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
(사도행전 28 : 23-31)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는 지금과 같은 정보가 빨리 오가던 때가 아니니까, 누군가가 그들에게 바울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를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을 무작정 배척하지는 않았고,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들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날 날짜를 정했습니다.
1.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예수를 권하였습니다.
본문 23절에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약속한 날짜가 이르자, 바울을 처음 방문했던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심이 있는 유대인들까지, 많은 사람이 바울이 가택 연금되어 있는 싸구려 헛간 같은 셋집에 모였습니다.
본문의 ‘강론하다’는 ‘자세히 설명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은 ‘구약성경’을 일컫는 표현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면서, 구약성경에 예언된 메시아가 바로 나사렛 예수님이심을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을 찾아온 유대인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즉 ‘하루 종일’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강론했습니다. 특히 ‘아침’이라는 말은 ‘새벽’ 또는 ‘동트는 시각’을 뜻하는 말입니다. 즉 유대인들은 바울과 약속한 날이 밝자마자 바울을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른 아침부터 해가 저물어 앞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인생 말년에 접어들었고, 지병에도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팔에는 쇠사슬도 있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는 것은 로마에 있는 유대인들을 위해서, 주님 안에서 그들을 살리기 위해, 바울이 자신의 생명을 던진 것과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이러하였습니다.
24절에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동일한 공간에서 동일한 사람으로부터 동일한 복음을 들었음에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 경험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와 동일한 마을에 있는 교회에서 동일한 목사님으로부터 동일한 복음을 들으며 신앙생활 했음에도, 우리는 지금 주님 앞에 있지만, 지금 주님과 등지고 있는 사람도 참 많지 않습니까? 오직 주님의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 말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아니하는 사람으로 나뉘었습니다. 그때 바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25-28)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이 말씀은 이사야 6장 9-10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듣는 것뿐만 아니라 삶으로 들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영원히 구원해 주시려 했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을 자처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귀로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들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함으로, 그 말씀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것입니다. 참 신비하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모든 것을 담대하게 가르쳤습니다.
28장으로 구성된 사도행전은 이렇게 막이 내리고 있습니다.
[(30-31)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바울은 싸구려 헛간 같은 셋집에 2년 동안 연금되어 있었는데, 찾아오는 사람을 다 영접했다고 합니다. ‘영접하다’는 동사가 미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왔고, 바울을 계속해서 그들을 영접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찾아온 사람들에게 전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라고 질문하면서 사도행전의 막이 올라갔습니다. 물론 이때 제자들이 꿈꾸었던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달랐습니다. 하지만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신 후에, 제자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의 막이 내리면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나라의 주인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다고 증거합니다. 즉 사도행전의 주제, 우리 그리스도인이 꿈꾸고 살아야 할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온전히 임하는 곳입니다. 즉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사도행전의 주역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인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했고, 마침내 성령님께서 임하신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번도 배우지 않았던 언어로 말하게 되었고, 또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말씀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이 3,000명, 5,000명이나 되었다고 증거합니다. 그러면 마지막에는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습니다. 로마제국이 복음화가 되었다든지, 사도들이 다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다든지로 마침표를 찍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순교를 당했고, 사도 바울도 가택 연금된 것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셨고,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세상의 나라나 세속적인 가치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며, 영원한 가치관을 추구해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원한 가치관을 추구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힘이 되심을 삶으로 증명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변질의 인생이 아니라 변화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우리의 삶이 각자의 사도행전으로 엮어지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3. 승리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1장 20절에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요한복음 3장 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존 웨슬레John Wesley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존 웨슬레가 주님과 교통하며 기도하다가 깊이 잠이 들어 천국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천국에 들어서기 전에 천국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에게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나와 함께 영광스런 복음 운동인 메소디스트 Methodist 운동을 하던 친구들이 얼마나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까?
그 천사는 잠깐 기다리라고 한 후 명부를 한참 뒤져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감리교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깜짝 놀란 웨슬레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의 신앙은 잘못된 모양이군요 그렇다면 영광스런 칼빈의 5대 교리를 강조하던 장로교인들이 다 천국에 온 모양이지요 그들은 몇 명이나 왔습니까?
천사는 한참을 뒤져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장로교인은 한 사람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웨슬리는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천국에 들어왔단 말입니까?
천사는 방긋이 웃으면서 지으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천국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으로 성령으로 인친 그리스도인들만이 와 있습니다.
천국은 교리로 된 신학사상으로 가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이란 뜻입니다.
은혜받고 성령받는 사람, 회개하고 성령충만을 받은 사람이 가는 곳 하나님 나라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5절에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디모데전서 1장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에베소서 1장 3절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로마서 8장 39절에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미국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을 설립한 사람은 바로 '스탠포드'입니다.
스탠포드는 부자였습니다. 캘리포니아 출신 상원의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잘 생기고 수재였던 외아들이었습니다
극도의 슬픔에 잠긴 아버지는 장례식장에서 말을 잃었습니다.
슬픔 속에 잠을 자지 못 하고 있는데 그 날 밤 꿈에 아들이 생생한 모습으로 나타나 말했습니다.
'아버지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저 대신 청년들을 도와주셔요
스탠포드는 이 환상을 보고 인생관이 확 바뀌고 말았습니다.
'예수님도 살아 계시고 내 아들도 살아있다!' 스탠포드는 이런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소원을 들어 주기고 하고 청년 교육에 전력을 다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약 200억 원을 바쳐서 오늘의 명문인 스탠포드대학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 일에 전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죽을 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재산은 10원짜리 동전 하나 남기지 말고 청년 교육에 사용하라'