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9월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 주시옵소서.
아들의 이름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가오니
아버지 품속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 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 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 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본문 주해)
1~8절 : 아브라함이 나그네 세 사람을 환대하는 장면이다.
이 세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들을 ‘내 주여!’ 라고 한 것(3절)은 그들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을 높여 부른 것이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13:2)
아브라함은 이들을 극진히 대접한다.
떡을 만들 고운 가루 세 스아는 22리터의 양이고, 송아지 한 마리는 세 사람이 먹기에는 넘치는 양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모든 음식이 신속히 준비되도록 지시했고, 또 그들이 음식을 먹는 동안 그는 정중히 시중들었다.
“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만든 송아지 요리를 나그네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나무 아래에서 먹는 동안에, 아브라함은 서서, 시중을 들었다.”(8절, 새번역)
아브라함은 종을 많이 거느린 거부였지만 자신의 신분, 가진 것과 상관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손을 대접한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대접하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히13:2)
이것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마25:40)이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통하는 것이다.
믿음이 곧 삶의 모습인 것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의 24년은 공허한 세월이 아니라 믿음이 점점 채워지는 시간이요, 믿음의 조상으로 성장하는 세월이었다.
9~15절 : 세 사람이 아브라함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후에 그들이 사랑가 어디 있는지 묻는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내가 사라인 것과 이들 부부에게 아들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하나님께서) 내년 이맘 때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을 말씀하시자 아브라함은 이분이 누구인지를 차츰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 긴긴 기다림의 시간에 대한 최종적인 시한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장막 뒤에서 이 말을 들은 사라가 웃었다. 앞서 아브라함도 엎드리어 웃었는데(창17:17), 그때와 동일한 상황이 사라에게도 생긴 것이다.
사라의 웃음은 너무도 불가능한 일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하시며 냉소적으로 반응한 사라를 지적하시자, 사라가 두려움으로 자기의 웃음을 부인한다.
(나의 묵상)
오늘 하나님께서 세 사람의 나그네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후손이 태어날 분명한 때를 알려주시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성에 대한 심판(16~30절)을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후손의 약속을 하신 지 24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 동안 아브라함에게는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갔지만 아내를 팔아 목숨을 부지해야 했던 사건이 있었고, 조카 롯과 결별하는 사건도 있었다. 그리고 그 조카가 전쟁에 휘말려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의 생명을 돌아보지 않고 전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롯을 구하기도 했다.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는 동안 아브라함의 믿음이 조금씩 자라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결정적으로 이스마엘이란 샛길에 빠져버린다. 이 일로 13년 동안이나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 하지만 다시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약속을 잊어버리는 인간의 몸에 약속의 징표인 할례를 하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때마다 늘 약속의 자녀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드디어 오늘, 그 자녀가 태어날 구체적인 때를 말씀하여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가 인간적으로 아무런 것도 기대할 수 없는 때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라가 그 냉소적이고 씁쓸한 웃음을 웃었던 것이다. 내년이면 남편이 100살이요 자신이 90살인데.....그때 아들을 얻는다니.....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나 여호와에게 불가능한 일이 있겠느냐?’ 하시며, 웃었던 사라를 나무라신다.
나는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을 믿었다.
그래서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을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 달라고 열심히 졸라댔다.
그런데 복음을 알게 된 이후 하나님께 졸라야 할 것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언약에 관계된 모든 일이지, 내 소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주신다고 확언하신 것은 자식을 간절히 원하는 늙은 부부에게 소원을 들어주어 기쁘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사실 아브라함에게는 이미 이스마엘이라는 핏줄이 있었다.)
그것은 사라를 통해 태어날 약속의 자녀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함이다.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14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이지, 땅에 붙은 마음으로 사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어주기 위한 전능하심이 아닌 것이다.
오늘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것도 믿음이 쌓이고 있다는 증거이다.
인간적으로 본다면 거부가 된 아브라함이나 욥이 나그네나 고아나 과부를 돌보는 일을 굳이 나서서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그들에게 주셨다.
이제 이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은 더 이상 웃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물음표는 이미 느낌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기어코 이루어내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할 때마다 나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을 꿈꾸며 기대하며 열렬하게 노래했던 내가 아니었던가?
이제 영생을 주신다는 약속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한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만나 뵐 것을 기대하며 주님의 전능하심을 찬양한다.
비록 이 세상 나라에 몸을 담고 세상 정신과 부딪치며 살고 있지만, 나는 이미 아들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사는 자가 된 것이다.
이 세상에 나그네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이 세상을 나그네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 나그네가 타국인 이 땅에서 주님께서 하게 하신 일을 마치고 본향에 안전하게 도착하기까지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께서 생명싸개 손 안에 있게 하실 것을 믿는다.
(묵상 기도)
주님,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을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오직 주님을 찬양할 뿐입니다.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을 생각하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씁쓸한 냉소적인 사라의 웃음을 그치게 하시고
하신 약속을 이루시고야마는
전능하신 나의 주님을 알게 되니 기쁨이 넘칩니다.
이 기쁨을 주신 성령님,
더욱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