 게 원세개이니 윤가가 여기에 비빌바는 못될듯
펑궈장보다 못한 한동훈...
우리도 '호국전쟁'을 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인데
며칠간의 전투에서 확실히 승기를 잡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